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연구 세미나에서 캐런 바라드와 함께 탐구한 다학제적 통찰을 모은 결과물이다.
캐런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을 철학적 사유와 결합하여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얽히고 중첩되는 복잡한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시간과 공간 역시 단순히 지나가는 흐름이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재구성되는 역동적 관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리적 실천이란 이 얽힘을 깨닫고 그 얽힘 속에서 생겨나는 책임을 수용하는 데서 비롯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존재와 상호작용, 그리고 변화의 의미를 깊이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변화를 만드는 새로운 철학적 여정 속에서 독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을 경험하고, 윤리와 책임을 다시 정의하게 된다.
■ 저자
카린 머리스
저자 카린 머리스는 핀란드 오울루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 교육학 및 철학 명예교수다. 교육철학과 질적 연구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교사 교육자다.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포스트휴머니즘 아동 연구, 교육철학, 윤리 및 민주적 교육학이다. 자세한 정보는 www.karinmurri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비안 보잘렉
저자 비비안 보잘렉은 아프라카공화국 로즈대학교 고등교육 연구, 교육 및 학습 센터 명예교수이며, 웨스턴케이프대학교 여성 및 젠더학과 명예교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돌봄과 사회정의의 정치적 윤리, 포스트휴머니즘과 페미니스트 신유물론, 고등교육에서의 혁신적인 교육적 실천, 포스트질적 및 참여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 역자 전방욱
역자 전방욱은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강릉대학교에 부임해 생물학과 교수, 총장 등을 거쳐 현재 국립강릉원주대학교 명예교수다.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 아시아생명윤리학회 회장, 한국과학기술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고, 신유물론연구회, 수유너머파랑, 오이코스인문연구소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 차례
역자 서문
필자 소개
서론. 팔레트의 색상 엿보기: 함께/따로 속도를 늦추다
밤하늘 장. 시간 회절: 캐런 바라드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짜릿한 통찰의 별자리
검은 피가 중요하다 장. 인간과 비인간을 ‘질의답변’에서 ‘질문의 교육학’으로 이동시키기
붉은색 장. 신성한 실천으로서의 기억하기-재구성원화하기(re-membering)
붉은 황토색 장. 시간에 표시하기, 신체에 표시하기: 관계가 중요하다
청록색 장. 연구를 다시-찾기(re-searching): 세계되기 실천으로서의 경계에 대한 고민
울트라마린 장. 여파, 내세, 잔상
적갈색 장. 공학 및 의학 교육을 위한 제스처: 바라드와의 만남을 통하여
오렌지 장. 회절적 드로잉
무지갯빛 장. 배경천을 통해 바느질하기/읽기(Th/reading): 패션 이론 강좌를 함께-따로 절단하기
끝(은 아니다). 레인보우 정동/효과(Effect): 회절 색상과 미래 팔레트
감사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시간과 공간,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질문. 익숙한 철학을 낯설게 하고, 낯선 사유를 친근하게 풀어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양자물리학과 페미니즘이 교차하는 곳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앎’과 ‘배움’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캐런 바라드와의 대화
서론. 팔레트의 색상 엿보기: 함께/따로 속도를 늦추다
이 선집은 캐런 바라드와 함께 이틀 동안 진행된 연구 세미나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다. 이 행사는 2017년 6월 10일부터 11일까지 케이프타운의 한 컨퍼런스센터에서 ‘퀴어이론에서 양자 물리학을 거쳐 차이의 문제까지(From Queer Theory through Quantum Physics to Questions of Difference)’라는 주제로 열렸다. 캐런 바라드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학교의 페미니스트 연구, 철학, 의식사 석좌교수로 미국의 퀴어이론가이자 양자물리학자이며, 특히 행위적 실재론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이론은 고등교육의 여러 학문 분야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Juelskjaer, Plauborg & Adrian, 2021에서 행위적 실재론의 영향에 대한 예시를 참조할 수 있다. 행위적 실재론은 서구 형이상학, 이분법적 논리, 종교 신화의 인식론, 존재론, 윤리와 철학적 접근을 복잡하게 재구성하며 이와 결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학문적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자들에게는 행위적 실재론에서 영감을 받은 연구가 어렵고 접근하기 힘들 수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첫째, 각 장에서 비공식적 대화를 통해 행위적 실재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둘째, 대학원생이 집필한 많은 부분을 포함시켜, 다양한 맥락과 학문적 배경에서 행위적 실재론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신진 학자들과 기성 학자들에게 이러한 연구 세미나가 그들의 연구와 사고에 어떤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또 대안적인 교수법과 연구 행사를 조직하는 방식에 영감을 주기 위해 쓰였다. 이는 그 철학에 더 부합하는 방식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연구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밤하늘 장. 시간 회절: 캐런 바라드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짜릿한 통찰의 별자리
별자리
이 장에서 색상을 선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캐런 바라드는 별자리가 별의 특정 물질적 구성의 이미지라고 제안한다. “이미지는 정지 상태의 변증법이다”. 별자리의 이미지는 “과거에 있었던 것이 현재와 순식간에 결합하여 별자리를 형성한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은 우리와 같은 거리에 있지 않다. 바라드는 연대기적 시간을 해체하는 논거를 제시한다.
“빛의 속도는 상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멀리 있는 물체를 볼 때 더 깊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을 볼 때 우리는 8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에 일어난 일을 현재 보고 있는 것이다. 별자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현재에 여러 다른 과거를 목격하며, 그 중 일부는 다른 것보다 더 먼 과거를 목격한다. 따라서 별자리는 과거 사건의 특정 배열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다양한 시간성의 구성, 즉 ‘존재하고 있는 별자리’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번개가 공간의 순간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지르며 짜릿한 통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바라드는 번개를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경로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결합과 비/연결된 동맹을 가상적으로 탐색하는 잘못된 방황”인 충전된 갈망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때 과거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은 선형적 시간을 거부하지 않으며, ‘선’은 서로 얽힌 다양체를 의미한다. 2017년 6월 케이프타운 노르트혹의 한 컨퍼런스 리조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이 통찰이 번개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바라드의 논문 “회절을 회절하기: 함께-따로 절단하기”에 익숙했지만, 시간 회절이라는 불안정하고 매우 문제가 많은 개념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물론 이 개념은 이미 이전 글들에서도 ‘존재’했다.
이 장에서는 세미나의 방법론적 영향, 특히 시간 회절이 우리 학문에 어떻게 영감을 주었는지를 탐구한다. 회절적 아이디어를 제정한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며, 회절적 읽기가 학문적 비판성과는 다른 점을 강조한다. 텍스트/작품/접근법/관점을 관계적으로 읽으며 창의적이고 예상치 못한 자극을 찾아내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평의 재구성은 고등교육에서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공동 저술한 논문에서 회절을 관계적이고 페미니즘적인 학문적 참여로 다루었다. 서지 하인(Serge Hein)의 근거 없는 비판에 대한 반응은 바라드와 질 들뢰즈의 관계적 존재론이 텍스트를 읽는 대안적 학문적 실천으로서 어떻게 서로에게 말하는지 회절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 텍스트의 얽힌 관계성을 드러내는 응답-기능한 읽기의 다른 사례도 참조한다. 이어서 교육과 삶 전반에서 회절적 방법론을 채택하기 위한 일련의 화이트헤드적 ‘명제’를 공식화한다. 우리는 세미나에서 캐런이 수행한 논문이 후속 글쓰기, 특히 대학원생들과의 공동 저술에 어떻게 영감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이 별자리는 세미나와 바라드의 글에서 발산하며, 친숙하면서도 낯선 패턴의 배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장의 작업과 특히 관련이 있다. 시간 회절은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지,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든 측면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장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맥락에서 교육, 방법론, 연구 관행 및 학문에서 시간 회절과의 교류에 중점을 둔다.
비브의 추적
세미나 둘째 날 캐런의 강연을 들으면서 비/결정성 개념과 이것이 행위적 실재론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유령학이 그때와 지금, 존재와 부재, 있음과 없음을 포함하는 비/결정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웹 세미나가 끝난 다음 해, 나는 ‘유령 존재론’ 개념을 바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세미나의 전율적인 통찰을 활용해 혼란스럽고 비/정향적인 ‘시간 회절 이야기’를 만들어 컨퍼런스에서 내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논문들은 불/연속적 시간대가 서로를 관통하고 스며들며 서로를 재/형성하고 서로의 내부에서 살아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시간, 공간, 물질은 단순히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감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혼란을 야기한다. 바라드의 발표에서 전자가 한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준위로 점프하는 양자 도약 방식을 설명하며 ‘유령 물질’로 묘사된 그림을 통해 나는 유령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각적/언어적 수행을 통해 불/연속적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공간 회절에서 여기/저기임을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슷하게, 시간 회절도 지금과 그때가 아니라 지금/그때이며, 물질의 어떤 사실이 아니라 비결정성을 나타낸다.
캐런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의 중첩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에서 공간 회절과 중첩, 즉 파동이 겹쳐서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원리를 이해했지만, 시간 회절과 중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바라드는 전자가 “상태의 중첩, 즉 전자가 주어진 시간에 한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유령학적으로 비/결정적 위치를 가지며 동시에 여러 곳에서 물질적 유령 같은 비/존재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주어진 입자가 어제, 오늘, 내일 등 여러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적 비결정성의 물질성을 이해하는 것은 박사 과정 학생들과 동료들이 유령학을 연구하고 시간 회절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과거는 결코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며, 미래에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생생히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가 바다의 시간적/공간적 구성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책, 학술 논문, 유튜브 게시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셰퍼와 보잘렉(Shefer & Bozalek)의 논문 “탈식민 페미니즘적 다가올-정의 실현 학문을 위한 야외 수영 방법론”은 바다와 수영을 야생 방법론과 슬로우 학문의 형태로 다룬다. 이 책은 유령학을 활용하여 다양한 존재와 변형의 방식을 지향하는 학문적 실천의 가능성에 관해 탐구한다. 남아프리카의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고등교육의 식민지적/가부장적/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비판하며, 고등교육 기관에 내재된 피지배와 폭력의 물질적 역사와 그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둘러싼 침묵에 의문을 제기한다. 바다 수영과 같은 체화된 실천은 바다와 생물들과 함께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강력한 방법을 제공하며, 도래할 정의를 위한 새로운 학문적 상상을 열어준다. 수영-글쓰기-함께 생각하기, 4색 갯민숭달팽이와 같은 소셜 미디어 이미지는 느린 학문의 일환으로 공유된다.
검은 피가 중요하다 장. 인간과 비인간을 ‘질의답변’에서 ‘질문의 교육학’으로 이동시키기
연구 세미나 2일차 2017년 6월 11일.
캐런 바라드가 2017년에 발표한 논문 “시간 교란하기와 무의 생태학: 허공 속에서 삶과 죽음의 불/가능성에 관하여”는 논문 수행 후 철학적 탐구 커뮤니티 세션의 영상과 사진으로 되돌아간다. 월터는 논문 발표 후 바로 질의답변 Q&A 세션으로 넘어가는 대신 세미나를 위해 테이블과 의자를 말발굽 모양으로 배치한 형태에서 원형으로 의자를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원형 배치는 테이블과 의자 배열을 파괴하고 다른 방식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세미나 공동-진행자로서, 우리는 사건에 대한 반복적 되돌아가기와 철학적 탐구 공동체(Community of Philosophical Enquiry, CoE)와 아동을 위한 철학(Philosophy for Children, P4C) 교육학에 영감을 받은 학문적 교육적 실천을 통해 회절한다. P4C의 CoE 정신은 학교 교실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 세미나, 워크숍, 컨퍼런스 등에서 교육과 연구에 영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컨퍼런스 발표 후 이루어지는 정형화된 1:1 교환에 저항하며, CoE에서 제시된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공유와 탐구의 과정이다. 이는 생각과 말뿐만 아니라 움직임과 신체를 포함하며, 협력적 질문을 이론과 실천의 핵심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1:1 교환은 학문적 대화에서 특정 정치를 재현한다. 일반적으로 강의를 듣는 한 사람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답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런 이중적인 일방적 관계는 대화를 빈곤하게 만든다. 또 각 참가자가 지식, 사고, 자신, 타인, 진리와 맺는 관계를 제한하게 된다. 이는 지식-권력의 위치를 고정하고 ‘전문가’, ‘심오한’, ‘진부한’, ‘미성숙한’, ‘피상적인’ 등의 범주에 따라 교육적 주체화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질문-응답 관계의 정치성이 더욱 의심스러울 수 있다. 질문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영역을 표시하거나 위장된 도전으로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CoE는 이러한 권력-지식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CoE에서는 질문이 최소한 잠정적 긍정이나 알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 필요하며, 답변은 긍정 또는 아는 척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답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거나 답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 배움도 질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르침은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인식론적 입장을 취하며, 수평적이고 측면적이며 다방향적 방식으로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과 학교에서 이 권리가 보호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은 질문하고 답할 권리가 있다. 이는 누가 답변하고 누가 질문하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타자의 질문과 답변을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며,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가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고는 신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항상 이미 “있음과 있지 않음의 근간을 불안정하게 하는 정체성의 안하기를 포함하는... 내면의 타자”를 포함하는 일련의 초개인적 움직임이다. 우리는 바라드의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 컨퍼런스, 워크숍, 연구 세미나, 웨비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 단계에서 새로운 교육학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포스트휴머니즘적/신유물론적/포스트질적 연구자들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여전히 관행처럼 굳어진 질의답변 모델에 문제를 제기한다. 외부에서 강요하지 않더라도 이론, 아이디어, 철학이 동일한 습관에 도전하는 동안 교육적 관행이 어떻게 지속되는지 궁금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세미나에서는 우리의 비/정상적 교육학 관행에 따라 철학적 아마추어-비전문가적 차원의 가르침, 즉 지식의 소유와 전달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사랑의 관계로서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프레이리(Freire)가 ‘페다고지’ 끝부분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즉 비즈니스와 소비주의, 자기 홍보의 논리를 넘어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문화에 저항하고 우리가 ‘성장’하고 더 ‘성숙’해지며, 그와 함께 ‘우리’가 ‘우리 것’으로 만든 논리를 배우지 않으려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질문과 답변과 관련해 우리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세계를 알고, 세계와 함께 생각하며, 세계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랑의 길일 수 있다.
질문의 교육학
일종의 긴장과 모순이 교육자가 공간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괴롭힌다. 우리는 공간에 거주할 때 우리가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숨겨져 있고 침묵하며 잊혀져 더 이상 생각하거나 기록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동안에는 우리 생각에서 잊히거나 숨겨진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무 얽매여 있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우리가 ‘다른 사람’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할 때, 들려줘야 할 ‘다른’ 이야기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이 장에서는 ‘아동과 같은 질문의 교육학’ 실천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자(re-minding)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며,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작동할까? 이 글에서는 세미나의 비디오 녹화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가 질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질문이 어떤 관계를 조성하는지, 그리고 CoE에서 답변하기보다 질문하기에 어떻게 더 관여하는지 철학적으로 살펴본다. 몇 가지 초기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동과 같다’는 것은 ‘아동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다. 아동기는 자연화되거나 본질화된 것이 아니라 물질적/담론적으로 구성된 역사적이고 논쟁 가능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감과 연결되는 질문은 나이로서의 아동기가 아닌 물질화된 시간으로서의 아동기가 질문의 교육학 측면에서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동과 같은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 교육학의 해체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키울 수 있을까? ‘아동과 같은 질문’은 방법이나 프로그램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논리가 아닌 경험의 논리, 즉 교육 환경에 서식하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어떤 질문이 ‘옳은’ 질문인지 판단할 때, ‘옳음’이 정의가 아닌 진실을 가리킨다면 질문이 ‘옳은’ 질문인지 여부 자체는 ‘옳은’ 질문이 아니다. 바라드가 우리에게 고려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후자다. 질문은 단순한 언어적 진술이나 담론이 아니라 물질적이거나 물질적-담론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세미나 세션 초반에 캐런 바라드가 낭독한 글이다.
“무와 마주한다는 것, 그 충만함을 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추상적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로 반복해서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다음 절에서는 질문의 교육학에 대한 예로서 세미나에서 한 가지 연습을 단어, 이미지, 오디오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교육자의 경우, 이것은 ‘자기’-질문하고, 알고 있거나 아는 척하는 권위자의 위치를 해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인으로서 인식론적으로 배운 것을 반복적이고 무한히 재학습하는 것과 유사하다. 질문의 교육학이 ‘주인의 집’을 해체할 수는 없겠지만, 캐런 바라드는 대담에서 우리가 “관여하여” “다른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다른 사고방식을 열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 것이 바로 질문의 교육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말굽형 세미나 자리 배치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벽난로 주변 공간을 확보하고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아 대등한 신체로 앉아 있다. 교육자인 월터가 요청한 대로 연습이 시작된다.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테이블이 없고 의자 사이 간격이 줄어들어 서로 더 가깝게 앉을 수 있다. 우리는 매우 쉽게 움직일 수 있고 여러 방향으로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소규모 그룹을 쉽게 구성할 수 있으며, 전형적인 세미나 형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종이나 노트북에 글을 쓰며 집중하게 된다. 데이터 프로젝터와 스크린 덕분에 캐런은 참가자들 앞에 홀로 앉게 되고, 참가자들은 캐런이 텍스트를 다시 보고 소리 내어 읽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반복되는 세계되기에 침전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설정은 교육적으로 탐구 커뮤니티를 구축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세계화 과정에 기여한다. 이러한 구축은 물질이 담론적으로 사용되는 방식과 얽혀 있다.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신체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캐런이 논문을 읽은 후 질의답변의 필요성을 방해하는 다른 내부-작용과 분위기가 유발되고 조성된다. 원형으로의 이동은 교육 공간에서 중요한 것에 인간 이외의 존재를 포함시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신발뿐만 아니라 무릎까지 드러나는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테이블 뒤에 숨겨지지 않는다. 이러한 신체 노출과 취약성은 우리가 ‘그것’이나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이미 학습의 일부인 다종의 참가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여기에 불의 빛과 열,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우리 몸속의 박테리아, 불타는 나무, 이른 아침 수영을 부르는 파도, 질문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함께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 포함된다.
전통적인 주인의 위치에서는 함께 생각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동등하지 않다. 아무도, 또는 아무것도 열등하거나 우월한 상대와 함께 생각하지 않는다. 보다 비위계적인 윤리-존재-인식론이 필요하다.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아동들의 항해, 그것이 바로 그리스어에서 비롯한 교육학(paidagogia)이란 어원의 적나라한 의미다: 배움은 방황을 시작한다”라고 상기시킨다. 방황하는 아동은 질문하는 교육학에 영감을 준다.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실수하기 위해서. 다른 공간을 점유하고 그 대가로 점유되어 그 공간에서 응답을 허용해야 한다. 바라드가 한 인터뷰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응답-능력은 “타자의 응답을 초대하고, 환영하고, 가능하게 하는 문제”다. 즉 문제는 응답 능력, 즉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응답’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매우 흥미롭다. 이 단어는 인도유럽어 어근 ‘pen’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라틴어 ‘pensare(생각하다)’와 영어 ‘ponder(숙고하다)’라는 단어에도 나타난다. 응답은 제안하고 다시 약속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덜 인간적인 존재와 인간 이외 존재의 응답도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우주의 물질적 존재의 행위적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정하는 데 도움을 준 행위적 절단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바라드의 말처럼:
“절단은 의지적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일부’인 더 큰 물질적 배열에 의해 주체적으로 제정된다. 우리가 물질을 제정하는 데 참여하는 절단이 중요하다. 사실 윤리는 타자가 자아의 근본적인 외부인 것처럼 타자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는 기하학적 계산이 아니다. ‘타자’는 결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타자’와 ‘우리’는 ‘우리’가 제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로 그 절단을 통해 공동 구성되고 얽혀 있다. 절단은 ‘사물’을 함께 그리고 따로 자른다. 절단은 외부에서 제정되는 것이 아니며 단번에 제정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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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