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기술
 
지은이 : 후션즈 (지은이), 정은지 (옮긴이)
출판사 : 지니의서재
출판일 : 2026년 05월




  • 내면의 트라우마로 진정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실제 상담 사례를 집대성한 심리 처방전. 관계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 트라우마 치료사인 저자는 1만 5천여 시간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엄선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과거의 패턴이 현재의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기술


    자신과 잘 지내기
    트라우마는 이기고 자존감은 지켜라
    저의 자존감이 무척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이 저를 대하는 평범한 행동도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저 혼자 상처를 받곤 하지요. 이전에 연애도 몇 번 한 적이 있지만, 매번 이러한 문제로 헤어졌습니다. 저처럼 자존감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문제 상황
    많은 사람이 관계의 트라우마로 곤란을 겪으며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왜 생기는지 살펴보자.

    먼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며 상처를 받지 않는다. 이 내담자의 행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더 가깝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이전에 겪었던 사건이 연상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자주 폭행을 당했다면 자연스럽게 자기방어를 하게 된다. 그러면 성인이 된 후에도 누군가 손을 치켜들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머리를 감싸쥔다. 심지어 먼저 상대를 공격해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가려운 데를 긁어주거나 안아주기 위해 손을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폭행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사례 속 주인공도 친밀한 관계에서 몇 가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낮은 자존감을 지켜야 하기에 부정적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이성 친구에게 상처받기 전 자신을 먼저 보호한다. 이별의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방이 떠날 조짐을 보이면 자신이 먼저 그 관계를 끊는다. 상대방이 전화를 몇 번 받지 않고 자신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면 헤어지려는 의중이라 단정하고 두 가지 방법을 구사한다. 연락되지 않는 상태가 너무 싫으니 빨리 연결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상대의 전화를 무시하거나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자기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방어적 행동이다.

    유년기의 외상 경험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결정된다. 유아기부터 유년 시절까지 체화된 관계 설정이 친밀한 관계에서 되풀이되는데 성장 과정에서 자주 무시당했다면 소외감정에 민감해진다. 상대가 무심코 자신을 무시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내면에서 강한 두려움이 일어 분노를 느낀다. 성장 과정에서 자주 혼이 났다면 스스로 부족하고 하찮은 존재라고 여긴다. 그래서 지적을 받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더군다나 친밀하다고 여긴 상대에게 비난을 받으면 깊은 절망에 빠진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어린 시절의 결핍을 성장한 뒤 친밀한 연인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유년 시절 만족하지 못했던 모든 욕구를 충족하려는 심리이다. 그로 인해 자기 부모와 달리 자신을 정성스레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 연애 중인 남녀가 같이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런 이유이다. 유년기의 원초적이고 유치한 행동으로 불안감을 없애고 방어 심리를 가동해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욕구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그래야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정상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는 테크닉
    자존감이 낮은데 어떻게 정상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첫째, 자신이 두려워하는 부분을 상대에게 알려주자. 두려움이란 자신이 신경 쓰는 점이나 예민한 부분에서 발생한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 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그 원인도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상대도 이를 받아들이고 포용한다.

    둘째, 상대방과 비밀을 공유하자. 전화를 받지 않으면 굉장히 두려워진다고 솔직하게 말해줘야 한다. 체면이나 자존심 문제로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면 결코 친밀해질 수 없다. 비밀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면 상대의 진심 어린 마음도 얻고 진솔한 소통으로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자신의 요구를 능동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자. 관계 발전을 위해 자신의 요구사항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다만 요구가 수용되지 않더라도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아야 한다. 설령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더라도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가 합리적이었는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요구가 합리적이라면 상대와 요구사항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만약 자신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자신에게 왜 이런 비합리적인 요구사항이 생겼는지, 상대에게 이 요구를 강요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모순된 요구를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관계 속에서 자기 찾기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어라
    저는 25세 여성입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상대방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지요. 그 사람에게 어떻게 잘해줄까 생각하며 모든 일이 저보다 그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여요.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제 진심은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니까요.

    일단 누군가와 연결되면 좋든 싫든 이를 받아들이고, 계속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순간도 끊을 수 없습니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제 의중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낮아지고 양보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감당하기에 벅찹니다. 관계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전형적인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요?

    늘 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병이다
    사례 속의 내담자를 보면 몇 가지 감정선이 보인다. 첫째, 두려움이다. 이 내담자는 자기가 만든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자신을 외면할 거라는 두려움과 다른 사람과 맺어온 관계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것이다. 자신이 잘못하면 상대가 자신을 떠나 혼자 외톨이가 될 거라고 믿는다. 이 두려움이 자신을 섥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둘째, 슬픔이다. 상대를 위한 희생이 기쁘지 않다는 뜻이다. 상대 앞에서는 기쁜 척하지만, 그 이면에는 슬픔과 괴로움이 있다. 자신을 희생해야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고 비로소 인정받는다고 확신한다. 그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에는 매우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장담컨대 억지로 감행한 희생에는 기쁨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무조건 베풀어야 관계가 이어지고 기회를 얻는다는 믿음을 버려라.

    셋째, 낙담이다. 자기 의지대로 인간관계를 조절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무엇을 하든지 상대에게 맞춰주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상대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도 바꿀 수 없다. 물건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관계나 상대의 감정, 시각과 태도는 통제하지 못한다. 이를 깨닫는 순간 우울해진다.

    넷째, 애석함이다. 내담자가 처한 환경이 매우 안타깝다. 혼자서만 관계 맺기를 위해 환심을 사려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쓴다. 하지만 상대는 모두 이기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이를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배려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담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쌍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문제의 고민 해결을 위해 진솔하게 말해주면 현재 자신의 상황이 그렇다고 수긍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마음이 투명 유리 같은 맑은 사람들이라 더 쉽게 상처를 입으니 아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와 조언을 함께 건네야만 자신을 돌아본다.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전형적인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좋은 사람’의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짚어보자. 누구에게든 베풀기만 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든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상대를 만족시키고자 한다. 한없이 베풀며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려고 한다. 꼭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 감정, 시간 등 그 범위도 다양하고 넓다. 하지만 이런 신념은 상호작용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감을 위해 무엇이든 다하는 나르시시즘으로부터 비롯된다.

    전형적인 좋은 사람에 대한 정리 
    전형적인 좋은 사람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남에게 ‘투사’한다. 상대를 이기적이고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자신이 좋은 사람의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은 그저 베푸는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전형적인 좋은 사람의 심리는 아주 간단하다. 자신이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니 상대방도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좋은 사람은 못 하는 게 없는 완벽한 대상을 찾는다.

    만약 상대가 부족하다면 자신이 그의 엄마가 된다. 상대는 엄마가 돌봐주는 아기의 역할을 맡으며 완벽한 조화를 꿈꾼다. 일방적으로 베풀면서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자신을 만족시켜주면, 그에게 완벽한 엄마 역할을 맡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희로애락에 신경을 쓰라고 한다. 상대가 이를 거부하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엄마로 간주한다.

    또한 전형적인 좋은 사람은 남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통제적인 관계만 맺는다. 종국에는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억울함과 증오, 달갑지 않은 마음과 불평, 슬픔과 두려움만 가득해진다.

    어떻게 "전형적인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전형적인 좋은 사람의 가면에 벗어보자. 첫째,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보라. 세상은 생각만큼 무섭지 않다. 주위 사람들도 그다지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자기 문제는 스스로 처리하며 자주적 신념으로 생활한다. 관계가 이어지면 분명 무엇인가를 요구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나의 독선적인 생각일 뿐이다. 서로에게 부담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누구든지 조심한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아보라. 다른 사람이 선물을 준다면 기쁘게 받자. 받는 과정에서 미안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감정에 담담하게 마주해야 한다. 고맙게 받으면서 어떤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 더 귀한 선물로 답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자신이 이용당한다든가 상대방을 이용하는 관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관계는 깨진다.

    셋째, 자신에게 잘해주라. 자신이 가진 것을 보호하고 아껴야 한다. 물질적인 부분이 많더라도 의미 없이 남들에게 나눠주어서는 안 된다. 선의라 할지라도 나중에는 베풂을 멈추게 한다. 또한, 베풀 때는 억지로 하거나 원한이나 두려움을 갖고 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나눠야 상호작용을 끌어낼 수 있다.

    넷째, 자신을 받아들여라. 자신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믿자. 사랑받을 만하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필요가 있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으면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음식을 먹고, 옷을 사고 싶으면 사서 자신에게 선물한다. 비싼 음식을 먹으며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먹는 즐거운 과정을 음미해라.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면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언제든지 자신의 요구가 먼저 충족되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위 사람이 모두 이기적이어서 누구 하나 자신에게 무관심해도 신경 쓰지 말자. 스스로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다섯째, 다른 사람을 믿자. 다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해보자. 거절이 두려울 수 있다. 등을 돌릴 것 같고 떠날까 봐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이는 내 감정일 뿐이다. 부탁하는 상대도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정중히 거절하면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바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었더라도 자신만의 생활이 있고 그에 따른 합당한 방식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부당하거나 부담스러운 요구라면 거절하고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자. 모든 부탁에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선책, 차선책 등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부탁을 내가 꼭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말자. 일단 상대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여섯째,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깨라. 전형적인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벗자.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나르시시즘에서 나온다. 이 가면을 깨려면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나도 이기심이 필요해.’, ‘내가 하지 못하는 일도 있어.’라고 자기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나르시시즘을 부수면 진솔하고 진실해진다. 올바른 자기 인식하에서 상호작용을 경험해야 진정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항상 남에게 베푸는 것은 오히려 관계에 독이 된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통제하게 되어 있다. 합리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친구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 “나랑 함께 있어 줘. 혼자 있기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먼저 요구를 표현한 뒤 상대의 반응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먼저 상대를 걱정하면서 ‘지금 바쁘니까 같이 있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은 쓸데없는 노파심이다. 이런 생각이 자신을 위축되게 만든다. 선택은 상대의 몫이니 진실한 마음을 상대에게 표현만 하면 된다.

    나르시시즘을 깨자. 전형적인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경험해야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진심 어린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어도 자신의 세계는 텅 비어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맺기
    수치심은 혼자만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저는 심리 상담을 통해 수치심 때문에 많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언제라도 자동으로 켜지는 평가시스템이 있어서 감정이 나 원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다가도 어느 순간 수치심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아도 개선되지 않고 상대 앞에서 뇌가 하얗게 됩니다. ‘이 말을 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가벼운 사람이라고 비웃을 거야.’ 등 저에 대한 상대의 평가를 짐작합니다. 상담 과정에서조차 심리 상담사의 표정이 진지해지면 그가 나를 귀찮아한다고 느낍니다.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에 뇌의 전원이 나가버리면서 제 감정을 말할 수 없게 되지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계속 남의 말을 헤아리며 눈치를 봅니다. 조금 이상한 점만 보여도 ‘나는 안 될 거야, 뭘 해도 잘못될 거야.’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합니다. 너무 조심스러워하니 무슨 일을 하든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에 좌절하지요.

    저처럼 주변의 시선을 자주 의식하고 수치심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치감에 직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만 수치감에 휩쓸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수치심은 어떻게 생길까
    수치심은 불공정한 처벌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부모의 도덕적 요구가 높으면 아이의 초자아 형성에 이입된다. 본능적인 욕구를 부끄러워하는데 이것이 강해지면 수치심으로 변한다. 성에 대한 수치감을 볼 때 성적 욕구는 자제해야 하며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책망하며 이런 욕구로 인해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한다.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심은 죄책감과 연결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는 생각이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뒤섞이면 자신이 잘못했고 나쁜 마음을 먹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의식이 되살아난다. 혹시나 그런 이유로 다시 피해를 줄까 봐 상대와 연관성을 최대한 차단한다.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을 낸다.”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움을 모면하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관계에서 분노가 감정의 기조라면 상대는 증오의 대상이고 자신을 해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를 신뢰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이 유발되면 관계는 완전히 대립한다. 위협으로부터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자기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선의로 다가오는 사람까지 차단한다. 관계에 스트레스가 쌓여 불신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 상태에 빠져 외로움을 느낀다.

    왜 뇌가 새하얘지는가
    모욕적인 꾸중을 들으면 마음은 그 순간에 멈춰 수치스러운 경험과 기억으로 변해 잊히지 않고 내면에 자리매김한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고 당황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이 하얘지며 멍해지는 상태와 연동된다.

    아이들은 이럴 때 울거나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며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임을 약화시키고 상쇄시키기 위한 작전이다. 무엇을 잘못했든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지고 그럴 만한 이유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질책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뇌가 갑자기 하얘지는 경우는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기도 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 무척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하더라도 용서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도무지 뭔가 떠오르지 않고 하얗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나는 잘못하지 않고 있으며 나는 틀릴 수 없고, 틀려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혹여 자신이 나쁜 평가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수치심은 어떻게 없앨까
    수치심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잘못을 허용하라. 자신은 완벽하게 훌륭한 사람이 아님을 알자. 언제든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실수나 잘못을 범했을 때 이를 수용하고 포용하자.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질게 대할수록 자기 수치심만 키우게 된다.

    둘째, 무모한 투사를 피해야 한다. 수치심을 느낄 때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말자. 사례 속의 내담자처럼 남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의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 관계의 단절만 유발될 뿐 그 이상의 이득이 없다. 감정의 투사는 상대와 자신에게 모두 해롭다.

    어릴 때 겪은 수치심으로 인해 한때 나는 여자만 보면 얼굴이 빨개졌다. 주위 사람들은 다 큰 어른이 여자를 보고 얼굴이 빨개지다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놀렸다. 그러면 나는 또 수치심이 들어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댔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릴 뜻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상대의 의도를 검증함으로써 내가 그들의 놀림감이 아니었음을 밝혀낸다.

    셋째, 수치심은 나르시시즘에 속하는 정서적 감각이다. 감정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어느 땐 좋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 방향에서 보면 수치심이나 자괴감이 좋을 리 없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인정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나르시시즘적 자기애를 완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이 바빠서 남을 지켜볼 여유가 없다. 아예 관심조차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 또한 자신이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상대에게 평가받는 것보다 낫다. 꼭 기억하자. 상대가 나를 평가한다는 기분은 상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