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주차 |
BOOK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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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40가지 테마로 읽는 도시 세계사 |
저자 첼시 폴렛 (지은이), 이정민 (옮긴이) 출판 현대지성 출간 202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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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요약 보기![]() 40가지 테마로 읽는 도시 세계사 여리고 · 농업 세계사를 바꾼 여러 도시 중 우리가 첫 번째로 주목할 곳은 여리고(Jericho)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학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여리고를 꼽는다. 여리고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9000년 무렵이다. 여리고와 인근 지역 사람들은 수렵 · 채집 생활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최초의 인류였다.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업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인류의 생활 방식이 극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인류는 남은 식량을 저장했다가 굶주릴 때 먹거나 다른 물품으로 교환함으로써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요를 맞이했다. 오늘날 여리고는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로,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인 요르단곡에 자리 잡고 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종려나무의 성읍"이라 불렸던 여리고는 오늘날 종교 순례자들과 역사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도시에는 샤와르마(아랍권에서 즐겨 먹는 회전 구이 고기 요리 옮긴이)와 팔라펠(아랍권의 콩 완자 요리 옮긴이)을 판매하는 식당이 늘어서 있고 유적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 숨겨진 역사를 밝혀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고고학 발굴 작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신석기시대에 여리고를 직접 방문했다면 문명사를 결정지은 두 사건을 목격했을 것이다. 바로 정착과 농업의 시작이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나투프인(Narufians)이라고 부르는 수렵, 채집인들이 광야를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들은 마운틴가젤의 가죽을 몸에 걸치고 뼈로 만든 구슬 장신구를 착용한 채 창을 들고 사냥을 나간다. 오늘날의 바센지(사냥개의 한 품종 옮긴이)와 비슷한 개를 데리고 식량과 각종 물품이 담긴 바구니나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들은 광야 한가운데서 신선한 물이 샘솟는 천연 오아시스를 발견하고는 잠시 머물며 쉰다. 이미 오래전 사라진 언어로 열띤 토론을 거쳐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바로 이 오아시스에 정착해 유목 생활을 끝내자는 결정이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나투프인은 해를 거듭할수록 오아시스에서 더 길게 머물다가 결국엔 1년 내내 눌러앉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곳에 아예 정착한다. 나투프인은 반지하식 타원형 석조 주택을 지어 마을을 건설했고, 이곳이 세계 최초의 도시로 성장했다. 그렇게 여리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여리고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류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는 지역 중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농사가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리고가 그 후보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수확 시기가 가장 이르다고 전해지는 보리와 호밀, 초기 형태의 밀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신석기 유적지이자 나투프인의 정착지인 여리고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9400년경에 여리고 인근에서 무화과가 재배되었다는 증거도 발견되었다. 이 덕분에 나투프인은 최초의 농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초의 농부들은 근성이 있을 뿐 아니라 혁신적이었다. 이들은 야생 에머(파로라고도 불리는 밀의 일종으로 극동에서 처음으로 재배되었다 옮긴이)를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는 법을 발견했다. 그러면 밀이 완전히 익었을 때도 줄기에서 떨어지지 않아 씨앗을 훨씬 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얻은 밀로 빵을 만들게 되었고, 밀은 일개 잡초에서 오늘날에 지위에 이르게 된다. 영국 샐퍼드대학교의 레이첼 브렌츨리(Rachel brenchley)와 여러 공저자가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칼로리 소모량의 약 20퍼센트가 밀로 충당된다. 나투프인은 맥주도 즐겼다. 일부 연구자들은 발효된 곡물로 만든 알코올음료 또한 농업을 부추긴 잠재 동기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오늘날 여리고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1400년경에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 이곳을 정복했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이 사건을 노래로 만들었는데, 빙 크로스비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전설적 가수가 부른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한때는 노예였으나 결국 전투에서 승리한 이들을 노래한 이 곡에서는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에는 자유를 향한 작곡가 자신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수천 년 전 여리고는 나투프인에게 광야에서 더 이상 식량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자유를 선사했다.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기존의 생활 방식과 사회구조를 완전히 뒤엎는 일이었던 만큼 대단히 어렵고 인내심을 요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견딘 여리고인은 수렵 · 채집 생활을 했던 조상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요를 보상받았다. 신석기시대의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농업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세계사를 바꾼 인류 최초의 도시로 인정할 만하다. 멤피스 · 의학 다음으로 살펴볼 도시는 고대 이집트의 중심지이자 수도로서, 인류의 의학 지식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멤피스(Memphis)다. 고대 이집트인이야말로 의학을 주술의 영역에서 학문적 전문 분야로 옮겨온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멤피스는 이집트인이 적어도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멘네페르(Meo-nefer, 아름다운 항구라는 뜻)라고 불렀던 도시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오늘날 멤피스의 고고학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이 고대 유물을 보기 위해 멤피스 야외 박물관으로 몰려든다.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3년까지 군림하며 이집트 최고의 권력을 떨친 람세스 2세의 쓰러진 석회암 거상으로, 높이만 약 10미터에 이른다. 관광객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거대한 석고 스핑크스와 화강암으로 만든 람세스 2세 동상 등의 유물을 감상한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와 수많은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사카라의 공동묘지에도 방문객이 밀려든다. 멤피스는 오늘날 카이로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나일강 삼각주 남쪽, 나일강 계곡 입구에 위치한다. 전략적 요충지라는 입지 덕분에 기원전 3500년경부터 기원전 3100년까지 정치 독립체로 존재했던 하(下)이집트에서 수도 역할을 맡았다. 농업 및 가축 사육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그들은 이미 기원전 3600년경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원전 2925년에메네스가 이 도시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이자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는 그는 선사 왕국인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합해 통일 이집트를 수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메네스가 나일강 범람으로 인한 재앙을 막고자 멤피스 평야를 물로 메우고 도시 외곽을 따라 대규모 댐을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은 메네스라는 이름이 멤피스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이집트의 건국과 멤피스라는 도시 사이 연관성을 강조한다. 메네스는 62년간 집권하다가 한 야생동물을 맞닥뜨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 동물이 하마였는지 악어였는지 혹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말벌이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그때 에피펜만 발명되었어도 그는 살았을 것이다). 노리치에 따르면 멤피스는 통일 이집트 최초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기원전 3000년경 파라오 시대 초기부터 기원후 641년 아랍에 정복되기 전까지 3500여 년간 때때로 수도로 사용되었다. 제2왕조 기간에는 티니스(통일되기 전 상이집트의 수도)로 수도가 바뀌기도 했지만, 제3왕조~제8왕조 기간에는 다시 수도 자리를 되찾았다. 기원전 2040년 왕조가 테베로 옮겨간 후에도 멤피스는 수 세기 동안 이집트의 종교, 문화, 경제 중심지로 남았다. 볼로냐 · 대학 다음으로 살펴볼 도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대학이자, 오늘날까지 계속 운영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 위치한 볼로냐(Bologna)다. 최초의 대학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유네스코는 5세기 굽타 왕조 시대의 고대 마가다(오늘날의 인도 비하르주)에 있던 불교 연구원 날란다(Nalanda)야말로 최초의 기숙형 대학이라고 주장해왔다. 기네스북 세계 기록은 859년 모로코 페즈에 이슬람 사원으로 설립된 알 카라윈의 마드라사(이슬람 고등교육 시설-옮긴이)를 최초의 대학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1088년에 설립되었다고 전해지는 볼로냐대학교야말로 학위를 수여하고 현대의 대학과 같은 방식으로 고등교육을 실시한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오늘날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 도시의 상징이자 석조로 만들어진 두 탑은 각각 1109년과 1119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당시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볼로냐 도심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입은 폭격 피해를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면적이 4,000제곱미터가 넘는 만큼 유럽의 중세 건축물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광장에는 장군이나 정치인의 동상이 아닌, 중세 교수들의 무덤과 기념비가 주를 이룬다. 볼로냐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로마에 비해 명성이 높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관광지로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 외 유명한 지역 산업으로는 에너지, 기계, 지역 농산물 가공 및 포장, 패션, 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볼로냐는 오토바이 기업 두카티와 고급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람보르기니의 본사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피렌체 · 예술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Firenze)만큼 진보라는 개념이 잘 어울리는 도시도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보석을 넘어 르네상스의 발상지라고도 알려진 피렌체는 정치, 비즈니스, 금융, 공학, 과학, 철학, 건축과 예술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피렌체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1330-1550), 특히 도시의 황금기였던 15세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술 작품이 다수 탄생했다. 오늘날 피렌체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다. 토스카나 지방은 자연환경과 건축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이탈리아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지역으로도 손꼽힌다. 피렌체는 도시 내에만 30만 명, 권역에는 150만 명 이상이 거주해 토스카나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오랜 역사와 매혹적인 풍경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인기 관광지이며,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피렌체에는 천재들이 넘쳐났다. 15세기에 피렌체를 거닐 수 있었다면, 수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피렌체에서 나고 자란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의 대표주자로, 그의 노트에는 해부학부터 지도 제작. 회화와 고생물학까지 온갖 분야의 지식이 담겨 있었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라파엘로, 조각가 도나벨로(Donatello,1386-1466)도 피렌체 사람이었다. 피렌체 공화국에서 관리로 일하면서 『군주론』을 집필하고 근대 정치철학과 정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1469-1527)도 마찬가지다. 탐험가이자 상인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유래가 된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l,1454-1512)를 우연히 보게 될 수도 있고, 레오나르도 등 피렌체 최고의 예술가들을 지도한 예술가이자 사업가였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1435-1488)가 운영하는 예술 공방을 지나칠 수도 있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두오모 돔을 설계해 최초의 근대 엔지니어이자 르네상스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 피렌체의 또 다른 전설적 예술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7-1510)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역과 비즈니스, 금융 혁신 덕분에 피렌체는 부유한 도시로 거듭났고 피렌체인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에릭 와이너의 말대로 "천재는 값비싼" 것이다. 피렌체의 상인과 은행가는 그들이 자금을 지원한 예술가 못지않게 피렌체의 번영에 핵심적으로 공헌했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타고난 창의력으로 놀라운 실험을 계속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빈 · 음악 다음으로 살펴볼 도시는 일명 음악의 도시로 불리는 빈(Vienna)이다. 이 도시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음악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품들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 합스부르크 왕조와 빈 황실 귀족의 후원에 힘입어 음악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음악가들이 빈으로 모여들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요제프 하이든(loseph Haydn, 1732-1809),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들이 빈에 거주하며 창작에 매진했다. 그 결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과 협주곡, 오페라가 빈에서 만들어졌다. 이 곡들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오케스트라 공연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2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다. 유서 깊은 궁전과 박물관, 카페. 고급 상점이 즐비한 데다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하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심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빈에서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경제학파가 생겨나 상당한 영향력을 떨쳤다. 이들은 이후 오스트리아 학과로 불리게 된다. 이 학파의 대표적 경제학자로는 칼 멩거(Carl Menger, 1840-1921),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A. Hayek, 1899-1992),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1973)를 들 수 있다. 이처럼 경제학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지만, 빈은 음악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 이 도시는 수많은 공연을 개최하며 여전히 세계 음악의 수도를 자처한다. 역사적으로 음악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빈의 공식 관광 웹사이트에 따르면, 빈은 비틀즈와 빌리 조엘의 곡 등 무려 3천 곡이 넘는 노래의 배경이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 및 가톨릭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합스부르크 왕가는 17세기 초라는 이른 시기부터 100명이 넘는 이탈리아 음악가들을 빈으로 초청해 오페라와 발레 같은 이탈리아의 최신 음악 장르를 즐겼다. 종교 음악도 갈수록 화려해졌다. 가톨릭교회는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622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장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1, 1578-1637)는 만토바의 공주로 음악을 사랑한 엘레오노라(Eleonora, 1598-1655)와 결혼했다. 빈 궁정은 엘레오노라 황후의 예술적 후원에 힘입어 바로크음악뿐 아니라 오페라 같은 신규 무대 공연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가족 행사나 종교 행사를 위해 갈수록 화려한 음악 공연을 개최했다. 그러자 이 같은 재정 지원에 고무된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이 빈으로 몰려들었다. 1760년 들어 음악이 빈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귀족부터 부유한 중산층까지 음악 활동 후원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교향곡의 아버지 또는 현악 4중주의 아버지 라고 불렸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은 가난한 가정에서 수공업자와 요리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유럽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던 작곡가로 등극했다. 초기에는 외딴 영지의 부유한 가문에서 궁정 음악가로 일했지만, 빈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하이든의 대작창조(The Creation)는 성경의 창세기를 기념하는 성가극으로, 귀족들을 위해 비공개로 초연되었다. 이후 1799년 빈 부르크 극장에서 대중에게도 정식으로 공개되었는데, 표는 공연일 한참 전에 이미 매진되었다. 빈의 음악적 유산은 인류를 풍요롭게 했다. 또한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재정적 지원과 경제적 풍요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주었다. 빈은 위대한 작곡가들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많이 배출했으며, 음악적 성취릐 정점을 거둔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웰링턴 · 참정권 다음으로 살펴볼 도시는 19세기 후반의 웰링턴(Wellington)이다. 이 도시 덕분에 뉴질랜드는 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한 국가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움직임이었다. 뉴질랜드 의회에서 입법에 성공한 개혁가들은 이후 세계 각국을 돌며 참정권 운동을 전개했다. 웰링턴에서 시작된 개혁 덕분에 오늘날 여성은 추기경에게만 교황을 뽑는 투표권이 주어지는 바티칸을 제외하고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이자 세계 수도 중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만큼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인구는 20만 명을 조금 웃도는데, 유행에 발맞춘 여러 가게와 카페, 해산물, 독특한 분위기의 바와 수제 맥주 양조장으로 유명하다. 예스러운 붉은색 케이블카가 여전히 운행 중이며, 1876년에 지어진 구 정부 청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로 손꼽힌다. 빅토리아산과 테 파파 박물관이 있고, 부두에서는 팝업 시장과 아트 페어가 자주 열린다. 젊음과 모험 정신이 넘치는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가장 쉬운 도시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한 인근에 있는 웨타 스튜디오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이름을 날리면서 예술과 기술의 중심지로도 자리 잡았다. 현재 웰링턴이 위치한 지역은 10세기 후반, 마오리족의 전설적 추장 쿠페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마오리족의 정착지가 되었다. 마오리족은 탐험가였던 아버지를 대신해 처음 이 지역을 발견한 남성의 이름을 따 이곳을 테 왕가누이아 타라(Te Whanganuia-Tara), 즉 타라의 위대한 항구라고 불렀다. 또 다른 이름으로 테 우포코 오 테 이카 아 마우이(Te Upoko-o-te-Ika-a-Mau)l"가 있는데 마우이의 물고기 머리라는 의미의 이 이름은 반신 마우이가 거대한 물고기를 잡았더니 뉴질랜드로 변신했다는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뉴질랜드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최초의 국가로 역사를 선도했다. 참정권 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수많은 남성의 지지를 목격한 뉴질랜드 정부는 급진적 조치로 화답했다. 1893년 9월 19일, 웰링턴 주지사 글래스고 경은 새로운 선거법을 승인하면서 여성도 의회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후 웰링턴 여성들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뉴질랜드는 세 명의 여성 총리를 배출했고 헌법상 각 정부 요직에도 여성이 대거 포진해 있다. 총리, 총독, 하원의장,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들이 활약했다. 뉴질랜드는 법적 양성평등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자부심으로 참정권 운동가인 셰퍼드를 10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셰퍼드와 동료들은 투표권 입법에 성공한 이후 다른 나라를 돌며 외국에서도 참정권 운동이 확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금이야 여성의 투표와 공직 출마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당시만 해도 이는 혁명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1920년까지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고, 영국은 1928년에야 여성에게 완전하고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처럼 보편적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스페인은 1931년, 프랑스는 1945년, 스위스는 1971년이었으며, 리히텐슈타인은 무려 1984년까지 버텼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까지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뉴질랜드 정부가 위치한 웰링턴은 자국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캠페인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켰다. 여성 참정권 보장이라는 획기적 입법의 승리를 주도한 웰링턴은 인류 역사에서 인권 의식을 한층 끌어올린 도시로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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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 카인드, 친절한 것이 살아남는다 |
저자 그레이엄 올컷 (지은이), 엄성수 (옮긴이) 출판 비즈니스북스 출간 202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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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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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정호 출판 성안당 출간 202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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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삶은 덜어낼수록 더 단단해진다 |
저자 이길환 출판 필름(Feelm) 출간 202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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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 BRIEF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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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트렌드 ![]() 전 세계적인 연령 갈등 |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세대는 서로 다른 기억과 기대를 안고 마주선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가치와 청년 세대가 요구하는 미래는 충돌하며 새로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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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브리핑스 ![]() AI가 여는 신소재의 미래, GNoME 프로젝트 |
인류는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늘 한계를 마주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그 무한한 가능성의 숲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있다. GNoM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