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단단한 삶을 위한 고전 필사 노트
 
지은이 : 김선영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6년 04월




  • 이 책은 고전을 설명만 하는 책도, 좋은 문장만 모아놓은 필사집도 아니다. 하루 한 장씩 읽고, 쓰고, 생각하고, 답하게 함으로써 고전을 ‘아는 말’이 아니라 ‘내 것이 된 문장’으로 바꾸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필사가 단순한 베껴 쓰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br>먼저 핵심 문장을 만나고, 이어 작품의 맥락을 짚는 해설을 읽고, 내 삶과 연결되는 질문을 통과한 뒤, 직접 쓰고 기록하도록 구성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처럼 생각되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출처: 이호철 옮김, 열림원, 2023년, 155-156쪽

    요조는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그런 자신을 겁쟁이라 부르며 상처투성이인 인생을 견뎌냈지요. 광대처럼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스스로를 혐오하며 마침내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낙인찍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진리, 그것 하나만은 그에게 위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나는 이중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다. 나의 양면은 둘 다 매우 진지했다. 자제심을 팽개치고 부끄러움 속으로 뛰어드는 나는, 대낮의 밝은 빛 속에서 지식을 쌓거나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둘 다 나 자신이었다. 그 와중에 신비하고 초월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던 연구는 내 안의 이중적인 요소 사이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싸움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게 해주었다. 나는 날마다 내 지성의 양면인 도덕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꾸준히 진리에 접근했는데, 그 진리의 일부를 발견한 결과 끔찍한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 진리란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다.

    출처: 서창렬 옮김, 현대지성, 2024년, 298쪽

    이 작품은 선과 악, 인간의 양면성을 분리하려 시도했던 지킬 박사가 자신 안의 사악한 자아인 하이드에게 잠식당하는 비극을 그립니다. 지킬은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학자였지만 억눌린 욕망과 파멸적인 충동을 품고 있었죠. 그는 하이드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대신 완전히 떼어내려 합니다. 이 선택은 도리어 억압된 욕망과 위선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끝내 하이드를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 진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아주 견고하고 확실해서 회의주의자들의 매우 과장된 모든 가설도 이 진리를 흔들리게 할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나는 이것을 내가 찾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주의 깊게 검토하면서 내가 육체를 전혀 가지지 않고 머물고 있는 장소도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를 멈추기만 했다면 비록 그때까지 상상해온 모든 나머지가 참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존재했다고 믿을 어떤 근거도 가지지 않았던 반면에, 내가 다른 것들에 대한 진리를 의심하려 생각했다는 것으로부터 내가 존재했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도출됐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으로부터 내가 모든 본질 내지는 본성이 생각하는 것일 뿐이며 존재하려고 어떤 장소도 필요로 하지 않고 물질적 사물에 의존하지 않는 하나의 실체라는 것을 알았다.

    출처: 이재훈 옮김, 휴머니스트, 2024년, 81-83쪽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철저한 의심에서 태어났습니다. 관습과 권위에 도전하며 모든 것을 의심하던 그는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요. 이 깨달음은 인간을 세상의 답에 기대지 않는 ‘생각하는 주체’로 세웠습니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한, 어떤 파도도 나를 흔들 수 없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이 쏘아대는 화살과 돌팔매를
    마음속으로 견디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어 가슴을 짓누르던 번뇌와
    육체가 감당해온 수천 가지 고통을
    모두 끝낸다면, 누구나 간절히 바랄
    결말이 아니겠는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든다면 어쩌면 꿈도 꾸겠지.
    아, 그것이 걸림돌이로구나.
    이 필멸의 몸을 벗어던진 뒤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찾아올지,
    그 생각이 우리를 멈춰 세우는구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 질문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결단과 망설임 사이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근원적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삼촌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운명 앞에서 갈등하며, 삶을 포기해 고통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무게 앞에 거듭 망설이죠.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사람들은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속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불행한 일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진실을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사는 아주 모호하고 천차만별인지라 철학자들 중에 가장 덜 오만한 우리 아카데미아 학파 사람들이 올바르게 말했듯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알 수 있다 해도 그로 인해 인생의 즐거움을 방해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출처: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2년, 138쪽

    종교의 권위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교차하던 시대, 에라스무스는 ‘어리석음의 신’ 우신(愚神)을 화자로 내세워 인간 사회의 위선과 오만을 익살스럽게 풍자했습니다. 우신은 인간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진실이 인생의 즐거움을 방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야 할까요? 에라스무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인식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과 나 자신, 삶의 모호함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그의 운명은 바로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바로 그의 것이다. 부조리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문득 태초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에서, 경이에 찬 조용한 목소리가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른다. (...) 부조리 인간은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조리 인간이 자기 인생으로 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 바위를 향해 돌아가면서 일련의 행동을 무심히 응시하는데, 그 일련의 행동은 그가 창조하고 그의 기억 아래 통합되고 머잖아 그의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을 이룬다. 이처럼 인간적인 모든 것의 인간적인 기원을 확신하는 부조리 인간, 앞을 환히 보고 싶지만 끝없는 어둠의 존재를 아는 부조리 인간은 그럼에도 여전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떨어진다.

    출처: 유기환 옮김, 현대지성, 2025년, 189쪽

    카뮈는 우리의 인생이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끝없이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과 닮았다고 말합니다. 정점에 도달하자마자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우리는 그 허무를 평생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카뮈는 바위를 따라 산을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 즉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응시하는 시지프의 의식에 주목합니다. 바위가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내딛는 발걸음은 비참한 ‘체념’이 아니라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가장 뜨거운 ‘저항’이 됩니다.


    플라톤 『파이돈』
    만일 죽음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악인들에게 죽음은 신이 주는 깜짝 선물이 될 것이네. 죽으면, 단지 몸에서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자신이 저지른 악들로부터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네. 하지만 이제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선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 외에 재앙을 피하거나 벗어날 다른 방법은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네. 영혼은 저승에 갈 때, 자신이 훈련과 교육을 통해 얻은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자들이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할 때 그들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 되기도 하고 가장 해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네.

    출처: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9년, 192-193쪽

    독배를 앞둔 감옥에서, 소크라테스는 울먹이는 제자들에게 ‘영혼의 불멸’을 설파합니다. 그에게 죽음이란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영혼이 해방되어 참된 지혜의 세계로 떠나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죽음 이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훈련과 교육으로 얻은 것뿐이니, 우리는 최대한 선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고요. 외부의 어떤 재앙도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가꾸는 일이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도리라고 말입니다.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나는 혼란과 불행과 죽음으로 만들어진 토대 위에 내 희망을 쌓아 올릴 수 없어. 세계가 황폐해지고 우리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천둥소리가 다가오는 듯해서 더욱 괴로워. 그렇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해지고 이 참혹한 상황도 끝나고 평화와 고요가 다시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고 보니 꿈을 잊지 말아야겠어.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올 테니까 말이야.
    안네.

    출처: 이건영 옮김, 문예출판사, 2009년, 343-344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소녀 안네에게 허락된 물리적 공간은 비좁은 다락방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네는 가상의 친구 ‘키티(일기장)’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만의 땅을 일구어나갑니다. 이 기록은 나치의 만행과 전쟁의 비극을 생생히 증언하는 사료인 동시에, 언제 죽음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 인간이 어떻게 존엄성을 지켜내는지 가장 순수하게 보여줍니다. 안네에게 일기장은 다락방 너머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창이자 진정한 자기만의 방이었습니다.


    토머스 하디 『테스』
    기왕지사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과거가 어찌 되었든 그 과거가 지금 그녀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낳은 결과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은 모두 시간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몇 해만 지나면 그 결과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될 것이고, 그녀 자신도 묻혀 버려 잊힐 것이다. 하지만 수목은 예전처럼 여전히 푸르고 새들은 노래하며, 태양은 지금도 옛날처럼 변함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낯익은 주변 모습은 그녀가 슬프다고 해서 어두워지는 법이 없었고, 그녀의 고통 때문에 아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고개를 이토록 푹 떨구게 만든 세상이, 그리고 그 세상이 자신의 처지에 관심을 보인다는 생각이 실은 환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녀의 존재와 경험 그리고 열정 및 감각의 구조는 타인이 아닌 바로 그녀만의 것이며 오직 그녀만이 이해할 수 있다.

    출처: 김문숙 옮김, 열린책들, 2011년, 상권 162쪽

    가난한 농부의 딸 테스의 삶은 파란만장합니다. 가족을 돕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원치 않는 사건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마저 일찍 떠나보내죠.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피해 목장으로 숨어든 테스는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냅니다. 어느 날 테스는 문득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자연은 변함없이 푸르고, 자신을 짓눌러온 세상의 시선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이었음을요. 테스는 과거의 비극이 오늘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초록지붕집의 앤』
    “마릴라 아주머니, 내일은 아직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날이라는 게 참 멋진 것 같아요.”

    “내가 장담하는데, 넌 내일도 실수를 잔뜩 할 거야. 너 같은 실수투성이는 처음 본다니까.”

    앤은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제게도 장점이 하나 있는데, 혹시 알고 계셨어요? 저는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진 않거든요.”

    “대신 항상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지. 그게 그렇게 좋은 장점인지는 잘 모르겠구나.”

    “어머, 정말 모르세요? 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거예요. 하나도 남김없이 저지르고 나면 더는 실수할 일이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출처: ‘빨간 머리 앤 전집’ 1권, 오수원 옮김, 현대지성, 2023년, 269-270쪽

    요즘 유행하는 ‘초긍정 사고방식’의 원조를 찾으라면 단연 빨간 머리 앤일 것입니다. 실수투성이였지만 앤은 절대 좌절하는 법이 없었죠. 한번은 존경하는 앨런 부인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껏 케이크를 구웠는데, 바닐라빈 가루 대신 진통제를 넣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감기에 걸려 냄새를 맡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죠. 누구보다 속상했을 앤이지만 금방 눈물을 거두었습니다. 오늘은 지나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날이 올 테니까요.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 대가로 친절을 되돌려받을 것이다.

    출처: 이순희 옮김, 사회평론, 2005년, 168쪽

    러셀은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몰두하거나 남과 경쟁하는 행위, 이유 없는 걱정과 죄의식,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야 행복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행복을 정복하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은 바로, 사랑 아닐까요? 관계를 가꾼다는 것은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유한 특성을 발견하고 그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릴리펏인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자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결핍을 결코 보충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런 위험한 자에게 공직을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덕적 성품을 가진 사람이 무지에 의해 저지른 오류는 공공 이익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패한 경향이 있는 데다 그 자신의 부패한 심성을 숨기고, 돋보이게 하고, 옹호하는 능력을 가진 자의 고의적인 술수는 공공 이익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출처: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19년, 70쪽

    조너선 스위프트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걸리버 선장은 배를 타고 총 네 나라를 여행하는데요, 그가 처음 도착한 소인국 릴리펏은 공직자의 도덕성을 중시한다고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줄타기 묘기 같은 우스꽝스러운 시험으로 관직에 오를 사람을 결정합니다. 실력이나 인품 대신 잔재주와 아부만이 가득한 릴리펏의 정치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이기 때문에, 공공의 창고가 채워져 있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쓸 것 중에서 뭐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넉넉하게 분배되므로 그 나라에 가난한 자도 없고 거지도 없습니다. 아무도 사유재산이 없지만, 모든 사람이 부자입니다. 온갖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0년, 219쪽

    16세기 영국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갔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이러한 현실에 맞서 이상적 국가상을 담은 『유토피아』를 펴냅니다. 유토피아 섬은 돈과 사유재산이 없기에 가난도, 범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공평하게 분배되어 누구나 부유하게 살아가는 지상낙원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이 완벽한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는 작지 않습니다. 여행이나 식사 같은 사적 영역조차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맹자 『맹자』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출처: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2019년, 110쪽

    맹자는 인간이 본래 선하게 태어나며, 누구나 곤경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믿었습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조건 없이 달려가는 마음, 즉 ‘측은지심’을 그 증거로 보았지요. 하지만 맹자는 선한 본성이 저절로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내면에 깃든 네 가지 실마리인 사단(四端)을 잘 보살피며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본성을 완성해가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누구에게나 선한 씨앗은 있지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꾸준히 물을 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