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관계, 양심과 정의, 행복과 부에 관한 삶의 지혜를 살펴본다. 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에 흔들리기 쉽다. 저자는 스미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는 마음과 부와 성공을 좇는 욕망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는 ‘공정한 관찰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은 ‘도덕감정론’을 비롯한 여러 저술을 통해 공감과 인정 욕구, 분노와 원망, 양심과 정의, 돈과 행복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타인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정의의 선을 넘지 않는 태도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부와 지위만으로 행복을 판단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보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타인의 평가와 성공에 흔들리거나 행복한 삶의 기준을 찾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깊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애덤 스미스
저자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1723년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도덕철학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인간의 감정과 도덕 판단, 사회질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평생 탐구했으며, 철학과 윤리학은 물론 법학과 정치 경제학,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젊은 귀족의 가정교사로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당대의 사상가들과 교류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시야를 더욱 넓혀주었다.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해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동감’과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도덕적 판단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1776년에는 ‘국부론’을 발표해 분업과 교환, 시장과 노동, 부의 형성 원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근대 경제학의 토대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경제적 부 자체에 머물지 않았다. 인간이 타인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며, 욕망과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무엇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는 오늘날까지 경제학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1790년 에든버러에서 세상을 떠났다.
■ 역자 최민철
역자 최민철은 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과 철학 고전을 꾸준히 읽고 공부하며,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과 삶의 지혜를 오늘의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원문의 의미와 결을 살리면서도 자연스럽고 간결한 우리말로 옮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차례
엮은이의 말_ 경제학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인간과 삶의 이야기
1장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
2장 정의와 양심으로 나를 돌아보는 법
3장 감정을 다스리고 자신을 지키는 법
4장 행복과 부, 타인의 시선을 바라보는 법
5장 좋은 관계와 공동체를 만드는 법
6장 신중하게 배우고 판단하는 법
7장 일과 돈, 직업을 대하는 법
8장 생각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애덤 스미스의 인생 수업』은 『도덕감정론』을 중심으로 애덤 스미스가 여러 저술에 남긴 생각을 두루 살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린다. 인간의 감정과 관계, 정의와 양심, 행복과 부에 관한 그의 사유를 한 권에 담아 경제학 교과서 속에 갇혀 있던 애덤 스미스를 인간과 삶을 깊이 탐구한 철학자로 새롭게 만나게 해준다.
애덤 스미스의 인생 수업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
내 감정과 닮을수록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때 우리는 그가 처한 상황을 상상한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놓인 자신이라면 무엇을 느낄지를 떠올린다. 그의 감정과 우리가 상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서로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고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그의 감정이 우리가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나 작다면 그것을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의 감정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가, 함께할 수 없는가의 문제다. 이처럼 감정의 적절함은 그 감정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타인의 감정에 함께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만하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고, 그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함께 분노하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좋아한다. 그의 마음은 함께 있는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사람의 친구들은 그의 따뜻한 동감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함께 슬퍼해주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분노에 함께하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만 마음을 쓰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는 무감각한 사람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특히 불행을 겪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그의 냉담함은 더욱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평범하게 옳은 행동과 뛰어난 덕은 다르다
누군가 보통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로 적절하게 행동했다고 해서 언제나 특별한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행동과, 평범한 사람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뛰어난 행동은 구별된다.
큰 고통과 위험 속에서도 감정을 훌륭하게 억제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에 평범한 수준을 넘어 깊이 함께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단순한 승인 이상의 감탄을 느낀다. 뛰어난 덕은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 드러난다.
작은 즐거움에는 다른 사람이 쉽게 동감한다
큰 성공을 자랑하는 모습에는 쉽게 마음을 함께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즐거움에는 자연스럽게 동감한다. 큰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평범한 생활에서 얻는 작은 만족은 그런 감정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도 비교적 쉽게 함께 할 수 있다.
큰 행운을 얻었을 때는 자신의 기쁨을 어느 정도 절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은 그렇지 않다. 전날 저녁 누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음식이 좋았는지, 대화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재미있었는지 같은 사소한 일을 기쁘게 이야기해도 듣는 사람은 그 만족에 쉽게 함께한다. 평범한 생활을 채우는 이런 작은 즐거움에는 질투가 끼어들 여지도 적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밝은 성품은 그 사람만 즐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특별한 행운이 없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즐거움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유쾌한 인상을 준다. 그의 기쁨이 크거나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도 부담 없이 그 감정에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주변 사람도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즐거움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 사소한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그의 기분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조금 더 밝고 유쾌하게 만든다.
젊은 사람의 생기와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끄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젊음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쁨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전해져, 잠시 자신의 불편과 걱정을 잊고 예전에 느꼈던 즐거운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정의와 양심으로 나를 돌아보는 법
선행은 강요할 수 없고 감사의 보답도 강제할 수 없다
적절한 동기에서 나온 선행은 감사와 보답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선행은 언제나 자유로운 것이어서,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힘으로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는 없다.
은혜를 받고도 아무런 감사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비난받을 수 있다. 특히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는데도 외면한다면 사람들은 그의 배은망덕을 강하게 비난한다. 감사에서 비롯되어야 할 보답을 힘으로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하다.
원한은 정의를 지키는 방어의 감정이다
원한은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감정처럼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고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며, 이미 가해진 해악에 대응하게 한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부당함을 후회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처벌을 두려워해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
그러므로 원한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원한을 드러낼 때에는 관찰자도 그 감정에 함께할 수 없다.
사랑 없이도 사회는 서지만 정의 없이는 무너진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간다면 사회는 더 행복하고 편안해진다. 사랑과 감사, 우정과 존중에서 서로 필요한 도움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때 공동생활은 더 즐거워진다. 그러나 서로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더라도 각자가 정의의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이 언제든 서로 해치고 침해할 수 있다면 사회는 오래 존속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원한과 적대가 생기면 사회를 묶고 있던 관계도 끊어지기 때문이다.
선행은 사회라는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과 같지만, 정의는 그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과 같다. 기둥이 무너지면 거대한 사회라는 구조물도 함께 무너진다.
감정이 부족해도 의무감은 행동을 이끈다
큰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마땅한 만큼의 감사가 저절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는 행동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알고 있다면, 마음속 감정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
인간이 언제나 올바른 감정에 이끌려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애정과 감사가 부족한 순간에도 무엇이 마땅한 행동인지를 알고 그 규칙을 존중하는 의무감이 행동을 이끌 수 있다.
예의처럼 작은 일에서도 의무감은 작용한다. 다만 부모 자식간 애정이나 친구 간 우정처럼 그 관계에 어울리는 감정이 요구될 때는 의무감만으로 그 감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른 덕의 규칙은 느슨해도 정의의 규칙은 정확하다
감사와 우정, 관대함에는 정확한 규칙을 정하기 어렵다. 친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받은 은혜에 얼마만큼 보답해야 하는지를 모든 경우에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사람과 상황, 관계에 따라 적절한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사의 규칙은 다른 덕에 비하면 비교적 분명해 보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무엇이 적절한 보답인지 정확히 정하기 어렵다. 내가 아플 때 누군가 곁에서 돌봐주었다고 해서 그가 아플 때 반드시 똑같은 기간 동안 돌봐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돈을 빌려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그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얼마를 빌려주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주어야 하는지는 서로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덕의 규칙은 어느 정도 느슨하고 불확정적이다. 우리가 어떤 완전함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보여주지만, 모든 경우에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지정하지는 않는다. 우정과 인간애, 관대함의 규칙은 감사의 규칙보다도 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의의 규칙은 훨씬 정확하다. 다른 사람에게 10파운드를 빚졌다면 갚기로 약속한 때나, 상대가 요구할 경우 정확히 10파운드를 갚아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언제,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까지 정확하게 정할 수 있다.
정의의 규칙은 문법의 규칙과 비슷하다. 문법은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정할 수 있지만, 훌륭한 글을 쓰는 법은 몇 가지 규칙만으로 완전히 정할 수 없다.
신중하게 배우고 판단하는 법
자신을 판단할 때도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자신의 성품과 행동을 판단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가지 기준에 비추어본다. 하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한 적절성과 완전함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도달하는 수준이다.
완전함의 기준에 비추어보면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도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일반적인 수준과 비교하면 자신이 그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현명하고 덕 있는 사람은 이 두 기준 가운데 완전함의 기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신중함은 먼저 가진 것을 지키려 한다
신중함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안전이다. 사람은 더 나은 처지로 올라갈 때 얻는 기쁨보다 좋은 처지에서 나쁜 처지로 떨어질 때 더 큰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은 건강과 재산, 지위와 평판을 위험에 쉽게 내맡기지 않는다.
자신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려 할 때도 손실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일과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쌓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지출을 절제한다. 신중한 사람은 현재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미래의 더 크고 오래가는 만족을 위해 미룰 줄 안다.
진실하되 모든 것을 말할 필요는 없다
신중한 사람은 거짓이 드러났을 때 따르는 수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실과 다른 말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하다는 것이 자신의 모든 생각과 사정을 누구에게나 털어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자신의 판단도 경솔하거나 불필요하게 내놓지 않는다.
신중한 사람의 말에는 진실함과 절제가 함께 있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업이 깊어질수록 교육이 더 필요해진다
분업이 발전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게 된다. 이런 생활이 지적 능력을 충분히 쓰고 기를 기회를 줄인다면, 그만큼 교육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이런 상태가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사회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학문까지 가르치기는 어렵더라도 읽고 쓰고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은 어린 시절에 익히게 할 수 있다.
일과 돈, 직업을 대하는 법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망은 조용하지만 오래간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 즉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대체로 차분하고 격정적이지 않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끊임없이 인간과 함께한다.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는 가장 흔하고 분명한 방법은 재산을 늘리는 것이다.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려는 욕망은 때론 매우 강하게 일어나지만 대개 순간적이고 간헐적인 반면,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망은 지속적이고 한결같다. 평생을 놓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절약하려는 마음이 소비하려는 마음보다 훨씬 우세하게 작용한다.
노동하는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므로 임금은 적어도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노동을 계속하면서 먹고 입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다면 그 상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노동자의 임금은 그 자신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도에 그쳐서도 안 된다.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이 필요하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수요는 한 나라의 수입과 자본이 늘어날수록 커진다. 따라서 노동임금이 높아지는 데 중요한 것은 나라가 이미 얼마나 부유한가보다 그 나라의 부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가이다.
임금의 크기는 돈의 액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노동자가 그 임금으로 얼마나 많은 생활필수품과 편의를 얻을 수 있는지도 함께 보아야 하며, 같은 돈을 받아도 필요한 물건의 가격이 달라지면 실제 생활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큰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을 차지한다. 그들 대다수의 형편이 좋아지는 일을 사회 전체에 불리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사회도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에 있다면 번영하고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사회 전체를 먹이고 입히며 살 곳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제대로 먹고 입고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서 몫을 얻는 것이 공평하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
좋은 글은 먼저 뜻이 분명해야 한다
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좋은 문체에는 명료성이 필요하며, 표현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식이 많아도 독자가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라고 하기 어렵다.
생각을 간결하고 적절하며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뜻을 흐리게 만드는 장식에서가 아니라,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데서 생긴다.
비유나 화려한 수사도 그 자체로 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말하려는 생각과 감정에 잘 맞고 그것을 분명 하게 전달할 때에만 표현의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다.
좋은 설명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여러 현상을 설명할 때마다 각각의 원리를 하나씩 제시할 수도 있고, 하나 또는 몇 가지 원리를 먼저 세운 뒤 그 원리로 여러 현상을 설명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서로 다른 현상들이 자연스러운 순서와 연결 속에서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뉴턴식 방법은 처음에 알려졌거나 증명된 몇 가지 원리를 세우고, 그 원리에서 여러 현상을 설명해 하나의 사슬로 연결한다. 쉽게 설명되지 않던 현상들이 하나의 원리에서 차례로 설명되는 모습을 보는 데서도 즐거움이 생긴다.
철학은 흩어진 현상을 하나의 질서로 잇는다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 흩어져 있으면 상상력은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기 어렵다. 철학은 이런 현상들을 이어주는 연결 원리를 찾으려 한다.
서로 떨어져 있던 현상들이 공통된 원리 아래에서 이어지면 하나의 질서 있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보이지 않는 사슬이 흩어진 현상들을 이어주듯, 철학은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현상들을 하나의 설명 속에 연결한다.
이렇게 현상들 사이의 빈틈이 메워지면 상상력은 그 연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다. 혼란스럽게 보였던 현상에 질서가 생기면서 마음도 평온과 안정을 되찾는다.
사람은 질서 있는 체계에 마음이 끌린다
사람은 어떤 것이 실제로 쓸모 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분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질서 있는 체계를 이루는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때로는 그 체계가 가져다줄 실제 이익보다 여러 수단이 목적을 향해 정확하고 조화롭게 맞물려 움직이는 모습 자체에 더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런 마음은 철학적 설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흩어져 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복잡해 보이던 것이 하나의 질서 속에 자리를 잡을 때, 상상력은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질서와 연결에서 만족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