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지은이 : 판덩 (지은이), 하은지 (옮긴이)
출판사 : 이든서재
출판일 : 2026년 07월



  • 『논어』는 ‘말을 편집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와 삶을 대하는 자세, 태도를 편집하고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2천5백 년 전 이들의 대화를 주목해야 할까?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지긋지긋한 공부, 즐길 수 있을까?
    누구나, 편안하게, 어디서든 배움은 열려있다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가 말하길, "속수의 예를 행한 사람이면 내가 가르치지 않은 적이 아직 없다."

    ① 속수: 말린 고기 한 다발. 보통 한 다발에 10개 정도로 고대에는 일종의 선물로 활용됨.
    ② 회: 가르치다, 지도하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고기를 먹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도살하면 1년 정도를 먹어야 했는데 보관을 위해서는 고기를 말려야만 했지요. 공자가 받은 고기가 당시 얼마만큼의 값어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뉘앙스를 보면 분명히 그리 비싼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일반 백성들이 고기를 먹는 건 드문 일이었습니다.

    공자는 "달랑 육포 몇 장만 가져올지라도 누구든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상대가 범죄를 저질렀건 천한 신분 출신이건 상관없이 모두 제자로 받아준다는 뜻이죠. 공자는 제자들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신분의 높고 낮음으로 구분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공자의 제자는 왕실의 귀족이나 대신에서부터 장사꾼이나 심부름꾼, 감옥에서 막 출소한 전과자나 장애를 가진 사람 등 다양했습니다. 공자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차별 없는 교육"의 포문을 활짝 연 사람입니다.

    사실 공자 이전 시대까지만 해도 귀족 출신의 자제들만 교육을 받아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씨"를 일반 사람들에게 퍼뜨림으로써 대중들도 글을 읽고 예법을 배울 수 있게 했습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었죠.

    이렇듯 "누구든 편안하게 배울 수 있는" 공자의 교육 철학은 기존의 전통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육포 10개만 내고 교육을 통해 점점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나아가 사회 발전을 위해 더 크게 기여하는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렇다면 "공짜로 가르쳐줘도 될 것을 굳이 왜 학비를 받으려고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 문화학자 난화이진 선생은 이에 대해 "바로 이런 점이 공자가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드러낸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는 3천 명에 달했습니다. 당시 사회 환경을 고려하면 매우 강력하고도 큰 힘이었죠. 생각해 보세요. 주변에는 총인구수를 다 합쳐야 몇만 명밖에 되지 않는 국가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자를 깊이 신뢰하고 따르면서 재능까지 갖춘 사람들이 무려 3천 명이나 되었으니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었죠. 만일 공자가 딴마음을 먹고 반역이라도 일으키면 노나라는 감당해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공자는 더 명확하게 선을 그은 것입니다.

    "저는 권력에 욕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이로써 그는 정치가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자신과 제자들이 가진 힘은 정치적 힘이 아니라 교육적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공자는 춘추 전국 시대에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중국 민족사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요.

    프랑스 영화 <코러스>에는 소년원 같은 기숙사 학교에 발령받은 임시직 교사 마티유가 등장합니다. 사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서 모두 입학을 거절당한 문제아들로 저마다 복잡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티유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지만 외면하고 있었던 음악으로 조금씩 닫혀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그들을 교육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아주 감동적인 작품이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한 번쯤은 모두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정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가정환경이나 기타 조건에 근거해서 학생을 구분 짓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중에는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 "너는 이 성적으로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꿔. 혹시 다른 학교로 전학 갈 생각은 없니?"라고 압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발언은 교사라는 사람의 입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학급에 그런 학생이 존재하는 것 또한 일종의 인연입니다. 진짜 선생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잘 지도해 주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학급의 평균점수를 떨어뜨린다고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공자처럼 "차등 없는 교육"의 문을 활짝 여는 데 힘을 보태서 더 많은 사람이 배움을 얻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나’ 하나를 위한 공부법
    배움에 생각을 얹고, 생각에 꽃을 피울 지식을 더하라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가 말하길,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

    ① 망: 미혹되다. 여기서는 막연하고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가리킴.
    ② 태: 의혹, 위험.

    보통 공부를 할 때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학이불사"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사이불학"입니다.

    그럼 먼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학이불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방과 후에도 여기저기 학원을 쫓아다니느라 무척 바쁩니다. 배우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데 그에 비해 효과는 미미합니다. 왜 그럴까요?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개념이 물밀듯 들어오지만, 그것을 분별하고 정리한 다음, 응용할 줄 몰라 지식을 체화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얕은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 정작 자신을 위해 그 지식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의 강의 내용에만 의존하면 스스로 머리를 굴려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학이불사즉망"의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이론과 개념은 바싹하게 외우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어떤 뜻인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평소에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누구 말이 더 옳은지, 누구 말이 더 나에게 적합한지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해야 하지요.

    뉴턴과 아인슈타인조차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으니 물리학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물리학은 계속해서 발전 중이므로 그 과정에서 마찰과 모순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과 의견을 가진 것도 전부 이러한 마찰과 모순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충돌이 있다고,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아예 물리학을 배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 참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공부 방법 역시 똑같습니다. 공부법 역시 계속해서 발전하는 중이에요.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지속해서 연구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을 선택할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고 확실한 진리는 없어요. 철학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한 번에 깨닫는 과정이 아니라 진리에 무한대로 끝없이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걸 말이죠. 여러분이 이제 막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면 누군가의 지도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무분별한 질문 공세로 쉽게 답을 얻으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스스로 생각하는 걸 방해할 뿐입니다.

    두 번째 오류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사이불학"입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늘 남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뭐든지 흠집을 내려 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조언은 절대 신뢰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연구 실적이나 공로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타인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죠. 가령 스스로 머리가 뛰어나다고 여기는 친구는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내용을 자기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설령 선생님이 알기 쉬운 방법으로 더 재미있게 설명해 주어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데 입을 꾹 닫고 혼자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죠. 이런 경우를 가리켜 바로 "사이불학즉태"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삶에는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 선배들이 쓴 책을 한 번만 읽어보면 내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를 누군가 벌써 해결해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걸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면 됩니다. 적용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판단을 더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첨가한다면 배운 내용과 삶을 하나로 만들 수 있으니 금상첨화지요.

    정리하자면 "학이불사"는 "끝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며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하는 상태"와 같고 "사이불학"은 "문제가 생기면 계속 의심이 생기고 불안하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는 동시에 생각을 해야 해요. 지식을 꼭꼭 씹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키고, 구슬을 꿰듯 배운 내용을 하나로 모으되 분별력 있게 구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배우는 동시에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직면한 여러 문제는 2천 년 전에 공자가 만났던 문제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당시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분명히 그의 가르침을 못 알아듣거나 너무 어렵다고,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치부하거나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예요. 심지어 배우지도 않으면서 반론만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공자는 그들에게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이 학습법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무지에 대한 걱정, 이렇게 해결하라
    자왈 "학여불급, 유공실지"
    공자가 말하길, "배우기를 항상 모자란 듯이 여기고, 배운 것을 잃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① 급: 미치다, 이르다.
    ② 공: 두려워하다.

    하루는 한 학생이 찾아와서 제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부족한 것 같고, 아무리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많이 해도 모자란 것 같아 걱정이에요."

    주변에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을 겁니다. 시대의 성인, 현인이라 불렸던 공자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많은 것을 깨우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접하게 되는 영역이 넓어지고 그러면서 스스로 잘 모르는, 무지한 부분이 많다는 걸 더 많이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단편적인 지식만 접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지하는 세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는 걸 발견하게 되지요. 이럴 때 사람은 불안하고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걱정과 긴장은 "학여불급, 배우기를 항상 모자란 듯이 여기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학여불급"의 상태는 공자만 걱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도 비슷한 상황을 염려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여키스 도슨 법칙"에 따르면 적당한 각성과 스트레스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며 일의 능률을 올려줍니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치면 거대한 심리적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과도한 긴장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유공실지"는 "터득한 지식을 잃을까 봐 매우 염려하고 걱정한다"는 뜻입니다. 친구 중에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부지런히 공부를 했지만 혹여나 이를 잊어버릴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이 모든 상황은 2천5백여 년 전 공자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마음 상태를 "학여불급, 유공실지"라는 말로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말로 표현한다는 건 그것을 시인하고 용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일단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걸 용납하면 더 깊이, 몰입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자지 않으면서 사색해 본 적이 있는데 유익한 것이 없었으니 배우는 것만 못하더라."

    장자도 배움에 관해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지혜는 무한하다"는 가르침을 남긴 바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지만 지식은 무한합니다.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을 전부 터득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자가 장자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학여불급, 유공실지"를 느낀 후에도 계속 노력해서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전부 배워야 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불쑥 스며드는 염려스러운 마음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에 대한 답은 이미 공자가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심리적으로 일종의 불균형이 나타납니다. "지식을 배우는 건 좋지. 하지만 모든 지식을 전부 알지 못한다면 공부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공부하면 뭐 해. 기억도 못 하는데" 등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걱정되고 불안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공부를 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2천 년 전 사람들도 똑같았습니다. 심지어 공자조차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정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배움의 과정을 즐기면 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천재’라는 합리화의 커튼 뒤로 숨지 마라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공자가 말하길,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히 다르다.“

    ① 근: 비슷하다.
    ② 원: 멀다. 여기서는 다르다의 뜻.

    이 구절은 안데르스 에릭슨과 로버트 풀의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책에서는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모차르트나 파가니니 등 천재로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후천적인 연습을 통해 탄생한 인물이라는 것이죠. 반에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한번 유심히 관찰해 보세요. 그 친구들도 태어날 때부터 똑똑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공부 습관과 방법으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타고난 재능"을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천재들의 탄생 스토리나 성공 스토리에 열광합니다. 그렇게 하면 일단 마음은 편해집니다. 어차피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따라갈 수 없으니 지금 내가 실력이 부족한 건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지요.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군가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둔 이유가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평정심을 잃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천재라서 그래."라고 말하면 바로 안심이 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죠.

    ""내가 안 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사실 "천재"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의 성장을 저해합니다. 공자는 일찍이 사람들 간의 재능이나 천성, 지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정상인의 지능지수는 크게 차이가 없으며, 사람 간에 진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수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말을 살펴봅시다.

    "습상원야(習相遠也)"에서 "습(習)"은 학습과 공부의 뜻 말고도 꾸준한 접촉이나 연습, 사람 혹은 사물에서 받는 영향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히 다르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살펴볼까요? 유명 인사들이 거둔 성과는 대개 집안, 가정과 연관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전적인 DNA의 영향이 아니라 가정환경이나 훈육을 통해 형성된 학습 분위기의 영향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 어릴 때 전자기학과 관련한 많은 지식을 통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집이 전구와 전기 기기를 다루는 장사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삼촌이 매일 부품을 다루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이죠.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 역시 집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덕분에 연관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성장 환경을 제공해 주고, 어떤 지식을 접하게 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새하얀 도화지와 같습니다. 서양의 "백지설"에 따르면 아이들은 하얀 스케치북과 같아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그 위에 그리는 그림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비록 일각에서는 이 "백지설"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사람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접했느냐에 따라서, 어떤 내용을 매일 연습하고, 어떤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은 단순히 타고난 자질이나 천부적인 재능 덕분이 아니라 후천적인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유전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 친구는 타고난 걸요." 등의 핑계는 여러분을 나태하게 만들 뿐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