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차 아나운서이자 스피치 강사로 활동해 온 저자는 한 방송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이 건넨 조언을 지금도 기억한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볼 때, 그 안에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눈빛이 달라질 겁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고, 그 순간 자신의 눈빛과 표정이 놀라울 만큼 부드러워졌음을 고백한다.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만 고민하기보다 내면의 진심을 담아 시선 하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의 온기를 실으려 노력하는 것, 바로 그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아한 말하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책은 삶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는 ‘우아한 말하기’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해답을 전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법, 유창하지 않아도 신뢰를 주는 말의 태도, 그리고 한마디로 더 깊은 관계를 맺고 내 존재를 빛낼 수 있는 방식을 담고 있다.
결국 말은 삶의 품격을 이루고 결정짓는다. 이 책은 그 언어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삶의 울림과 함께 보여 준다. 진정한 말하기의 본질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명확하고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저자 신희영
아나운서 겸 스피치 강사.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자동차그룹 및 농협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예술인 등 오피니언 리더의 대중적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스피치 전략을 연구하고 가르쳐 왔다. 또한 삼성전자, 기아, 현대자동차, LG, 한화, SK, 롯데 등 대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업 주요 행사 발표 컨설팅, 상황별 스피치, 이미지 메이킹 강의를 진행해 왔다. 대규모 특강부터 일대일 코칭까지, 일과 관계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말하기 훈련이 필요한 분들을 꾸준히 만나오고 있다.
그동안 교육 현장과 일상에서 겪은 다양한 말하기 사례를 바탕으로 삶의 품격을 높이는 우아한 말하기 방법을 이 책에 담았다. ‘우아한 말은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말하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와 품격이 되기를 바라는 분들, 지금보다 더 우아한 말센스를 갖고 싶은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차례
프롤로그_ 우아한 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습관
1장 품격 있는 말은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 품격 있는 사람은 우아하게 말한다
. 외모와 실력을 뛰어넘는 말과 태도
. 품격 있는 말은 호감의 문을 여는 티켓이다
. 품격이 곧 설득력이다
. 개인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말의 힘
. 언어 자산에 대한 투자는 실패가 없다
. 언어는 내가 도달할 곳의 방향키이다
2장 우아한 말하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
.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 사슬을 끊어 내라
. 나를 존중하고,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라
. 우아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보살핀다
. 판단의 마음에서 헤아리는 마음으로
.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라
3장 말하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 나를 인정할수록 자유로워진다
. 순수한 관심이 좋은 질문을 만든다
. 표현보다 의도가 더 중요하다
. 침묵이 깊이 있는 대화로 나아가게 한다
. 태도, 몸짓, 메시지가 일치된 말하기
. 완벽함이 아닌 연약함이 우리를 연결한다
. 관계는 장기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4장 우아한 사람으로 만드는 7가지 말의 습관
.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 톤을 찾아라
.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 따뜻한 분위기는 따뜻한 눈빛에서 나온다
. 일관되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라
.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단어를 선택하라
. 자연스럽지만 절제된 제스처를 취하라
. 상대방에 따라 말하기 스타일을 조율하라
5장 우아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 당신만의 우아함이 반드시 있다
. 우아함의 본질은 편안함이다
. 내면과 외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 내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기
. 눈과 귀를 좋은 환경 가운데 두라
. 글쓰기를 통해 당신만의 언어 세계를 구축하라
. 10년 후가 더 아름다운 사람을 꿈꾼다
교육 현장과 일상 속에서 직접 체득한 다양한 말하기 사례를 바탕으로, 삶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는 우아한 말하기의 구체적 방법을 알려줍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우아한 말센스
품격 있는 말은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품격이 곧 설득력이다
요즘 TV를 틀거나 휴대폰을 열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개인 방송의 시대이기에 전문 진행자나 연예인이 아니어도 말솜씨가 뛰어난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귀가 솔깃해지고, 어느새 제안하는 내용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려한 말에 이끌려 결정을 내렸다가 말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마주하고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최근엔 제품을 과장되게 홍보하는 인플루언서를 풍자한 영상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지만, 진실되고 품격 있는 말을 찾는 일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딸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그림책 수업을 받고 있다. 보통 자녀 교육에 비용을 들일 땐 여러 요소를 꼼꼼히 따져보게 된다. 선생님이 이 분야에 전문성은 있는지,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믿고 맡길 만한 곳인지 등등.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는 그 어떤 비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선생님의 품격' 하나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수업을 선택했다. 나에게 수업 운영 방식이나 커리큘럼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별다른 홍보가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선생님의 말과 태도,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히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책 수업 선생님은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어서 그분이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말을 하는지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누구를 대하든 편견 없이 존중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일관된 태도로 남녀노소 모두를 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자녀를 대할 때, 너무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말투나 단어 선택에 소홀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아이 앞에서든 어른 앞에서든 늘 한결같았다.
그림책 수업은 단순한 독서 시간이 아니다. 그림책을 매개로 생각을 말하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이론적인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의 말과 태도 자체가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본보기가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 역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분 좋은 자극을 받는다.
남편은 가끔 내가 지인들과 전화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는 "당신은 쇼호스트 하면 진짜 잘할 것 같아. "라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때면 속으로'이 사람은 나를 잘 모르네. 내가 누굴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걸 얼마나 어려워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이끌거나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내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요?" "너라면 뭘 선택할 것 같아?", "희영아, 추천 좀 해 줘 봐." 그런 질문들을 자주 받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나 선택한 방향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내게 묻는 이유는 단순히 '잘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이 사람 말은 믿을 수 있어.'라는 신뢰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담아 한 말을 오래 지켜본 사람은 결국 그 진심을 믿게 된다.
설득은 꼭 경쟁력 있는 말솜씨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SNS 활동도 거의 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화법을 지닌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이 구역의 ‘인플루언서’처럼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에 설득된다. 그것은 말 너머로 전해지는 진정성, 공정함, 그리고 상대를 향한 존중의 태도 같은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정치범으로 복역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 흑인과 백인의 화해를 끌어낸 지도자였다. 많은 사람은 그가 출소 후 백인 정권에 대한 복수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오히려 용서를 택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자유를 향해 걸어 나가며 깨달았다. 만약 내가 증오와 분노를 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1994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도 그는 과격한 표현이나 비난 없이 '과거는 잊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단지 정치적으로 세련된 발언이 아니라 복수를 택하지 않은 그의 인격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었다. 그 이후로도 만델라는 적대자 앞에서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논쟁 중에도 인신공격을 삼갔다. 그의 말은 억지로 설득하려는 언변이 아니라 품격으로 동의를 끌어내는 힘을 가졌다. 진심 어린 존중과 이성 위에 세워진 그의 언어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었다. 설득은 말의 힘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품격에서 비롯된다.
말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말의 내용을 듣기에 앞서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존재와 태도를 먼저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말은 곧 사람 자체로 기억되며, 설득력 역시 그 본질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야 안젤루는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을 수 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억한다."라고 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의 모습과 태도를 거울에 비추어 보는 노력과 꾸준함이 내 말의 설득력을 높이는 힘이 될 것이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누군가를 설득한다.
우아한 말하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를 존중하고,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라
'내가 늘 맞춰 줘야 하는 사람'과 '나에게 무조건 맞춰 주는 사람', 둘 중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한가? 사실 둘 다 건강한 관계는 아니다. 모든 관계는 '쌍방향적'일 때 가장 건강하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을 통해 유지되는 관계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누리기가 어렵다. 불균형한 관계가 계속되면 마음은 지쳐가고, 서로가 성장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의사소통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 나는 그림책 『곰씨의 의자』를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이 책은 갈등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매개가 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매우 친절한 곰씨다. 곰씨에겐 자신만의 힐링 공간인 의자가 하나 있다. 그곳에 앉아 여유롭게 시집을 읽고, 차를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곰씨는 어느 날, 의자 앞을 지나던 여행가 토끼와 무용가 토끼를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두 토끼는 곧 결혼하고, 이후 자녀들을 아주 많이 낳는다. 토끼 가족은 곰씨를 무척 좋아했고, 곰씨 역시 그들을 아끼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달라졌다. 늘 무리를 이루어 곰씨의 의자에 머무는 토끼들 때문에 곰씨는 점점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곰씨는 토끼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전하지 못한다.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곰씨는 심신이 지쳐 쓰러지고 만다.
나는 이 그림책을 소개한 뒤 교육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여러분이 곰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곰씨와 토끼들처럼 친밀한 관계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고, 속으로만 힘들어하며 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도 있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해 버릴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지칠 대로 지친 끝에 조용히 관계를 끊어버릴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식이 다른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족 치료의 어머니'라 불리는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갈등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공통된 방식으로 긴장을 처리하며, 이는 다섯 가지 의사소통 유형(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 일치형)으로 나타난다."라고 설명한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은 평소의 대화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갈등 상황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소통방식이다. 즉,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관계 속에서 갈등을 대처하는 고유한 '말하기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티어는 "자아존중감이란 나는 가치 있고 소중하며, 유능하고 긍정적인 존재'라고 믿는 마음인데, 자아존중감을 회복시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때 안정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아존중감은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자기, 타인, 상황이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힘이 균형 있게 작동할 때, 진정한 자아존중감이 형성된다.
사티어가 제시한 다섯 가지 의사소통 유형 가운데 네 가지(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다. 이 네 가지 유형은 자아존중감을 구성하는 요소(자기, 타인, 상황) 중 하나 이상이 결여되어 있을 때 나타난다. 때로는 그 세 가지가 모두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첫 번째, 회유형(Placater)
회유형은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태도를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자아존중감의 핵심 요소 중 '자기'가 결여되어 있어 건강한 소통이라고 보긴 어렵다.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의 욕구만을 살피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억누른 채 무조건적인'사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는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한 소통이 되기 쉽다.
두 번째, 비난형(Blamer)
비난형은 리더십이 강하고 자기표현이 분명한 특징이 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갈등이 발생하면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욕구만 중요하게 여기며,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타인을 탓하는 습관이 있다면 비난형일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초이성형(Super-reasonable)
초이성형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잘하며, 문제 해결 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자기'와 '타인' 두 요소가 결여되어 있어 감정이 배제된 비인격적인 소통방식이 나타난다. 자기감정에 대한 인식이나 표현이 부족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고려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에 대한 불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낮은 신뢰감에서 비롯된 방어적 태도일 수 있다.
네 번째, 산만형(Irrelevant)
산만형은 '자기', '타인', '상황' 세 요소가 모두 결여된 유형이다.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한 성향이 있지만, 감정적인 대화나 진지한 주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감정을 잘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대화가 겉돌거나 본질을 비켜가는 경우가 많아 의미 있는 소통이 어려운 유형이다.
다섯 번째, 일치형(Congruent)
일치형은 '자기', '타인', '상황'이라는 자아존중감의 세 요소가 균형 있게 포함된 소통 방식이다. 문제 상황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함께 고려할 줄 안다. 언어와 비언어를 통해 진심 어린 경청과 존중을 표현하고, 겉과 속이 일치하는 태도로 신뢰를 형성한다. 즉, 겉으로만 친절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배려가 말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 상대는 그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소통 유형은 바로 다섯 번째, '일치형'이다. 일치형 의사소통을 실천하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인식하고 표현하게 되어 불필요한 억압이나 감정 누적이 줄어든다. 물론 솔직함을 핑계로 거친 말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하되, 그 안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담아 상처 없이 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억지로 참고 있다가 조용히 관계를 끊거나, 비난하며 감정적으로 터뜨리는 방식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를 통해 갈등을 건강하게 넘어설 수 있으며, 그 과정은 관계를 더욱 깊고 친밀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앞서 소개한 그림책 『곰씨의 의자』 속 곰씨는 결국 그렇게 힘들어만 하다가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곰씨는 끝내 쓰러진 자신을 정성껏 돌보는 토끼들 앞에서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참 소중해요. 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하는 시간이 저에겐 필요하답니다.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그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에요. 그럴 땐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은 제발 살살 다뤄 주세요.”
곰씨는 관계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오해받지 않도록 사려 깊게 표현했다. 토끼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자신의 소중한 꽃을 조심히 다뤄 달라는 요청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언제 찾아오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할 말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끙끙 앓던 곰씨가 처음으로 자신과 타인을 함께 존중하는 '일치형 의사소통'을 실천한 기특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려던 순간, 겉표지 안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문득 마음이 따뜻해졌다. 곰씨가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 의자에서 벗어나, 토끼들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의 공간이었던 의자의 영역이 숲속 깊은 곳까지 확장된 듯했고, 그만큼 곰씨의 마음도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다른 성향을 보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크기 역시 함께 자란 것이 아닐까. 토끼들과의 관계가 갈등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변화였을 것이다.
우아한 사람으로 만드는 말의 습관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단어를 선택하라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작품 중에 『장수탕 선녀님』이라는 책이 있다. 백희나 작가의 몇몇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간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장수탕 선녀님 뮤지컬을 재미있게 보았고, 특히 OST가 마음에 들어 차 안에서 자주 따라 부르곤 했다.
작품 속 '장수탕'은 요즘의 스파 시설과는 다른 오래된 대중목욕탕이다. 주인공 덕지는 엄마를 따라 어김없이 장수탕에 가지만, 사실은 새로 생긴 스파랜드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친구들이 "왜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말을 못 하니?"라고 묻자, 덕지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책에서는 그런 걸 '배려'라고 하거든?"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덕지의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음에도, 상대를 '먼저' 생각해 말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배려가 담긴 말하기다.
언론에 가끔 언급되는 H 기업을 대상으로 미디어 트레이닝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기업에 좋은 일이나 좋지 못한 이슈가 있을 때 홍보실 직원이나 임원 등 기업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서는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이 교육에서 뉴스 인터뷰의 특징을 설명하며 늘 빠뜨리지 않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방송 언어의 기준을 '14세 수준'에 맞추라는 것이다.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시청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을 대표해 인터뷰에 나서는 대변인은 보통 나이와 경력, 그리고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해 온 만큼 전문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익숙한 표현이 처음 방송을 접하는 시청자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해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써야만, 내 이야기가 청중에게 부담 없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또한 강의를 할 때는 청중과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자주 쓰는 용어나 익숙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낯설더라도 청중에게 친숙한 단어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청중으로부터 '우리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인식을 얻으면, 소통이 한층 원활해지고 강의의 몰입도 역시 높아진다. 정보를 이해하는 수준에 맞추어 때로는 쉽게, 때로는 깊이 있게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듣는 이를 배려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일상에서 누구를 만나든 말을 꺼내기 전 상대방의 상황을 먼저 생각한다면, 더 알맞은 단어를 선택하고 잘 다듬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나 스피치 코칭에서는 언제나 수강생을 향한 섬세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피드백은 상대방의 성장을 위한 것이기에 단순한 칭찬으로 끝날 수는 없고, 반드시 보완할 점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할 때조차 단어 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 상대가 낙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씨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비에니아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연소 수상자로 이름을 알린 우리나라 대표 연주자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는 그녀를 두고 '비범한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상 깊은 연주자'라고 평했다.
그 뛰어난 재능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바이올린 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게 되는 쪽이 아닌 반대쪽 귀로 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처음부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고, 그것이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을 만들 수 있는 큰 축복이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 연주를 들어보니, 감정 표현이 탁월하다는 평가 그대로였다. 선율이 파도처럼 밀려와 깊은 울림을 전해줬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청중의 위치에서 소리를 듣고 표현하기에 그 울림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한 말이 더 명확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선택한 단어가 오해를 일으키진 않을까?'
'이 표현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내 말이 잘 전달될까? 더 좋은 표현은 없을까?'
말을 하기 전, 또는 말하는 중간에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는 일. 그것이 배려 있는 한마디를 위한 출발점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자연스럽게 배려로 물들기 시작하면, 칭찬은 물론 제안, 요청, 거절조차도 더 이상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이처럼 말을 가꾸려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노력은 결국 상대에게 '기분 좋은 감정'과 '존중받는 느낌'으로 또렷이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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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