2025년 07월 4주차

BOOK SUMMARY


 인문 

나의 소비자 분쟁 조정기

저자 변웅재 (지은이)
출판 안타레스
출간 2025.06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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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비재 분쟁 조정기


악마는 어디에 있을까?_전자 상거래 분쟁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통칭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항은 1) 쿨링오프(cooling-off) 또는 숙려 기간을 설정해 7일 이내에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청약철회권이다. 이뿐만 아니라 2) 서비스 포함 재화 등의 내용이 표시, 광고의 내용이나 계약 내용과 다르게 이행됐다면 그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 해당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마찬가지로 청약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에 따라 잘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일까? 변호사들이 마케팅에 자주 인용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전자상거래법 제 17조 제2항에는 쿨링오프 또는 숙려 기간이라고 부르는 7일 이내에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1)의 청약철회권 예외 규정이 있는데,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적지 않다.


7일 이내 청약철회권 행사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 사항 가운데 비교적 분쟁이 많은 부분은 사업자가 소비자 과실로 물품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경우,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로 물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주장하는 경우,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개별적으로 생산하는 물품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과 이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이기에 판단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통신판매로 노트북을 구매해 한 번 부팅한 뒤 마음이 바뀌어서 청약철회를 한 경우 사업자는 위 제5호 “소비자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로 재화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환불을 거부하곤 한다. 타당한 주장일까? 어떤 제품은 포장만 뜯어도 사업자가 반품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예외 규정 제1호에 따르면 “다만, 재화 등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는 제외한다”면서 일종의 예외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반하는 주장이 아닐까? 사실 법 조항에 이와 같은 예외의 예외 조항이 많으면 부정의 부정 문장처럼 혼란이 초래된다. 온라인에서도 이른바 명품이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업자는 명품 포장지도 그 자체로 수십만 원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포장을 훼손하면 전액 환불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헷갈리지 않는가? 그저 불합리한 주장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전자상거래 분쟁에 관한 조언

소비자를 위한 조언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전자상거래는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온라인 전자상거래로 구매하는 게 좋을지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게 좋을지를 판단해야 한다. 온라인을 선택했다면 국내 구매가 좋을지 해외 직구가 좋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사업자가 제공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전자상거래 이용의 기본이자 시작이다.


나의 소비자 분쟁 조정 경험에 비춰볼 때 신발은 가급적이면 전자상거래로 구매하지 않는 게 좋다. 신발은 평소 자신이 신는 치수가 표기돼 있더라도 실제로는 발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조사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문제 삼아서 청약철회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신발만큼은 조금 귀찮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직접 신어보고 사기를 권한다. 나도 신발은 가족과 바깥나들이를 할 때 매장을 찾아가 이것저것 신어 본 뒤 구매한다. 그런데 어떤 소비자들은 신발을 해외 직구로 구입하기도 한다. 이때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판매자가 미국, 유럽, 영국 등 외국의 치수 차이를 표기했더라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데다, 아무리 신중하게 골랐더라도 기다림 끝에 배송을 받아보면 너무 크거나 작아서 황당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청약철회권을 행사해 반품하더라도 단순 변심에 해 당하면 해외 반송 비용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판매자나 플랫폼을 맹신하지 말고 신중히 판단하라는 것이다. 전자상거래법상 단순 변심에 의한 청약철회권도 보장돼 있다고 해서 한 번에 여러 개 제품을 구매한 뒤 그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반품해서 환불받으려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막상 반품하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고(특히 해외 반송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판매자가 여러 이유를 들어 반품을 거부할 수도 있다. 분쟁을 통해 해결해서 환불을 받으려고 해도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 판매자나 플랫폼 관리자와 다투다 보면 마음에 상처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 변심으로 반품하는 물품들이 재판매되지 않으면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폐기물이 된다. 반품한 소비자가 폐기물 배출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애초에 신중하게 결정해서 꼭 필요한 구매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업자를 위한 조언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사업자, 즉 통신판매업체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전자상거래법상 7일 이내 청약철회의 예외를 주장하려고 한다면 이에 필요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판매하는 제품은 철저히 소비자에게 맞춘 것이기에 7일 이내 단순 변심에 의한 청약철회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소비자의 주문에 맞춰 개별적으로 생산한 재화 또는 서비스라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한다. 단순히 마케팅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맞춘 제품과는 의미가 엄연히 다르다.


둘째, 전자상거래법상 청약철회를 인정하는 경우 통신판매업체에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내용을 인정받아야 한다. 예컨대 기존에 상당한 비용 발생했거나, 제3자에게 판매가 불가능하거나, 제품 폐기에 따른 금전적 손해 등이 인정돼야 한다.


셋째, 사전에 해당 거래에 대해 일반적인 거래 약관 동의와는 별도의 동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앞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실을 고지하고 7일 이내 단순 변심으로 인한 청약철회가 되지 않는다는 소비자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두 번째는 온라인상에서도 소비자를 배려한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거대 중개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대부분이라 판매자 각각의 친절함과 매력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이 법률상의 통신 판매업자가 아닌 플랫폼 중개업자를 판매자로 오인한다. 붕어빵처럼 똑같지 않고 플랫폼 안에서 자신들만의 개성과 배려를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사업자도 매출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입점한 통신판매업자들이 저마다 독특한 매력과 친절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지원을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_서비스 제공 분쟁

만남이나 연애와 관련해 가장 전통적인 서비스는 주로 결정사라고 줄여 부르는 결혼 정보 회사다. 사회생활의 치열한 경쟁과 바쁜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결혼 상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또 과거처럼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소개받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했으니 방대한 회원 데이터베이스와 전문 상담 인력을 보유한 결혼 정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만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법률적, 제도적 구속력이 매우 강한 일종의 계약을 하는 것인 만큼 배우자에 대한 요구와 기대치가 너무 커서 분쟁이 발생하기도 쉽다. 돈 많은 집안 사람을 소개해주기로 결혼정보 회사와 이야기가 됐다고 해보자. 그런데 막상 소개받은 사람 집안 재산이 알고 봤더니 50억이다. 수백억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결혼 정보 회사가 약속을 어긴 걸까? 또는 기독교 집안 사람을 소개받기로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냥 가족들 따라서 억지로 교회에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다. 신앙심 깊은 사람을 원했는데 말이다. 이 경우에도 결혼 정보 회사가 약속을 어긴 걸까? 고객은 회사가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결혼 정보회사에 전액 또는 대부분 금액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서비스 제공 분쟁에 관한 조언

소비자를 위한 조언

서비스 제공 거래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기대치를 조금 낮추라는 것이다. 일례로 집 청소를 서비스 회사에 맡길 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완벽하게 새집처럼 되지는 않는다. 연로하신 부모님 돌봄을 간병인에게 맡겨도 자식 마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본래 남을 위한 서비스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중국 청나라 시대 학자 적호는 통속편에서 “남에게 구하기보다 먼저 자신에게 구하라”고 했는데, 지금도 중국에서 “남에게 부탁하느니 내가 직접 하는 게 낫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남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남이 해주는 일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친절히 대한다면 조금이나마 더 열심히 일해줄 것이다.


두 번째는 사전에 꼼꼼히 살핀 뒤 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형이 정해진 물품을 구매할 때는 계약의 목적이 명확하다. 다른 게 될 수가 없다. 하지만 서비스의 경우에는 다르다. 청소 서비스만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인력이, 어떤 종류의 청소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따라 각각 다른 서비스가 된다. 그렇기에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려면 사전에 서비스와 관련한 모든 구체적 합의를 해놓을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결혼 중개 서비스도 소비자 관점에서 요구 사항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장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가 결혼 정보 회사 커플 매니저와 구두로만 합의한 내용을 갖고 계약 위반을 주장하곤 하는데, 증명이 어려워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에서 계약 협상을 할 때 “먼저 소인이 되고 나중에 군자가 됩시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중국 사람들은 다 이해하는 말이다. 소인배처럼 하나하나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챙겨야만 비로소 군자처럼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사업자를 위한 조언

서비스 제공 거래와 관련해 사업자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다름 아닌 프로 의식이다. 2016년 프로야구에서 롯데자이언츠가 연패의 늪에 빠졌을 때 롯데 관중석에서 7명의 팬이 각각 한 글자씩 “느, 그, 가, 프, 로, 가?”라고 쓴 종이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잡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프로, 즉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라는 말은 아마추어가 아닌 직업적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의미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책임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칭찬은 무엇일까? 내 경우에는 “정말 프로시네요”였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어떤 종류든 자부심과 전문성을 갖고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것이 소비자가 기대하는 사업자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서비스 내용을 소비자에게 확실히 이해시키고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 거래와 관련된 계약은 통상적으로 사업자가 제공하는 약관에 따라서 체결되므로, 애매하거나 불확실한 내용이 있다면 나중에 사업자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추가로 특약 사항을 넣기도 하는데, 사업자가 계약서에 손 글씨로 기재한 특약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약관에 추가해 별도로 합의한 내용도 그저 흘려 쓴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장으로 기재해야 한다. 특히 고령의 소비자들이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스마트폰 기기를 변경하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보면, 심한 경우 낙서라고 볼 수밖에 없는 글자들을 여백에 잔뜩 써놓기도 하는데, 이후 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그것이 특약이었다고 이동통신사 대리점 사업자가 주장하면 그저 황당할 뿐이다.


정부를 위한 조언

서비스 제공 거래와 관련해 정부에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서비스 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해 서비스 품질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고 인증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전에도 각종 공개 경연이 인기를 끌었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대리만족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서비스 분야의 고객 갑질을 방지하고 처벌할 규제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현 한국소비자중심기업 협회인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와 더불어 문제행동 소비자에 관해 법률적으로 분석한 책을 발간하고, 각종 세미나 발표를 통해 고객 갑질 대응 대책 마련을 기업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다행히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법률 개정이 이뤄져서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추가돼 있다.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

제1항: 사업주는 주로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고객 응대 근로자에 대하여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제2항: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제3항: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제2항에 따른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근로자의 요구를 이유로 해고 또는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


관건은 이런 법률 조항이 얼마나 잘 이행되느냐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제2항을 위반할 시 1,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제3항을 위반해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예방조치 의무인 제1항을 위반할 때 어떤 행정적, 형사적 제재를 할지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고객 갑질이 일어난 이후의 조치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고객 갑질 이전의 예방조치를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지 정부 차원의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함께 울어야 해결될 문제_의료 분쟁

의료 분쟁 조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무엇일까? 보통은 의료과실 유무와 설명의무 위반 여부다. 의료과실 유무 판단은 의료기관의 의료 행위에서 주로 약결과라고 부르는 나쁜 결과가 발생한 경우 그것이 의료 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인과관계가 없다면 추가 검토 없이 의료기관은 책임을 면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면 그다음에는 의사 등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과실이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여기에서 과실이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관리하는 의료 업무 특성에 비춰 환자의 구체적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을 의미한다. 의료인이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항이 없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 범위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일관된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 분쟁에 관한 조언

소비자를 위한 조언

의료 분쟁과 관련해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의사가 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료 분쟁 조정 때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래도 의사잖아요”다. 의사이니 어떤 병이든 당연히 알아야 했고, 의사이니 어느 병이든 당연히 치료해야 했다는 의미가 포함된 말이다. 그러나 의료 분쟁 사건을 처리하면서 계속 느꼈지만, 의료 기술이 상당 수준 발전한 지금도 의사가 잘 모르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과 증상이 무수히 많다. 특히 발음도 어려운 외국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른바 ㅇㅇㅇ 증후군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증상 같은 경우에는 알려진 원인이나 치료법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도 사람이니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조정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나쁜 결과가 일어났더라도 반드시 의료기관이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나쁜 결과와 의료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하고, 의료인의 과실도 입증돼야 한다. 금전적 배상 책임을 지우려면 최소한 설명의무 위반이라도 인정돼야 한다. 감정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세 번째는 의료기관의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막대한 배상금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의료 피해는 의료인의 과실 외에 다른 요인, 일테면 환자의 기저질환이나 평소 건강 상태, 수술 후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피해가 확대될 수도 있고, 의료 행위 자체가 완벽하지 않고 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실무상 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뇌 수술이나 심장 수술처럼 긴급하고 위험한 수술의 경우에는 책임 제한을 더욱 크게 하는 경향이 있다. 손해배상을 인정하더라도 의료과실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요된 치료비 등 직접 손해액과 의료과실로 인한 문제로 감소한 소득, 예컨대 입원 중 노동력 및 소득 상실에 따른 미래 잠재 소득 상실 등 간접 손해액 그리고 위자료로 나눠서 손해배상 액수를 엄격히 산정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액이 적을 수 있다. 만약 다른 책임은 인정되지 않고 환자의 선택권을 침해한 설명의무 위반 책임만 인정된다면 위자료 정도의 손해배상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네 번째는 중요한 치료의 경우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아이가 병이 생겨 병원에서 빨리 수술하자고 했을 때 왠지 기분이 찜찜해서 다른 병원에 알아봤을 때 완전히 다른 질병임을 알게 된 경우가 있었다. 먼저 찾은 병원의 권유만 믿고 수술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마도 한두 번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의료적 결정을 위해서는 다른 전문가들의 2차 의견까지 두루 수렴하는 게 좋다.


다섯 번째는 수술 시 수술동의서를 반드시 정독하고 궁금한 사항은 주치의에게 직접 문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소비자들은 병원의 수술동의서에 기재된 내용이나 의사의 설명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나 유튜브 설명을 더 신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의 정보는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데다 개별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정보가 아닌 일반적인 사항이다. 지금 환자를 보고 있는 주치의의 설명이 정확하다.


사업자를 위한 조언

의료 분쟁과 관련해 사업자 혹은 의료인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조언은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사실이다. 의료과실이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가 될 때 기억에만 의존해 자신들은 분명히 수술 과정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 취했고, 사전에 환자에게 관련 위험성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주장하는 의료인들이 꽤 있다.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특정 조치를 했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설명 여부도 수술동의서에 해당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거나, 설령 기재돼 있더라도 밑줄이나 형광 표시로 설명한 흔적이 없으면 입증이 어렵다. 따라서 의료진으로서는 의료 행위상 모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야 함은 물론 의료 기록이나 수술동의서 등을 충실히 작성하고 보관해야 한다. 악마가 증명에 있다면 그에 맞설 천사는 기록에 있다.


두 번째는 수술동의서 양식과 내용을 종류별 맞춤형으로 만들고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병원이 수술 종류와 무관하게 일정한 양식에 동일한 내용이 인쇄된 수술동의서를 활용하고 있다. 더욱이 의학 발전과 경험 축적으로 새로운 합병증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수술동의서에 기재된 합병증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비단 특정 의료인뿐 아니라 의료기관 전체의 설명의무 위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도 할 수 있기에 조속한 시정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의료 분쟁 발생 초기부터 종료까지 사건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진료와 수술 등을 담당하는 의료인이 의료 분쟁을 직접 처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많은 의료기관이 내부 직원이나 외부 변호사가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데, 문제는 의료 분쟁 처리에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의료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률 지식 말고도 상당 수준의 의료 지식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별도의 특별 양성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스스로 갖추기 힘들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있으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의료 분쟁 해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잘 갖춘 직원이 있는 의료 기관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의료 분쟁을 해결했다. “잘 키운 직원 하나, 열 변호사 안 부럽다”는 모토로 의료 분쟁 해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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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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