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
 
지은이 : 김민주
출판사 : 팜파스
출판일 : 2019년 07월




  • 사람들의 시선을 늘 두려워하던 저자는 ‘물, 스피드, 운동을 좋아하니 서핑도 배워보고 싶다’는 핑계로 무대 위 주인공처럼, 바다 위 서핑보드에 우뚝 섰습니다. 저번에는 섰지만 파도가 큰 이번에는 서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늘 배우는 마음, 겸손한 자세를 배웁니다. 물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무서운 마음이 들 때면 정작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현실의 큰 파도가 아니라 마음속의 큰 파도임을 상기하며,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br><br>저자는 서핑을 매일 하고 싶어 제주로 이사 갔습니다. 현재 서핑하고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무얼 하든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지요. 다만, 저자는 이전 삶과는 조금 다르게, 서핑을 통해 삶의 굽이굽이를 넘어서 진정 행복한 자신을 찾고 있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 재미도 있고, 당신도 있으니, 행복할 일을 찾는 것도 지금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


    도시 생활 32년 차 육지 여자, 서핑을 배우다

    왜 서핑을 하게 됐어요?

    서핑. 파도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는 모습은 너무 멋있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것처럼 선뜻 하기에는 망설여진다. 나도 그랬다. 화보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같은 느낌이었다. 모델이나 연예인만 화보를 찍듯이 서핑도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선수이거나, 돈이 많거나, 외국에서 살았거나...... 서울에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나와는 다른, 그런 사람들만 하는 것. 버킷 리스트처럼 죽기 전에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목록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서핑을 매일 하면서 산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일단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했고, 매일 서핑을 즐길 만큼의 돈과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 바다에 살며 파도 올라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제와 문화 환경이 잘 조성된 도시의 삶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어쩌다 서핑 때문에 홀로 제주에 내려와 살게 됐을까.


    나에겐 충격 요법이 필요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며 자신감을 회복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고 하듯,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할 거면 내가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해 보기로 했다. 개그우먼 이영자는 ‘내가 죽어도 못 할 것 같던 일 하나를 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서핑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이룰 수 있다’는 단단한 마음, 누군가로부터 부당하게 공격 받더라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자고 수천 수백 번 머리로 생각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몸의 근육도 습관대로 굳어지듯이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 살아온 방식대로 살게 된다. 마음도 몸의 일부고, 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 특정한 모양으로 굳어진 마음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서는 몸을 다르게 움직여야 했다. 나는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전의 나라면 영영 하지 않았을 것, ‘나는 못 할 거야’라는 무기력한 생각 때문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 서핑을 해 보기로 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서핑숍에 강습을 예약했다. 미용실이나 레스토랑 예약보다는 머뭇거려지면서 병원 예약보다는 설레는 오묘한 감정이었다. 예약한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게 서핑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놀러 가는 것 이상으로,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좇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첫 서핑 강습을 받으러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그 의미가 내게는 간절했기 때문에 꿋꿋하게 갔다.


    중문색달해변 주차장에서 예약해 둔 서핑숍의 강사님들을 만나 이름을 말하고, 강습비를 입금하고, 갈아입을 대여용 서핑 슈트를 받았다. 5월 초였지만 비 온 후 바람이 세게 부는 흐린 날이었기 때문에 쌀쌀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5월은 날씨보다 물 온도가 더 차가운 시기이기 때문에 전신 슈트 착용은 필수였다. 서핑 슈트를 물의 유입을 최소화학, 들어온 물은 잘 빠져나가지 않게 해 준다. 슈트 안에서 체온에 데워진 물 덕분에 덜 춥다. 또한 보드에 피부가 쓸리는 것을 방지해 주고, 부력이 있어 수영을 잘 못 해도 물에 쉽게 뜰 수 있게 해 준다.


    아무리 유용하다지만 막상 슈트를 입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슈트는 두께 3mm정도의 고무 재질로 되어 있는데, 몸에 착 붙는 스타일이라 입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슈트를 입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해변까지 내려가는 길은 마치 순간 이동한 것처럼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다지 즐겁지 않았거나 조금 부끄러웠나? 아니, 너무 부끄러워서 정말 순간 이동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비슷비슷한 몸매인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연예인이나 모델의 몸매를 기준으로 거울 속의 나를 평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담이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슈트를 입고 어디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해상 강습이 시작되어 보드를 들고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나 자신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배운 대로 패들링 자세를 잡아 보고, 물속에서 보드를 어떻게 잡고 이동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보드 위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지면, 그런 내 모습을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쟤 왜 이렇게 못하냐’고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다른 모든 것이 어색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물 밖에 있는 사람도, 물 안에 있는 사람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다 나처럼 못하는 사람들(나의 서핑 입문 동기들)이 가득했다. 모두 각자의 보드를 붙잡고 있느라, 계속 물에 빠지고 보드 위에서 넘어지느라 정신없었다. 다른 사람 구경할 겨를이 없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정신 차리고 나면 바로 다음 파도가 온다. 이번 파도와 다음 파도, 그 다음 파도는 모두 다른 크기와 모양이기 때문에 한 파도를 보내고 나면 바로 다음 파도에 집중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규칙만 지킨다면, 서핑은 오로지 나와 파도만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못 하면 창피하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탈 파도 보느라 남들이 어떻게 타는지 생각보다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 더구나 파도를 못 잡거나,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거나, 보드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더라도 흉보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손가락질하겠지만, 못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정해진 성공의 모습을 갖추느라 급급했던 우리에게, 각자의 속도와 스타일을 존중받는 서핑은 조금 낯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도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지 아닌지 까맣게 잊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못할 것 같았던 서핑은,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이 아니라 아예 사람들의 시선을 내 머릿속에서 삭제해 주었다. 그리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바다는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바다는 매번 다른 파도를 보내주지만, 그 파도를 타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면, 기꺼이 파도를 보내 준다. 지나간 나의 행동과 이미 내뱉은 말을 곱씹으며 나 참 별로였다고 타박할 시간이 없다. 얼른 일어나서 다음 파도는 잘 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내가 살아온 세상도 비슷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다고 그걸 두고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서로 조금씩은 민폐도 끼치고 욕도 하지만, 금세 다시 덮어주고 살아간다. 나도 나에게 그렇게 했으면 될 일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서 내게 가장 엄격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남들이 뭐라 하든 크게 신경쓸 것 없다’는 말을 여태까지는 머리로만 알았다면 이제는 조금이나마 마음으로도 알 것 같았다. 파도가 나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것처럼, 내가 누구보다 나를 가장 많이 격려하고 기회를 주면서 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종종 파도와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바다로 간 육지 여자가 바다 위에서 배운 것들

    늘 내 곁에 있는 서핑 선생님들

    입문 강습을 받은 후, 3개월 정도 선생님 없이 쭉 혼자 타다 보니 어느 순간 가르침이 간절해졌다. 지금 내 수준에서 고쳐야 할 것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가 지속됐다. 내 앞에 뛰어넘어야 할 벽이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벽을 넘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지, 내가 나를 가르칠 수 없어서 답답했다. 레벨업 강습을 받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망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라인업에 선생님들이 잔뜩 생겼다. 서핑하면서 사귄 친구들이 그대로 선생님이 된 것이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해 보자’며 가끔 내게 맞는 파도가 오면 양보해 주기도 하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타는 것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배우기도 한다.


    “이러다 쟤가 너 추월하겠어.” 나보다 서핑을 늦게 시작한 친구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돼 있었다. 매일 퇴근 후 빠짐없이 입수했던 친구다. 문득 궁금했다. 나와 실력이 비슷했던 친구가 어느 수 ㄴ간 나보다 훨씬 잘 타게 되었을 때, 그를 선생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삶의 속도는 다르기 때문에 늘 배울 것이 있다. 나는 가끔 싫어하는 사람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저렇게는 하지 말자’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는 선생님. 나보다 잘났고 부러운 사람이 있어도, 그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배우려는 마음을 먹으면 편하다. 분명히 누군가는 또 나를 보며 배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일지라도.


    사람처럼, 내게 맞는 파도를 고르는 법

    서핑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파도를 고르는 눈이 있어야 한다. 파도를 잘 골라야 파도를 잡을수도, 파도를 탈 수도 있다. 파도를 잡을 수 없는 위치에서 잡으려고 하거나, 잡을 수 없는 파도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열심히 패들링을 해도 파도가 잡히지 않는다. 좌절감만 느낄 뿐이다. 바람 부는 날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좋은 파도를 고르는 것, 파도를 잡을 수 있게 위치를 찾는 것도 서핑 실력이다. 파도를 고르는 데에 기본적인 원리는 있지만 책만 봐서는 다 알 수가 없다. 파도가 책에 설명된 것처럼만 들어오진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 번 잘 탔다고 해서 다음에도 똑같이 잘 타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 파도 저 파도 겪어 보고, 이런 상태 바다 저런 상태 바다에 다 입수해 봐야 한다. 잡으면 잡는 대로,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파도 내공’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타는지 관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나라면 이렇게 탔을 텐데 저 사람은 저렇게 타니까 더 잘 되는구나.’, ‘못 잡을 것 같은 이런 파도도 저렇게 하면 잡을 수 있구나.’ 다른 서퍼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입수하기 전에 바다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파도가 어떻게 와서 어디서 깨지는지, 바다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해변에서 더 잘 볼 수 있다.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든, 누군가에겐 좋은 파도였는데 누군가에겐 별로일 수도 있다. ‘오늘 어디 파도가 좋대’라는 말만 믿고따라갔다가 자신과는 맞지 않아 아쉬울 때도 있다. 마치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서 만나봤는데 기대와는 달라 결말이 흐지부지된 소개팅 같다.


    발리의 서핑 캠프에는 여러 인스트럭터가 있다. 돌아가면서 다른 인스트럭터와 레슨을 하게 되는데, 나와 잘 맞는 인스트럭터가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인스트럭터도 모두 자기 스타일이 있는 서퍼들인지라, 선호하는 파도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핑하기 전에는 모든 파도가 똑같아 보였는데, 이제는 전부 다르게 보인다. 파도 고르는 것, 사람 고르기만큼 어렵다. 나는 사람도 잘 못 고른다. 사람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 많은 사람을 보라고 한다. 하지만 파도를 그저 멍하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파도 보는 실력이 늘지 않듯, 사람도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만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싸움을 회피하는 성격 탓에, 대부분의 연애에서 한 번도 싸워보지 않고 이별을 택했다. 웬만하면 참고 참다가, 싸울 일이 생기면 그냥 바로 헤어진 셈이다. 싸워 보질 못했으니 사실 그 사람을 제대로 겪었다고 할 수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표면적인 관계만을 맺었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자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피했다. 바다에서도 처음에 그랬다. 못 탈 것 같은 파도가 오면, 겁을 먹고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피하면, 내가 그 파도를 탈 수 있는지 아닌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사실 지금 탈 수 있는 파도도 한 번 타 봤으니 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아닌가. 이다음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그 사람을 겪어 보고 싶다. 물에 빠지고 보드에서 넘어지고 때로는 파도를 못 잡기도 하지만 파도 고르는 법을 배워가듯 말이다.


    패닉에 몰아넣는 것도, 구하는 것도 나 자신

    나는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놀다가 깊은 곳에서 빠진 경험이 있어, 발이 닿지 않는 곳에 가면 몸이 잔뜩 긴장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친했던 언니가 익사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최근 몇 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수영을 아주 못하는 건 아닌데, 물에 빠지거나 빠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지곤 했다. 이 트라우마는 서핑을 즐기고 싶은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기도 했다.


    서핑을 한다고 하면, 수영을 못해도 서핑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서핑이 익스트림 스포츠로 분류되다 보니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수영을 잘하면 좋지만 못해도 서핑은 배울 수 있다. 꼭 깊은 곳에서 큰 파도를 타는 것만이 서핑은 아니니까. 물이 얕은 곳에서 작은 파도를 타도 서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서핑을 계속하려면 안전을 위해서 수영을 배워 두는 것이 좋다. 서핑에 깊이 빠져드는 만큼 물에도 많이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서핑 배우기가 하나의 도전이었던 것처럼 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도 나의 과제였다. 제주에서 서핑을 배운 후, 양양으로 파도를 찾아다닐 때는 주로 작은 파도만 타거나 얕은 곳에서만 탔다. 실력에 비해 큰 파도를 타려다가 다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겁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아주 얕은 곳에서만 타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은 없었지만 나도 깊은 곳에서 더 큰 파도를 타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아기가 첫발을 내딛긴 했는데 아직 무서워서 두 번째 발은 땅에서 떼지 못한 상태라고나 할까. 그 두려움을 이기고 두 번째 발을 떼어야 걷는 것도, 뛰는 것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던 중 회사를 그만두고 발리로 여행가서 서핑을 하기로 했다. 제주에서 서핑을 처음 배운 지 8개월 만이다 서울에서 일이 없는 주말에만 드문드문 다녀 입수 횟수는 아주 적으니 서핑을 배운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서핑 트립이라기보다는 발리에서 서핑을 다시 배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한국보다 크고 힘이 센 파도, 훨씬 깊은 수심, 한국에선 겪어본 적 없는 리프 브레이크의 발리. 바다의 바닥은 뾰족뾰족한 돌로 되어 있어 부상의 위험이 크지만, 파도가 일정하게 깨진다는 장점이 있따.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으면 파도에 의해 모래가 움직여 지형이 바뀌고, 파도의 모양이나 깨지는 위치도 달라진다. 발리는 전 세계의 서퍼들이 사랑하는 섬답게, 서핑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더 재미있게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반면 서핑 초보였던 내가 발리의 서핑 강사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Don’t panic!”이었다. 깊은 곳에서 큰 파도를 맞고 한번 빠지면 발이 안 닿아 1차 패닉, 당황해 숨이 가쁘고 호흡 조절이 안 돼 2차 패닉, 겨우 물 위로 올라와 보드에 매달리면 큰 파도가 바로 다시 나를 덮쳐 무한 패닉 상태였다. 이렇게 발리에서 나는 내 안에 눌러 놓았던 물에 대한 공포심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파도가 힘 있게 깨지는 곳에서 물에 빠지면, 통돌이 세탁기에 들어간 빨래처럼 물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된다. 이를 ‘통돌이 당한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파도에 정신없이 휘말리는 일은 서핑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성급하게 물 위로 올라오다가 파도에 휩쓸리던 자신의 보드와 충돌하거나 물속에서 돌에 부딪히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만약 가까이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보드와도 충돌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럴 때는 차분하게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파도가 지나가고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어디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사실 그렇게 겁먹을 깊이도, 파도도 아닌데 나는 겁먹은 상태라 계속 혼비백산이니, 인스트럭터들은 나를 안심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This is just water.” 18살의 현지인 강사가 건넨 말이었다. 맞다. 그저 물일뿐이었다. 물론 위대한 자연이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이지만, 서핑 경력 10년의 숙련된 선생님이 옆에서 날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껏 구르고 빠져 봐도 괜찮은, 물일뿐이었다. 그때부터 물을 무서운 존재로 만드는 내 안의 두려움과 적극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큰 파도를 넘어가야 할 때 겁이 난다는 이유로 주춤하면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곤 했다. 이 파도를 무사히 넘어가지 못하고 파도에 얻어맞아 물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해안가까지 끌려가는 상황. 그래서 겁이 날수록 더 빨리 패들링을 했다. 인간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이 가진 최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까. 큰 파도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나도 놀랄 정도로 정말 빨리 패들링을 했다. 그러자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섭기만 했던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내 앞에는 그 파도 너머의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겁난다고 처음부터 포기할 필요가 없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만든 걱정과 두려움이 아닐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을 막상 마주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경우가 많다. 높은 파도에서 떨어져 봐야 물에 빠질 뿐이다. 이 파도가 나를 덮치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물속에서 숨 꾹 참고, 아니면 바닷물 좀 먹고 물 위로 올라와서 다시 바다로 나아가면 된다. 죽을 것 같다는 건 내가 만든 생각이고, 이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도 나에게 달려 있다. 혹여나 헤쳐나갈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힘든 파도라면 잠시 물 밖에 나와 쉬웠다가 다시 다음 파도를 타면 된다. 파도는 계속 오니까 말이다.



    서핑 후 다시 육지? 바다로 둘러싸인 육지!

    파도 짝사랑에는 출구가 없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것에 매진하는 시기에 나는 파도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끈기가 없어 짝사랑에는 소질이 없었다. 상대방이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 바로 포기했다. 하지만 파도를 짝사랑하는 것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짝사랑에는 출구가 없는 기분이 들었음에도.


    서핑은 내 일상을 바꿔 놓았다. 서핑은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핑할 수 있는 파도가 들어와 주어야 할 수 있다. 파도가 너무 없거나, 너무 크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예보가 있긴 하지만 변화가 심해 파도가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간혹 차트와는 다르게 깜짝 파도가 들어오기도 하고, 기대했지만 뻥차트인 날도 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했지만, 서핑할 때만큼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 본 적은 없다. 지금은 파도만 있다면 네 시간도 물에 들어가 있을 수 있고, 바다를 보면서 혼자 두 시간도 앉아 있을 수 있다. 서핑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파도 한 개만 더 타고 간다’는 말은 믿으면 안 된다는 것.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한 시간을 더 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도 그렇게 한 시간은 훌쩍 넘긴다. 튜브를 타고 그저 둥둥 떠 있을 때와는 달리 서핑을 할 때는 밀려오는 파도에 따라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어떤 파도는 패들 아웃해서 넘어가야 하고, 어떤 파도는 잡아서 타고, 파도를 잡기 위해 위치를 바꿔 보기도 한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바다를 둘러싼 육지의 풍경과 수평선까지 펼쳐진 바다의 풍경을 즐기는 법도 알게 되었다. 단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즐기면서 살고 있음을 느낀다.


    어마어마한 짝사랑이다 보니 ‘서핑 잘하고 싶다’는 것에 나의 모든 관심이 쏠린다. 나를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분야, 방향이 있다는 것은 삶에 큰 활력을 준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었고, 서핑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서핑을 하면 즐거우니 매일 서핑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내 하루에 서핑과 일이 공존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핑하러 양양에 가면 출근을 못 하고, 출근을 하면 그날 서핑하러 가는 건 무리다. 세상의 모든 휴가를 다 갖다 써도 한 달에 열흘 이상 쉬기 힘들기 때문에 서핑과 일의 균형을 5:5로 맞추기도 당연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파도를 따라 제주로 이사했다. 내 삶의 낙에 내 시간을 최대한 많이 쓰기 위해서. 제주에 오고 나서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바다에 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우리 모두 삶의 낙을 찾고, 그것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써도 괜찮은 삶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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