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지은이 : 판덩 (지은이), 유연지 (옮긴이)
출판사 : 이든서재
출판일 : 2026년 08월



  • 휘둘리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단단한 내면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맹자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자. 삶의 중심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고,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초심의 힘
    잃어버린 ‘본심(本心)’을 찾아서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 또한 내가 원하는 바이다.
    生, 亦我所欲也, 義, 亦我所欲也.

    만약 이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할 것이다.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맹자·고자 상(孟子·告子上) 편』

    미국 철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저서 『월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 및 무형의 족쇄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족쇄 때문에 초심을 저버리고 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어떤 누구도, 어떤 일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소로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은 앞서 맹자의 충고를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한 삶에 아주 가까웠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의 주변 사람들처럼 고액 연봉의 일자리를 찾거나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일을 선택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의 교육 이념이 자신과 맞지 않아 금방 사직했고, 그 뒤로 또 아버지의 연필 공장에서 근무하며 연필 제조법을 배웠다.

    그러나 소로는 금세 고향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을 느끼며 게다가 당시는 경제 발전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때여서 어딜 가나 공장을 볼 수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공장 소음은 일상의 평화를 깨뜨렸다. 결국 소로는 큰 결심을 했다.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월든 호수가로 옮겨가 그곳에서 해가 뜰 때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질 때 일을 멈췄다. 그는 대자연과 하나가 된 삶을 살았다. 자연이 자신에게 주는 무한한 생명의 활력을 느끼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소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생존에 필요한 약간의 에너지만 얻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럼 나머지 시간은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까? 바로 타고난 선량한 마음인 "본심"을 잘 지키고, 태어날 때 주어진 "본성"을 좋은 방향으로 길러내어 자기 내면이 풍요롭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맹자의 주장은 물론이고 소로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대다수 사람의 인생관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현재 많은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온 신경을 쏟고, 외부 환경의 변화를 좇기 바쁘다. 이를테면 남이 무언가를 좋아하면 자신도 그것을 좋아하고, 남이 무언가를 좇으면 자신도 그것을 좇는다. 하지만 그 순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의 육신에 불과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울러 본심을 잃고 본성을 키울 수 없게 되니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역시 불가능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면 나한테 어떤 좋은 점이 있죠?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맹자의 생각은 이렇다. 인생의 기화는 삶과 죽음, 화해와 복해에 지나지 않는다. 화와 복을 초월하는 것, 그리고 생사의 문제를 통찰하는 것 모두 일종의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려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이 짧건 길건 항상 본심을 잘 간직하고, 그 본심을 바탕으로 본성을 키우려는 태도, 즉 존심양성(存心養性)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진정으로 근심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이 일찍 죽을까 오래 살까를 염려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등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과정에만 신경 써야 진정한 화경(化境, 부처가 교화할 만한 세계라는 뜻_역주)에 이를 수 있고, 나아가 내면의 평화와 안정감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매일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아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테고, 심지어는 인생을 운에 맡기려는 생각까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 요행을 바라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되고, 무엇보다 당신의 본심은 더는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본심을 잃은 당신의 삶은 외부의 것들에 좌지우지될 것이고, 마음속은 우울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걱정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으로 끝난다."

    오직 내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내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만 매사 득실을 따지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 몸 이외의 것들은 남들이 관심을 보일 때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내면의 풍족함은 인생의 질과 앞으로의 삶의 방향, 그리고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분수령임을 잊지 말자.


    순리에 따르는 인생의 법칙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듯 인생의 순리를 따르라
    왕께서는 저 곡식의 싹을 아십니까? 칠팔월에 가뭄이 들면 싹은 마르게 됩니다.
    王知夫苗乎? 七八月之間旱, 則苗槁矣.

    하지만 하늘에서 구름을 일으켜 비를 한껏 내려주면 싹은 다시 자라게 됩니다.
    天油然作雲, 沛然下雨, 則苗?然興之矣.

    이 같은 이치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其如是, 孰能禦之?
    -『맹자·양혜왕 상(孟子·梁惠王 上) 편』

    모든 일의 발생과 발전 과정에는 필연적인 원인과 규칙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물의 발전 법칙을 모르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옛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중히 여기고, 자연을 경외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의 본뜻은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사회까지도 섭리를 거스르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다.

    농부와 농작물을 예로 들어보자. 농부는 하늘을 속일 수 없다. 농부가 씨앗을 땅에 뿌리는 척하며 "저는 씨를 뿌렸으니 어서 농작물이 자라게 해주세요."라고 말해도 농부는 가을에 농작물을 수확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농부가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러한 이치를 깨달았다. 『한비자·양권(韓非子·揚權篇)』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군주는 맡은 직무를 조심스럽게 행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며, 치국의 원칙을 잃지 않아야 성인이 될 수 있다.
    謹脩所事, 待命於天, 毋失其要, 乃爲聖人.

    성인이 되는 길은 지혜와 기교를 버리는 과정이다. 지혜와 기교를 버리지 않고서는 영원불변의 도를 이루기 어렵다.
    聖人之道, 去智與巧, 智巧不去, 難以爲常.“


    이 구절의 의미를 살펴보자. "군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신중히 시행하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을 잃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진정한 성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성인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지혜와 기교를 버려야만 나라의 정상적인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유가 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인 맹자도 이러한 이치에 깊게 공감했다. 그래서 위나라 양왕(襄王)이 천하 통일의 근본에 대한 가르침을 구할 때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

    "살인을 멀리하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사실 맹자의 이 말은 당시 군주들이 이해하고 있는 상식에 반하는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알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각각의 제후국들이 자국의 병력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기다. 닥치는 대로 징병이 이뤄졌고 침략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사람을 최대한 많이 죽여야만 자신의 나라가 설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니 "살인을 멀리하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는 맹자의 말은 당시 각국이 내세우던 기조와는 완전히 상반된 발언임이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당시에는 내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이는 곧 내게 상대를 제압할 힘이 없음을 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힘없는 군주를 따르며 혁명을 도모하려 했겠는가?

    그러나 맹자가 하려는 말은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섭리에 대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땅에 벼를 심었는데 여름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면 벼의 싹은 바짝 마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때 많은 양의 빗물이 쏟아져 내린다면 벼의 싹은 금세 생명의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때는 누구도 싹이 자라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는 자연의 섭리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군주 중 살인을 싫어하는 군주는 없었다. 만약 불현듯 어디선가 살인을 하지 않는 군주가 나타나게 되면, 천하의 백성들은 분명 그가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게다가 백성은 한 번 누군가를 따르기 시작하면 폭포수처럼 맹렬한 기세로 힘을 결집시킨다. 과연 이 어마어마한 힘을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이것이 바로 맹자가 "살인을 멀리하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물 흐르듯 자연법칙을 따르는 인생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으며,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역사가 발전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책 소개를 할 때 이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연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법칙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과 싸워서 이기면 당신의 영토는 내 차지가 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사회 법칙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것은 분명 자연법칙에 따라 생겨난 결과다.“

    진시황(秦始皇)이 여섯 나라를 통일한 것을 예로 들어보자. 진시황은 학살자였다. 그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여섯 나라를 멸망시켜 중국 땅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했다. 표면적으로는 무력과 학살로 천하가 하나로 통일되었으니, 이는 맹자의 관점에서 벗어난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했던 진나라도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고, 결국 한(漢)나라가 천하를 안정시켰다. 한나라도 개국 초기에는 얼마간 전쟁이 있었으나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나라를 다스리게 된 시기부터는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었고 더 이상 전쟁도 하지 않았다. 짐작했겠지만, 문제와 경제의 치세 이후 한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은 기본적으로 조정 안에서만 일어났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로 통일된 나라"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한나라의 호시절은 언제 끝났을까? 한나라의 태평성대는 무제(武帝)이후로 끝났다. 무제는 일단 자신의 업적을 크게 남기기 위해 많은 일을 벌였다. 또한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습관적인 살인이었다. 한무제는 신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가차 없이 사형에 처했다. 당시의 이런 단편적인 상황만 보아도 한 왕조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자연법칙과 사회 법칙이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인간의 삶이 사회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간을 길게 두고 보면 결국 사람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사회 법칙만 알고 자연법칙은 모른다. 내가 일상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은 한번에 안정된 직업을 찾길 원하거나, 어떤 일을 맡으면 그저 변함없이 그 일만 계속 하기를 원하는 다. 이때는 사회 법칙이 작용한다.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위치를 얻게 되고 타인의 부러움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을 여러 해 다니는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그로 인해 날마다 공허한 마음이 든다면, 언젠가는 분명 직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이것은 곧 자연법칙에 따른 결과다.


    선택의 지혜
    비워야 채울 수 있는 인생이라는 상자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있어야 이후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人有不爲也, 而後可以有爲.
    -『맹자·이루 하(孟子·離婁 下) 편』

    인생은 본래 끊임없이 선택하는 과정이다. 맹자는 선택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있어야 이후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은 포기하고 하지 않아야만 그 이후에 다른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으니,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다면 반드시 어떤 일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란 말에는 세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기회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다. 창업 과정에서 나는 식사 대접을 받을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매번 식사 자리에 갈 때 유혹에 휩싸였다. 예컨대 술자리에서 어떤 이에게 괜찮은 땅이 하나 있으니 같이 부동산 투자를 해 보자는 제안을 받는 식이다. 일상에서 또는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사귀다 보면 누구나 기회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기회가 돈을 벌 기회였을 수도 있고, 승진할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모든 기회가 다 똑같은 기회는 아니다. 어떤 기회는 함정일 수 있다. 대개 기회와 함정은 한 끗 차이다. 함정에 빠지게 되면 모든 기회가 다 좋게만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자기 주위에 셀 수 없이 많은 덫을 파놓은 꼴이 되고 만다.

    "우물 파는 사람"이라는 만화가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우물을 파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부터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땅을 파도 물이 보이지 않자 그는 위치를 바꿔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또 위치를 바꿔 계속 땅을 팠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며 땅을 팠지만 단 하나의 우물도 파지 못했다. 주변에는 온통 물을 찾겠다고 파놓은 수많은 구덩이뿐이었다.

    한편 또 다른 어떤 사람도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팠다. 하지만 그는 처음 앞의 사람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땅을 파지 않았다. 그는 정확하게 어떤 한 위치를 찾은 뒤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땅을 팠다.

    이 이야기는 "모든 기회를 다 잡을 필요는 없다. 어떤 기회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고 집중력을 분산시킬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둘째, 자신의 "원칙"과 자기가 정한 최소한의 "기준"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면 안 되는 일은 결단코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업을 하다 보면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고객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할 때가 있다. 사업주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자신의 원칙과 자기가 정한 최소한의 기준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행위는 법에 저촉될 수 있다. 진정으로 사업파트너에게 만족을 주는 방법은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치를 만들어주고 고객이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고객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업도 오랫동안 이어나갈 수 있다.

    셋째, 전략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워런 버핏은 과거에 자신의 개인 비행기 조종사에게 25가지 목표를 종이에 적어보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가 적은 목표들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목록에서 하나씩 삭제하라고 했다. 워런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 목록에 있는 일들이 당신의 주의를 끌어서는 안 돼요." 결국 그 조종사는 목표를 5개만 남겼다.

    이것이 바로 워런 버핏의 시간 관리 법칙이다. 그는 20%의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차순위 일은 결단코 하지 않았다. 전략에 집중한다는 것은 승리가 가장 유력한 작전지에 총탄을 배치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한다면 그보다 더 강한 적과 맞선다 해도 승리할 기회가 있다.

    *삼천포로 빠지지 않는 우직한 "집중"의 저력
    우리는 항시 맑은 상태의 두뇌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욕망과 사소한 일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쓸데없는 욕망을 끊어내면 자연스럽게 가고자 하는 길이 정확하게 보일 것이고 목적한 바를 이룰 때까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선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기적
    매 순간 시간과 하나 되는 참 즐거움을 즐겨라
    악(樂)의 핵심은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樂之實, 樂斯二者.

    즐길 줄 아는 경지에 이르면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樂則生矣, 生則惡可已也.

    그런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면, 그 마음을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손과 발이 춤추게 된다.
    惡可已, 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

    -『맹자·이루 상(孟子·離婁 上) 편』

    고대 순임금에 관한 전설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순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섬기고 공경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후처를 새로 들였는데, 그녀는 순을 굉장히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순은 여전히 아버지와 계모에게 효를 다했으며, 계모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동생까지 살뜰히 보살폈다. 후에 순의 이야기를 들은 요임금은 그의 효성을 인정하는 의미로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냈으며, 나중에는 순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위했다.

    후대의 성인들과 학자들은 순임금의 말과 행동이 바로 "인애(仁愛)"의 본보기라고 말했다. 『맹자』에서도 "인의예지악(仁義禮智樂)"에 관한 내용을 설명할 때 순임금이 예시로 자주 거론된다. 순임금은 부모와 형제에게서 학대받았지만, 진심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했으며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

    『맹자』에서는 이것이 바로 "인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사람이 항상 마음속에 "인애"를 품고, 그 마음을 꾸준히 잘 키워 주변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게 된다면 진정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즐거움이 한번 시작되면 계속해서 이어져 멈추지 않게 되고,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발로 땅을 밟고 손으로 춤을 추어도 박자에 척척 들어맞듯이 인생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진정한 즐거움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다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맹자는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즐거움"이 바로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그럼 즐거움에도 가짜가 있을까? 일시적인 쾌락이 바로 가짜 즐거움이다. 나는 예전에 강의에서 즐거움의 경지를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첫 번째 경지는 남을 이기는 즐거움이다. 이를테면 남의 집이 내 집보다 작은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것, 남의 차가 내 차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것 등 이런 감정이 모두 가짜 즐거움, 낮은 수준의 즐거움에 속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이런 것들로부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 경지는 나를 이기는 즐거움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점점 나아지는 자신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을 말한다. 나를 이기는 즐거움은 앞서 남을 이기는 즐거움보다 한층 더 높은 경지의 즐거움이다.

    세 번째 경지는 바로 무조건적인 즐거움이다. 이런 상태의 즐거움이 바로 맹자가 말한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즐거움"이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얻지 않아도, 혹은 내가 무엇을 차지하지 않아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즐거움은 오직 우리 자신의 내면이 정념(正念, 모든 의식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되어 있어 마음의 평안한 상태_역주) 상태일 때 매 순간 현재와 하나가 되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