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주차

BOOK SUMMARY


 인문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저자 박균호
출판 지상의책(갈매나무)
출간 2026.09
어려운 과학 개념부터 뜻밖의 뒷이야기까지, 술술 읽히는 과학 고전 가이드
도서요약 보기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관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관찰과 기록을 바탕으로,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다!
에르빈 슈뢰딩거 지음 chr(124)_pipe 이혜안 옮김 chr(124)_pipe 여름 chr(124)_pipe 2025
밥을 먹고 숨을 쉬는 동안에도 우리 몸속 세포와 단백질은 쉴 새 없이 낡고 부서지고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도 몸은 흐트러지지 않고 어제와 비슷한 상태를 이어 가죠. 부모의 생김새나 체질도 한 세대에서 툭 끊기지 않고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요. 대체 생명은 어떻게 이 질서를 유지하고, 그 정보를 다음 세대로 넘길까요?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1944년에 펴낸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던지는 물음입니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기틀을 세워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예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고양이 한 마리를 닫힌 상자에 넣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상자 안에는 방사성 원자와 검출기, 독가스 장치가 있습니다. 원자가 붕괴하면 검출기가 반응해 독가스가 나오고 고양이가 죽습니다. 원자가 붕괴하지 않으면 장치는 움직이지 않고 고양이는 살아남아요.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상자를 보지 않는 동안에도 장치가 이미 작동했거나 작동하지 않았고, 고양이도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계산을 적용하면 두 가능성을 함께 다뤄야 해요. 그러면 고양이도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를 함께 지닌 것처럼 계산됩니다. 슈뢰딩거는 작은 입자의 법칙을 큰 생명체에 적용할 때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이 사고실험을 고안했습니다.

그런 슈뢰딩거가 생물학을 다룬 책을 썼다는 점부터 흥미롭습니다. 세포도 유전자도 전공하지 않은 물리학자가 생명을 물리학으로 풀어 보려 한 것이죠. 그는 살아 있는 몸이 어떻게 질서를 지키고, 부모의 특징이 어떻게 자식에게 전해지는지 살폈습니다. 이 책은 훗날 DNA 이중나선 모형을 제시한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영국의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두 사람은 이 책이 생명의 비밀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도록 이끌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책은 생명체가 어떻게 몸의 질서를 지키고,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지 물리학의 언어로 살핍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얇은 책이지만 엔트로피와 유전, 돌연변이까지 폭넓게 다뤄요. 슈뢰딩거의 설명 중에는 오늘날의 생명과학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생명을 에너지와 정보의 문제로 다룬 시도는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질문이 남긴 것
슈뢰딩거가 이 책을 쓴 1944년, 록펠러 연구소의 오즈월드 에이버리, 콜린 매클라우드, 매클린 매카시는 폐렴쌍구균의 유전 형질을 바꾸는 물질이 DNA라는 강력한 증거를 발표했습니다. 아직 DNA가 모든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는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전이었어요. 유전자를 눈에 보이지 않는 단위로만 다뤘던 이전과 달리, 유전자를 이루는 물질의 모양과 작동 방법을 밝혀야 했죠. DNA는 어떤 모양이며, 그 안에는 정보가 어떻게 들어 있고, 세포가 나뉠 때 어떻게 똑같이 복사될까요?

1953년 DNA 이중나선 모형이 발표되면서 답의 윤곽이 나타났습니다. DNA는 두 가닥이 짝을 이루며 이어져 있어요. 한 가닥이 갈라지면 각 가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짝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전 정보를 오래 보관하면서도 세포가 나뉠 때 정확하게 복사할 수 있어요. 슈뢰딩거가 찾던 작고 안정된 유전 장치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지키고 넘기는지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슈뢰딩거는 DNA의 모양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유전자의 비밀을 풀려면 아주 작은 분자의 구조와 배열부터 살펴야 한다고 일찍 짚었습니다. 그 뒤 유전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연구에 물리학자와 화학자도 잇따라 뛰어들었어요.

이 책에는 오늘날의 생명과학과 맞지 않는 설명도 있습니다. 슈뢰딩거는 1940년대에 알려진 물리학과 유전학을 바탕으로 생명을 설명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을 더 정교한 열역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돌연변이의 원인도 DNA 복제 오류와 손상, 복구 실패 등 여러 과정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최신 생명과학 교과서라기보다, 물리학자가 생명과 유전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본 기록으로 읽는 편이 알맞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많은 젊은 과학자에게 생명도 물리학과 화학으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생물학자가 맡아 온 질문에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뛰어들었고,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빠르게 자랐어요.

슈뢰딩거는 완성된 정답을 내어놓았다기보다 다음 세대가 풀 문제를 남겼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던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 다리를 놓고, 유전 정보를 분자의 구조와 배열에서 찾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어요.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생명이 몸의 질서를 어떻게 지키고, 유전 정보를 어떻게 다음 세대로 넘기는지 묻습니다. 오늘날 과학은 그 질문에 훨씬 자세한 답을 내놓았지만, 여러 학문을 한데 모아 생명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얇은 책이 지금도 읽히는 까닭입니다.


과학,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낙하하는 사과에서 우주의 시간까지, 세계의 법칙을 설명하다!
얼핏 보면 어지럽고 자세히 보면 규칙적인 《카오스》연필과 반지가 사실은 한 형제라니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1961년, 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온도와 바람, 기압의 변화를 계산해 가상의 날씨를 만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동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는 앞서 나온 계산을 중간부터 다시 이어 가려고, 출력지에 적힌 값을 컴퓨터에 다시 입력했습니다. 시간을 조금 아끼려던 일이었죠. 컴퓨터 안에는 0.506127이라는 여섯 자리 숫자가 들어 있었지만, 출력지에는 공간을 절약하느라 0.506까지만 찍혀 있었습니다. 로렌츠는 별생각 없이 그 숫자를 넣고 커피를 마시러 갔어요. 돌아와 보니 거의 같아야 할 두 계산이 몇 달 뒤 날씨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소수점 넷째 자리 아래에서 생긴 작은 차이가 계산이 이어질수록 커졌고, 얼마 뒤 두 결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그렸습니다.

로렌츠가 발견한 이런 현상은 훗날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1972년 그는 강연에서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를 팔랑이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물었어요. 여기서 나비는 토네이도의 직접 원인이 아닙니다. 처음의 아주 작은 차이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크게 갈라놓을 수 있다는 비유예요. 잔잔하던 물결은 왜 갑자기 소용돌이칠까요? 나뭇가지는 왜 작은 가지에서도 큰 가지와 비슷한 모양으로 갈라질까요? 처음에는 거의 같았던 두 날씨가 왜 몇 달 뒤에는 전혀 달라질까요?

제임스 글릭은 로렌츠의 우연한 발견에서 《카오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뉴욕타임스에서 과학 기사를 쓰던 그는 카오스 이론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연 과학자들의 연구와 경쟁, 실패를 한데 엮었어요. 1987년에 출간된 이 책은 100만 부 넘게 팔리고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보통 카오스(chaos)는 아무 규칙도 없는 혼란을 뜻합니다. 과학에서의 카오스는 다릅니다. 움직임을 정하는 규칙은 있지만, 시작할 때 생긴 아주 작은 차이가 빠르게 커져 먼 앞날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를 의미해요.

글릭은 이론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로렌츠가 서로 달라진 날씨 계산표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시작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복잡한 선과 해안선의 울퉁불퉁한 모양을 차례로 보여 줘요. 과학자들이 뒤엉켜 보이던 현상에서 규칙을 찾아내기까지 겪은 시행착오도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혼란을 무질서로만 여기던 생각을 바꾼 이 책을 읽다 보면 복잡한 현상에도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비효과, 작은 차이의 힘
로렌츠의 계산식과 컴퓨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입력한 숫자가 달랐을 뿐입니다. 0.506127 대신 0.506을 넣자 처음에는 거의 같던 두 결과가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졌습니다. 앞 단계에서 생긴 차이가 다음 계산에 들어가고, 그 결과가 다시 다음 계산에 쓰이면서 오차가 계속 커진 것입니다. 카오스는 규칙이 없어서 생기는 혼란이 아닙니다. 정확한 규칙을 따라 움직여도 시작점의 작은 차이 때문에 먼 앞날을 맞히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알람을 5분 늦게 끄면 어떻게 될까요? 버스를 놓치고, 지각하고, 수업 준비까지 늦어질 수 있어요. 처음에 생긴 작은 차이가 다음 일에 영향을 주며 커진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이런 일상적 연쇄 반응을 모두 과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로 볼 수는 없습니다.

예측의 방식을 바꾸다
복잡한 결과를 모두 우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동전을 한 번 던졌을 때 앞면과 뒷면 가운데 무엇이 나올지는 미리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던진 결과를 모아 전체 비율을 계산하죠. 카오스에는 움직임을 정하는 규칙이 있지만, 문제는 처음 상태를 완벽하게 재기 어렵다는 데 있어요. 측정값의 아주 작은 차이도 시간이 흐르며 크게 벌어지므로 먼 뒤의 결과는 정확히 맞히기 어렵습니다.

카오스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예측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내일 날씨는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지만, 한 달 뒤 같은 시각의 기온과 강수량까지 정확히 맞히기는 어렵습니다. 시간이 멀어질수록 처음 측정값의 작은 오차가 더 크게 퍼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결과 하나를 단정하기보다 가능한 범위와 예측을 신뢰할 만한 기간을 함께 밝힙니다.

날씨 예측에서도 숫자 하나만 내놓지는 않습니다. 비가 올 확률, 예상 강수량, 태풍이 지나갈 가능성이 큰 범위를 함께 알려 주죠. 계산 결과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번 계산한 결과도 비교합니다. 서로 다른 결과가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면 예측을 더 믿을 수 있고, 크게 갈라지면 불확실성이 높다고 판단해요. 카오스 이론은 미래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고, 어디부터 오차가 커지는지를 알려 줍니다.

카오스의 현재적 의미
카오스 연구의 대상은 날씨에서 시작해 심장 박동, 강물의 소용돌이, 개체 수 변화처럼 복잡하게 움직이는 현상으로 넓어졌어요.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현상에서도 작은 차이가 커지거나 일정한 범위 안에서 복잡한 움직임이 되풀이되는지 조사했습니다. 물론 복잡하다고 해서 모두 카오스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야가 다른 연구자들이 비슷한 수학적 문제를 발견했고, 글릭은 그들의 연구를 한 권에 모았어요.

카오스 이론은 결과 하나만 보고 원인을 단정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고 알려 줍니다. 도로 정체도 운전자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생기지는 않아요. 자동차의 수와 간격, 감속이 뒤로 퍼지는 방식이 함께 영향을 줍니다. 작은 변화가 다음 움직임을 어떻게 바꾸고, 그 결과가 다시 전체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체가 어디에서 커졌고 어떤 조건을 바꾸어야 하는지 찾을 수 있어요.

《카오스》를 읽고 나면 눈앞의 결과만으로 원인을 단정하기 어려워집니다. 먼저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그 변화가 다음 단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어서 봐야 해요. 여러 요소가 얽힌 현상에서는 한 가지 원인만 찾기보다 전체 흐름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인문학과 과학이 연결될 때: 소설과 신화, 역사를 가로지르며, 과학의 자리를 새롭게 넓히다!
과학과 인문학을 한데 엮은 개미 박사의 꿈 《통섭》
일곱 살 소년이 낚시를 하다 물고기 가시에 눈을 찔렸습니다. 한쪽 시력을 잃은 아이는 멀리 나는 새를 쫓기 어려워졌어요. 그러자 코앞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1930년대 앨라배마의 시골, 소년은 숲 바닥에 엎드려 개미 행렬을 들여다봅니다. 어디로 가는지, 먹이를 찾으면 어떻게 동료를 부르는지 하루종일 관찰했어요. 그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자세로 엎드렸고,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생물학자가 됩니다. 그가 바로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입니다.

그는 평생 사회성 곤충을 연구했고 《인간 본성에 대하여》, 베르트 횔도블러와 함께 쓴 《개미》로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했어요. 그런 그가 예순을 훌쩍 넘겨 그 이상의 꿈을 품었습니다. 개별적으로 나뉜 학문을 하나로 이어 인류가 나아갈 지도를 그리겠다는 야심이었습니다. 그 구상을 정리한 책이 《통섭》이고, 부제는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이에요.

500쪽을 훌쩍 넘기는 이 책에서 윌슨은 물리학과 생물학을 지나 심리학, 사회과학, 예술, 윤리, 종교까지 넘나듭니다. 신비롭게만 여기던 인간의 마음과 문화, 도덕까지 과학의 저울 위에 올려놓으면서 출간 이래 열렬한 지지와 거센 반발을 동시에 불러왔습니다. 윌슨의 학문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높다란 자리에서 동물의 한 갈래로 끌어내렸는데, 누군가에게는 인간을 겸손하게 되돌아보는 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존엄을 유전자로 깎아내리는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나온 근거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고, 그것들을 이어 붙여 더 탄탄한 설명을 만드는 태도예요. 길을 찾을 때도 내비게이션 하나만 믿고 가다 공사 구간에서 막히면 눈앞이 캄캄하죠. 그런데 내비게이션과 도로 표지판, 실제 차량 흐름, 현장 안내 문자까지 죄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 그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통섭도 비슷해요. 생물학과 심리학, 사회학이 저마다 다른 자료를 내놓더라도 그 근거들이 한 방향으로 모이면, 설명은 훨씬 단단해지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정하기도 쉬워집니다.

지식이 너무 많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검색하면 자료야 끝없이 쏟아지지만, 기후 위기의 해법이나 인공지능의 윤리 기준 앞에서는 무엇을 믿고 어디서부터 판단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과학 자료, 법률 자료, 경제 자료, 윤리적 고민이 서로 다른 말로 따로 놀기 때문이에요. 윌슨은 이 칸막이가 현대인의 눈을 가리는 큰 장애물이라고 짚습니다. 한 분야의 지식을 깊이 파는 사람뿐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말을 번역하고 이어 붙여 현실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거죠. 《통섭》은 갈라진 지식을 왜 다시 연결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왜 지식은 갈라졌나
근대에 들어 학문은 점점 잘게 나뉘었습니다. 의학, 공학, 물리학, 생물학이 저마다 길을 깊게 파고들며 눈부신 성과를 냈죠. 이런 분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망원경과 현미경이 열어젖힌 세계가 워낙 넓어서, 한 사람이 모든 지식을 끌어안기란 불가능했거든요. 그래서 분야를 쪼개고, 각 분야 안에서 더 정밀한 방법을 벼렸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깊어질수록 정작 옆 분야의 말이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겼어요. 1959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퍼시 스노는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 현실을 두 문화(two cultures)라 불렀습니다. 윌슨은 이 갈라진 두 문화를 다시 잇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윌슨이 강조하는 방법이 환원주의(reductionism) 입니다. 복잡한 현상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나누어 원인을 찾는 방식이에요. 생명 현상을 세포로, 세포를 분자로 나누어 살피면서 과학은 많은 원리를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통섭은 나눈 결과를 다시 이어 붙입니다. 각 단계에서 얻은 설명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지 확인해 전체를 이해하려 하죠.

부분을 모두 안다고 전체가 저절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물 분자 하나를 자세히 살펴본다고 물이 물체를 적시는 현상까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윌슨은 분석 결과를 다시 연결해 더 큰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모든 지식을 당장 하나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여러 학문이 서로의 설명이 이어 가며 통섭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윌슨은 오늘날 학자 대부분이 전공이라는 좁은 골방에 틀어박힌 장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꼬집습니다. 그러면서도 비관하지는 않아요. 유전학과 진화학, 뇌과학이 무섭게 자라나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를 가로막던 두꺼운 벽이 머잖아 곳곳에서 허물어질 거라고 내다보죠.

자연과학에서 예술·윤리까지
윌슨의 야심은 한결 대담해집니다. 그는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윤리, 심지어 종교까지 한 지도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윌슨은 이 시기를 마음의 이카로스가 날아오른 때라고 무릅니다.

그렇다면 딱딱한 자연과학과 말랑한 예술이 대체 어떻게 이어질까요? 윌슨이 놓는 다리는 유전자와 문화가 오랜 세월 함께 진화해 왔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은 뱀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법을 다른 대상보다 쉽게 익힙니다. 윌슨은 뱀을 재빨리 경계한 조상들이 살아남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이런 성향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남았다고 설명했어요. 그 흔적은 문화에도 남아, 뱀은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와 그림에서 위험과 공포를 상징하는 존재로 거듭 등장합니다. 인간의 오래된 경계심이 예술의 소재로 남은 것이죠.

윌슨은 인간의 마음과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Ariadnes thread)에 빗댑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미로로 들어가며, 공주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을 입구에 묶어 두었어요. 안으로 걸어가면서 실을 조금씩 풀었고, 괴물을 쓰러뜨린 뒤에는 바닥에 놓인 실을 따라왔던 길을 되짚었습니다. 실 덕분에 복잡한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죠.

윌슨에게 인간의 마음과 문화는 수많은 길이 얽힌 미로와 같습니다. 사랑과 공포, 예술과 도덕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생물학이라는 실을 따라가면 그 현상들이 인간의 본성과 진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필 수 있어요. 생물학이 미로의 정답을 한꺼번에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음과 문화가 형성된 길을 차근차근 되짚도록 안내합니다.

마음과 윤리까지 파고들다
윌슨의 관심은 더 깊은 곳, 인간의 마음으로 향합니다. 그는 마음도 뇌를 이루는 수많은 신경세포의 물질적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해요. 사랑에 빠질 때 가슴이 뛰고 음악을 들을 때 감동하는 데에도 뇌의 전기 신호와 화학 작용이 관여한다는 겁니다. 신비롭게만 여기던 마음을 과학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무척 도발적입니다. 마음을 영혼이나 신비의 영역으로 따로 떼어 두지 않고, 별과 원자를 연구하듯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니까요.

윤리와 종교도 예외가 아니에요. 윌슨은 인간이 무리 지어 살면서 서로 돕고 배신자를 벌하는 과정에서 도덕 감각을 길렀다고 설명합니다.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사로잡는 뿌리도 진화의 역사에서 찾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윌슨은 예술과 윤리와 종교를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어요. 인간이 아끼는 그 소중한 것들의 뿌리까지 과학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 보려는 시도였죠.

통섭을 둘러싼 논쟁
물론 윌슨의 통섭은 거센 비판도 받았어요. 여러 인문학자들은 인간의 가치와 문화, 마음까지 유전자와 자연법칙만으로 너무 쉽게 설명한다고 지적했어요. 겉으로는 여러 학문이 대등하게 만나는 듯해도, 실제로는 인문학자와 예술을 자연과학의 틀 안에 밀어 넣는 일방통행이 아니냐는 비판이었죠. 하버드 동료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특히 《사회생물학》이 인간 행동을 유전자와 적응으로 지나치게 설명한다고 비판하며 윌슨과 오랫동안 논쟁했어요.

《통섭》을 읽을 때는 이런 비판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윌슨의 통섭은 여러 분야의 의견을 단순히 한자리에 모으자는 제안이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설명도 궁극적으로 자연과학과 이어진다는 강한 주장입니다. 이런 우려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작가 웬델 베리는 《삶은 기적이다》에서 윌슨이 환원주의에 너무 기대어 생명의 복잡함과 신비를 놓쳤다고 비판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어느 한 분야에만 속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만 해도 성능은 공학, 개인정보는 법, 차별 방지는 윤리, 일자는 경제, 학교 과제는 교육과 관련돼요. 이럴 때 한 분야의 목소리만 듣고 결론을 내리면 그럴듯해 보여도 빈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윌슨이 말한 통섭은 흩어진 지식을 멋지게 포장하는 구호가 아니에요. 인간의 마음과 문화까지 자연과학의 설명과 이어 보려는 대담한 구상이죠.

《통섭》의 마지막 부분에서 윌슨은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이제 인류는 유전자를 직접 바꾸고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힘까지 손에 쥐었어요. 그 힘을 어느 방향으로 써야 할지 판단하려면 과학이 밝혀낸 인간 본성과 인문학이 오래 다뤄 온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윌슨에게 통섭은 학문을 서로 잇는 구상을 넘어,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 판단하는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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