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개 기억력이 좋을수록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잘 보고, 약속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는 능력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이와다테 야스오 교수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오히려 “잘 잊는 뇌가 더 건강하고 똑똑하다.”라고 말한다. 뇌 건강을 관리하고 뇌 수명을 늘리고 싶다면 망각이 뇌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해 온 ‘기억 중심의 뇌 사용법’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억은 뇌의 기능 중 하나일 뿐이며, 뇌는 실제로 불필요한 기억을 스스로 지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제시된다.
■ 저자 이와다테 야스오
1957년 도쿄 출생. 일본 치바대학 뇌신경외과학 교수로 28년간 재직하였고, 현재 히가시치바 메디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치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신경외과 임상과 기초 연구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 왔으며, 특히 현재는 ‘기억과 망각’의 관계를 아동·노년기 인지 연구와 연결해 ‘정보 과잉 시대를 위한 뇌의 생존 전략’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직관의 폭발』, 『뇌의 수명을 결정하는 글리아 세포』 등 다수의 뇌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 저자 곽현아
국민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일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였다. 현재는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1장ㆍ망각은 ‘뇌의 진화’
애당초 기억이란 무엇인가?
일주일 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노화로 인한 망각은 뇌가 진화했다는 증거
망각의 대상은 ‘일화 기억’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기억은 축적된다
뇌와 기억의 작동 원리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해마의 ‘단기 기억’에서 대뇌의 ‘장기 기억’으로
왜 해마에서 새로운 신호가 만들어질까?
2장ㆍ뇌가 가진 ‘망각하는 힘’
망각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얻다
건망증이 심각했던 셜록 홈스
기억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다
기억하기 위해 오래된 기억을 소멸시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망각이 진행된다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기억
3장ㆍ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그 기억
신경 회로에 편입된 기억
정동을 일으킨 사건은 잊을 수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어떻게 잊을까?
기쁨의 기억
고령자는 좋은 기억을 저장하기 쉽다
기억은 현재의 나를 비추는 거울
4장ㆍ뇌와 신체는 함께 움직인다
뇌 또한 몸의 일부
뇌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시스템으로 나뉜다
분산계가 뇌를 일체화한다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많은 기억
많은 뉴런을 동시에 움직이는 또 하나의 시스템
뇌를 각성시키는 노르아드레날린
설렘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정신을 안정시키는 세로토닌
신체가 있기에 뇌가 작동한다
뇌는 무의식중에 신체의 움직임을 지배한다
5장ㆍ뇌 수명을 늘리다
‘망각하는 뇌’를 만드는 법
많이 사고하는 사람은 망각한다
뇌는 사용할수록 좋다?
뇌를 균형 있게 사용하자
뇌 수명을 좌우하는 수면과 식사
당뇨병은 뇌도 파괴한다
운동이 뇌를 작동시킨다
음악은 기쁨의 신경 회로를 활성화한다
시각 예술은 뇌를 활성화한다
모든 편향은 뇌의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6장ㆍ망각이 미래를 만든다
잘 잊어야 진화한 미래를 산다
‘망각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걱정거리는 당분간 방치해 두자
기술의 진보가 뇌에 미치는 영향
망각하기에 미래가 펼쳐진다
기억이라는 재산
망각이 인류의 진화를 가져온다
에필로그 망각은 좋은 것이다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우며 사고와 창의의 공간을 확보합니다. 망각은 뇌의 실패가 아니라 건강한 기능이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존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비울수록 뇌가 산다
망각은 ‘뇌의 진화’
노화로 인한 망각은 뇌가 진화했다는 증거
확실히 나이가 들면 여러모로 기억력이 감퇴한다. 나이가 들면 신경 세포가 감소하므로 기억의 총량 또한 당연히 줄어든다. 살면서 어느 정도 버렸다고 해도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 온 기억의 총량은 상당하다. 그런 만큼 각각의 기억에 할애할 신경 세포가 감소해 기억으로 저장하기 어려워진다. 노인의 뇌에는 이미 많은 기억으로 들어차서 불필요한 기억을 남겨 둘 여유가 없는 셈이다.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동을 일으킬 만한 신선한 자극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이슈를 힘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게 되므로 정동을 일으키는 경험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기억으로 남기기도 어려워진다.
노화로 인한 망각은 정상적이다. 새로운 사건을 기억하기 어려워져도, 망각 빈도가 다소 증가해도 질병이 아니다. '기억의 총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며, '풍부한 경험으로 인해 행동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 "아, 그랬었지."라며 떠오르기도 한다. 연예인 이름이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곤란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치매를 '뇌의 질병이나 상해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인지 기능이 저하하여 일상생활 전반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노화로 인한 망각은 대부분 생활에 지장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며, 축적된 정보량이 증가하여 일시적으로 뇌의 회로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쉽게 '치매'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뇌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잊어야만' 한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것은 '기억력'이 아니라, '기억을 취급하는 방법'이다. 취급 방법의 변화로 인해 뇌는 더 많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므로, 오히려 '망각'이야말로 나이가 들면서 뇌가 진화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는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어야 한다'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대개 사람의 이름이나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세세한 수치 등은 잊기 쉬우므로 성실하게 메모하거나 휴대폰의 기억 보조 앱과 알람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다.
그 전에 '나는 작은 일은 금방 잊어버린다'라고 인정하고, 주변 사람에게 공언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도 웃으며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그동안 쌓아 온 과거 경험을 토대로 대부분의 일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익숙함'까지도 민감하게 인지하려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또 다른 중요한 대책이다.
익숙함 속에서도 뭔가를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적극적으로 흥미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망각하기 쉬워진 이유는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 덕에 젊었을 때처럼 감정을 동요시킬 만한 사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므로, 기존의 경험만 곱씹으며 익숙함에 젖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즐기려 노력해 보자. 오늘날의 세상은 어제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새롭게 오픈한 가게 가보기'나 '사용해 본 적 없는 조미료 사용해 보기'처럼 아주 작은 일부터 '다름'을 즐겨 보자. '가본 적 없는 도시 여행해보기' 역시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 자신만만한 것도 좋지만, 주변 사람의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뇌는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다. 나와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을 가진 젊은 사람들의 의견에도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여 보자. 나에게 없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고를 확장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뇌를 활성화하고, 필요한 정보를 기억에 남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뇌가 가진 ‘망각하는 힘’
기억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다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뇌 전체가 관여하여 그야말로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기억을 형성하는 '시냅스 가소성'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단백질이다. 시냅스의 형태도, 신경 전달 물질을 운반하는 캡슐도, 이를 수용하는 장치인 수용체까지 모두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기억이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당연하게도 '망각'에 단백질이 깊이 관여한다는 의미다. 망각이란 단백질이 '파괴'됨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단백질이 파괴되어 발생하는 '수동적 망각'과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을 능동적으로 파괴함에 따라 발생하는 '능동적 망각'으로 나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기억의 근원이 되는 단백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붕괴하는데, 이와 동시에 에너지를 사용하여 능동적으로 단백질을 파괴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억과 연관된 단백질을 능동적으로 파괴하다니, 언뜻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단백질은 어차피 파괴될 것이고, 뉴런도 점차 수명을 다해 감소할 텐데 어째서 일부러 에너지를 사용하면서까지 기억을 지우는 걸까? 이 이유야말로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점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수동적 망각'과 '능동적 망각'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기억의 근원인 단백질은 파괴되기 쉬운 성질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붕괴할 운명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일정량의 망각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수동적 망각'이다.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붕괴할까? 기억의 근원인 단백질은 20여 종의 아미노산 여러 개가 직선으로 연결되어 만들어진 분자로, 긴 사슬 모양의 구조가 '어떻게 접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접힘 방식에 따라 입체 구조가 결정되며,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유지하는 데는 항상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입체 구조는 자연스럽게 붕괴하게 된다. 기억을 구성하는 요소인 단백질 상태가 악화하여 입체 구조가 붕괴하면, 당연히 그 기억 회로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방식을 포함한 품질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기능 구조 중 하나인 '소포체'다. 불량 단백질이 늘어나면 그 부담도 증가하고, 이에 따라 상태가 열화된 단백질이 시냅스 기능 장애를 초래하며, 동시에 '소포체 스트레스'가 세포를 사멸시키게 된다.
또한 입체 구조가 무너진 단백질은 다수의 단백질이 서로 붙어 있으려고 하는 '응집' 현상을 일으키기 쉬워진다. 응집된 단백질은 배출도 분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한곳에 머무르며 세포 기능을 손상한다. 기억과 관련된 회로로 이어지는 자극이 충분하지 않으면 붕괴 속도는 가속화된다. 어떤 일을 회상할 때 전기 자극이 반복해서 흐르는데, 이 자극이 없으면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고, 필요한 단백질이 새로 합성되지도 않는다. 결국, 그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이 붕괴하고 회로 유지조차 어려워진다. 이 같은 단백질의 자연적인 붕괴가 시냅스 기능을 저하하고, 이는 기억 소실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죽음이 존재함으로써 생명이 계속 진화할 수 있었듯이 뇌도 '단백질이 태어나 붕괴하는' 사이클을 통해 변용해 왔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할 때 단백질을 합성하여 시냅스 기능을 강화하지만, 단백질의 쓸모가 다하면 자연스럽게 붕괴하고 시냅스 기능도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단백질의 붕괴, 즉 망각이야말로 환경의 변화에 맞춰 뇌에 변화를 불러오고 뇌를 진화시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지나면 단백질이 붕괴하는 '수동적 망각'에 대해 설명했다. 수동적 망각처럼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을 능동적으로 파괴하거나, 기억 회로를 빠르게 붕괴시키는 단백질을 합성하면 망각은 더 빠르게 진행된다.
실제로 뇌에서는 이러한 '능동적 망각'이 발생한다. 뇌는 기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한시라도 빨리 기억을 지우려 애쓰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능동적 망각은 왜 발생하는 걸까? 본래 성체는 변화를 싫어하게끔 만들어졌다. 이를 '항상성 유지'라고 하며, 생명체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체온이 변화하면 땀을 내거나, 혈류 변화를 일으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조절하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뇌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이나 업무 중에 얻은 방대한 정보는 당연하게도 뇌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기억은 '뇌의 항상성을 위협하는 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생체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항상성 유지'라는 힘을 작동시킨다.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로 인해 변화한 단백질을 합성하고, 그 때문에 변화한 시냅스 강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 한다. 그리고 그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을 능동적으로 소멸시킨다. 원래 상태보다 단백질 합성이 증가하면 그 합성량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동시에 능동적으로 분해하여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망각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Rac1'이라는 분자다. 이 분자는 '저분자량 G 단백질'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그룹 중 하나로, 세포 내 정보 전달을 촉진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분자는 세포의 형태나 운동, 세포 간 결합, 유전자를 사용하는 방법에까지 관여하는 등 그 기능이 다방면에 걸쳐져 있다.
이 Rac1이 발현되면 능동적 망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ac1은 '액틴 섬유'라는 세포 골격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기능도 하는데, 이 기능은 시냅스를 만드는 중요한 장소인 세포 돌기가 소실되도록 매개한다. 이에 따라 시냅스가 줄어들고, 기억도 소실되는 것이다.
능동적 망각을 촉진하는 'Rac1'은 언제 증가할까? 바로 새로운 정보에 설렘을 느껴서 도파민을 풍부하게 분비할 때다. 해마에도 도파민을 만드는 신경이 다량으로 분포되어 있어서 시냅스의 변화를 끌어내고,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도록 촉진한다. 뇌는 이러한 변화에 반응하여 Rac1을 활성화하고 오래된 기억을 지운다.
능동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존재는 'Rac1'뿐만이 아니다. 신경 아교 세포의 일종이자 뇌의 면역 세포이기도 한 '미세 아교 세포'는 사용 빈도가 적은 뉴런을 확실하게 제거한다. 미세 아교 세포는 해마 내에서 활동성이 낮은 시냅스를 형성하는 뉴런을 공격하고 제거한다. 이는 기억을 장기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활동하지 않는 잉여 뉴런을 능동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사용 빈도가 높은 뉴런이 활동하기 쉽게 만들고, 효율이 좋은 회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활동성이 낮은 뉴런 간 연결이 많으면, 그 회로가 작용할 때 잡음이 생긴다. 잉여 정보가 많이 유입되면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미세 아교 세포는 전기 활동이 낮은 뉴 런을 제거함으로써 그 신경 회로를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뇌가 능동적으로 망각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 필요한 기억이 제대로 유지되고, 뇌의 기능이 사고나 감정 모든 면에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억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뇌 수명을 늘리다
뇌는 사용할수록 좋다?
'뇌는 사용할수록 좋다'라는 말에 의문을 품다니,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상식에 비추어 보면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많은 사람이 뇌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활성화되고 성장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뇌 사용도 '과유불급'이다. 적당하게 사용하는 편이 가장 좋고 과용해서는 안 된다. 뉴런을 장수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사용법이 있는 것이다. 사실 뇌를 가장 잘 사용하는 비결은 '휴식'이다.
그 열쇠를 쥔 것이 바로 신경 아교 세포 중 하나인 희소돌기 아교 세포다. 축삭을 감싸고 있는 희소 돌기 아교 세포는 기억 형성에 필요한 '미엘린 수초'를 만들기 위해서 대사가 가장 활발한 세포인 만큼, 거의 항상 '과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려 자기 중량의 100배에 달하는 양의 미엘린 수초를 기르고 있으니 과로하는 것도 당연하다.
즉 희소 돌기 아교 세포는 스트레스에 약한 데다 과다한 노동과 피로를 겪기 쉽다. 이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 그 신경 회로를 보호하고 뉴런을 지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뉴런은 아직 일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해도 희소 돌기 아교 세포가 한계에 도달하는 일은 흔하다.
'머리를 쓰는' 일에는 뉴런은 물론이고 신경 아교 세포도 작동하는데 과도하게 작동하면 희소 돌기 아교 세포가 가장 먼저 죽어 버리고, 뒤이어 뉴런도 죽기 쉽다. 죽은 세포에서 흘러나온 물질은 뇌의 면역 세포인 미세 아교 세포를 활성화하게 되고 염증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더 많은 뇌세포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결국 뇌 노화를 촉진하게 된다. 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사용해서도, 사용하지 않아도 안 된다.
적당하게 뇌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에 약한 희소 돌기 아교 세포의 생존에 적합한 뇌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재 뇌 상태가 희소 돌기 아교 세포의 생존에 적합한 상태인지 아닌지는 직접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곤하면 쉰다', '질리면 다른 일을 한다' 이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피로가 느껴진다면 그때 사용하는 뇌 부위에 에너지를 생산하는 물질 ATP를 사용한 뒤에 분비되는 물질인 '아데노신'이 축적되었다는 의미다. 아데노신은 뇌 전체의 활동을 억제하는 동시에 강력한 수면유발물질이기도 하다. 피곤한데도 그대로 활동을 지속하면 활성탄소가 쌓이게 되고 불용성 단백질이 축적되어 뇌의 세포사가 시작된다. 더불어 '질리는' 것도 뇌의 특정 부위가 지쳐서 아데노신이 축적되기 시작한다는 신호다. '피곤하다'도 '질린다'도 영어로는 똑같이 'get tire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인 글루탐산도 같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축적되어 신경독성으로 이어진다. 그 전 단계가 '질리는' 것이다. 피곤을 느꼈다면, 또는 질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의식적으로 다른 일을 하려고 시도해 보자.
뇌를 쉬게 한 다음에는 당연하게도 '수면'이나 '멍하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쉬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시간이 오히려 뇌의 특정 부위를 활성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뇌에 충분한 휴식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뇌를 균형 있게 사용하자
뇌가 피폐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중계와 분산계를 균형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집중계는 목적을 갖고 어떤 일에 집중할'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며, 주로 전두엽과 두정엽 외측 피질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분산계는 '어떤 일에 집중할' 때 억제되는데, 뇌 전체의 균형을 제어하고 기억의 정리를 관장한다. 두 가지 시스템은 상호 억제하며 작용하기 때문에 고도의 연대 작업을 통해 뇌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즉 두 가지 시스템을 균형 있게 활성화 할 수 있다면 각각 적당하게 휴식할 수 있으며, 뇌의 건강수명도 늘어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시스템을 균형 있게 활성화하는 간단한 실행 방법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집중계와 분산계를 교체하는 스위치가 된다. 다만, 집중계와 분산계 중 어느 쪽이 활성화되는가는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활동은 집중계와 분산계 중 어느 쪽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같은 일'을 지속한다면, 즉 '집중계'와 분산계' 중 어느 한쪽만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뇌는 점차 피폐해진다.
분산계만 과잉 활성화된 상태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우울증'이다. 어떤 의욕이 생겨나지 않아서 활동을 자제하고 뇌를 쉬게 하려고 해도 실상은 전혀 쉬지 못할 때도 있다. '지금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니 뇌가 쉬고 있겠지?'라는 착각이야말로 위험하다.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분산계는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고, 잘 때 분산계가 활성화되기도 한다. 반대로 우울한 상태에서 각성했을 때 분산계가 과하게 활동하게 되면 뇌가 전혀 쉴 수 없게 된다.
잘 때도 활성화되는 부분이 많은 분산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하려는 행동이 중요하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휴식을 취하게 하는 행동이란 바로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중 작업을 함으로써 집중계가 활성화되고, 분산계가 억제되기 때문이다.
한편, 집중계가 과잉 활성화되면 그 부위에 열화한 단백질과 활성탄소 등이 축적되며, 이는 세포사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노르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을 분비하는 세포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게 되어 피폐해지고, 그 세포들이 사멸하며, 결국 집중계의 기능 저하로 이어진다. 이처럼 집중계와 분산계 중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면 뇌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를 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편중을 피하고자 일이나 취미에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 집중계를 활성화하는 한편,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멍하니 있는 시간을 만들어 분산계를 활성화해 보자. 집중계와 분산계를 교차로 실행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 좀 우울한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분명 분산계가 과잉 작용한 탓이므로, 의식적으로 집중계를 활성화해 보자. 다만,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라면 집중계로 전환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간단하게 '휴대폰 게임'이라도 하기를 추천한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집중계를 사용하도록 노력해 보자.
망각이 미래를 만든다
망각하기에 미래가 펼쳐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방대한 정보가 흘러넘친다. 일상생활이나 인터넷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면 여러 가지 숫자나 온갖 풍경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거나 우리의 정동을 일으킨 대상뿐이다.
주의를 기울여 일시적으로 기억했다고 하더라도, 그후에 사용하지 않는 정보, 즉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런 한편, 정동을 일으키거나 불안을 강하게 만드는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집중계를 통해 상황을 자세히 분석하고, 새로운 일에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부정적인 기억을 희미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한편으로는 기쁨의 기억은 몇 번이고 곱씹어서 그 회로에 자극을 주고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좋다.
이처럼 뇌는 항상 저장된 기억 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제거'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기계와 다른 점이다. 기계=컴퓨터라고 생각해 보면, 컴퓨터는 입력된 모든 정보를 남기고 방대한 '메모리'를 형성한다. 그 모든 것을 '균등하게' 검색하여 정보를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기계와 다르게 방대한 정보 중에서 자신의 정동을 일으킨 것, 그리고 전두엽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만을 선택하여 기억으로 저장하고, 차례대로 밀려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과정은 '사고'로 이어진다.
뇌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은 정보와 관련된 단백질을 합성하거나 파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뇌는 과거 기억을 참고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활동하며, 계속해서 변화한다. 단순하게 정보를 쌓아 두기만 하는 '메모리'와는 다르다.
망각은 이처럼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당연한 변화이며,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뇌가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해마에서 시시각각 태어나는 신생 뉴런이 오래된 뉴런, 즉 기존 기억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게 한다. 즉 '망각'과 '새로운 기억의 저장'은 한 세트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뇌가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망각이 존재하기에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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