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지은이 : 헨리 키신저, 에릭 슈밋, 크레이그 먼디 (지은이), 이현 (옮긴이)
출판사 : 윌북
출판일 : 2025년 08월




  • AI가 불이나 전기처럼 삶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 날이 머지않았어요. 단순히 인간 능력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죠. 앞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공존의 길도, 위기의 길도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요? 


    새로운 질서


    시작

    인공지능의 도래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명료화하고 개념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유들이 숱하게 제시되었다. 인류학자들은 AI를 불이나 전기에 비유한다. 군 장성과 외교관들은 원자력에, 또는 프로이센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같은 인물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력에 비유한다.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의 접근처럼 전 지구적 방어를 요구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은 사건 혹은 외계 생명체의 발견에 견주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AI를 관료주의나 시장에 비유하는 반면,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인쇄술이나 기업의 출현에 비유한다. 기업은 진화하여 제 의지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기업이 기존의 권력 구조와 양립하지 못하고 후자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을 세계가 이해하기도 전에 인도 아대륙을 찬탈했다.


    오늘날 AI를 대하는 이 책 저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종래에 일어났던 혁신이 제아무리 심오하다 해도, 지능 개발 연구에서 우리가 품은 최초의 영감과 현재 도달한, 혹은 도달했다고 믿는 일시적인 목표에 비견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구상 어느 인간의 지능보다 더 위대한 지능을 추구한다.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익숙한 것의 반복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었으며 큰 변화를 가져온 기술들은 인간의 신체 기능을 증강했다. 가령 바퀴는 이동 거리가 길어지면서 오는 피로를 줄였고, 다양한 종류의 엔진은 근육을 많이 사용해 겪는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엑스레이, 확대경, 백열전구는 인간의 타고난 시력만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의 범위를 확장했고, 전화는 인간의 목청만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소리를 증폭했다. 인체 기능의 면면이 우리가 만든 기계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인위적으로 증강되고 예리해졌다. 그렇다면 AI도 인간의 능력이 확장되는 또 다른 연장선에 불과할까?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상황을 다르게 본다. AI에게는 인간 능력을 증강해주는 것 외에도 독특한 면이 많다. 우리는 천년 동안 진화해온 결과물인 뇌의 대응물을 수십 년 만에 만들어냄으로써, 지금까지 인위적인 복제나 재창조가 불가능했던 마지막 기관인 뇌를 정복하려 한다.


    속도

    미국에서 보통의 고등학생이 4년 만에 졸업하는 반면, 현재 AI 모델은 고등학생이 4년 동안 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단 4일 만에 손쉽게 학습할 수 있다. 따라서 AI를 인간의 형태 및 정신 능력과 차별화하는 핵심적인 특징들 가운데 속도가 단연 으뜸이라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다.


    인간과 기계 모두 지능 훈련을 일단 마치면 이론상 이제 ‘생각’을, 혹은 기술 용어로 표현하자면 ‘추론(inference)’을 할 수 있다. 학생에서 벗어나 이제 졸업생이 된 인간은 면접이나 토론 혹은 데이트에서 그가 받은 교육과 경험을 이용한다. 이때 우리는 기억에 남은 정확한 공식, 개별 사실, 정확한 숫자를 다시 불러오지 않고, 우리가 학습한 내용을 숙고하고 성찰하는 얇은 층에 의존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완벽하게 회상하도록 암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대신 무수한 수업과 숙제와 시험을 거친 후 뇌에는 그러한 교육용 도구들이 전달한 개념에 대한 이해가 더 심오하게 오래 남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천문학의 경이로움, 야심이 초래하는 비극, 혁명의 필요성 혹은 불필요성을 이해한다.


    AI도 마찬가지다. 한 모델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훈련 자료로 사용한 원천 데이터에 더는 접근할 필요가 없다. 대신 질문에 답하고 추론에 반박하고 예측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거친 직관만 남게 되며, 이 직관은 모델이 지금까지 받아온 지식으로 구성된다. 인간이 물리적인 자료를 모두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AI 모델도 기억하기보다 추론한다. 차이는 AI가 월등히 빠른 속도로 인간이 달성하길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오한 학습 정보 영역 전반에 걸쳐 추론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데에도 AI 모델은 수십억 개의 복잡한 기술적 작동을 수행한다. 전통적인 컴퓨터가 단순히 메모리에 저장된 특정 정보를 불러왔다면, AI는 인간 뇌가 하듯이 연산을 시작한다. 인간이 생각하기 위해 학습하듯이 기계는 추론하기 위해 훈련한다. 훈련이 없으면 추론도 할 수 없다.


    모호성

    지식의 영역 대부분에서 과학적 방법이 출현한 이래로 실험을 증명의 기준으로 고집하면서, 증거가 뒷받침하지 않은 정보는 무엇이든 불완전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투명성, 재현성, 논리적 검증만이 진실에 대한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규범의 영향하에 최근 수세기 동안 인간 지식, 인간 이해, 인간 생산성이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그 정점에서 컴퓨터와 머신러닝이 발명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AI 시대에 우리는 새롭고 유독 어려운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 바로 설명이 없는 정보다. 앞서 지적했듯이 AI는 이미 복잡한 개념을 고도로 정확하고 일관되게 말하며 즉시 답할 수 있다. AI의 출력값은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명백한 편향이나 동기가 없지만, 어떤 출처나 여타 근거의 인용도 없다. 하지만 주어진 답의 근거가 이렇게 부족하다고 해도, 이미 인간은 초기 AI 시스템이 제시하는 설명 없는 답변을 놀라울 정도로 신뢰한다. 인간은 그 답변이 신탁이라도 되는 양 의지하기까지 한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두뇌’는 권위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오류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비록 인간의 피드백이 AI가 내부에서 알고리즘을 정교화하도록 돕는다 해도, 훈련받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가중치를 부여하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기계에 있다. 일단 훈련되고 나면, 모델은 자신이 만들어낸 내부 수학적 스키마(schema)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 결과 기계가 생성해낸 현실의 표현은 심지어 발명가들의 눈에도 대체로 모호하다. 현재 인간은 주로 출력값만 조사하여 이러한 기계 모델들의 완결성을 확신하려고 한다. AI가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대체로 알 수 없다. 따라서 일부 AI 시스템은 ‘블랙박스’로 언급되기도 한다. 몇몇 연구자가 이런 복잡한 모델들의 출력값을 역설계하여 유사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머신러닝으로 훈련된 모델은 인간이 새로운 발견 즉 모델의 출력값을 알게 해주지만 그 발견이 이루어진 방법인 모델의 내부 과정을 이해하게 허용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이해가 다른 시대의 인류였다면 생경했을 방식으로 분리된다. 인간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직관과 결과물로 이해한다. 이는 의식적, 주관적 경험, 개별적인 논리 검토, 결과를 재생산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지식을 획득하는 이런 방법은 전형적인 인문주의적 충동, 즉 “만일 이것을 할 수 없다면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어”라는 발상에서 왔다.


    계몽주의 시대에 출현한 방법에 따르면 개인의 역량, 주관적인 이해, 객관적인 진리라는 핵심 요소들은 모두 함께 움직였다. 반대로 AI가 생산하는 진리는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기계의 추론은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 너머에, 역량 밖에 있다. 인간은 기계의 내부 과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인정되는 그러한 신뢰는 그 자체로 현대 인간의 사고가 변화했음을 나타낸다. 기계는 분명 의식이나 주관성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AI 모델은 세상을 인간의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 해도 AI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 세상을 분석하여 새롭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인 능력을 지녔다. 이는 지난 5세기 동안 우리가 꾸준히 추구하고 의존해온 과학적 방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인간만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4대 분야

    안보

    군사 전략의 재조정부터 외교술의 재편에 이르기까지 AI는 세계 질서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다. 두려움도 선호도 없는 AI는 전략적 의사결정에 객관성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객관성은 전쟁주의자와 평화주의자 모두 이용하므로 힘이 책임감 있게 행사되려면 반드시 인간 지혜의 주관성을 보존해야 한다. AI가 전쟁에 사용되면 미지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보다 인간의 현존하는 조건을 드러내어 인류가 가진 최선과 최악의 면모를 밝혀낼 것이다. 우리는 기술이 중대하게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이라도 AI가 어떻게 갈등의 수단이자 동시에 갈등의 종결자가 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어떤 단일 국가도 타국을 절대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점점 더 복잡하게 사회를 구성하려고 오랫동안 애써왔다. 이런 노력은 결국 지속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자연법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설령 인간이 정보와 조언을 얻기 위해 AI를 이용한다 해도 외교의 주체들이 여전히 인간인 세상에 서, 우리는 관련 주체들 사이에 공유하는 행동 규범을 토대로 어느 정도의 안정을 누리며, 그런 행동 규범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정되고 바뀔 것이다.


    하지만 만일 AI가 사실상 독립적인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주체로 출현한다면, 아주 오래된 힘의 균형은 사라지고 새로운 미지의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다. 민족국가들의 국제적인 협력은 지난 한두 세기 동안 균형을 달성했으나 내부에서는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런데도 협력이 유지된 부분적인 이유는 협력의 주체들 사이에 내재된 평등성이었다. 몇몇 국가가 다른 국가들보다 AI를 더 기꺼이 정치적 리더십에 도입한다면, 세계의 대칭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다. AI가 대단히 많이 응용되는 국가나 AI 자체에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대적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경쟁은 물론이고 생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해 보인다. 그러한 중간 질서가 도래하면 인간 사회는 내부에서 무너지고 외적 갈등 역시 통제가 안 될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첩보와 파괴 활동

    국가들은 AI 기술을 안전하게 유지할 방법을 모색하는 동시에 AI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찾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오늘날 외교는 문화, 역사, 소통과 인식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주요 국가들 가운데 전방위적인 불안과 의심이 조장되고 있다. 각국은 전술적 이점을 점차 늘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 믿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의 미래를 지배할 AI는 발화점을 낮출 것이다.


    사회마다 자기를 보전하려는 본능을 따라 저만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라이벌 군사기관과 정보기관들 사이에 역사상 유례없는 심리전이 벌어질 것이다. 최초의 인공 초지능(Artificial Super-Intelligence, ASI)이 도래하기까지 수년, 수개월, 수주, 수일이 걸릴지 모르지만, 존망을 좌우할 안보 딜레마가 기다리고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초지능이라는 엄청난 역량을 손에 넣은 인간 주체는 단독으로 존속하기를 가장 먼저 바랄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주체는 타당하게도, 기본적으로 자신과 이해관계가 같으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경쟁자가 비슷한 수를 고려하리라 추정할 수 있다.


    한편 AI는 인간 심리의 약점을 대규모로 조작하는 고유한 능력을 갖춰 경쟁국의 매체를 장악할 수도 있다. 대대적인 허위정보를 유포해서 그 나라 대중이 큰 충격을 받아 AI의 기량을 더 발전시키는 활동에 반대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아니면 다른 나라의 AI 개발을 총괄하는 과학자의 소통을 조작해 그가 느낄 슬픔을 극대화하여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역량을 저하할 수도 있다.


    일부 주체는 특정 기량이 달성된 것을 보고 AI의 전반적인 이점을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AI가 단순히 단일 기술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다양한 기술들에 내장된 머신러닝 과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 특정한 분야에서의 기량은 다른 분야에서의 기량과는 전적으로 다른 변수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추정되는 ‘이점’은 환상일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AI의 기량이 기하급수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증강된 데에서 증명됐듯이, 진보의 궤적은 선형적이지도, 예측 가능하지도 않다. 초지능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앞으로도 계속 분분할 것이다. 기존 학습 인프라의 규모를 확장하고 실행하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혁신을 요구할까? 상상해보면 협의의 인공지능(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ANI)에서 범용지능으로, 그다음에 초지능으로의 전환은 명백한 진화의 신호 없이도 가능하다. 특히 인간이 AI에게 무엇을 기대할지 공통된 개념을 만들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대략 수년 혹은 수개월 ‘앞선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핵심 분야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기술이나 이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모든 주체들의 지위가 바뀔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어떠한 지도자도 그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지능, 자신의 가장 원초적 본능 혹은 현실의 근간조차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초지능을 확보하려는 경쟁자가 극도의 편집증과 의심을 품고 행동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 지도자들은 분명 이미 그들의 노력이 감시당하거나 악의적인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추정하에 의사결정을 내린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삼는다면, 최전방에 있는 주체는 전략적인 계산으로 안전보다 속도와 비밀주의를 최우선에 둘 것이다. AI를 이용해 자신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인간은 감지하거나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지도자들은 2위 따위는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러한 압박감 때문에 외부에 의한 와해를 막는 억지책으로 성급하게 AI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비자발적인 무지의 베일 뒤에 있다. AI 분야의 지배력을 선점하려는 경쟁에서 궁극적인 승자는 아직 알 수 없다. 선두가 되려고 하는 모든 기업은 잠재적인 경쟁자다. 이 불확실성이 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지정학적 재편

    키신저가 말했듯, 마치 자연법칙처럼 인류 역사에서는 시대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국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위력과 의지, 지적/도덕적 추진력을 지닌” 집단이 출현했다. 그러한 주체가 출현하고 나면, 다른 집단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위기의 시기에 예측 불가능한 의존성을 키우고 지정학적 힘의 균형을 무효화할 위협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그 결과 나타나는 시스템은 때론 기존의 권위를 전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오히려 강화하기도 한다.


    인간 문명에서 가장 익숙한 체제는 전통적으로 베스트팔렌 체제(Westphalian system)로 이해된다. 그러나 주권 민족국가는 17세기 중반에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서 출현하여 발생한 지 한두 세기에 불과하다. 주권 민족국가는 반드시 정해진 사회조직의 단위가 아니며, AI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실로 대규모 허위정보와 자동화된 차별 때문에 이 체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상황에서 AI는 국가 정부의 권력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심리적 혼란과 현실 도피의 가능성이 이 문제를 더 악화한다. 아니면 AI는 오늘날의 시스템 안에서 경쟁자들의 상대적 지위를 재편할 수도 있다. 만일 주로 민족국가들이 AI의 위력을 이용한다면, 패권이 정체되거나 AI로 역량이 강화된 민족국가들이 새로운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AI는 한층 더 근본적인 전환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국가 정부들이 결국 세계 정치 인프라에서 맡은 중추적인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AI를 소유하고 개발하는 기업들이 사회적/경제적/군사적/정치적 위력을 전부 축적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부들은 민간 기업들의 대변인이자 지지자라는 어려운 입장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군사력, 외교 자원, 경제적 영향력을 기업에 빌려준다. 동시에 기업의 독점욕과 비밀주의를 의심하는 평범한 국민을 지지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러한 입장은 버티기 힘든 모순으로 증명될 수 있다. 아울러  AI의 출현은 기존의 모든 제도에 의한 통치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 통제되지 않은, 오픈소스로 인한 분산은 표준 이하지만 상당한 AI 역량을 갖춘 소규모 범죄 조직이나 부족의 출현을 야기할 수 있다. 이들이 가진 역량은 제한적이나마 스스로를 관리하고 지원하며 방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고 분산된 금융/통신/통치를 선호하는 인간 집단 사이에서 원시적 무정부주의가 확산될 수 있다. 아니면 그러한 집단들이 아마도  AI와 신성에 관한 개념 가운데 하나에 주도되어 종교적 색채를 띨 수 있다. 사실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 모두 역사상 어느 국가보다 그 세력의 범위가 넓고 규모가 크며 더 오래 지속되었다. 다가올 시대에는 국가 시민권보다 종파가 정체성과 충성심의 더 유의미한 원천으로 증명될 수 있다.


    기업 동맹이 지배하든 느슨한 종교 집단으로 분산되든, 미래에 각 집단이 제 것이라 주장하고 다툴 새로운 ‘영토’는 토지가 아니라 개별 사용자의 충성도를 나타내는 디지털 기기가 될 것이다. AI는 전통적인 중앙집중식 정부의 지위에 복잡하게 작용하고, 개별 사용자들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일에 영향을 주며, 시민권의 전통적인 개념을 뒤엎을 것이다. 아울러 주체들 간의 합의는 일반적인 동맹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평화와 위력

    민족국가의 외교 정책, 즉 국제 시스템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균형을 맞춰 수립되고 조정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이 달성한 일시적인 균형은 훗날 되돌아보면 최종 상태가 아니라 그들 시대를 위한 필요에 따른 일시적인 전략에 불과했다. 새 시대마다 이 긴장으로 인해, 정치 질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다르게 표현되었다. 지도자는 기존에 이미 고려한 스펙트럼에 부합하는 선택지를 실현하는 데에 그칠 수 없다. 적어도 영감에서 도출되거나 도출된 것으로 보이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들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의 조직 단위는 커져갔고 동시에 새로운 수준으로 협력했다. 그러나 오늘날 아마도 국가들 사이 그리고 한 국가 안에서의 물질적인 불평등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들 때문에, 이 추세에 대한 반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AI는 인간 통치의 거대한 규모에 걸맞은 것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자국에게 필요한 요소를 넘어 세계의 상호작용을 세밀하고 충실하게 볼 수 있을까? AI가 우선 인간의 이익과 가치를, 그러고 나서 AI 간의 올바른 비율과 관계를, 인간이 이제껏 한 것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믿어도 될까?


    키신저가 말한 대로, 인간 지도자가 “우리의 도덕적/법적/군사적 입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정통성이 생존에 필수 요소가 되는 상황으로 우리의 행동을 한정하리라” 믿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실로 인간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국내외에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배치된 AI가 단지 균형 잡힌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보여주는 것 이상을 해내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상적으로 볼 때 AI는 인간보다 더 장시간 더 높은 정확성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따라서 서로 상충하는 인간의 이해들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며 세계적으로 최적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다가올 세상에서 갈등을 헤쳐 나아가고 평화를 협상하는 기계 지능은 인간의 전통적인 딜레마를 명료화하고 심지어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AI가 실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길 바라야 하는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우리는 자신감의 위기에 직면한다. 즉 일부는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다른 일부는 자신감을 잃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우리가 일단 스스로 교정하는 능력의 한계를 이해한다 해도, 인간 행동의 존재론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너무 많은 권력을 기계의 지혜에게 넘겨주게 되었음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율성을 제거한 것만으로도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충분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인간종이 가진 태생적인 결함을 너무 뚜렷이 보게 될 수 있다. 만일 평화가 항상 단순하고 자발적인 선택지에 불과했다면, 끊임없는 전쟁은 인간이 불완전한 대가였다. 해법이 언제나 존재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간의 자존심은 크게 무너질 것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