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점령한 중독 경제학
 
지은이 : 쑤친 (지은이), 김가경 (옮긴이)
출판사 : 이든서재
출판일 : 2025년 09월




  • 현대 사회의 우리는 중독의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찾는 한 잔의 커피, 허기진 위장을 유혹하는 한 스푼의 설탕, 거친 노동 끝에 손을 뻗는 한 잔의 맥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음미하는 한 잔의 위스키. 이 모든 것이 중독을 일으키지요. 이러한 사소한 중독이 인간의 집착을 불러 문명을 일으키고, 제국을 무너뜨리며, 수백만 명의 운명을 바꾼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세계를 점령한 중독 경제학


    중독 경제학

    커피 원두 과잉 생산이 초래한 경제 호황과 위기

    천혜의 재배 환경은 축복이었지만, 막대한 생산량은 결국 브라질에도 위험을 초래했다. 경제학계에서는 상품의 장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크게 하락한다는 원리를 들어, 브라질 커피 원두의 생산량이 계속해서 기록적인 수치를 갱신하면, 가격 붕괴 위기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1906년, 브라질의 커피 원두 생산량은 거의 2,000만 포대에 달했다. 전 세계 커피 시장 수요 분석에 따르면, 이 커피 원두가 시장에 유입되면 전 세계 커피 가격이 급락하여 최저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브라질 국가 수입의 90%가 커피 재배업에서 창출되고 있는데, 만약 이 시점에 커피 원두를 시장에 내놓는다면, 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경제적 자살 행위임이 자명하다. 분명 많은 농장이 파산하고 브라질 경제가 붕괴할 것이다.


    브라질 정책 결정자들은 장고를 거쳐 강제 경제 조치인 '타우바테 협정(Convenio di taubate)'을 발표했다. 이 협정의 핵심은 브라질 커피 원두의 가격 유지를 위해 브라질 정부가 나서서 커피 원두를 매입하여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원두의 양을 조절해 원두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 이론을 활용해 수요가 크게 변하지 않을 때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이 계획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브라질 정부는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국제 자본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유럽 금융가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선의로 브라질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 경제의 안정을 지키는 일이 곧 그들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럽 자본가는 오랜 기간 브라질에 거주하며 플랜테이션에 투자했고, 커피 상인들에게도 대규모로 대출을 해주고 있었다. 많은 금융인이 브라질 커피 회사의 주식과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만약 커피 산업에 위기가 닥치면 브라질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고, 그에 따라 유럽 금융가들의 자산 역시 급격히 줄어들거나 심지어 전부 사라질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채권 발행으로 위기를 넘긴 커피 산업

    브라질 정부는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중 상파울루의 한 철도를 담보로 200만 파운드(당시 국제 금융은 파운드 스털링이 기준이 되었다)를 대출했다. 또한 500만 파운드의 정부 채권을 발행해 시민들에게 채권을 구매하도록 호소했다. 브라질 정부의 채권은 발행 첫날에 매진됐다.


    충분한 자금을 모은 브라질 정부는 나머지의 원두를 대량으로 사들여 뉴욕, 함부르크, 르아브르 등지로 선적하여 단단히 밀봉한 후 보관했다. 그 후, 브라질 정부는 창고에 있는 원두를 담보로 삼아 계속해서 대출을 받아 원두를 구매했다. 점점 더 많은 원두를 담보로 묶어둘수록 시장에 나와 있는 원두의 양은 줄어들어 원두 가격을 성공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


    커피 재배는 어느 해에 풍년이 들면 다음 몇 년 동안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나무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겨울잠 같은 휴지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풍년이 들고 나면 토지가 에너지를 다시 축적하는 데 몇 년이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토지는 하늘이 선물한 천혜의 땅이었다. 1907년 커피는 생산량이 줄기는커녕 여전히 대풍년이었다. 1908년에도 역시 풍년이 들었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듯 브라질 커피는 일반적인 자연법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커피 농가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원두를 보며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브라질 정부의 창고에는 커피 원두가 점점 더 쌓여만 갔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자금의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정부가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은 줄어들고 있었으며, 브라질 정부는 자금 회전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네 번째 해부터 이후 몇 년 동안은 커피 수확량이 줄어들 조짐이 보였다. 브라질 정부는 커피를 대량 생산한 지 7년이 되던 해인 1913년 2월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버텼고, 마지막 남은 원두 재고가 시장에 풀리면서 원두는 전부 소진되었다.


    커피 원두 재고 처리를 위한 참전

    브라질 정부는 7년에 걸쳐 정부 자금 조달 방식을 통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은 통제할 수 없다. 그들은 뼈아픈 교훈을 기억하지 못했고, 커피나무 재배량을 통제하지 않았다. 커피나무 재배 면적은 줄기는커녕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1914년, 브라질 커피는 또 한 번 풍작을 이루었고, 커피 시장의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이 해에 수확한 원두의 양은 전보다 더 많아졌고, 이로써 경제 위기의 위험은 더 커졌다. 브라질 정부는 원두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정부의 자금조달을 통한 봉인 정책을 채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조롭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이기도 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세계적인 혼란으로 커피 소비가 급감해 커피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남미 커피 시장으로 가는 해상 무역로는 영국에 의해 일찍이 봉쇄되었으며, 유럽의 커피 거래소는 문을 닫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주요 커피 소비 시장이 전쟁으로 인해 봉쇄되면서 원두 판매량은 대폭 감소하였고, 독일 함부르크 항에 쌓여 있던 브라질산 커피는 모두 독일에 압류되었다.


    무엇보다 큰 타격은 세계적인 커피 소비국인 프랑스마저 독일군 잠수함에 의해 봉쇄되었고, 중립국인 덴마크와 스웨덴 등도 정치적 이유로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브라질산 커피 원두의 판매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점이다.


    초조해진 브라질 정부는 사방팔방으로 인맥을 총동원해 전 세계 각국에 커피 원두를 판매해야 했다. 1917년, 프랑스는 브라질 원두 200만 포대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미합중국의 워싱턴도 원정군을 위해 100만 포대의 커피 원두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구매 조건에는 독일에 대한 전쟁 선포, 즉 '참전'이 포함되어 있었다.


    잔인하게도 한 국가의 경제 위기는 전쟁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고심 끝에 브라질은 결국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프랑스와 미국은 약속대로 대량의 브라질 커피 원두를 구매하였고, 브라질 커피 위기는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커피 원두는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커피 원두의 재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도움이 절실했다. 브라질 국민을 구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극심한 야간 서리가 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혹독한 서리는 이듬해의 커피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생산량이 줄어야만 커피 원두의 가격은 유지될 수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밤 서리가 내렸고, 추운 날씨는 커피 꽃과 갖 맺힌 작은 열매를 파괴해 다음 해에 커피 생산을 감소할 수 있었다.


    탐욕이 불러온 브라질 원두의 추락

    1913년 미국의 원두 수입량은 650만 포대에 불과했지만 1923년에는 1,200만 포대로 증가했다. 10년 동안 거의 두 배가 된 것이다. 미국의 급주법이라는 신의 한 수 덕분에 브라질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던 커피 위기를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엔 브라질 사람들도 무분별한 재배 확장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똑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재배 묘목의 숫자를 관리하고 생산량을 엄격히 통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성적 판단은 오래가지 않았다. 커피 농장주들의 탐욕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그들을 심리전으로 이끌었다. '커피 원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커피나무 재배 면적을 늘렸는데 나만 바보 같이 약속을 지켜 재배 면적을 늘리지 않는다면 손해가 아닐까?'


    이런 어리석은 속셈을 가진 농장주들은 남몰래 재배 면적을 확장했고, 커피나무 재배 면적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농장주들은 이전의 경험을 기억해 정부가 그들을 또다시 지원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커피나무 재배에 문외한인 투기 상인까지 재배에 참여해 커피 원두의 품질은 들쑥날쑥해지고 말았다. 결국 불안정한 브라질 커피 시장을 감지한 국제 커피 바이어들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브라질 외의 다른 커피 생산지를 찾기 시작했다.


    1924년, 브라질에서는 또 한 번 커피가 대풍년을 맞이했다. 예년처럼 커피 재배자들과 플랜테이션 주인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며 위기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브라질 정부는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당시 브라질 정부의 경제력은 전과 같지 않았고, 대량의 커피 원두를 인수할 충분한 자금조차 없었다. 게다가 유럽 금융가들도 이미 브라질 커피 농장주의 탐욕스러운 본성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여러 해 전부터 투자처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에게 브라질의 커피 원두는 더 이상 유일무이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콜롬비아, 니카라과, 코스타리카의 커피 생산량 역시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맛 또한 브라질의 커피와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더 독특한 풍미를 지닌 경우도 많았다.


    결국 1929년 10월, 마침내 브라질은 커피 재배 역사상 가장 암울한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커피 원두의 가격은 끝없이 폭락했고, 수많은 농장주와 커피 상인이 재산을 탕진했다.


    경제학 법칙을 경시하고 탐욕에 눈먼 이들은, 결국 그 탐욕으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고통의 쾌락’ 비즈니스

    전 세계를 휩쓸며 인간을 길들인 고추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면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등 강대국들이 차례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제국들의 야망이 요동치는 시대에 고추의 운명 또한 이들 국가와 함께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치게 되었다.


    고추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재배와 저장이 쉽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렬한 매운맛이 한 번 맛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다'라는 점이다.


    고추의 전파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세상에 고추만큼 빠르고 무섭게 전 세계를 정복한 식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나 유럽을 점령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요리계에서 압도적인 왕좌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40%가 고추를 필수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 어떤 향신료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수치이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의 출발점이며,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고향이다. 따라서 유럽에 고추가 널리 퍼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면 고추는 어떻게 유럽 이외의 지역들까지 정복하게 되었을까? 먼저 아프리카를 살펴보자. '아프리카' 하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당시의 악명 높은 '노예 매매'와 '삼각무역'이다. 유럽의 노예 상인들이 아프리카를 오가며 고추도 함께 전해졌다. 고추는 바다를 건너 광활한 아프리카 땅에 도착했고, 운명처럼 노예 거래의 일부가 되어 결국 비극적인 역사의 흐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 노예 상인들은 노예를 거래할 때 브랜디뿐 아니라 고추를 현금 대신 사용하여 대금을 치르는 것을 선호했다. 고추는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필수품이었지만,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물론 거래에 사용된 것은 신선한 고추가 아닌, 장기 보관이 가능한 건조 고추였다. 신선한 고추는 쉽게 썩기 때문에, 건조 고추만이 거래에 사용되었다.


    수백 년간 지속된 노예 무역과 함께 고추도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점차 고추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오늘날 아프리카 요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매운 고추와 각종 매운 소스가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인들 못지않게 아프리카 사람들도 고추를 좋아한다.


    아프리카의 식문화에서 하바네로(Habanero), 스코치 보닛(Scotch Bonnet), 버드아이 칠리(Bird S Eye Chill), 인도 부트 졸로키아(Ghost Pepper, 일명 '유령 고추') 등은 대표적인 매운맛 원료로 인정받고 있다. 각 품종의 특징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요구 사항은 하나다. 바로 '강렬한 매운맛' 이다.


    식탁 위의 권력이 된 고추

    한편, 세계 최초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정제 기술을 발전시킨 인도에도 고추가 전파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이 16세기 초반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 지역을 중심으로 고추를 도입하면서, 고추는 인도 식문화에 빠르게 정착했다. 현재 고아는 인도의 대표적인 부유 지역으로, 연중 수십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이며, 동시에 고추 소비가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인도는 후추의 원산지로, 전통적으로 후추가 주요한 향신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추가 도입된 이후, 인도 요리에서 후추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었고, 보다 강렬한 매운맛을 제공하는 고추가 주류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한 미각적 변화뿐만 아니라 생리적 자극을 통한 식욕 증진, 소화 촉진 등 다양한 기능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가격 요인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 고추는 재배가 쉽고 가격이 저렴해,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식재료다. 인도에서 고추 재배법이 정착되면서,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후추를 빠르게 대체하며 대중적인 조미료로 자리 잡았다. 후추나 정향(클로브)과 같은 고가의 향신료와 달리, 고추는 일반 서민층도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인 선택지였다.


    이러한 변화는 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전파된 고추는 태국 전역에서 대규모로 재배되었고, 빠른 속도로 현지 식문화에 녹아들었다. 특히 저소득층에서 고추는 필수적인 조미료로 정착하였으며, 태국 가정에서 고추와 고추를 기반으로 한 소스는 필수 식재료가 되어 가정마다 고추 소스가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볶음면, 국물 요리, 구이 요리 등 다양한 음식에 고추 소스가 사용되었으며, 특히 ‘남 프릭(고추 페이스트)’은 태국 요리의 핵심적인 요소로 발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고추가 식문화에 미친 영향은 단순한 식재료 수준을 넘어선다. 초기에는 단순한 향신료로 받아들여졌던 고추는 시간이 지나면서 필수적인 조미료가 되었고, 각국의 미식 문화를 변화시켰다. 이제는 고추가 인간의 식문화를 변화시킨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고추를 길들인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제기될 정도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추는 인간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현대의 인류는 더 이상 고추 없는 식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보 인류의 미래

    음식의 복수, 식탐이 인류에게 가져온 건강 재앙

    인류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대량으로 살충제와 제초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DT, 헥사클로로사이클로헥산, 패러팟과 같은 극독성 농약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농약은 치사율이 높고, 독성이 강하며, 잔류 기간이 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최소 50만 건의 농약 중독 사고가 발생하며, 이로 말미암아 11만 5천 명이 사망한다. 또한, 85% 이상의 암과 0여 가지 질병이 농약 잔류물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2019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의 배심원단은 몬산토(Monsanto)사의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제초제가 사용자에게 암을 유발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몬산토사가 오랫동안 비판받아 온 주요 이유 중 하나이며, 식량 속 농약 잔류물이 암 환자의 급증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류는 생물을 개량하고 해충을 제거하면서 기존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기아 문제는 해결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전반적인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과연 식량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위기를 만들어 스스로를 해치는 길로 접어든 것인가?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던 인류는 마침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녹색 식품'에 관심을 두었고, 많은 식품이 '비유전자 변형을(n-GMO)' 이라는 라벨을 붙이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는 오히려 신중해졌다.


    한때,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설탕을 발견하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다. 설탕은 삼각무역 시대를 거치며 귀중한 자원으로 취급되었지만, 결국 사람들은 설탕이 인류의 가장 큰 건강 위협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도한 설탕 섭취는 고혈당을 유발하고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 이로써 조체 질병의 60%가 설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설탕은 또한 녹내장, 백내장, 시신경 위축, 황반변성, 망막 박리, 안저 출혈, 안구 혈관종 등 각종 심각한 안과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당 조절'이 중요한 건강 이슈로 떠올랐고, '무설탕'이라는 개념이 건강식품 마케팅의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결국,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열렬히 추구했던 설탕이 이제는 그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 것이다.


    과도한 육류 섭취는 지방으로 전환되어 혈액을 산성화하고, 내장을 손상하며, 노화성 만성 질환을 유발한다. 또한,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다량 섭취하게 되어 관상동맥 경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의 질병을 촉진한다.


    이로 인해 채소. 통곡물, 과일을 중심으로 한 '가벼운 식사'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건강을 위해 사람들은 육류 섭취를 줄이고 있다. 이제는 미식의 유혹보다 생존 본능과 건강 유지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노르웨이 베르겐대학 연구진은 식단이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에 따르면, 과일, 채소, 통곡물, 정제 곡물, 견과류, 콩류, 생선, 달걀, 우유, 적색육, 가공육, 가당 음료 등의 섭취량 변화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콩류, 통곡물, 견과류를 많이 섭취하고, 육류를 줄이는 것이 건강과 장수에 유리하다고 분석되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최적의 장수 식단은 다음과 같다.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은 완두콩, 렌틸콩 등 콩류와 귀리, 보리, 현미 등 통곡물, 그리고 다양한 견과류이다. 그리고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은 바로 육류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세부터 이 식단을 따르면 최대 10년 이상의 수명 연장 효과를 볼 수 있으며, 60세 이후라도 식습관을 개선하면 최대 8년의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


    결국, 인류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했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과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같은 길을 걸으며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인가? 그 답은 인류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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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