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사악한 말
 
지은이 : 이진우
출판사 : 휴머니스트
출판일 : 2025년 09월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경구로 유명한 이 말은 고통을 찬미하는 철학의 대명사다. 순응해야만 생존하고 성공하는 사회에서 “위험하게 살라”고 부추기고, 삶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데 “가볍게 살라”고 내뱉으며, 자신의 한계를 감히 시험하지 못하는 그때 “망치를 들고” 말하는 철학자, 니체. 그런 점에서 니체의 말은 사악하다. 우리의 도덕 관념과 편견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때문이다.


    니체의 사악한 말 


    '좋은 사람'이라는 함정

    니체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들을 거침없이 전복시킨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충고하며, 착함이 종종 약함의 가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비된 앞발을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 착하다고 믿는 자들"을 비웃었던 차라투스트라처럼, 니체는 약자가 공격할 능력이 없음을 '착함'으로 둔갑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고는 정상을 정복할 수 없듯이, 해를 끼치지 않고 성장하는 생명체는 없다고 주장한다. 선한 사람들은 모두 약하며, 그들은 악할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에 선하다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려 해도 할 수조차 없는 약자는 완전히 소진된 자이다. 

    착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니체의 말은 섬뜩하게 들리지만, 이는 우리 안에 굳어진 도덕적 가치가 삶의 운동성과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꼬집는 것이다. 삶은 본래 운동이고 변화이며, 스스로 변화하려면 움직이고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운동과 변화 자체를 정죄하는 것은 삶을 정죄하는 것이고,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데카당스이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이런 도착적인 가치를 다시 전도하려면 사악해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자아의 환영을 좇는 '사이비 이기주의'는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잃게 만든다. 우리는 평생 진정한 자아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형성된 허구, 곧 '인간'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믿으며 살아간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타인의 마음에 신경 쓰는 것일까? 모든 행위는 가치 평가이며, 사람들은 대부분 속인의 가치 평가를 받아들인다. 이는 타인과 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신이 다르게 존재할 가능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바로 이 두려움에 맞서, 진정한 자아를 위한 삶을 선택하라고 촉구한다.


    고통과 창조의 역설

    니체에게 고통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강렬함을 추구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는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있으려면 고통과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창조하는 자들의 삶에는 수많은 쓰라린 죽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현대의 심리 치료는 이러한 니체의 통찰을 증명한다. 

    미술 치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들은 말로 표현되지 않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외면화하는 방법을 찾는다. 음악 치료에서는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이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표출된다. 이러한 연습은 핵심적인 진실을 드러낸다. 창조는 고통을 회피함으로써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자아 속으로 통합함으로써 줄인다. 창조는 주체성을 회복하게 하며, 우리는 창조 행위를 통해 비참함의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해석자가 된다.


    위험하게 살고, 방랑하는 삶

    니체는 우리에게 "위험하게 살아라!"라는 도발적인 권고를 던진다. 이는 결코 무모한 모험주의나 비이성적인 위험 감수를 촉구하지 않는다. 무엇이 위험한지 아는 것이 바로 용기이며, 니체의 의미에서 용기는 단순한 육체적 용기가 아니다. 현대인은 실존적 위험으로부터 대체로 보호받는 동시에 그만큼 정신적 무기력에 노출되어 있다. 전통적인 신체적 위험은 감소했지만, 도덕적, 정서적 위험은 증가했다. 인기 없는 진실을 말하고, 이념적 순응에 저항하며, 편의성보다 진정성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행위가 되었다. 니체가 말하는 '위험'은 바로 이런 실존적 위험, 즉 타인과 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화와 무상함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방랑자"가 되어야 한다. 정신의 방랑자가 된다는 것은 우상 없이 사는 것이다. 정신은 자신의 우상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제단을 불태우며 한때 신성시된 모든 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끝없는 유배와 방랑 속에 역설적으로 집이 있다. 정신의 유목민은 안정이 아니라 삶의 강렬함을 추구한다. 물론 도착하고 정주하는 자는 존경받는 반면, 질문하는 자는 의심받지만, 이러한 안정은 영혼의 죽음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도전받지 않는 생각은 독이 된다. 방랑은 영혼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 핵심 메시지

    니체의 '사악한 말'은 기존의 도덕과 가치를 전복함으로써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착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 고통과 위험을 피하기보다 기꺼이 마주하고, 창조 행위를 통해 삶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라고 촉구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따르고 끊임없이 방랑하는 '정신의 유목민'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삶의 강렬함을 맛볼 수 있다.


    - 추천 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있거나,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권한다. 니체의 강렬하고 도발적인 문장들은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용기를 줄 것이다. 산책길의 동무처럼, 니체의 '망치의 말'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내면의 단단함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