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패권 전쟁
 
지은이 : 박종성 (지은이)
출판사 : 지니의서재
출판일 : 2025년 12월




  • AI가 더는 화면 속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몰고, 공장에서 일하고, 드론으로 하늘을 나는 모습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누가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판을 주도할지, 지금 그 흐름을 읽어보자.


    피지컬 AI 패권 전쟁


    철저히 준비된 각본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온 AI
    진짜 혁명이 일어났다
    오늘날 세상의 관심은 온통 챗GPT 같은 대화형 AI에 쏠려 있다. 하지만 진짜 지정학적, 경제적 혁명은 스크린 속 언어 모델이 아니라, AI가 물리적 세계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

    세 가지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는 먼 미래를 그린 상상도가 아니다. 바로 지금 중국의 산업 현장에서 구체적인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피지컬 AI의 모습이다.

    첫 번째 장면은 중국의 최첨단 전기차 공장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조립 라인 위로 자동차 뼈대가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익숙한 산업용 로봇 팔 옆에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 즉 휴머노이드 로봇이 서 있다. 유비테크(UBTECH)가 만든 ‘워커 S’라는 이 로봇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주변을 살피다가, 자동차 문짝을 들어 정밀하게 결합하고 볼트를 조인다.

    잠시 후, 스스로 배터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조용히 라인에서 벗어나 충전 스테이션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다른 동료 로봇이 다가와 방전된 배터리 팩을 꺼내고, 완전히 충전된 새 팩으로 교체해 준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워커 S는 다시 조립 라인으로 복귀해 24시간 내내 계속될 자신의 임무를 이어 간다.

    두 번째 장면은 베이징의 복잡한 퇴근길 교차로다. 수많은 자동차와 전기 자전거, 무단 횡단을 시도하는 보행자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이곳을 하얀색 SUV 한 대가 운전자 없이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 바이두(Baidu)의 완전 자율주행 택시, ‘아폴로 고(Apollo Go)’다. 갑자기 끼어드는 오토바이를 부드럽게 피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안전하게 통과하며 좌회전을 완벽하게 해 낸다. 이 로보택시(Robotaxi)는 2025년 2분기에만 220만 건이 넘는 완전 무인 주행을 마쳤고, 지금까지 누적 1,40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실어 날랐다. 이것은 스크린 속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도시의 혈관을 흐르는 일상이 된 풍경이다.

    세 번째 장면은 광활한 논 위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여러 대의 드론이 편대를 이루어 날아오른다. 세계 드론 시장의 절대 강자 DJI가 만든 농업용 드론 ‘아그라스(Agras)’다. 이 드론들은 단순히 농약을 흩뿌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위성 사진과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병충해가 발생한 특정 구역, 영양분이 부족한 지점만을 정확히 식별한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정밀하게 비료와 농약을 살포한다. 덕분에 수천만 톤의 농약을 절약하고, 탄소 배출량까지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미 전 세계 5억 헥타르가 넘는 농지가 이 기술의 혜택을 보고 있다.

    지금껏 언급한 세 개의 장면은 AI라는 추상적 개념이 어떻게 물리적 세계에 들어와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우리가 챗GPT 같은 언어 모델의 화려한 표현 능력에 감탄하는 동안, AI는 조용히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물리적 세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피지컬 AI란 인공지능이라는 두뇌와 로봇, 자동차, 드론과 같은 몸을 바탕으로, 실제 세상에서 보고 생각하고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지적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알고리즘의 세계와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를 잇는 거대한 다리와 같다.

    감지, 인식, 행동: 피지컬 AI의 작동 원리
    많은 사람이 로봇이라고 하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공장의 로봇 팔을 떠올린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은 인간이 미리 입력한 수천, 수만 개의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정해진 위치에 놓인 부품 A를 들어 정해진 위치 B로 옮기는 작업은 완벽하게 해내지만, 만약 부품 A가 1cm만 옆으로 비켜나 있어도 오류를 일으키며 멈춰 버린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피지컬 AI는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자세히 말하면, ‘감지-인식-행동’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순환 고리에 의해 작동한다. 먼저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LiDAR1) 같은 센서가 로봇의 눈과 귀가 되어 주변 환경 데이터를 끊임없이 쓸어 담는다. 이것이 ‘감지(Sense)’ 단계다. 다음으로, AI라는 두뇌가 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이것이 ‘인식(Perceive)’ 단계다. 마지막으로, 두뇌가 내린 디지털 명령을 모터나 액추에이터(Actuator2)가 물리적인 ‘행동(Act)’으로 옮긴다. 로보택시 ‘아폴로 고’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보고(감지)’, 위험하다고 ‘판단한 뒤(인식)’, 브레이크를 ‘밟는(행동)’ 과정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순환은 1초에 수백, 수천 번씩 반복되며,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 끊임없이 적응할 수 있게 한다.

    21세기의 진짜 원유, ‘체화된 데이터’를 선점한 중국
    흔히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라고 말한다. 이 비유는 피지컬 AI 시대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챗GPT 같은 언어 모델이 학습하는 인터넷의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는 분명 가치 있는 자원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대부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에서 생성했는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다.

    반면에 피지컬 AI가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생성하고 소비하는 데이터는 차원이 다르다. 로보택시가 주행하며 수집하는 3차원 공간 정보, 도시의 모든 신호등과 보행자의 움직임 데이터, 공장 로봇이 부품을 조립하며 기록하는 미세한 움직임과 힘의 변화 데이터, 농업용 드론이 촬영하는 작물의 생육 상태 데이터. 이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 정보가 명확히 각인된, 물리적 현실에 대한 고도로 구조화된 기록이다. 이것이 바로 ‘체화된 데이터(Embodied Data)’다. 

    이러한 체화된 데이터야말로, 21세기 산업 경제를 움직일 진정한 ‘원유’라 할 수 있다. 인터넷 텍스트가 정제되지 않은 ‘셰일 오일(Shale Oil)’이라면, 체화된 데이터는 곧바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최고급 ‘경질유(Light Oil)’에 가깝다. 그리고 이 원유를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하게 확보하는 국가나 기업이 가장 똑똑하고 안정적인 피지컬 AI를 훈련시킬 수 있는 독점적 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서구가 AI의 ‘정신(Mind)’, 즉 언어 모델과 소프트웨어 지능 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지난 10년간 자국의 가장 큰 강점인 거대한 제조업 기반에 AI의 ‘신체’를 이식하는 일에 힘을 쏟아 왔다. 앞서 본 세 가지 장면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 경쟁은 단순히 더 똑똑한 로봇, 더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제조업의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농업의 방식을 재정의하며, 물류 시스템을 혁신하고, 국방의 패러다임까지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시대, 기술 패권 전쟁
    살아 있는 실험실, 계산된 도박
    B+급 엔진의 한계와 가능성
    미국은 자신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 즉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의 공급을 통제함으로써 중국의 숨통을 조이는 ‘질식 작전(Choke Point Strategy5)’을 펼치고 있다. 2022년 10월 7일, 미국 상무부 산하의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S)은 중국이 첨단 컴퓨팅 및 반도체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포괄적인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 장비(Semiconductor Manufacturing Equipment, SME), 심지어 미국인이 중국의 반도체 개발에 관여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광범위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목적은 명확했다. 중국이 AI와 슈퍼컴퓨팅 역량을 군사 현대화와 국민 감시 체제 강화에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2024년 12월,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까지 통제 대상에 포함하며 더욱 정교하게 조여졌다.

    이와 같은 강력한 압박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제재는 중국 시장에 공백을 만들었고, 이 공백은 중국의 기술 자립을 위한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엔비디아 H20 등 규제를 피하는 저사양 칩을 팔며 수익을 유지하려 하지만, 동시에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에게는 어센드 910B 등 자국산 칩을 위한 안정적인 내수 시장이 보장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술 기업들에게 자국산 칩 사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그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질식 작전’은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고통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엔진’ 국산화를 강제하는 거대한 압력솥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이에 맞서는 중국의 대응은 지극히 비대칭적이다. 단기적으로 엔진 기술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전쟁의 규칙 자체를 바꾸려 한다. 엔진의 성능이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품질과 양의 ‘연료’를 쏟아부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대담한 가설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이는 상대의 강점인 반도체 설계 능력을 힘으로 맞받아치는 대신, 경쟁의 무대를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곳으로 옮겨오는 일종의 지정학적 주짓수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 중앙 통제적 국가 시스템, 그리고 14억 인구 전체를 실시간 연구개발을 위한 ‘살아 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로 활용하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데이터 플라이휠: 중국식 가속도의 비밀
    엔진의 한계가 명확함에도 중국이 자신감을 보이는 근거는 압도적인 양의 질 좋은 ‘연료’, 즉 데이터에 있다. 중국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 작동하는 핵심 원리는 ‘데이터 플라이휠’이라 불리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에 있다. 일단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관성에 의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가속도가 붙어 누구도 멈출 수 없게 되는 거대한 바퀴처럼,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 플라이휠을 돌리고 있다. 

    이 플라이휠은 네 단계의 순환 과정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된다. 첫 번째 단계는 ‘대규모 시스템 배포’다. 모든 것은 압도적인 규모로 시작된다. 바이두와 같은 국가대표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술이 완벽하게 성숙되거나 당장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수천 대의 로보택시를 주요 도시에 배치한다. 2025년 초 기준으로 바이두의 ‘아폴로 고’는 이미 1,000대의 완전 무인 차량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서구 기업들이 수십 대의 테스트 차량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두 번째 단계는 ‘방대한 실제 데이터 수집’이다. 일단 거리에 깔린 수천 대의 로봇과 자동차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데이터 수집 기계가 된다. 2025년 8월 기준, 바이두의 ‘아폴로 고’는 누적 운행 1,400만 회를 돌파했으며, 2025년 2분기에만 220만 건의 완전 무인 주행을 완료했다. 알리바바의 배송 로봇 ‘샤오만뤼?’ 역시 2022년 중반에 이미 누적 1,000만 건 이상의 택배를 배송했다. 이들이 수집하는 것은 단순한 주행 기록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정보가 명확히 기록된 물리적 현실에 대한 고도로 구조화된 기록, 즉 ‘체화된 데이터’다.

    세 번째 단계는, 데이터를 활용한 신속한 AI 모델 개선이다. 수확된 방대한 데이터는 곧바로 AI 모델을 개선하는 데 투입된다. 수억 킬로미터 분량의 실제 주행 데이터는 AI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최적인지를 가르친다. 개선과 재학습의 주기는 몇 달이나 몇 년이 아니라, 몇 주 혹은 며칠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개선된 모델을 통한 ‘더욱 광범위한 배포’다. 더 똑똑하고 안전해진 AI 모델은 다시 더 많은 도시, 더 복잡한 환경으로 확장 배치된다. 바이두는 현재 16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홍콩에서 우측 핸들 환경 테스트를 시작했고, 우버 및 리프트와 손잡고 유럽과 중동 시장 진출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는 다시 더 다양하고 질 좋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반이 되어, 플라이휠의 회전 속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이 선순환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데이터 독점’이라는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경쟁의 해자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경쟁 우위는 단순히 축적된 데이터의 총량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속도’에서 나온다. 유럽의 한 기업이 베이징에서 10대의 테스트 차량을 굴릴 때, 바이두는 이미 1,400만 번째 운행을 마치고 16개 도시에서 수천 대의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사의 AI가 하루에 수천 킬로미터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동안, 바이두의 AI는 수백만 킬로미터의 데이터를 학습한다. 둘 사이의 성능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져, 뒤늦은 시장 진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도전자가 출발선에 도착했을 때, 승자는 이미 경주를 마치고 다음 경주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롱 테일 엣지 케이스’를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
    많은 사람이 중국 도시 환경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되는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지컬 AI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혼돈’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AI의 진정한 실력은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수백만 가지의 예외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즉 ‘롱테일 엣지 케이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갑자기 역주행하는 전동 스쿠터, 무질서하게 뒤엉킨 보행자와 차량들, 공사 현장의 수신호 같은 상황들이 AI의 진짜 실력을 검증한다.

    그렇다면 자동차, 전기 자전거, 보행자가 뒤엉켜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를 이루는 베이징의 퇴근길 교차로는 AI의 입장에서 최고의 스트레스 테스트장이자 학습 교재가 된다. 서구의 AI가 평생 한 번 마주치기 힘든 엣지 케이스를, 중국의 AI는 매일 수천, 수만 번씩 경험하며 강인하게 단련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혼돈 예찬론’이 과연 진실의 전부일까? 최근의 AI 연구는 이 직관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MIT 연구진은 예측 불가능하고 ‘노이즈’가 많은 환경에서 훈련된 AI보다, 오히려 깨끗하고 예측 가능한 ‘노이즈 없는’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훈련된 AI가 실제 노이즈가 많은 환경에서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현상을 ‘실내 훈련 효과(Indoor Training Effect)’라고 명명했다. 이는 AI가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는 불규칙한 노이즈와 시스템의 근본적인 규칙을 분간하기 어려워하는 반면, 잡다한 정보가 정리된 이상적인 환경에서는 시스템의 핵심 원리를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시각 차이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두 선두 주자, 웨이모와 테슬라의 전략적 차이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된다.

    웨이모는 ‘통제된 시험장’ 철학의 전형이다. 수십억 마일에 달하는 가상 주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거의 모든 종류의 엣지 케이스를 충분히 경험하고 학습한 후, 정밀하게 제작된 고해상도 지도를 기반으로 특정 도시에서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들의 접근법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실제 데이터는 통제된 환경에서 신중하게 수집된다. 그 결과, 웨이모는 인간 운전자 대비 부상 유발 사고율이 현저히 낮다는 객관적인 안전 데이터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반면 테슬라의 방식은 중국의 ‘살아 있는 실험실’과 유사하다. 전 세계 수백만 대의 고객 차량에 탑재된 FSD(Full Self-Driving) 베타 버전을 통해 방대한 양의 실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는 혼돈 속에서 직접 패턴을 익히는 귀납적 학습 방식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발표하는 안전 데이터는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다. 운전자가 개입하는 레벨 2 수준의 주행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고, 사고 집계 기준이 웨이모나 정부 기관과 달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혼돈’의 가치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다. 순수한 시뮬레이션만으로는 현실 세계의 미묘한 차이, 즉 ‘현실과 시뮬레이션의 간극(Sim-to-real Gap6)’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통제되지 않은 현실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안전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미래의 승자는 아마도 이 두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자가 될 것이다. 소량의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우 정교한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터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AI를 대규모로 훈련시켜 강인함을 키우는 하이브리드 접근법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숨길 수 없는 아킬레스건
    흔들리는 거인
    70%라는 장벽과 신뢰성의 무게
    피지컬 AI라는 거대한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그 몸체인 로봇을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산업용 로봇의 원가 구조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로봇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가의 약 70%를 단 세 가지 핵심 부품, 즉 정밀 감속기(Precision Reducer), 서보 모터(Servo Motor), 컨트롤러(Controller)가 차지하는 현실이다. 이는 로봇의 성능과 신뢰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바로 이 70% 비밀 속에 중국의 근원적인 딜레마가 숨어 있다.

    첫째, 정밀 감속기는 로봇의 ‘정교한 힘’을 관장한다. 로봇에 장착된 전기 모터는 빠르게 회전하지만 힘, 즉 토크(Torque1)는 약하다. 감속기는 이 속도를 힘으로 교환하는 장치로, 모터의 회전 속도를 낮추는 대가로 로봇 구동에 필요한 강력한 힘을 증폭시키고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해 준다. 감속기의 이러한 역할 덕분에 로봇 팔을 이용해 자동차 프레임을 세심히 용접하고, 아주 작은 마이크로칩을 오차 없이 집을 수 있다. 수백만 번을 반복 사용해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도를 유지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감속기의 본질이다.

    둘째, 서보 모터는 로봇의 ‘지능형 근육’이다. 단순히 전원을 켜면 돌아가는 일반 모터와 달리, 서보 모터는 자신의 정확한 위치, 속도, 힘을 컨트롤러에 끊임없이 보고하는 신경계를 갖추고 있다. 이 피드백 기능 덕분에 로봇은 무거운 강철 빔을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힘과 섬세한 와인 잔을 깨뜨리지 않고 쥐는 데 필요한 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셋째, 컨트롤러는 로봇의 ‘소뇌’다. AI라는 대뇌가 “A 지점의 부품을 B 지점으로 옮겨라.”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설정하면, 컨트롤러는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수십 개의 관절과 센서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한다. 비유하자면, 모든 움직임을 질서 있게 통제하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와도 같다.

    이 부품들은 단순한 부속물이 아닌, ‘신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뢰성을 측정하는 냉정한 공학적 지표 한 가지를 짚고 가야 한다. 바로 MTBF(Mean Time Between Failures) 즉 평균 고장 간격이다. MTBF는 어떤 부품이나 시스템이 고장 나기 전까지 평균적으로 작동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척도다. MTBF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성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일본과 독일이 쌓아 올린 아성
    중국의 딜레마는 로봇 제조 원가의 70%를 차지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MBTF를 보장하는 핵심 부품을 일본과 독일이 움켜쥐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에서 시작된다. 정밀 기계공학의 세계는 수십 년간 소수의 기업이 지배해 온 견고한 성채와 같다. 이 성벽은 막대한 자본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깊이 있는 ‘기교’와 ‘공정 노하우(Process Knowledge)’로 지어졌다.

    로봇 관절의 정교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정밀 감속기 시장의 지형도를 보면 이 현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형 로봇에 주로 사용되는 RV 감속기 시장은 일본의 나브테스코(Nabtesco)가 약 60%를 장악하고 있다. 소형 로봇에 쓰이는 하모닉 감속기 시장 역시 일본의 하모닉 드라이브 시스템스(Harmonic Drive Systems)가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서보 모터와 컨트롤러 시장 역시 야스카와(Yaskawa)가 세계 시장 점유율 약 25%, 미쓰비시(Mitsubishi)가 약 20%, 화낙 같은 일본 기업과 지멘스(Siemens) 같은 독일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이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2015년에 발표된 ‘중국제조 2025’와 이후의 14차 5개년 계획 등 국가 산업 정책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로봇을 포함한 첨단 산업의 핵심 부품 국산화였다. ‘중국제조 2025’는 2025년까지 핵심 부품 및 소재의 국내 공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이러한 부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