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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03월 1주차 |
BOOK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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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
| 저자 카트린 벵사이드, 장이브 를루프 (지은이), 박명숙 (옮긴이) 출판 열림원 출간 202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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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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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 보기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니 “이곳, 천국의 구석진 곳에서 고독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마음이 몹시 아프다.” 누구나 공감하는 생각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장소, 하나의 풍경, 하나의 공연, 하나의 요리, 하나의 말, 하나의 생각이 나눔과 공유의 행위가 되게 하는 누군가를. 그것은 곧 삶의 진정한 순간을 함께 축하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한 사람이 없이는 우리가 바라는 삶은 단지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 모두가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무대도 설치해놓았고 대사도 이미 준비해두었으니 대본대로 공연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배우들이, 그것도 주연배우-또는 여배우가 빠진 것이다. 그래서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림은 단지 기다림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기다림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주고받을 말들은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이 좋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 있어!” 우리는 너무도 부족한 존재라서 혼자서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음미하지도 못한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우리 눈, 우리 귀, 우리의 감수성은 그 다른 이의 시선과 청각과 감수성을 통해서만 완벽하게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다른 이가 누구인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이런 멋진 석양을 나 혼자 봐야 하다니. 어떤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누군가가 있었으면.” 우리는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부재는 곧 자신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혼자 있는 게 이토록 힘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는 종종 자신의 놀이와 외로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어떤 동반자를 만들어낸다. 그는 상상 속의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자신의 취향이나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자신의 마음과 영혼으로 탄생시킨 쌍둥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그 자신이다. 또 다른 그는 아이가 언제 어디를 가든 늘 그를 따라다닌다. 이보다 더 완벽한 동반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에게 외동이 유일한 존재라면, 그는 이 꿈속의 동반자에게도 유일한 존재다. 나에게는 너뿐이고, 네게도 나밖에 없다. 나를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 단 한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를 찾는다. 그 자체로 유일한 사람,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일한 누군가를. 그리고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면, 우리의 바람직한 관계 속에서 고독을 탈출할 수 있는 기반을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사람은 나에게 신경을 쓴다고. 내가 뭘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건 그 사람밖에 없어.” “그 사람이 그랬어, 자기가 여자에게서 기대했던 모든 걸 충족시켜준 첫 번째 여자가 바로 나라고.......”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만약 그 누군가가 그 존재만으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나의 공간과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생명력은 그 누군가-여자건 남자건-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나의 능력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내가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내 이야기를 대신 짊어지게 하여 그 때문에 그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의 이야기가 되기 전에 이미 내 것이었던 이야기, 나의 과거 이야기일 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꿈꿔온 대로의 미래가 담긴 내 이야기를 그가 대신 살아내게 강요함으로써. 심지어 그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과 사람과 사랑을 계속 꿈꾼다. 결핍의 자각은 상대방과 나 자신을 동시에 속인다. 두 사람 모두를 가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헤매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을 그나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서로의 갈망으로 우리 각자는 서로를 닮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그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시에 우리를 상대로부터도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결핍 속에서는 결핍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결코 상대를 보지 못한다. 우리 각자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만을, 그리고 이내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만을 본다. 삶이 상대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것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로 하여금 그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믿게 한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의 필요로 인한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상대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 이는 자신이 그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알마 말러는 남편인 구스타프 말러 곁에 남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떠나면 그는 죽을 거예요. 내가 남으면 그는 살 거고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상대가 내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줄 것을 기대하거나, 그가 삶의 의욕을 잃지 않도록 그와 함께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삐걱거리는 두 개의 삶이 굳건히 버티고 서는 하나의 삶이 될 수 있을까? 상대에게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인생의 무게로 서로에게 기댄다고 각자의 삶이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좋아하거나 그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의 변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외로워.” 이 여인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을 했지만 내게는 남편이 없어. 남편은 내 기대에 들어맞는 사람이 아니거든.” 마찬가지로 남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아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결혼은 했지만 아내는 내 이상형과는 너무도 다르다고.” 여자는 이상적인 여자를 찾는 멋진 왕자를 기다린다. 그들은 언젠가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면서 이상적인 여자, 멋진 왕자를 발견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믿었던 그 반쪽-마침내 그들의 결핍을 메워줄 여자나 남자-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기대했지만, 이제 더 이상 서로 아무것도 나누지 않는다. 아니면, 그들이 각자 품었던 희망에 비해 아주 조금만 나눌 뿐이다. “난 연애할 때는 그를 정말 사랑했어. 그런데 그가 남편이 되고 나니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난 그녀가 내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어. 그녀의 모든 게 마음에 꼭 들었거든.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유쾌하고 사려 깊고 호기심이 많았지. 우린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그녀의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거야.” 내 남편, 내 아내, 당신은 분명 내 옆에 있는 데, 나는 남편이 없고, 당신은 아내가 없다. 그들 각자는 더 이상 혼자이지 않으려면 둘이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그런데 고독이 다시 그들을 찾아온다. 새로운 환멸과 짝을 이루어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그들이 함께 맺은 계약-이 경우 결혼 계약-이 그들이 바랐던 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니, 그들이 알지 못하는 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은 두 사람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그들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 무언가가 빠져 있다. 그들이 꿈꾸었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이건 그들이 기대했던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당신은 내가 원하는 당신이 아니고, 나 역시 당신이 원하는 내가 아니다. 당신은 내가 기대했던 당신, 내가 찾아 헤맸던 당신이 아니다. 한 남자나 여자는 법과 사회의 눈으로 보기에는 결혼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욕망의 진실에 비추어 볼 때는 아내나 남편이 없을 수도 있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 깊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결혼의 합당함을 끊임없이 문제 삼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서 자신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때로는 이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좋기도 해. 여성스럽고 유쾌하고,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는 여자가 말이야. 난 그가 내게서 기대하는 그런 여자인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란 여자는 나를 짜증나게 해. 아니, 그건 내가 아니야. 나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그 여자의 모습에선 나를 알아볼 수가 없어.” “가끔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게 즐거울 때도 있어. 우린 별것 아닌 것에도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그녀가 아주 섹시해 보일 때도 있긴 해. 하지만 난 종종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생각 말이야.” 누구나 어떤 때는 결혼을 했다고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남자나 여자는 자신의 삶이 불만스럽다. 자신에게 꼭 맞는 사람-함께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게 가능한 여자나 남자-을 만나지 못했거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오래전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사랑의 결핍을 충족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때로는 동반자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는 사랑의 결핍. 그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녀 이제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이 온통 차지해 버린 삶에는 사랑할 자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 자기 안에서 커져버린 사랑의 결핍은 실제로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 나는 사랑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욕구에 대한 고통스러운 느낌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과거의 결핍이 현재나 미래의 관계에서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는 또 다른 결핍, 사랑의 결핍뿐만 아니라 사랑과 존재 자체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을 되풀이해 겪도록 운명 지어진 게 아닌지 불안해한다. 이처럼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음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과거에 겪었던 결핍이 모든 관계 속으로 스며들면서 그 관계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결핍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상대에게 전가하면서, 이전에도 다른 이들이 그에게 주지 않았던 것을 주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걸 가져다주지 못하는 건 당신이야.” 그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정작 사랑할 줄 모르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자신인데도. 하지만 그는 그 반대의 사실을 주장한다.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당신이야, 내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그는 상대에게 사랑에 대한 욕구가 결여되어 있다고 불평한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인데도. 당신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지. 나 역시 당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하고 말이지. 당신이 나를 원하지 않는데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장이브 를루프는 “상대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을 요구하지 않을 때 행복이 시작된다”라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한 것을 바랄 수는 없다.” 그토록 상대를 통해 그와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의 평화, 모든 만남을 넘어서서 나를 채워주는 마음의 평화, 만남의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마음의 평화를 내 안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모든 한계를 지닌 미약한 인간일 뿐인 한 남자나 한 여자에게 진실한 나 자신, 삶, 그리고 절대적인 것과 나를 영원히 화해시켜주기를 기대하면서 나의 요구만큼이나 끝없는 결핍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먼저 내 안에 있는 상대성을 받아들인 뒤 상대 안에 있는 상대성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알아가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고자 노력할 수는 없는 걸까? 상대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걸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우물가에서 서성이다가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덥석 받아들이고, 그가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나의 진정한 욕구에 문을 닫아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일생의 위대한 사랑을 만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다가, 일단 만났다고 생각되면 그 사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또 불안해한다. 상대가 내게 줄 수 있거나 줄 수 없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고 있지만, 과연 내가 나의 인생 파트너가 될 이 남자나 이 여자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내게 선사해줄 수 있는지 그에게 물었을 때,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말해주기를 끈질기게 요구했을 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 그런데 이젠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자신도 원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내가 과연 이 사람하고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어. 단지 너무 오래 기다리느라 지쳐서 이러는 건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거든.” 기다림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욕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거나 그 대상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자신의 욕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 불만을 낳는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 불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난 더 이상 이런 나 자신을 봐줄 수가 없어. 그래서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그는 내 삶 속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나는 모든 것을 밀어내고자 한다. 나 자신에게 속하는 것, 따라서 그에게 속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그에게 속하는 것, 따라서 내게 속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내가 버려버리고자 하는 삶과, 그 삶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그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 요구하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사랑은,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사랑을 느끼는 사람과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이나 초콜릿이나 자신의 고양이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달리, 인간의 사랑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그것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같은 사람이라도 사랑을 하는 삶의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연인을 자식처럼 사랑할 수 없으며, 스무 살에 마 흔 살이나 예순 살처럼 사랑할 수도 없다. 다양한 색깔들과 음들이 각각의 관계와 관계의 매 순간에 고유한 곡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감정의 풍요로움, 색조, 강렬함은 관계의 풍요로움, 색조, 강렬함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당신과 나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랑 속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다. 당신은 때로는 부재하기도 하고, 아직 누구인지 모르거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향하는 대상인 당신은 언제나 존재한다.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나의 생각과 시선과 말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해주는 당신. 끝없는 요구에 선을 긋게 해주며, 무한한 기대에 한계를 지어주고,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보다 더 목이 타게 만드는 사랑의 이상 앞에 현실을 들이미는 당신. 나로 하여금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선택하게 만드는 당신. 하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한,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는지, 당신의 사랑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내가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떻게 내 사랑이,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기 때문에, 내 사랑이 다른 모습이 아닌 이런 모습을 띠는지도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사랑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구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안에 단 한 가지 형태의 사랑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사랑의 방식이 있다 할지라도. 나만의 사랑의 방식은 분명 특별한 것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성인인 내 속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있지만, 난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또 다른 당신들을 경험했고,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그 첫 번째가 내 부모님일 터이다. 당신이 누구든 나는 당신에게 과거에 내가 받았던 사랑과 받지 못했던 사랑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닮을 수밖에 없다. 남들과 다른 당신을 내가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비록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내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행동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당신이 나를 만나고, 내가 당신을 만나는 날, 하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두 개의 역사가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 개의 역사, 서로 다른 두 개의 역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각기 다른 모습의 두 개의 “당신을 사랑해”와, 당신을 사랑하는 내 방식과 나를 사랑하는 당신의 방식인 두 개의 “당신을 사랑해”가 만나는 것이다. 사랑은 곧 두 개의 갈증이 만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더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긴 역사의 시작일 뿐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 기나긴 역사가 아름다울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일 뿐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지만, 당신을 잘못 사랑하거나 당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지만, 당신을 통해 나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당신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해서. 나는 사랑에 대해 내가 경험한 것만을 알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는 둘 다를. 나는 잘 겪어내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당신과 함께 알아가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당신을 향한 “나는 당신을 사랑해”는 과거의 고통의 반복이나 유아기적-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욕구의 연속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는 어린아이의 필요와도 같은 사랑인 포르네이아에서 사랑의 여러 단계를 거쳐 은혜로운 선물이자 헌신하는 사랑인 아가페로 발전해간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벼워지고 조밀해지며, 자라나고 우리를 자라나게 하며, 성숙해짐과 동시에 관계 속의 당신과 내가 성숙해질 수 있게 한다. 릴케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성숙해지고 확고한 모습을 갖추며, 그 자신이 하나의 세상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기회이다. 사랑은 고귀한 요구이자 끝 모르는 야망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먼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선택받은 자가 되게 한다.” 하지만 나의 원천을 만나 당신을 향한 사랑을 생명수로 적시려면, 우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방법을 배우기를 원해야 한다. 우물 속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동시에 사랑의 사다리의 위를 향해 올라간다. 빛은 사다리의 꼭대기와 우물 속을 동시에 밝혀준다. 그리고 나는 그 어느 쪽에서든 당신을 만날 수 있다. 내 원천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으면서 난 당신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나의 갈증을 해소함으로써 마침내 난 당신의 갈증에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의 힘에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 나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마침내 자유로운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에게서 더 이상 끝없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의 원천은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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