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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정경영, 김경화, 권현석, 정혜윤, 계희승, 이상욱, 권송택 | ||||
출판사 : 곰출판 | ||||
출판일 : 2025년 0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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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세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리는 것들
청취를 통해 사회를 감각하는 청각적 사유의 확장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소리’에 주목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소리연구(sound studies)’ 연구자들과 인천국제공항을 함께 걷는다. 연구자는 학생들에게 공항의 일정 코스를 걸으면서 이 장소에서 들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게 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 모두에게 ‘가장 인상 깊은 소리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여학생들은 ‘구두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라고 답했는데, 놀랍게도 남학생들은 단 한 명도 이 같은 답을 하지 않았다. 많은 여학생들이 공항에서 들은 특징적인 소리로 구두 굽이 부딪히는 소리를 꼽았는데, 그 소리를 남학생들은 단 한 명도 듣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학생들은 그 소리에 익숙하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그 소리에 관심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젠더의 차이가 듣는 소리의 범위와 방식을 결정한 것이다.
‘소리연구’에서는 모든 소리의 의미가 사회ㆍ문화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다’고 믿는다. 음악이나 언어 같이 특수한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사회ㆍ문화의 맥락 안에서 “발생하고 소통되며 수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소리’는 단순한 청각 자극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정의된다. 이 책 『듣기의 철학』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학문적 접근을 바탕으로 소리라는 존재와 청취라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천착해 온 소리연구의 결과물로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집단연구로 이루어 낸 인문학적 소리연구의 성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리’와 ‘듣기’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젠더, 권력, 예술, 기술, 환경을 아우르는 다학제적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소리가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해 왔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특히 ASMR부터 AI 음성비서, 게임 사운드 디자인까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청취 경험들을 복합적 의미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청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인문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또한 우리가 매일 듣고 있지만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혹은 무심코 지나쳤거나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듣게 되는 소리들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하고 탐구하며 귀를 열면 들리는 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성찰한다. 이 책은 그렇게 익숙한 일상의 소리를 낯설게 하고, 그 낯섦 속에서 인간과 사회, 감각과 권력, 기술과 정체성을 다시 듣도록 우리를 이끈다.
■ 작가정보
정경영
음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다가 다행히도 그것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 노스텍사스주립대학교에서 음악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양대학교에서 음악사, 음악학, 음악과 관련된 교양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의 감동을 말이나 글로 번역하는 일, 음악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일, 음악적 상상력으로 인간과 문화를 살피는 일에 관심이 있다.
■ 목차
1. 소리, 듣기의 권력
구성된 소리, 만들어진 청취 | 정경영
‘쩌는 음색’과 소리의 육체성 | 정경영
소리가 들려주는 젠더 | 김경화
2. 소리, 공간을 채우다
소리풍경으로의 여행 | 권현석
소리 생태계, 소리니치로 듣다 | 정혜윤
3. 소리, 기술과 연결되다
코로나19 시대, 격리된 세계에서 듣기의 쓸모 | 계희승
e멋진 신세계: 게임을 ‘연주’하다 | 계희승
포스트휴먼 시대의 소리 환경 | 이상욱
4. 소리, 음악이 되다
음악은 어떻게 소음을 품었는가 | 권송택
‘소리’ 예술, 악보 너머 세상의 소리를 듣다 | 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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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철학
소리, 듣기의 권력: 우리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듣지 않는가
소리는 단순히 귀에 들리는 현상을 넘어,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인지된다. 시끄러움의 기준은 시대와 장소,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는 듣는 행위가 얼마나 권력과 젠더, 사회적 배경에 의해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소음을 정의하고자 하는 가장 순진한 시도는 소음을 ‘시끄러운’ 소리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시끄러운’ 소리가 대상의 객관적 속성임을 가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시끄러움’은 대상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주체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시대와 장소, 상황에 따라 시끄러움은 바뀔 수밖에 없다. (…) 예컨대, 중세 시대의 오르간 소리는 매우 크고 시끄러운 소리였으나 신성한 소리로 여겨졌고,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에서 나는 소리 역시 불편한 느낌을 줄 만한 소리였을 텐데 당대에는 산업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기분 좋은 소리였다는 것이다. 이런 소리들을 셰이퍼는 ‘성스러운 소음’이라고 불렀다.
소음을 '시끄럽다'고 규정하는 것은 순진한 시도다. '시끄러움'은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주체의 반응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의 오르간 소리나 산업혁명 시기 공장 소음이 '성스러운 소음'으로 여겨졌듯, 소리의 본질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몇 해 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의 소리에 대한 현장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미리 답사한 인천국제공항의 정해진 코스를 걷게 하며, 귀 기울여 이 장소의 소리 환경을 듣게 한 다음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청각 경험의 특징을 확인하는 연구였다. 인상 깊은 소리가 무엇이었느냐는 공통 질문에 많은 여학생들이 ‘구두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라고 했던 반면 남학생들은 단 한 명도 이 같은 답을 하지 않았다. 많은 여학생이 공항에서 들은 특징적 소리라고 했던 바로 그 소리를 남학생들은 단 한 명도 ‘듣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알수 없다. 어쩌면 남학생들은 높은 구두 굽이 바닥에 부딪혀 내는 소리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러니 익숙하지 않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그 소리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젠더, 즉 사회적 성차가 듣는 소리의 범위와 방식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 현장 연구에서 여학생들은 '구두 굽 소리'를 인상 깊게 들었지만, 남학생들은 전혀 듣지 못했다. 이는 젠더, 즉 사회적 성차가 소리를 듣는 방식과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듣지 못하는지는 주체의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월리스는 전화기 목소리가 흔히 여성인 이유에 대해, 여성이 수다와 가십을 좋아하도록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가정 영역에서 가족을 위해 지루하고 고단한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의 위치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 시기 전화가 “여성화된 테크놀로지”로 인식되면서 남성들은 역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은 암묵적으로 “여성이 전화를 이용하여 일정과 약속을 잡고, 쇼핑을 하고, 가족들을 살피는 집안의 운영자(opera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월리스는 말한다. 즉, 전화기는 여성에게 어느 정도의 권력과 통제권을 넘겨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에게 가정 안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유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화기 목소리가 여성화된 이유를 월리스는 여성의 '타고난' 성향이 아닌, 가정 내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서 찾았다. 전화기가 여성에게 일정 부분의 권력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소리, 공간을 채우고 관계를 맺다
소리는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존재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규정한다. 이는 '소리풍경(soundscape)'과 '소리니치(niche)' 개념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이처럼 음악은 정감적인 소리니치로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기 버거운 정감적 과제를 나누어 맡아 자신의 정감적 경험을 조정하고 규제해야 할 인간의 부담을 덜어준다. 음악사회학자 티아 드노라(Tia DeNora)는 인간의 정감적 상태를 창출하는 음악의 역할을 ‘미적 테크놀로지’라는 표현으로 주목하기도 했는데, 사실 인간의 정감적 과제를 분담하여 지원하는 소리니치로서의 역할을 음악만이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음악으로 분류되지 않는 다른 많은 소리 자원 역시 정감적 소리니치로서 제구실을 다 할 수 있다. 가령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차임벨 소리 혹은 목탁 소리는 사람들이 특정한 정감적 상태에 들어서는 것을 도움으로써 정감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소리니치로 작용한다.
음악뿐 아니라 차임벨, 목탁 소리 등 다양한 소리 자원 역시 '정감적 소리니치(niche)'로 기능한다. 이는 인간이 감정적 과제를 해결하고 정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소리 환경을 능동적으로 구성한다는 의미다.
소리, 기술과 연결되고 예술이 되다
기술의 발전은 소리를 매개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팬데믹과 같은 특수한 상황은 청취의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나아가 소음은 더 이상 방해물이 아닌 예술의 중요한 재료로 확장되었다.
코로나19 이전 관객의 소음은 연주자에게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동시에 내가 내는 소리를 누군가 듣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텅 빈 홀에서 하는 연주는 분명 누군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체험되지는 않는다. 관계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면 연주도, 연주자도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완전함은 연주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감상하는 이들에게 저 ‘유령 음악회’는 어떤 경험이었을까. 코로나19 시대 관객 없이 열리는 온라인 음악회의 가능성을 엿봤다는 의견도, 밀려오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했는지 역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경험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주장도 모두 일리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화면 너머 연주자들에게 나의 경험과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연주자와 내가 같은 시간에 연주하고 들었다는 측면에서 분명 ‘라이브’ 연주라고 할 수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라이브’ 연주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온라인 음악회는 '라이브' 연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관객의 소음이 오히려 연주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요소였듯, 서로의 존재를 알릴 수 없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라이브' 연주라고 보기 어렵다는 관점은 소리와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게임 속 가상의 공간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이 현실의 물리적 공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분명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게임 플레이는 보통 플레이어가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게임 음악 콘서트는 가상을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인가?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의 역(逆)인가? 하지만 엄밀히 말해 게임 음악 콘서트는 (적어도 현상학적 측면에서) 현실이 아닌 가상이다.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 찰스 로젠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에서의 게임 콘서트는 ‘게임 세계의 재현’이다. 게임 플레이어에게 현실은 게임 속 가상 세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게임 음악 콘서트에 열광하면서도 중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게임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수행적이기 때문이다.
게임 음악 콘서트는 가상 세계의 음악이 현실로 옮겨온 흥미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의 '게임 세계의 재현'이며, 게임 음악이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수행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청취 경험을 제공한다.
케이지에게 있어서 침묵이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소리를 듣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케이지에 따르면 이 작품은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백색 그림(White Painting)〉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다. (중략) 존 케이지는 이 그림과 비슷한 시도를 음악에서 한 것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로 음악이 채워지고, 감상자가 시시각각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사운드가 음악을 구성하고 변화를 만들어 간다.
존 케이지에게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닌,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의 작품 〈4분 33초〉처럼, 주변 소리가 음악을 구성하고 감상자가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소음마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 핵심 메시지
이 책은 소리가 객관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해석되는 유동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듣는다는 행위'가 권력, 젠더, 기술, 공간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며, 소음마저 예술이 되는 현대 청취 문화의 다층적이고 변화무쌍한 면모를 탐색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듣고 무엇을 듣지 않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와 의미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 추천 글
일상 속 무심히 지나쳤던 소리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소리가 어떻게 권력과 젠더, 기술, 공간과 얽히는지 깊이 있는 통찰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소리를 듣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세상의 소리풍경을 더욱 풍부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