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다정함이 힘이다
 
지은이 : 이동엽
출판사 : 메이트북스
출판일 : 2026년 04월




  • AI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인 ‘다정함’에 좌우된다.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열고 관계를 이어가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모두 다정함에서 나온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다정함은 선택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다정함이 다시 필요한 시대

    사는 건 편해졌지만 다정함이 사라지고 있다 _ 다정함이 더욱 그리운 이유
    요즘의 생활은 분명 예전보다 간단해졌다. 모르는 것은 바로 찾을 수 있고, 많은 일은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처리된다. 이동도, 연락도, 일의 속도도 모두 빨라졌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편리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지친다고 말한다. 하루가 끝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소진된 느낌을 받는다. 쉬고 있어도 편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한쪽이 계속 긴장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 피로는 단순히 일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점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역할과 기능으로 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얼마나 잘하는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먼저 보인다.

    관계에서도 비슷한 기준이 작동한다. 함께 있으면 어떤 느낌인지보다, 어떤 쓸모가 있는지가 앞에 온다. 이 기준이 반복되면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기능처럼 다뤄진다. 잘할 때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기대에 못 미치면 금세 불편한 존재가 된다. 이런 환경에 오래 있으면, 사람은 타인의 시선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들이대게 된다. 잘한 날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쉽게 못마땅해진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 사람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라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많은 관계는 이 태도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건은 붙인다. 이 정도는 해야 괜찮고, 이만큼은 해야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관계는 계속 긴장해야 하는 자리가 된다.

    다정함은 사람을 존재로 대하게 한다
    사람을 수단으로 보기 시작하면 관계는 계산에 가까워진다. 지금 도움이 되는지, 부담은 아닌지, 손해는 없는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그러면 마음은 늘 긴장 상태에 놓인다. 언제든 기준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을 존재로 대하는 관계에서는 기준이 달라진다. 잘할 때만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잘 못하는 날에도 함께 있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본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의 피로도를 크게 바꾼다. 관계가 평가가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힘든 이유는, 삶이 불편해서만은 아니다. 사람답게 대접받는 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속도와 효율은 늘었지만, 존재로 존중받는 경험은 점점 귀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사람 사는 느낌을 그리워한다. 대단한 위로나 특별한 공감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라도 기능이 아니라 사람으로 머물 수 있는 자리, 성과가 아니라 존재로 인정받는 순간을 원하는 것이다.

    사는 건 분명 편해졌다. 그런데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면, 우리는 속도 말고 다른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대하는 기준, 바로 다정함이다. 이 기준이 돌아올 때, 삶은 덜 소모되기 시작한다.


    다정함이라고 믿어왔던 착각들
    다정함과 친절은 같은 말이 아니다 _ 마음에서 나오느냐 의무에서 나오느냐
    우리는 다정함과 친절을 자주 같은 뜻처럼 쓴다. 누군가에게 잘해 주고, 먼저 나서고, 부탁을 들어주면 다정하다고 부른다. 일상에서는 이 둘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를 오래 겪다 보면, 이 둘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행동은 반복해도 크게 지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행동은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겉으로 하는 일은 비슷한데 느낌은 다르다. 이 차이는 행동의 크기가 아니라, 그 행동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에서 생긴다.

    친절은 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상황상 그게 맞는 것 같아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택한다. 책임감 있어 보이고 성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 선택이 계속되면 마음에는 부담이 쌓인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의무에서 출발한 친절은 관계를 관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관계를 쉬게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친절한데도 피곤하고, 잘해 주고 있는데도 마음이 닳는다.

    반면 다정함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태도에 가깝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느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색해서 나온다. 계산보다 태도에 가깝고, 점수를 따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기본 자세에 가깝다. 다정함은 ‘해야 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대하고 싶어서’에서 시작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고 보았다.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쓰는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대하는 자세가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정함은 행동의 목록이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대하느냐의 문제이다.

    다정함은 태도다
    임마누엘 칸트는 같은 행동이라도 그 동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의무에서 나온 행동과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경험되는 질은 다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친절이라도 의무로 할 때와 마음으로 할 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다르다.

    의무에서 나온 친절은 처음에는 관계를 잘 굴러가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친절은 점점 부담이 되고, 관계는 점점 피로해진다. 잘해 주고 있는데도 마음이 지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정함은 반복해도 상대적으로 덜 소모된다. 물론 에너지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억지로 짜내는 힘은 아니다. 그래서 다정함이 있는 관계에서는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서 지치는 이유는 다정해서가 아니다. 다정함처럼 보이는 의무를 오래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소모시킨다.

    친절은 행동이다. 다정함은 태도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지칠까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답은, 내가 지금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의무로 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다정함과 친절은 비슷해 보이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그리고 이 출발점의 차이는 관계를 오래갈 수 있게 하느냐, 아니면 빨리 지치게 하느냐를 결정한다. 다정함은 관계를 유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가 숨 쉬게 만드는 기준이다.


    다정함을 나에게 먼저 쓰는 연습
    나 자신부터 다정하게 대하기로 했다 _ 나에게 하는 태도가 모든 걸 바꾼다
    많은 사람들은 다정함을 남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말투를 부드럽게 하고, 상처주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 말이다. 그래서 다정함은 늘 관계 기술처럼 이해된다. 하지만 정작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는 조심스럽지만, 자신에게는 가혹하다.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심하게 몰아붙이고, 남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자기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왜 이것밖에 못 했어” “역시 나는 안 돼” 같은 말들이 반복된다. 이 말들은 반성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기 처벌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성실해 보일 수는 있어도, 마음을 오래 버티게 하지는 못한다.

    카를 융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외면할수록 그 긴장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불안은 타인에게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공격이 일어나면, 관계 안에서도 방어가 기본값이 된다.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결국 관계에서도 여유를 잃기 쉽다.

    알베르 카뮈 역시 세상이 부조리하더라도, 자기 태도까지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상황이 거칠다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까지 거칠게 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깥을 통제할 수 없을수록, 안쪽의 태도는 더 중요해진다.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외부 조건과는 별개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정함의 시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나에게 엄격해야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책임과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과 학대는 다르다.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는 방식은, 의지를 키우기보다 지치게 만든다. 사람은 긴장 상태에서는 잠시 버틸 수는 있어도, 오래 움직이지는 못한다. 오래갈 수 있는 힘은 긴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태해지겠다는 뜻이 아니다. 실수를 했을 때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고, 다시 조정할 여지를 남기겠다는 뜻이다. 잘못을 지적하되, 존재까지 공격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 태도가 있을 때, 사람은 실패 후에도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자기에게 쓰는 말투는, 언젠가 그대로 타인에게도 쓰이게 된다. 자신에게 늘 날카로운 사람은, 관계에서도 쉽게 날카로워진다. 반대로 자신에게 기본적인 존중을 유지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조금 더 여유를 낼 수 있다. 다정함은 성격이 아니라, 자기 취급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다정함은 남에게 잘하는 기술이기 전에, 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그대로 만든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기준은, 결국 세상에도 가혹한 기준으로 옮겨 간다.

    나부터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삶의 결을 바꾼다. 관계에서 덜 소모되고, 실패 앞에서 덜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설 자리를 남겨 둔다는 뜻이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진짜 다정함은 나를 희생하는 태도가 아니다.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기준이 서 있을 때, 다정함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태도로 남는다. 그 기준이 바로 설 때, 다정함은 비로소 오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를 대하던 다정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니, 사람도 덜 미워진다 _ 나를 대하는 태도가 관계를 바꾼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많은 경우 그 출발점은 밖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 자기 자신에게 늘 엄격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다르치고 사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들이대기 쉽다. 

    자기 자신을 편하게 두지 못하면, 남도 편하게 보기 어렵다.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허락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실수에도 마음이 쉽게 거칠어진다. 이해보다 평가가 먼저 나온다.
    아들러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마음속 긴장을 바깥으로 옮기면서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쌓인 불만과 불안을, 다른 사람을 향한 판단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남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반복하고 있다.

    칼 로저스는 사람이 진짜로 편안해지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자기 자신에게 늘 불합격을 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합격을 주지 못한다. 내 안에서 계속 탈락이 반복되면, 관계 안에서도 여유는 자라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이 각박해서 내가 예민해졌다고, 사람들이 별로라서 마음이 닫혔다고.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안쪽으로 돌려 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거칠게 굴어왔는지가 먼저 보일 때가 많다.

    자기 자신에게 늘 채점표를 들이대고 살면, 세상도 채점표로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잘했는지, 누가 못했는지, 누가 기준에 맞는지부터 보게 된다. 그러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긴장 위에 놓인다.

    다정함이 불러온 작은 기적들
    반대로,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 시작하면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실수한 나를 바로 잘라내지 않게 되면, 실수한 남도 바로 잘라내지 않게 된다. 나에게 주던 단속의 강도가 낮아질수록 타인을 향한 판단도 함께 여유로워진다.

    이 지점에서 다정함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로 등장한다. 다정함은 사람을 좋게 보려고 애쓰는 태도가 아니라, 나와 남에게 적용하던 "처벌의 기준"을 거두는 선택이다.이 변화는 성격이 바뀌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기준의 방향이 바뀌어서 생기는 일이다. 나를 몰아붙이던 기준을 조금 내려놓으면, 그 기준이 남에게도 덜 날카롭게 향한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특별하게 대접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을 나에게 먼저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실수해도 바로 무너뜨리지 않고, 부족해도 바로 밀어내지 않겠다는 태도다. 다정함은 이 최소한의 존중을 나 자신에게 먼저 허락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태도는 자연스럽게 관계로 확장된다.

    이 태도는 관계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가게 만든다. 사람을 볼 때 먼저 판단하기보다, 한 번 더 보게 된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덜 미워하게 되면, 세상도 덜 미워진다. 세상을 대하는 기준이 "비난"에서 "공존"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관계는 기술로 좋아지기보다, 태도로 바뀐다. 그 태도의 이름이 이 책에서는 다정함이다. 그리고 그 태도의 출발점은 언제나 나를 대하는 방식이다.


    다정함이 삶을 바꾸는 순간들
    다정함은 진정 나를 나로 살게 한다 _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되는 느낌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기 모습을 정한다. 어떤 사람 곁에서는 말이 줄어들고, 어떤 사람 곁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나인데,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내가 허락되는 범위가 달라진다. 

    많은 관계에서는 자신을 조금씩 조정하게 된다. 말을 고르고, 표정을 관리하고, 생각을 한 번 더 걸러 낸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은 자기 원래 모양을 점점 잊는다.

    칼 로저스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계속 고쳐져야 하는 자리에서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기게 된다. 관계는 유지되지만,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사회에 맞추기 위해 여러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이 너무 두꺼워지면, 어느 순간 자기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관계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

    이때 다정함은, 나를 더 잘 만들겠다고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다정함은 “더 나아져야 괜찮다”는 조건 대신 “지금 이 모습으로도 여기 있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어떤 사람 곁에서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말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고, 기분이 가라앉아 있어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리는,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다정함은 자신으로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힘
    이런 관계에서는 실수의 의미도 달라진다. 실수는 분위기를 깨는 사고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일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 마음이 덜 경직된다. 나는 나로 살아도 괜찮아진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책임을 내려놓겠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나를 지나치게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정함은 나를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과도하게 다그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감각은 방임이 아니라 안정에 가깝다. 이 태도가 생기면, 관계를 고르는 기준도 바뀐다. 나를 더 잘 꾸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덜 숨겨도 되는 자리를 찾게 된다. 그렇게 선택이 쌓이면, 삶의 피로도도 달라진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서 더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덜 힘들다. 마음이 계속 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은,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과하게 역할에 맞게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정함이 있는 관계에서는 “괜찮은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자기 크기로 서 있게 된다. 이 감각이 있을 때, 사람은 관계 안에서도 자기 크기를 유지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관계는 훨씬 오래갈 수 있는 모양이 된다. 다정함은 결국,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