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을 마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의 방랑을 그린 《오디세이》는 서양 문학의 모험과 귀향 이야기의 위대한 원형이다. 폴리페모스, 키르케, 세이렌, 스킬라와 카륍디스 등 수많은 신화적 존재와 맞닥뜨리는 오디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때로는 실수하고 좌절하면서도 지략과 끈기로 살아남는 인간적인 영웅이다. 무엇보다 그의 목표는 세상을 정복하거나 새로운 왕국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동시에 집과 가족, 기다림과 귀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의 방랑은 28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낯설지 않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누구나 길을 잃거나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떠밀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와 유혹, 상실을 겪으면서도 끝내 이타카를 잊지 않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길을 잃어본 사람, 누군가를 기다려본 사람,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해본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의 기나긴 방랑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끝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 저자 호메로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서양 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 의 저자로 전해진다. 정확한 생몰 연대와 출생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기원전 8세기 무렵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오니아 지방의 스미르나와 키오스 등이 그의 출생지로 거론되어왔다. 고대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음유시인이었다는 전승이 널리 퍼졌지만 이를 역사적 사실로 확인할 자료는 없다. 오늘날까지도 호메로스가 실제 한 명의 시인이었는지, 오랫동안 구전되어온 여러 영웅 이야기를 한 사람 또는 여러 시인이 정리한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역자 이선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불어과를 졸업하고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서 책 만드는 일을 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는 『성인을 위한 이솝우화』 『스타가 될 거야』 『마틸드의 텔레비전 없는 날』 『너는 좋은 친구야』 『대통령 아저씨와 저녁을』 등이 있다.
■ 차례
엮은이의 말?_2800년을?건너온?가장?위대한?귀향?이야기
《오디세이》가?시작되기?전에?있었던?일들
《오디세이》의?주요?등장인물?사전
제1권◆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텔레마코스
제2권◆텔레마코스, 바다로 나서다
제3권◆필로스에서 듣는 아버지의 소식
제4권◆스파르타에서 밝혀진 오디세우스의 행방
제5권◆마침내 시작된 오디세우스의 귀향
제6권◆오디세우스와 나우시카아의 만남
제7권◆파이아케스 왕궁에 들어선 오디세우스
제8권◆트로이의 노래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
제9권◆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만나다
제10권◆바람의 섬을 지나 마녀 키르케에게
제11권◆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다
제12권◆세이렌과 스킬라, 카륍디스
제13권◆스무 해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다
제14권◆충성스러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제15권◆텔레마코스, 마침내 이타카로 돌아오다
제16권◆스무 해 만의 부자 상봉
제17권◆거지로 변장해 자신의 집에 들어가다
제18권◆모욕을 견디며 복수의 때를 기다리다
제19권◆페넬로페와 마주 앉은 오디세우스
제20권◆복수를 앞둔 마지막 밤이 지나가다
제21권◆누구도 당기지 못한 오디세우스의 활
제22권◆마침내 시작된 구혼자들을 향한 복수
제23권◆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재회
제24권◆마지막 귀환과 이타카의 평화
2026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다시 주목받는 2800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 원작의 핵심 이야기와 문학적 매력은 살리고 반복되는 설명은 덜어내,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한 성인용 편역본이다.
오디세이
텔레마코스, 바다로 나서다
이타카의 민회를 열다
아침이 밝자 텔레마코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어깨에 칼을 둘렀습니다. 텔레마코스는 전령들에게 아카이아 사람들을 민회로 불러 모으게 했습니다.
“여러분을 이곳에 불러 모은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제가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두 가지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먼저 훌륭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분을 다스리면서 친아버지처럼 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우리 집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유력한 집안 아들들이 제 어머니에게 억지로 구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식으로 어머니의 아버지 이카리오스에게 찾아가 혼인을 청하고 혼인 예물을 마련하는 대신 날마다 우리 집으로 몰려옵니다.
그들은 우리 집의 소와 양과 염소를 잡아먹고, 포도주를 마음껏 마십니다. 이렇게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 재산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저들을 집에서 몰아낼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보고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웃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고 신들의 분노를 생각하십시오. 제우스께서 저들의 잘못에 벌을 내리실 수도 있습니다.
제 아버지 오디세우스가 여러분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그래서 그 원한을 제게 갚으려는 것입니까? 차라리 여러분이 직접 제 가축과 재산을 빼앗아간다면 언젠가는 돌려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혼자들이 날마다 제 재산을 먹어치운다면 저는 어디에 가서 돌려달라고 요구해야 합니까?”
텔레마코스는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홀을 땅에 던졌습니다. 민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고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독수리가 알린 오디세우스의 귀환
그때 멀리까지 목소리를 올리는 제우스가 높은 산봉우리에서 두 마리의 독수리를 날려 보내왔습니다. 독수리들은 바람처럼 빠르게 나란히 날아오다가, 민회가 열린 곳의 하늘에 이르자 날개를 세차게 퍼덕이며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습니다.
두 독수리는 아래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다가 서로의 뺨과 목을 발톱으로 할퀴었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집과 도시 위를 지나 오른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놀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했습니다.
그때 새의 움직임을 보고 운명을 예언하는 데 뛰어난 노인 할리테르세스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타카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특히 구혼자들에게 말하고 싶소. 커다란 재앙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소. 오디세우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오. 그는 이미 가까운 곳에 있으며 구혼자들 모두에게 죽음과 파멸을 가져올 것이오. 그 재앙은 이타카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칠 수 있소.
나는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오. 오래전 오디세우스가 아르고스인들과 함께 트로이로 떠날 때에도 그의 운명을 예언했소. 수많은 고난을 겪고 동료들을 모두 잃은 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스무 해째 되는 해에 고향으로 돌아오리라고 나는 말했소. 이제 그 일이 이루어지려 하고 있소.”
아테나가 여행을 돕다
“텔레마코스여, 이제 그대가 용기와 지혜를 잃지 않는다면 앞으로 비겁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힘과 지략을 물려받았다면 그대가 하려는 일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구혼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어리석고 정의를 알지 못하며, 자신들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대는 여행 준비를 하십시오. 나는 그대의 아버지와 오랜 친구이니 빠른 배를 마련하고 함께 가겠습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 구혼자들과 어울리는 척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식량을 준비하십시오. 항아리에는 포도주를 담고, 자루에는 보릿가루를 마련하십시오. 그동안 나는 사람들을 모아 배를 준비하겠습니다.”
아테나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필로스에서 듣는 아버지의 소식
“네스토르 왕이여, 우리는 이타카에서 왔습니다. 제가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개인적인 일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 오디세우스에 관한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당신과 함께 트로이에서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트로이에서 싸운 다른 사람들의 운명은 대부분 알려졌지만, 제 아버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보셨거나 떠돌아다니는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들으셨다면 제게 숨기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사실대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가 트로이에서 당신에게 도움이 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기억해 제게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네스토르는 텔레마코스의 말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친구여, 그대가 트로이에서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구려. 우리는 그곳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소.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리품을 찾아 바다를 돌아다닐 때도 그랬고, 프리아모스의 성을 둘러싸고 싸울 때도 그랬소. 수많은 훌륭한 전사가 그곳에서 죽었소. 아이아스도, 아킬레우스도, 파트로클로스도,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들 안틸로코스도 그곳에서 죽었소.
그 모든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려면 몇 년이 걸려도 끝내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소. 트로이에서 아카이아인 가운데 지략으로 오디세우스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은 없었소. 그대의 아버지는 온갖 계책에서 누구보다 뛰어났소.
그런데 그대가 말하는 것을 들으니 놀랍구려. 그대의 말하는 방식이 아버지와 매우 닮았소. 이렇게 젊은 사람이 그토록 닮은 말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요.
트로이에 있는 동안 오디세우스와 나는 민회에서도 전쟁터에서도 좀처럼 의견이 다르지 않았소. 우리는 언제나 아르고스인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했소. 그러나 프리아모스의 높은 성을 무너뜨린 뒤 제우스는 아카이아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귀환길을 마련해놓았소. 모든 사람이 현명하거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신들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소.
트로이가 함락된 뒤 아테나는 아카이아인들에게 분노했소. 그 무렵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는 귀환을 두고 서로 의견이 갈렸소. 두 사람은 아카이아인들을 민회로 불러 모았지만, 때도 적절하지 않았고 모두 포도주를 마신 뒤였소.
메넬라오스는 가능한 한 빨리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소. 그러나 아가멤논은 사람들을 남겨두고 아테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치려 했소.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운데 절반은 배를 띄워 떠났고, 나머지는 아가멤논과 함께 남았소. 우리 일행은 테네도스에 이르러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소. 하지만 그곳에서 제우스가 다시 우리 사이에 다툼을 일으켰소. 오디세우스는 배를 돌려 아가멤논에게 돌아갔고, 나는 디오메데스와 함께 계속 고향을 향해 나아갔소.
메넬라오스도 뒤따라왔소. 우리는 여러 곳에서 바다를 건널 길을 두고 신들에게 징조를 구하며 항해했소. 나는 큰 어려움 없이 필로스로 돌아올 수 있었소. 하지만 그날 이후 오디세우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아카이아인들 가운데 누가 무사히 돌아왔고 누가 돌아오지 못했는가 하는 것뿐이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만나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다
나는 큰 부대에 그 포도주를 가득 담았습니다. 음식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사내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법도 정의도 알지 못하는 자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곧 동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양 떼를 몰고 풀을 먹이러 나간 뒤였습니다.
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선반에는 치즈가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어린 양과 염소들이 나이에 따라 나눠 있어있었습니다. 먼저 태어난 것들과 그 다음 태어난 것들, 갓 태어난 것들이 따로 있었습니다. 우유를 짜서 담아놓은 그릇과 통도 가득했습니다.
동료들은 내게 말했습니다.
“어서 치즈를 가지고 돌아갑시다. 그리고 어린 양과 염소도 배로 몰고 갑시다. 곧바로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동굴의 주인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낯선 사람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결국 나의 그 선택은 동료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도 아니’의 계략
“키클롭스여, 제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으니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손님의 선물을 주십시오. 제 이름은 ‘아무도 아니(Nobody)’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든 친구도 저를 ‘아무도 아니’라고 부릅니다.”
키클롭스가 잔인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아니’를 다른 동료들보다 마지막에 먹어주겠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먹고, 너를 맨 마지막에 먹겠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손님의 선물이다.”
말을 마친 키클롭스는 뒤로 쓰러졌습니다. 굵은 목이 한쪽으로 꺾였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입에서는 포도주와 함께 먹었던 사람의 살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곧바로 올리브나무 막대를 꺼내 불 속에 넣었습니다. 동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물러서는 사람이 없도록 격려했습니다.
막대 끝이 불 속에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푸른 나무였지만 불길 속에서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했습니다. 나는 막대를 불에서 꺼냈습니다. 네 명의 동료가 나를 도왔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우리는 날카롭게 달군 막대 끝을 키클롭스의 눈에 찔러 넣었습니다. 나는 위에서 막대를 붙잡고 힘껏 돌렸습니다. 마치 배를 만드는 목수가 두꺼운 나무판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을 때 아래의 사람들이 끈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송곳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우리는 키클롭스의 눈 속에서 불에 달군 막대를 계속 돌렸습니다.
눈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폴리페모스는 동굴 입구에 앉아 밖으로 나가는 숫양들의 등을 하나씩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하지만 양의 배 아래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내가 매달린 가장 큰 숫양이 마지막으로 동굴 입구에 다가갔습니다. 폴리페모스는 숫양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숫양아, 어째서 오늘은 가장 마지막에 동굴을 나가는 것이냐? 너는 언제나 양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드러운 풀을 뜯으러 나갔고, 가장 먼저 시냇물에 가서 물을 마셨으며, 저녁이면 가장 먼저 우리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오늘은 마지막이구나. 혹시 주인의 눈이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냐? 그 사악한 자와 동료들이 포도주로 내 정신을 흐리게 한 뒤 내 눈을 멀게 했다. ‘아무도 아니’라는 그자는 아직 내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그자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려줄 텐데. 그러면 그의 머리를 바위에 내리쳐 동굴 안에 뇌수를 흩뿌릴 것이다. 그때야 ‘아무도 아니’가 내게 준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세이렌과 스킬라, 카륍디스
세이렌의 노래와 두 괴물을 지나가다
배가 세이렌들이 사는 섬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바람이 멎었습니다. 바다는 고요해졌고, 파도도 사라졌습니다. 어떤 신이 바다를 잠재운 것 같았습니다. 동료들은 돛을 내려 배 안에 넣고 노를 잡았습니다. 나는 커다란 밀랍 덩어리를 칼로 잘게 자른 뒤 두 손으로 눌러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은 밀랍은 금세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동료들의 귀를 하나씩 막았습니다. 동료들은 내 손과 발을 밧줄로 묶어 돛대에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를 저었습니다. 배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만큼 세이렌들의 섬 가까이 다가가자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듣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눈썹과 눈으로 동료들에게 나를 풀어달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계속 몸을 숙여 노를 저었습니다. 배가 세이렌들의 섬을 지나 그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자 동료들은 귀를 막고 있던 밀랍을 빼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을 묶었던 밧줄도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세이렌들의 섬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앞쪽에서 검은 연기와 거대한 파도를 보았습니다. 무서운 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동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손에서 노를 놓쳤습니다. 노들이 바닷물에 부딪치며 배 옆에서 흩어졌고,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나는 동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한 사람씩 용기를 북돋웠습니다.
“친구들이여, 우리가 위험을 겪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험이 키클롭스가 우리를 동굴에 가두었을 때보다 더 끔찍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도 내 용기와 지혜와 계책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내 말을 따르십시오. 자리에 앉아 힘껏 노를 저으십시오. 제우스께서 우리에게 이 죽음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주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동료들에게 카륍디스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스킬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킬라가 여섯 사람을 잡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동료들이 두려움에 노를 놓고 배 안으로 숨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키르케가 무기를 들지 말라고 한 말을 잊었습니다. 갑옷을 입고 긴 창 두 자루를 손에 들었습니다. 스킬라가 나타나 동료들을 잡아가려 할 때 싸워볼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배 앞쪽에 서서 스킬라가 사는 절벽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어두운 바위 곳곳을 바라보다 눈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좁은 물길로 들어갔습니다. 한쪽에는 스킬라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무서운 카륍디스가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카륍디스가 물을 토해낼 때는 커다란 솥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바다가 요란하게 솟구쳤습니다. 물보라가 높이 솟아 양쪽 절벽 꼭대기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카륍디스가 다시 바닷물을 빨아들이자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겼습니다. 바위 주위에서는 무서운 소리가 울렸고 깊은 바닥의 검은 모래가 드러났습니다. 동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카륍디스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죽음이 그곳에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스킬라가 배에서 동료 여섯 명을 낚아채갔습니다. 그들은 배 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배와 동료들을 바라보다가 그들의 손과 발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스킬라에게 잡혀가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낚시꾼이 긴 낚싯대로 작은 물고기들을 끌어올려 바위 위에 내던질 때 물고기들이 몸부림치는 것처럼 동료들은 스킬라의 동굴 입구로 끌려 올라갔습니다. 스킬라는 동굴 앞에서 그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동료들은 죽어가면서 비명을 지르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내가 바다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보다 더 가엽고 끔찍한 광경은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스킬라와 무서운 카륍디스가 있는 좁은 바다를 빠져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