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
 
지은이 : 홍상범 (지은이)
출판사 : 알토북스
출판일 : 2025년 12월




  •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ESG를 둘러싼 가치 충돌을 집중 분석한 책으로,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 선언한 미국 보수의 관점이 글로벌 기업 환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다각도로 살핀다.


    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


    돈의 전쟁 -‘정의’의 이름으로 시장을 통제하다
    지구 온난화는 진실인가, 거대한 신화인가
    지구 온난화의 경제적 이해관계
    트럼프는 과거 트위터x를 통해 '기후 변화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을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사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파리기후협정 탈퇴 결정에 대해서도 그는 '이 협약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불공정하며, 중국과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만 이익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기후 과학은 과학적 탐구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자율성과 국익을 제약하는 정치적 압력으로 비춰진다. 따라서 그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전통적 에너지 산업의 보호가 곧 미국의 경쟁력과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보고, 기후 변화 대응 정책보다 산업 성장과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온실가스는 정말 오염물질일까
    트럼프의 저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보면, 그는 법률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기후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유사한 접근을 취한다. 즉, 정책의 법적 근거를 검토함으로써 온실가스 규제의 정당성을 다시 살펴보려는 입장을 보인다.

    미국의 주요 기후 정책(재생에너지 확대, 화석연료 사용 제한 등)은 '온실가스가 오염물질로 분류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핵심 법적 근거가 바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에 제정된 「위해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이다. 이 판정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기후 변화를 통해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규정했으며, 이 결정을 바탕으로 차량 연비 기준, 발전소 배출 규제 등 미국의 주요 감축 정책들이 추진되어 왔다. 이 판정에 대해 '온실가스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미국환경보호청약을 통해 해당 판정의 철회를 추진하고 있다.

    만일 온실가스가 오염물질로 간주되지 않는다면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와 명분, 그리고 당위성은 약화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관련 미국 환경 규제 체계의 근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한편 다수의 과학자, 환경단체, 그리고 법률가들은 이러한 접근이 기후 과학의 합의와 환경 보호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80%의 미국 보수가 믿지 않는 ‘기후 위기’
    트럼프가 반 기후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보수층의 기후 변화 인식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유럽 보수층의 약 60~75%가 '기후 변화는 인류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라고 응답한 반면, 미국 보수층에서는 약 20%만이 이에 동의했다. 즉, 미국 보수층의 다수(약 80%)는 기후 변화가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여론은 트럼프가 기후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기후 변화 대응보다는 에너지 산업 보호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며, 이러한 보수층의 정서를 토대로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 반 기후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었다.


    착한 투자의 함정 - ESG는 자본을 잠식하는 이념인가
    ESG의 뿌리와 '좋은 투자'의 유토피아
    "ESG는 본질적으로 기업 문화를 잠식하는 마르크스주의적 행진과 같다. 마르크스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자본주의의 완전한 해체에 있다."
    -2025년 9월 8일, 미 노동부 산하 근로자복지보장국 수석정책고문 저스틴 단호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의 발언 중에서

    ESG와 투자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ESG는 처음부터 투자자들의 언어로 시작됐다. 2000년대 초,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글로벌 투자자들과 손잡고 'ESG 투자'를 제안했다. 투자 과정에서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라는 요소를 함께 고려해 '옳은 투자'를 하자는 취지였다. 이것이 ESG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2015년 파리협정을 계기로 '기후 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ESG의 'E'는 자연스럽게 기후 담론과 결합했다. 이에 ESG는 '기후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당위성'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이에 따라 ESG 투자의 정당성 역시 '기후 위기' 인식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탄소중립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기업과 금융기관들까지 이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투자자들은 ESG 평가 지표를 참고해 자산을 배분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며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과의 거래를 줄이도록 압박받았다. ESG 투자자들은 이러한 행동이 인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 믿으며 강한 도덕적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ESG 투자도 어디까지나 '투자'이지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다. 즉, 수익이 나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ESG 투자자들은 'ESG 투자는 더 높은 수익률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ESG를 통해 미래의 잠재적 리스크를 미리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꿩(옳은투자)'도 잡고 '알(더 높은 수익률)'도 얻는다는 것이다.

    옳은 투자 vs 이윤의 자유
    미국 보수 진영은 'ESG 투자는 꿩(옳은 투자)도 아니고 알(더 높은 수익률)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우선 '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도대체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이 옳은 투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투자란 본질적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활동이며, 도덕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시장의 효율성이 저해된다고 본다. 또한 ESG가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유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옳음'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알' 측면에서도 'ESG 투자가 실제로 더 높은 수익률로 이어지지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ESG 펀드가 전통적 투자보다 오히려 낮은 성과를 보였으며, 평가 기준의 불일치로 인해 투자 판단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한다.

    주주 이익이 우선이야? VS 사회적 책임이 우선이야?
    ESG 투자자들은 '기업의 목적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책임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을 강화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본다.

    이에 반해 반 ESG 진영의 주장은 간명하다. 그들은 "기업은 본연의 역할인 이윤 창출에 집중해야지, 사회를 구원하려는 역할까지 맡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적 철학은 '주주자본주의'였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대표하는 이 관점은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보수 진영의 시각에서 ESG 투자는 겉으로는 환경 보호와 사회 정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진다. 미국 보수파는 이를 '금융을 통한 사회주의적 개입'으로 규정하며,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정부나 기관의 '통제'와 '통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본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중국 공산당식 통제 모델'과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ESG가 자유시장 원칙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ESG 투자는 정말 수익률이 높을까
    ESG를 둘러싼 또 다른 핵심 쟁점은 'ESG 투자가 실제로 수익률을 높이는가' 하는 문제다. ESG 투자 지지자들은 이를 미래 리스크를 반영한 '현명한 투자'로 본다. 기후 변화, 노사 갈등, 기업 스캔들과 같은 비재무적 리스크를 사전에 인식하고 반영함으로써 투자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줄이고, 장기적 안정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비 ESG 투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반 ESG 진영은 ESG 투자가 오히려 수익률을 희생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의 본질적 목적은 수익률 극대화인데, 여기에 외부적 가치나 도덕적 요인을 개입시키면 본래의 목적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적 요인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성과가 악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 ESG 펀드를 운영하는 스트라이브 자산운용사의 매트 콜(Matt Cole)CEO는 '투자 결정에 환경이나 사회적 제약 요인이 추가된다면, 이는 곧 수익률 하락이라는 비용을 치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알(더 높은 수익금)’ 논란은 연기금을 중심으로 더욱 거세다. 국민연금, 교원연금, 군인연금 등은 서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이들에게 '옳은 투자'란 곧 '수익률이 높은 투자'일 것이다. 그러나 ESG 기준을 고려하느라 수익성이 떨어진다면, 이는 곧 서민들의 노후 자금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SG 수익률 신화는 왜 무너졌는가
    'ESG 투자와 재무적 성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PRI의 시니어 펠로우인 웨인 와인가든(Wayne Winegarden)은 'ESG 투자 성과가 실제로 ESG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상승장에 따른 일반적인 시장 효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주요 IT 기업을 담은 기술 펀드와 ESG 지표가 우수한 기업들로 구성된 ESG 펀드가 있다고 하자. 두 펀드 모두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등 같은 대형 IT 종목을 포함하고 있다면, 이들 기업의 주가가 상승할 때 두 펀드의 수익률이 나란히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는 ESG 전략이 성공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IT 산업의 호황 덕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돈 많은 기업이 돈 많이 드는 ESG를 잘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마치 책도 많이 읽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 학생의 국어 성적이 올랐을 때, 그것이 책 덕분인지 봉사활동 덕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2025년 2월자 《The Sunday Times》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ESG 혹은 지속 가능성 펀드 21개 중 지난 5년간 시장 수익률을 상회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평균적으로는 연평균 약 3.8% 낮은 성과를 기록해 투자자들이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Financial Times》의 2024년 7월 영상 기사에 따르면, ESG 투자의 부진한 성과와 그린워싱(Greenwashing)스캔들, 그리고 미국 내 정치적 역풍으로 인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더 이상 ESG 투자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2025년 3월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기준 지속 가능 펀드의 중간 수익률은 0.4%로 전통 펀드의 1.7%에 크게 못 미쳤다. 


    가치의 전쟁 - 상식과 이념이 충돌하는 사회
    다양성의 역설 - 평등이 불평등을 낳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DEI 정책을 '불법적 인종차별'로 규정, 연방기관에 관련 조사를 지시했다. 1980년대 시작된 DEI 정책은 인종을 넘어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재향군인 등 다양한 소수자 그룹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202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 입시에서 소수자 우대 정책을 폐지하면서 DEI 정책의 정당성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출처: 《조선비즈》, 2025년 5월 20일 자.

    미국에서 DEI는 ESG의 'SSocial (사회적 책임)'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인식된다. 미국 사회에서 ESG가 주로 환경 관련 투자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DEI는 일상 속에서 다양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로 자주 등장한다.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약어이다. 개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Diversity(다양성): 사회 내 개인의 다양한 특성과 배경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Equity(형평성):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려는 노력
    Equity(형평성):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려는 노력
    Inclusion(포용성):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DEI의 첫 번째 요소가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개념은 사회 구성원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사회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DEI는 '다양성의 확대'를 핵심 목표로 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2024년 미국 대선, DEI 국민투표가 되다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DEI는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취지의 책임감 있고 긍정적인 정책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DEI 국민투표'라 불릴 만큼 이 이슈가 미국 사회의 주요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DEI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논쟁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DEI는 인종, 젠더(성별) 등을 포함한 사회적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회'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취지는 인권과 포용의 가치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 실행 과정에서는 그 효과와 한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DEI는 법적·정책적으로 '다양성'을 위해 소수 집단의 참여와 대표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2021년 1월 20일에 서명한 「연방 정부를 통한 인종 형평성 증진 및 소외된 지역사회 지원」이다.

    이 행정명령에 따라 각 연방 기관은 형평성 평가를 실시해야 했으며, 연방정부의 조달 계약에서도 소외된 집단이 운영하는 기업이나 단체에 일정한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DEI 정책을 적극 추진했으며, 일각에서는 '민주당 정부에 DEI는 헌법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 의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민간 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구글은 리더십 직급에서 대표성이 부족한 소수자 그룹의 비중을 30%까지 확대하겠다는 DEI 채용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나스닥은 상장 기업에게 인종적·성별로 다양한 이사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는 더 나아가 소수인종과 성소수자를 이사회 구성에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처럼 DEI는 공공과 민간 모두에서 다양성과 형평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확산되었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공정성과 효율성을 둘러싼 논쟁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DEI의 당위성에 대한 일방적 주장에는 자연스럽게 반발이 따를 수 있다. 이에 DEI 정책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하며, DEI와 기업의 이윤 사이에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인과관계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DEI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ESG 투자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을 동시에 얻는다는 이른바 '꿩 먹고 알 먹는' 프레임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다양성의 긍정적 효과를 '진리'처럼 전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이미 답이 정해진 상태에서 논의를 유도하는 '답정너'식 담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DEI는 점차 법적 의무나 제도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마이클 놀스Michael Knowles의 저서 『자유의 적, 자유(Speechless: Controlling Words, Controlling Minds)』에 따르면, PC는 교묘하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전략으로 기능한다. 반면, DEI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 행정명령 등을 통해 실제 정책으로 제도화되었다. 다시 말해 PC가 이념적·정치적 개념이라면, DEI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법적·정책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PC는 사상과 전략, DEI는 그 이행을 위한 전술'로 해석한다. 그래서 일부 보수 논객들은 'D','E', 'T' 세 글자가 결합된 DEI를 'PC의 왜곡된 삼위일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평등의 명분이 낳은 역차별
    다양성DEI 정책의 범위가 인종과 성별을 넘어 성소수자까지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2025년 1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이 같은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번진 불길은 강풍을 타고 주택가로 확산되어 수십 명이 사망하고, 약 1만 6천 채의 주택이 전소했으며, 10만 명 이상이 대피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예상 밖으로 'DEI 다양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로스앤젤레스 당국이 다양성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능력 있는 백인 남성 소방관들이 해고되고, 성소수자 인사가 소방청장과 부청장, DEI 부서장으로 임명되어 화재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음.) 이 주장은 DEI 정책이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양성 확대의 명분이 능력주의와 공정성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25년 1월 말, 미국 워싱턴 D.C. 인근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와 미 육군 헬기가 충돌해 탑승자 67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건 직후 트럼프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DEI 정책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연방항공청(FAA)의 DEI 정책에는 심각한 지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채용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며 능력보다 다양성을 우선시한 인사 정책이 항공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음.)

    이와 같은 주장은 DEI 정책이 공정성과 능력주의를 훼손한다는 보수 진영의 시각을 반영한다. 일부 보수 진영은 DEI 채용 정책을 '다양성의 이름으로 비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지는 구조'로 본다. 특히 백인 남성이 그 주요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논란은 교육계로도 확산됐다. DEI 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고등학교는 학업 환경이 열악한 유색인종 학생들의 형평성을 고려해 우등반을 폐지하고, 일부 대학은 입시 평가에서 SAT(표준화 시험) 점수를 반영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또한 표준 영어 교육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표준 영어가 주로 백인 남성의 언어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한 교육이 백인 우월주의를 강화하고 타 집단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DEI 정책은 포용과 형평성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공정성·능력주의·자율성 등 기존 가치와 충돌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DEI의 실효성 논란과 능력주의의 부상
    한편, 비소수 인종인 백인들 사이에서는 '능력과 역량'에 기반한 평가가 공정한 정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받을 자격이 없는 이가 특혜를 통해 기회를 얻는 것은 불의'라며, 피부색이나 정체성이 아닌 개인의 성취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또한 '현재의 흑인 세대가 과거 조상 세대의 노예제 경험을 근거로 피해자 정체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DEI를 대체할 개념으로 EMC(Equality Ment Colaness)를 제안한다. EMC는 평등, 능력주의, 인종을 고려하지 않음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즉, 성별이나 인종, 성적 지향 등 외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자격과 성취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접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