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비즈니스 트렌드
 
지은이 : 권기대
출판사 : 베가북스
출판일 : 2025년 09월




  • 산업, 투자, 경제의 좌표를 재설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7대 핵심 산업의 기회와 리스크를 현장감 있게 보여줍니다. 마치 기업 현장과 글로벌 무대에 직접 뛰어든 듯, 다가올 기회의 길목과 위험의 함정을 동시에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


    2026 비즈니스 트렌드


    K-방산
    내가 7개 주요 산업 가운데 방위산업을 맨 앞에 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과 아슬아슬하게 대치한 가운데 치열한 개발과 자립의 40년 역사, 최근 4년~5년의 눈부신 성장, 2025년 수출 실적 200억 달러 돌파, 계속 순항이 확실해 보이는 2026년, 그 어떤 산업 영역보다 밝은 단기·중기 전망, 2027년까지 세계 4대 수출국 도약. K-방산을 2026년 비즈니스 트렌드의 선봉장으로 삼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2025년 8월 18일 현재 K-방산 4대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수주잔고 합계가 사상 처음 100조 원 벽을 깨고 103조4,766억 원에 이르렀다. 대충 앞으로 5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글로벌 무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인들이 확보해놓은 일감과 비교하면 어떨까? 가령 같은 시점 록히드마틴 244조 원, 제너럴 다이내믹스 144조 원, RTX 128조 원, 노쓰롭 그러먼은 124조 원이다. 물론 기업 하나하나로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빅 4의 수주잔고를 합치면 글로벌 톱5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이제 K-방산은 우리 수출 산업의 중요한 한 축이다. 수출 대상국도 과거 공산권 국가 포함 15개국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수출 품목도 가히 육·해·공을 아우르며 다양성과 고난도 첨단기술을 자랑한다. CNN 같은 언론이 한국을 미국 동맹국들의 핵심 무기 공급자로 부르는 이유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K-방산은 한국군을 고객으로 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글로벌 안보 지형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글로벌 방산 시장의 강자로 빠르게 도약한 것이다. 

    이제 K-방산은 외교·통상의 영역에서도 쓸모있는 협상의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K-방산이 풀어야 할 숙제들
    물론 K-방산이 좋은 시절을 맞고 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없지 않아 꾸준한 관심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1.K-방산의 수출 대상 다변화
    품목별로 특정 국가·지역에 집중된 경우, 어디서 K-방산을 견제하거나 불리한 정치적 변화가 생길 땐 그 충격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LIG넥스원의 천궁-II 수출은 중동에 몰려 있고 T-50 계열 항공기 수출은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쟁국들이 30개~40개 국가로 수출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수출 시장 다변화는 여전히 국가적 과제다.

    2.수출 품목 다변화
    K-방산의 주력 제품은 양산을 시작한 지 10년~20년 된 재래식 무기다. 경쟁 수출국들에도 익숙한 무기다. 예컨대 EU 국가들은 잠시 우리에게 안방 시장을 빼앗긴 후 급급히 생산망 복원에 나서거나 이웃 나라 무기 구매를 늘리려고 애쓰고 있다. 앞으로는 K-방산의 수주 활동이 만만치 않을 거란 얘기다. 자주포·전차 같은 무기체계 외에도 AI를 접목한 무인기 등 첨단 무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국방 AI 영역에서 주요 선진국들에 4년 넘게 뒤처진 상태다. 민·관·군이 협력해서 개발 속도를 높여야 한다.

    3.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국산화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고급 전투기 엔진 분야에서 한국은 50년 정도 뒤처져 있으며, 이지스급 구축함까지 멋지게 만들어내는 K-방산이지만 그걸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는 미국에 오롯이 기대고 있다. 선진국들은 국가 안보 명목으로 핵심 첨단기술은 일부러 특허도 내지 않을 정도다. 미국은 사상 최강 전투기 F-22를 우방국에조차 단 한 대도 팔지 않았다. 진짜 고급 기술은 아예 맛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이처럼 '암중모색'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무슨 수를 쓰든 엔진을 포함한 핵심 부품 국산화는 지상 명령이다.

    4.집안싸움
    몇 안 되는 K-방산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심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 소송까지 벌인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이 10조 원 규모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 검토 대상에도 못 들고 나가떨어지지 않았던가. 정부가 경쟁을 조정하기 못해 한국 업체끼리 싸워대는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 이후 두 업체가 손잡고 한 팀을 이루어 캐나다 등에서 수주 활동을 펴고 있으니 다행인데, 어쨌거나 방산의 특성상 정부의 개입 없이는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K-조선
    글로벌 조선업 엇갈린 전망
    2024년 K-조선의 기상은 '맑음'이었고, 따스한 업황은 2025년과 2026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후티 반군의 홍해 점거 → 컨테이너 운임 폭등 → 두둑해진 선사들의 주머니 → 빗발치는 컨테이너선 발주로 이어진 조선업 호황에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빅3'의 곳간도 두둑해졌다. 더구나 LNG 운반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종을 골라 수주한 결과, 영업이익이 3사 모두 가파르게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조선 삼총사는 2024년 말 기준 3년 6개월 치가 넘는 조선 물량을 계약해놓아(2024년 말 수주잔고 145조 원에서 2025년 200조 원 돌파 예상) 다소 느긋하다. 수주 잔량이 충분해서 여전히 선별 수주에 집중할 여력도 있다. 게다가 국내 생산 제로인 미국이 10년 내 상선을 250척 늘릴 계획이어서 K-조선에 가외의 기회가 생길 터이다. 미국의 고약한 관세전쟁에도 K-조선만큼은 '나 홀로 웃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글로벌 조선 시장을 조망하는 전문가들은 다분히 조심스럽다. 코로나-19 물류 대란으로 일시 증가했던 컨테이너선 발주, 카타르 LNG 프로젝트 등 굵직한 발주가 끝나면서, 2025년 선박 발주량은
    전년의 절반에도 못 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K-조선도 이미 2024년부터 연간 수주 목표를 낮추고 호황 끝에 닥칠 수주 절벽에 대비해 왔다. 조선 3사 모두 3년~4년 치 일감을 확보한 터라, 배를 만드는 독(dock)은 거의 다 차 있고 이제 그 이후를 대비한 선별 수주를 하는 중이다. 다른 몇몇 산업과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인해전술식 마케팅에 열중하는 중국 조선사들을 어떻게든 제쳐야 한다. 그 핵심 전략은 아마도 LNG 운반선을 비롯한 고난도·첨단·친환경 선박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다.

    글로벌 조선업, 정점을 지났나?
    2021년 시작된 조선업 초호황이 한풀 꺾였다는 징후가 여기저기 보이는 가운데 예상보다 빨리 침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2025년 상반기 글로벌 발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4% 줄었다는 수치도 보인다. K-조선의 2025년 수주량 역시 세계 시장의 위축보단 약하지만, 전년보다 9.5% 감소해 금액으로는 1.6% 줄어든 310억 달러(약 45조7,000억 원)가량으로 전망된다. 2024년 하반기부터 컨테이너선이 잇따라 인도되며 선가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LNG선의 확산으로 용선료도 떨어지고 있다. 싸게 빌릴 수 있게 되면 배를 새로 만들려는 심리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2024년만 해도 원자잿값 하락과 환율 상승으로 국내 조선업이 반등했는데 계속해서 지표가 나빠지는 원인이 뭘까? 우선 철강업체들이 감산을 본격화하고 우리 정부가 외국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통에 배를 만들 때 쓰이는 후판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와중에 환율까지 고점 때보다 10% 떨어졌다[조선업은 고환율 수혜 업종]. 2025년 상반기 K-조선 3사의 수주량도 40%~60%나 줄었다. 주식시장에서 2025년 들어 이미 두 배씩 뛴 조선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수주 먼저, 실적 나중' 구조여서, 확보된 수년 치 일감을 고려하면 최소 5년간은 호황이며 2030년까진 느긋한 사이클이 이어질 것이다. 수치만 보고 조만간 수주가뭄 위기가 닥칠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현재 호황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K-조선의 중심은 예전처럼 중저가 선박이 아니라 LNG, 원유, 암모니아 운반선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기억하자, 건조하는 배가 몇 척이냐가 아니라, 어떤 가격의 배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K-조선은 고부가가치 선박의 글로벌 발주량 가운데 7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뱃값이 떨어지니까 '피크아웃' 걱정하지
    조선사가 선박을 건조해 판매하는 가격인 '신조선가'가 2024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걱정할 만하다. 선박 건조 가격과 업황을 나타내는 지표인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는 2025년 6월 187.11포인트를 기록하며, 전년도부터 조금씩 내리고 있다. 원유 등을 운송하는 탱커, 철광석·석탄 등 산업 원자재를 운송하는 벌크선 등 모든 크기의 선박 신조선가가 함께 내렸다. 그 이유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전 세계 선박 발주량 자체의 감소다. 그렇다면 발주량이 본격적으로 회복하지 않는 한, 선가 하락 압력은 계속될 것이다.

    조선업의 불황 신호 여부에 대해선 찬반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조선업의 펀더멘털은 아직 튼튼한 것 같다. 가령 전 세계 탱커의 절반 가량이 15년 이상의 노후 선박이다. 그뿐인가,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국제해사기구의 로드맵과 규제가 늘어나는데도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선박은 현재 움직이고 있는 배의 10%도 안 된다. 그런 규제에 맞춘 새 선박을 향한 수요가 오랜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대비는 해야 할 것이다. 가격 하락 폭이 크든 작든, 하락 추세가 뚜렷하고 일관된다면 세계 선박 제조량 2위인 K-조선도 마땅히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업계엔 벌써 2028년 이후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K-반도체
    반도체 시장, 덩치 작은 메모리가 주도
    반도체 무역 통계기구(WSTS)는 2025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를 전년보다 11.2% 증가한 7,008억7,400만 달러(약 952조 원)로 예측한다. 크기로는 웬만한 다른 산업을 압도한다. 2026년에는 다시 8.5% 성장해 7,607 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계속되는 AI의 발전으로 HBM 수요가 늘어, 한국이 강점을 지닌 메모리 역시 2025년 11.7%, 2026년 16.2%의 성장이 예상된다. 원래 메모리 시장은 2025년 하반기에나 살아날 거란 전망이 주류였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인 반등이 다소 앞당겨지는 분위기다. AI, 클라우드 인프라, 첨단 가전 등에서 늘어난 메모리 수요는 2026년에도 반도체 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또 차세대 HBM 주 공급사의 경쟁과 더불어 HBM의 용도 또한 다양해지면서 업계의 진화와 K-반도체의 미래를 더욱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대 격전지는 고부가가치 메모리 HBM 시장. 지금까진 SK하이닉스의 독주였지만, 이를 막기 위해 차세대 HBM4 경쟁이 여간 치열하지 않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는 2025년 하반기, 마이크론은 2026년 양산이 목표다. HBM4의 공급 능력이 향후 경쟁에서 핵심 차별화 요소로 부상할 것이다. 최근 엔비디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첨단 GPU 대량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다시 한번 AI 칩 붐이 일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시스템 반도체 부문이 걱정이다. K-반도체의 경쟁력이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어서다. 조사업체 Omdia(옴디아)가 알아본 바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2019년 3.2%에서 2024년 2.1%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반전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더 하락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D램 가격, 어떻게 움직일까?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강세에는 이견이 없다. 제조사들이 HBM용 웨이퍼와 DDR5 웨이퍼를 3 대 1의 비율로 투입하는 등, 생산능력을 HBM에다 집중하고 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이유다. HBM 이외 메모리(특히 범용 DDR4)의 공급이 빠듯해지고 있는 것. 삼성과 하이닉스 모두 범용 D램 가격을 2025년 상반기에만 두 자릿수 높였다. 전문가들은 DDR4의 고정거래가격이 3분기에도 40% 이상 뛰고, 상대적으로 물량이 넉넉해진 DDR5도 평균 5~10%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범용 제품 가격에 민감한 삼성전자로서는 하반기 실적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K-반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복병들
    단, 반도체 업황의 본격 회복을 거론하기에는 찜찜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이 터뜨린 관세 전쟁 영향이다. 전무후무한 관세에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경우, 특히 중국의 소비 시장이 침체할 경우, 메모리 수요 증가세도 부득불 꺾일 수 있다. 예상했던 D램 가격 상승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싫지만 받아들여야 할 불확실성이다.

    PC·스마트폰 쪽도 걱정이다. 이미 상당한 D램 재고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가격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2025년 1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이 전년보다 5%가량 늘긴 했지만, 하반기엔 쪼그라들 수 있다. 미국 정부의 IT 기기에 대한 관세율 정도에 따라 D램 가격 또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뿐인가, K-반도체가 끊임없이 경계하고 조심하고 주목해야 할 경쟁자,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발전하느냐도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걱정거리다. 게다가 호시탐탐 반도체 부활을 노리는 일본 역시 한 순간도 허투루 볼 수 없는 위협 요소가 아닌가.

    중국·일본·미국, K-반도체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① 중국 최대 메모리 제조사 CXMT는 24년 12월 삼성·하이닉스의 주력인 첨단 DDR5 양산에 돌입했다. K-반도체보다 딱 4년 늦었다. 이대로라면 창신메모리의 D램 생산량은 마이크론을 바짝 추격하고 곧 SK하이닉스의 절반 수준에 이를 것이다.

    ② 파운드리 대표주자 SMIC는 이미 2년 전 미국의 규제 때문에 최첨단 노광 장비를 못 구해 '구닥다리' 장비로 7나노 공정의 첨단 칩 양산에 성공했으며, 2024년엔 5나노 공정 개발에도 성공했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7나노급을 양산하게 된 덕에 화웨이는 첨단 AI 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③ 낸드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은 거침없어, YMTC는 낸드플래시 294단까지 양산하는 적층 기술 강자로 유명하다. 

    128단에서 286단으로 넘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삼성이 4년 7개월가량 걸린 데 반해, YMTC은 3년 5개월 정도였다. 품질도 한국 기업 못지않다.

    ④ 화웨이가 설계하고 SMIC가 제조하며 알리바바·텐센트 등의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AI 가속기 칩의 수율이 1년 만에 수익성 확보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와중에 미국은 또 왜 이래?
    트럼프가 재집권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의 충동적인 반도체 정책 변화로 불확실성은 커졌고 그 충격을 최소화하겠다고 벼르는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실정이다. 더구나 K-반도체가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서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글로벌 제조사들의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해오던 트럼프는 자기네 산업 보호에만 집착해 급기야 인텔 지분을 인수했고, 삼성·하이닉스도 지분 요구 가능성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안보든 경제든 전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해 결정하겠다는 그의 욕심은 흔들리지 않을 터인즉, 중국에 몇몇 생산 거점을 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이래저래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중국이 앞서는 것만은 못 참는다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도 첨단기술도 일절 중국으로 보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으니, K-반도체의 중국 공장 운영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겠다고만 했을 뿐 아직 확정되지 않은 K-반도체에 대한 관세 역시 모호해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이러다가 중국의 장비 업체들이나 미국 마이크론만 득을 보는 게 아닐까.


    K-전력기기
    'K-전력기기'라고?
    미처 몰랐다, 2024년 초까지만 해도 전력기기·전선 업종이 방산, 조선, 반도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관심과 박수를 받을 줄은! 하지만 우리 전력기기 산업은 지금 앞에다 'K'를 붙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위용을 갖추었다. K-방산이나 K-조선의 경우처럼 글로벌 전력 수요는 거침없이 늘어나는 데다, K-전력기기의 경쟁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수치를 봐도 알 수 있다. 2024년 말 수주잔고가 1년 전보다 43.5% 증가한 30조 원에 육박했다. 이러한 호황은 오래갈까? 적어도 2030년까진 이어질 것 같다. 2025년 들어서도 순조로운 여정은 진행형이다. EU·미국 등에서 1분기에 역대 최대인 10조 원의 수주잔고를 돌파한 효성중공업이나 HD현대일렉트릭(8조6천억 원)과 LS일렉트릭(4조 원육박)도 쾌조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전력기기 세계 시장은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히타치가 주도한다. 이들의 기술은 솔직히 한국 기업들에 조금 앞선다. 하지만 시장 수요가 터지면서 K-전력기기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K-전력기기 빅3는 사실상 공장을 풀로 가동하고 있다.

    천정부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전력 수요
    역대급 호황의 배경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첫째, AI 탓이다. 예전엔 다들 이렇게 생각했다. "선진국이 될수록 전기를 적게 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무엇보다 AI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어서다. AI는 빠르게 연산하면서 엄청난 전기를 쓴다. 그뿐인가, 이때 발생하는 열을 식힐 때 또 엄청난 전기가 들어간다. 영락없이 전기 먹는 하마다. 또 AI 반도체 공장은 티끌 하나 없는 클린 룸 유지에도 엄청난 전력을 쓴다. 이런 괴물 수요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는 부족하다.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안정적 전력 공급은 필수다. 건설 예정인 데이터센터의 20%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든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일본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할 날이 머지않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둘째, 탄소 중립 목표 때문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전력망 교체가 이뤄지고, 이 과정에 더 많은 전력기기와 전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전력기기·전선 없이는 에너지 생산지와 사용처 사이의 '전력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까.

    셋째, 노후 설비의 문제도 있다. 데이터센터의 80% 이상을 보유한 북미의 변압기나 송·배전망은 대부분 1970년대에 조성돼 전력기기 교체가 시급하다. 실리콘밸리조차 노후 전선 망으로 강풍에 정전이 자주 일어난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랬다. "노후 전력망으로 어떻게 중국 AI와 경쟁하겠는가. 전력 용량을 2배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신규 발주 위에 교체 수요까지 더해져 전력기기와 전선 주문은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 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 같은 글로벌 에너지 관련 기관들도 글로벌 전력망 투자가 2020년 2,350억 달러에서 2030년 5,320억 달러, 2050년 6,360억 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라면서, 전력기기 시장은 이제 호황의 초입이라는 평가다. 10년 이상 호황이 이어질 거란 낙관론도 적지 않다. 과거 전력기기는 자동차·반도체 등을 뒷받침하는 내수 중심으로 바라봤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때를 만난 모습이다. 업계는 미국이 K-조선을 찾고, 유럽이 K-방산을 찾듯이, 우리 전력 인프라 기업들도 특히 선진국 사이에서 제2의 조선·방산이 될 걸 기대하고 있다.

    K-전력기기 기업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수주 걱정이 없다. 이 분야에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의 교류 송전보다 장거리 송전 때 전력 손실이 적고 신재생에너지 시대 호환성도 뛰어난 HVDC 등에 새로이 투자하기 시작했다. 효성중공업이 2024년 국내 최초로 200MW급 HVDC를 국산화하고, 3,300억 원을 들여 국내 최대 HVDC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가 하면,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호황 후에는 전력을 분산·공급하는 배전 쪽 수요가 터질 것이란 판단에서, 배전망 사업에 미래를 걸고 있다. 세계 최초로 메가와트급 직류 배전 시스템을 상용화했고 직류 배전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초고압 기술이 K-전력기기의 경쟁력
    초고압 기술은 전력 손실 없이 안정적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전력을 보내고 받을 때 초고압에 맞는 기기를 만드는 것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바로 이런 초고압 분야에서 K-전력기기는 핵심적인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K-전력기기 3사와 LS전선, 대한전선은 선진국의 어떤 기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 미국·유럽 등이 우방으로 간주하는 한국 기업을 많이 찾는 점도 지정학적·정치적 강점이다. 전력 에너지는 조선·방산 분야에서처럼 국가 안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K-전력기기가 일단 계약을 체결하면 납기를 확실하게 지키는 점도 바이어들이 선호하는 점이다. 방산이나 원자력 분야에서 한국이 과시하는 경쟁력과 같다.

    흔히 '트렉 레코드(track record)'라고 하는 납품 실적과 경험에서도 K-전력기기는 부족함이 없다. 미국에서 공장 건설 붐이 불던 2020년부터 미국 내 여러 공장에 전력기기를 공급한 경험이 풍부한 것이다. 선진국에서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주는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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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