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뉴욕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에 따라 소비의 흐름은 어떻게 바뀌고 시장과 문화를 재편하는가를 분석한다. 테슬라와 엔비디아에 편중된 기술주 시선에서 벗어나, 뉴요커들이 실제로 소비하는 룰루레몬, 스탠리, 윌리엄스 소노마, T.J.맥스, 플래닛 피트니스, 파타고니아, 아베크롬비, 호카, 온, 블랭크 스트리트 커피 등 꾸준하게 트렌드를 주도한 소비 브랜드의 현장을 탐구한다.
이 책은 단순한 텍스트 분석을 넘어, 현장을 직접 담아낸 생생한 콘텐츠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뉴욕 특파원으로서 저자가 직접 촬영한 매장과 거리 풍경, 뉴요커들이 실제로 줄 서는 곳, SNS를 달구는 제품의 실물 현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 기업의 주가 변동 추이, 매출 증가율, 소비자 데이터, 경쟁 구도 등을 시각화하여, 독자가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독자들은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과 투자 판단의 정확성을 동시에 챙길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용갑
저자 김용갑은 매일경제TV 기자로 활동하며 경제, 금융, 산업 분야를 폭넓게 취재했다. 뉴욕 특파원 시절에는 미국 주요 기업과 현지 소비 트렌드를 직접 취재한 유튜브 매경 월가월부의 ‘어바웃 뉴욕’을 진행하며 미국 시장의 생생한 변화들을 전달해왔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미국 주식 투자자들에게 소비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변화의 흐름을 소개했다.
■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테슬라와 엔비디아만 사랑하는 야수의 민족
1장 이미지가 돈이 된다
- 아베크롬비, 논란 속에서 드레스로 환생하다
- 코치, 엄마 가방에서 GenZ들의 패션템으로
- 룰루레몬, '슈퍼걸'을 타깃으로 성장하다
- 아리찌아, 럭셔리 바지로 미국 여성들을 사로잡다
- 어반 아웃피터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 랄프 로렌, 미국 상류층이 사랑하는 아메리칸 클래식
- 파타고니아, 옷을 사지말라고? 우리의 주주는 지구
2장 경험이 소비를 바꾼다
- 텍사스 로드하우스, 오래된 레스토랑에 아직도 줄을 서는 이유
- 치즈케이크 팩토리, 250개 메뉴는 치즈케이크를 위한 미끼일 뿐
- 바이탈 팜스, 비싼 계란을 팔아 대박나다
- 리퀴드 데스, 미국 MZ는 해골 캔생수를 마신다
- 칠리스, "그대로 오세요"를 외치는 레스토랑
- 치폴레, 패스트 캐주얼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르다
- 스탠리, 100년 기업이 마케팅의 교과서가 되기까지
3장 유통이 곧 트렌드이다
- 코스트코, 생필품 마트에서 왜 골드바를 팔까
- 트레이더조, 한국 김밥이 미국에서 대박난 이유
- 홈디포, 아마존이 팔지 못하는 시장을 노린다
- 로우스, 남성보다 여성 고객을 노린 철물점
- 트랙터 서플라이, 아마존과 홈디포 사이에서 승리하다
- BJ‘s 홀세일, 코스트코의 작은 경쟁자가 성공하다
- 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 보완형 유기농 마켓으로 리포지셔닝 하다
4장 세대가 시장을 움직인다
- 호카, 미국에서 미친 듯이 팔리는 못생긴 운동화
- 온, 운동선수가 직접 만든 진짜 운동화
- 뉴발란스, 원조 아빠 신발이 잇템으로
- 스케쳐스, 피클볼 붐 속에서 기회를 잡다
- 블랭크 스트리트 커피, 감성보다는 효율성으로 제2의 스타벅스가 되다
- 더치 브로스와 스쿠터스 커피, 커피가 사라지는 미국의 카페 전쟁
- 팀 홀튼, 캐나다의 국민커피의 미국시장 전략기
5장 현실이 브랜드를 만든다
- 메이시스, 미국 중산층이 사랑하는 백화점의 몰락
- 티제이엑스, 보물찾기 전략으로 성공하다
- LVMH, 가방 대신 향수를 사는 중산층
- 윌리엄스 소노마, 비싼 가방은 살 수 없어도 비싼 그릇은 산다
- 빌드어베어, 어른에게 곰인형을 팔아서 대박난 기업
- 플래닛 피트니스, 월 2만 원인 미국 1등 헬스장
- 스피릿 할로윈, 할로윈 때만 여는 팝업으로 승리하다
에필로그: 뉴요커의 지갑에서 배운 것들
뉴욕 한복판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선택이 경제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SNS를 달구는 제품들, 그리고 조용히 강해진 브랜드들까지. 현장에서 포착한 생생한 소비의 움직임이 투자 판단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뉴요커가 돈을 쓰는 기업에 투자하라
이미지가 돈이 된다
아베크롬비, 논란 속에서 드레스로 환생하다
논란의 아베크롬비가 부활에 성공했다.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의 흥망성쇠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때 미국 10대가 열광했던 브랜드에서 인종차별 논란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던 아베크롬비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패션브랜드 아베크롬비 앤 피치(Abecrombie&Fitch)의 주가는 2024년 6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뉴욕의 아베크롬비 매장은 뉴요커들로 북적인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옷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아베크롬비를 생각하면 대부분 상의를 탈의한 백인 남성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명 더, 아베크롬비를 성공시키고 망하게 만든 장본인 마이크 제프리스(Mike Jeffries) CEO이다. 아베크롬비는 1892년에 뉴욕 맨해튼에서 데이비드 아베크롬비의 손으로 시작된 기업이다. 처음에는 낚시용품, 캠핑용품 등 아웃도어 스포츠웨어를 판매했으나 아베크롬비의 단골 고객이자 뉴욕의 부자 변호사였던 에즈라 피치(Ezra Fitch)가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이 아베크롬비 앤 피치로 바뀌었다. 이후에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계의 거장 레슬리 웩스너에게 인수됐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논란의 마이크 제프리스가 아베크롬비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된다.
마이크 제프리스는 처음부터 아베크롬비의 옷이 아니라 이미지를 팔기 시작했다. 식스팩을 가진 잘생긴 백인 남성 모델을 앞세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매장 앞에는 청바지를 입고 상의를 탈의한 잘생긴 백인 남성들이 배치됐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옷보다는 모델들의 멋진 몸에 시선을 빼앗긴다. 마치 아베크롬비를 입으면 멋진 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크롬비는 카탈로그 속 모델들이 해변에서 멋지게 노는 모습을 통해 지면 홍보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니 이들은 옷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한 셈이다. 아베크롬비는 소위 학교에서 잘나간다는 인기 많은 학생들에게 자사의 옷을 홍보하면서, 10대들 사이에서는 쿨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갖고 싶고,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옷이 됐다.
논란의 끝에서 다시 태어나다
이미지 메이킹의 성공가도에도 인기를 지속하기에는 논란이 너무 많았다. 마이크 제프리스 CEO가 “뚱뚱한 사람은 우리 옷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실언을 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실제로 아베크롬비는 당시까지도 XL사이즈의 옷을 만들지 않았으며, 심지어 동양인을 조롱하는 티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까지 미국 10대 사이에서 인기의 정점에 있던 아베크롬비는 패스트패션과 애슬레저룩의 성장으로 위기를 겪었다. 소위 레깅스가 청바지를 이기기 시작하면서 아베크롬비의 어려움이 본격화된 것이다. 쿨한 사람들은 청바지 대신 레깅스를 입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제프리스 CEO의 실언은 브랜드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했고, 22년간 CEO 자리를 지키며 아베크롬비를 성공시켰던 마이크 제프리스는 결국 2014년에 물러났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아베크롬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아베크롬비가 변신에 성공했다. 옷에 붙어 있던 큰 로고가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과거 시끄럽고 어두웠던 매장은 조용하고 밝아졌고, 10대의 우상이던 브랜드는 20~30대 손님으로 주를 이루고 있다. 뚱뚱한 사람은 못 입게 했던 이전과 달리, 큰 사이즈의 옷도 판매를 시작하면서 매장에서는 쉽게 XL 이상의 옷을 찾아볼 수 있다. 아베크롬비의 홍보 모델은 다양한 인종들로 이루어졌고, 옷의 핏도 더 편안해졌다. 이 놀라운 변화는 제프리스 CEO가 은퇴한 이후 등장한 프란 호로비츠(Fran Horowitz) CEO의 등장부터다. 호로비츠 CEO는 시대에 뒤처진 아베크롬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타깃 고객층부터 20~30대로 바꿨다. 새로운 소비자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호로비츠는 2003년 아베크롬비 티셔츠를 입었던 10대들이 지금 무엇을 원할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해답을 젊은 밀레니얼 세대에서 찾았다. 과거 아베크롬비에 열광하던 10대들이 20대가 되어 결혼식에 입고 갈 수 있는 드레스를 팔기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위한 브랜드
특히 주 타깃 고객층을 여성으로 바꿨다. 옷을 더 섹시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소재에 집중했고, 빅사이즈를 만들었다. 실제로 호로비츠 CEO는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이 브랜드의 일부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당신이 그대로 브랜드에 속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제프리스 CEO가 “우리 옷을 입기 위해서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호로비츠발 아베크롬비의 대표 제품은 ‘커브 러브 청바지(Curve Love Jeans)’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여유 공간을 주며 다양한 체형이 아름다운 핏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선보인 청바지 시리즈이다. 이 새로운 전략은 과거 아베크롬비와 함께 10대를 보냈지만 잠시 등을 돌렸던 밀레니얼 세대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베크롬비는 다시 돌아온 20~30대 밀레니얼 여성 고객을 잡기 위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했다. 이제는 10대가 지나 20~30대가 되어 신부가 되고, 하객으로 파티에 참석하여 칵테일을 마시는 고객을 겨냥한 드레스를 판매했다. 아베크롬비의 드레스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 결과, 2023년과 2024년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실적 발표에서 완벽한 부활을 증명했다. 연간으로는 30억 달러대에 머물던 매출이 2023년에 43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6% 성장했다. 이들은 2023년이 결정적인 해였다고 설명한다. 아베크롬비의 주가가 당해에 290%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경험이 소비를 바꾼다
치즈케이크 팩토리, 250개 메뉴는 치즈케이크를 위한 미끼일 뿐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공한 백종원 대표는 과도하게 많은 메뉴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양한 손님의 기호를 다 맞추기 위해 메뉴를 늘리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취지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야 고객들이 스스로 찾게 된다. 그런데 미국에는 정반대로 성공한 레스토랑 체인이 있다. 바로 ‘치즈케이크 팩토리(The Cheesecake Factory Incorporated)’로, 미국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체인 중 하나다.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의 시트콤 ‘빅뱅이론’을 봤다면 익숙할 것이다. ‘빅뱅이론’의 여주인공 페니가 일을 하는 장소가 바로 치즈케이크 팩토리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치즈케이크 팩토리의 주가는 2023년, 30달러선에서 2025년에는 60달러까지 상승했다. 250가지가 넘는 메뉴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꾸준히 주가가 상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양성을 경쟁력으로 만든 레스토랑
치즈케이크 팩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메뉴의 수다. 무려 250가지가 넘는 메뉴를 판매한다. 메뉴판의 모든 음식을 다 훑어보다 보면, 오히려 주문을 못 할 정도다. 이 전략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데이비드 오버턴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메뉴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쟁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치즈케이크 팩토리에서는 버거부터 멕시코 음식, 파스타까지 세계 각국의 요리를 모두 제공한다. 어떤 취향의 고객이라도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성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단체 손님이 방문하더라도 각자 원하는 음식을 고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맛을 넘어 경험을 판다
250가지 메뉴는 주방 인력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직원이 오래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직원 복지가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의료혜택이 잘 갖춰져 있어,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1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메뉴 수만 보면 비효율적인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메뉴 외의 영역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고,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매장 규모는 평균 200석 이상으로 넓게 설계된다. 대부분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쇼핑몰 등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는 철저히 출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 맨해튼에는 치즈케이크 팩토리 매장이 없는데,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으로서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음식 대부분이 기름지고 칼로리가 높아, 미국 내에서도 “맛은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최악의 레스토랑’이라는 평가가 붙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오버턴 CEO는 자신들을 “체험형 다이닝(Experiential Dining)의 선두주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고객들이 단순히 식사하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식사’를 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음식을 주문해보면 1인분의 양이 매우 많다. 여러 명이 함께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내도록 의도한 구성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이 철학을 반영한다. 고대 이집트 풍의 기둥이 상징적이며, 화려한 장식과 여러 문화가 혼합된 인테리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진짜 주인공은 치즈케이크
그러나 치즈케이크 팩토리 성공의 핵심은 결국 ‘치즈케이크’다. 250가지가 넘는 메뉴는 사실 고객을 치즈케이크로 유인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하다.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든, 그 메뉴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 와서 식사하고 치즈케이크를 맛보라.”
식사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미끼 상품이고, 치즈케이크가 실제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디저트는 본래 마진율이 높은 품목이다.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 힐스(Calabasas Hills)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로키 마운트(Rocky Mount)에 각각 한 곳씩, 총 두 개의 케이크 생산 시설을 직접 운영한다. 이곳에서 만든 치즈케이크를 전 매장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매장 입구마다 디스플레이 케이스를 설치해 30가지 이상의 치즈케이크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같은 이유다. 고객들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디저트를 떠올리게 된다. 코스트코에 1.5달러 핫도그 세트가 있다면, 치즈케이크 팩토리에는 250가지의 메뉴가 있다. 모든 기업에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상품’과 ‘실제로 돈을 버는 상품’이 있다.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마진이 높은 치즈케이크를 팔기 위해 250가지의 미끼 상품을 함께 파는 셈이다.
유통이 곧 트렌드이다
홈디포, 아마존이 팔지 못하는 시장을 노린다
아마존은 미국 유통시장을 사실상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아마존에서 팔지 않는 상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폭발적인 성장세는 마치 오프라인 세상을 완전히 대체할 듯했다.
하지만 그런 아마존조차 손대지 못한 시장이 있다. 바로 건축자재 시장이다. 이 틈을 노린 기업이 ‘홈디포(The Home Depot)’다. 홈디포는 미국 1위 건축자재 판매점으로, 집을 직접 수리하거나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한다. 쉽게 말해 ‘대형 철물점’의 형태를 띤 창고형 소매업체다. 아마존이 온라인 유통을 장악했다면, 홈디포는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을 무기로 시장을 지켰다. 미국에서 ‘집수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바로 홈디포다. 건축용 목재, 타일, 전동 공구, 인테리어 소품 등 판매 품목만 3만 5천 개가 넘는다. 이같은 차별화 전략 덕분에 홈디포는 아마존 시대에도 꾸준히 성장하며, 주가 역시 장기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팬데믹 시기에는 집수리와 리모델링 수요가 급증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해고에서 시작된 DIY 혁명
홈디포의 철학에서 핵심은 ‘큰 매장’'이나 ‘싼 가격’이 아니었다. 고객에게 직접 시공을 돕는 전문성을 제공하는 직원들이었다. 집수리 과정을 안내할 수 있는 ‘교육받은 판매원’이 필요했다.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마커스와 블랭크는 투자자 켄 랭곤(Ken Langone)과 머천다이징 전문가 팻 파라(Pat Farrah)의 도움을 받아 1979년 첫 두 개의 홈디포 매장을 열었다.
홈디포는 코스트코보다 4년 앞선 1979년, 이미 창고형 매장을 도입한 선구자였다. 당시 매장 규모는 6만 평방피트(약 1,700평)에 달했고, 다른 철물점보다 훨씬 많은 품목을 판매했다. 하지만 홈디포의 진짜 강점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인력의 전문성’이었다. 직원들은 고객에게 전동 공구 사용법부터 타일 배치 방법까지 세세히 가르쳤고, 매장에서는 워크숍과 일대일 상담이 정기적으로 진행됐다. 창업자들은 고객 피드백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물건을 사지 않고 매장을 떠나는 고객이 있으면 직접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전문가의 조언보다 짜증난 고객의 불만에서 더 많은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이었다. 이런 철학은 곧 홈디포의 빠른 성장으로 이어졌다.
1979년 첫 매장을 연 지 불과 2년 만인 1981년, 홈디포는 상장에 성공했다. 애틀랜타의 작은 두 매장에서 시작한 홈디포는 지금 북미 전역에 2,3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주택 개조 소매업체로 성장했다. 현재 직원 수는 45만 명이 넘으며, 홈디포는 미국 정부가 징수하는 전체 법인세의 약 1%를 납부하는 거대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돕는 브랜드에서, 함께 만드는 브랜드로
홈디포는 그동안 전략을 바꾸며 성장해 왔다. 창업부터 빠르게 성장할 초반의 슬로건은 “당신은 할 수 있다. 우리는 도울 수 있다.(You can do it. We can help.)”였다. 이는 초기 홈디포의 TV 광고에 나오던 슬로건이기도 했다. 스스로 건축자재를 사서 수리할 수 있도록 우리 직원들이 도와주겠다라고 하는 정확하게 홈디포의 컨셉에 부합하는 슬로건이었다. 그러다 2009년 경기가 침체되자 “더 절약하자(more saving)”라고 하는 슬로건이 등장한다. 홈디포를 이용하면 아낄 수 있다는 취지다. 그리고 현재는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얻는 방법(How Doers Get More Done)”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 소비자들의 추세가 집수리에 돈을 아끼는 것보다 결과물에서 오는 만족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직접 집을 수리한다. 뿐만 아니라 리모델링한 결과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그 작업을 함께 할 파트너가 바로 홈디포다.
홈디포, 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가다
홈디포에서 잘 살펴볼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인수합병이다. 끊임없이 인수합병을 진행해왔는데, ‘홈 데코레이터스 컬렉션(Home decorators Collection)’이나 리테일 업체 ‘휴즈 서플라이(Hughes Supply)’를 인수해서 기존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2024년에는 전문 지붕 작업 및 건설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SRS(SRS Distribution)를 182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홈디포 사상 최대 인수합병이었다. 인수합병 과정을 보면 DIY 중심에서 전문가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홈디포의 고객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집을 직접 수리하려는 개인 고객, 다른 하나는 배관공, 전기 기술자 같은 전문가 고객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문가 고객이 전체 고객의 10%도 채 되지 않지만, 이들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전문가 고객이 홈디포의 실적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참고로 경쟁사 로우스의 경우, 전문가 매출 비중은 약 25% 수준이다. 전문가 고객의 수는 적지만 거래 규모가 크다. 또, 한번 거래할 때마다 구매 단위가 크고 반복 구매 빈도도 높다. 이 구조는 홈디포 입장에서 더 적은 인력으로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홈디포는 최근 전문가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세대가 시장을 움직인다
호카, 미국에서 미친 듯이 팔리는 못생긴 운동화
못생겨서 더 팔린 신발, 호카의 역발상
호카는 데커스 아웃도어(Deckers Outdoor Corp)가 보유한 브랜드 중 하나다. 데커스는 우리가 잘 아는 어그(UGG) 브랜드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2025년 1월, 데커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그 중심에는 단연 호카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호카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니콜라스 메르무드(Nicolas Mermoud)와 장 리크 디아르(Jean-Luc Diard)는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Salomon)’ 출신이었다. 이들은 산에서 내리막길을 더 빠르고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신발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호카 오네오네(HOKA ONE ONE)’, 뉴질랜드 마오리족 언어로 ‘땅 위를 날다’라는 뜻이다. 거친 산길에서도 마치 떠오르듯 달릴 수 있도록, 기존 러닝화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접근했다.
호카의 핵심은 압도적인 쿠셔닝이다. 깔창과 바닥 사이의 미드솔(Midsole)을 두껍게 설계해 충격을 흡수하고, 언덕과 내리막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런 오버사이즈 솔(oversized sole)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또한 신발 밑창이 곡선 형태로 디자인되어, 달릴 때 마치 바퀴가 굴러가듯 자연스러운 이동감을 준다.
처음에는 오직 기능성으로 주목받았다. 프랑스에서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한 마라톤 선수가 박람회에서 호카를 신어보고 770켤레를 한꺼번에 주문하면서 미국 러너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탁월한 쿠셔닝과 가벼움 덕분에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의 러닝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카는 전혀 다른 이유로 더 유명해졌다. 이유는 못생겨서였다. 당시 러닝화 시장은 미니멀리즘이 유행이었고, 심플한 디자인, 단색 컬러, 작은 로고가 미덕이었다. 그런데 호키는 그 정반대였다. 큼지막한 로고, 형광색에 가까운 밝은 톤, 그리고 두꺼운 밑창까지.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 ‘투머치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변했다. 호카는 기능성에서 출발해, 이제는 못생김마저 스타일로 만든 브랜드가 되었다.
속도를 버리고 시장을 잡았다
본격적인 호카의 성공은 데커스의 품에 안긴 뒤부터 시작됐다. 어그의 모기업으로 잘 알려진 데커스는 2013년 호카를 인수했다. 당시 데커스의 브랜드 총괄이던 짐 반 다인(Jim Van Dine)은 호카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한 인물이었다. 그는 “5년 안에 호카를 연매출 1억 달러 브랜드로 성장시킬 확률은 95%”라며 확신에 찬 발언을 남겼다. 당시 호카의 매출은 300만 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비교하자면 같은 해 나이키의 매출은 2,333억 달러로, 호카는 나이키의 1만 분의 1 규모에 불과한 ‘초미니 브랜드’였다.
반 다인은 호카의 가능성을 두 가지에서 봤다. 하나는 기술력, 다른 하나는 시각적 파격이었다. 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브랜드는 언제나 눈에 띄는 디자인적 특징이 있다”며 한때 리복(Reebok)의 에어로빅화가 그랬던 것처럼, 호카의 못생긴 디자인이야말로 강력한 무기라고 판단했다. 데커스의 인수 후 호카는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처음엔 엘리트 마라토너 중심 브랜드였지만, 이제는 일반 소비자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로드 러닝화’와 같은 일상용 모델을 출시하며 대중에게 다가갔고, 2012년 런던올림픽 1,500m 은메달리스트 레오 만자노(Leo Manzano)를 후원해 브랜드 신뢰도를 높였다. 즉, ‘모두를 위한 러닝화’로 확장하면서도 러닝이라는 정체성은 유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장 방식을 역행했다는 것이다. 호카는 단기간의 매출 확대 대신, 희소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 최대 신발 유통업체인 풋락커(Foot Locker)의 입점 제안을 거절했고, 한때 진출했던 딕스 스포팅 굿즈(Dick's Sporting Goods)에서도 수요가 맞지 않자 빠르게 철수했다. 대형 유통망을 통한 확산보다, ‘한정된 공급’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재고를 쌓아 할인판매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는 순간, 호카의 매력은 사라진다고 본 판단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호카는 ‘천천히 성장하기로 한 브랜드’였지만, 바로 그 전략 덕분에 압도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데커스 인수 당시 300만 달러 수준이던 매출은 10년 만에 14억 달러로 450배 급증했다. 데커스의 주가 역시 같은 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호카는 단일 브랜드로 모회사를 견인하는 핵심 엔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