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엄마는 엄마
 
지은이 : 가토 이쓰코(역:송은애)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19년 12월




  • 이 책은 6가지 유형별 사례를 통해 본질적으로 모녀 관계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역추적하고, 이를 통해 모녀 관계 솔루션을 제시한다. 또한, 그런 모녀 갈등 속에 엄마와 딸 자신도 몰랐던 젠더 규범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려는 여성 심리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엄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볼 때 딸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을 옭아매는 근거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br>


    나는 나, 엄마는 엄마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엄마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관계는 딸이 결정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엄마의 유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딸의 일이라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며 참견하는 엄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맡기는 엄마,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면서 오로지 딸에게만 차가운 엄마…. 이런 엄마와도 잘 지낼 수 있을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있다. 그런데 이때 관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딸이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든, 관계 자체를 거부하든,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딸인 것이다.


    왜 상담실에 찾아오는 건 늘 딸일까?

    모녀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실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딸이다. 엄마가 상담하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딸이 이상한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딸의 ‘문제 행동’을 그만두게 할 수 있을지 상담하러 오는 엄마는 있다. 그러나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딸과의 관계가 힘들다며 상담하러 오는 엄마는 없다.


    그럼 딸들은 대체 왜 상담실을 찾아오는 걸까?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까지 엄마와 사이좋게 잘 지내왔는데 최근에 엄마가 싫어졌다. 엄마에게는 계속 화만 난다, 아픈 엄마를 돌아가실 때까지 돌볼 자신은 없지만 엄마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등등 엄마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고통 받는 경우다.


    그저 엄마가 나를 조금만 더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며 이해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딸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상처받았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엄마는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려 한다.


    반면 단순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아픈 동생이 있어서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관심을 못 받았다, 형제자매와 심하게 비교당하며 컸다고 털어놓으며 자신의 바람을 얘기한다. 그 밖에도 단지 엄마와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할지 몰라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실을 찾은 딸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위 사례들처럼 분명하게 엄마와의 관계를 주체로 상담실을 찾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오랜 기간 시달렸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가 그 증상의 배경에 엄마와의 갈등이 있음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엄마와의 관계가 현재 삶에서 맞닥뜨린 어려움과 연결되어 있다고 얘기하는 여성에게는 자기 존중감 부족, 자신감 결여, 자기주장 및 자기 결정 불능, 완벽주의, 인간 불신 등의 경향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모녀 관계의 권력자는 엄마다

    그럼 엄마는 왜 상담하러 오지 않을까?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는 엄마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많은 엄마가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력자는 괴롭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힘든 사람은 권력을 갖지 못한 쪽이다.


    모녀 관계로 고민하는 딸과 엄마를 위한 워크숍을 연 적이 있다. 딸 그룹과 엄마 그룹으로 나눠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딸들은 ‘엄마와 거리를 두자. 이제 엄마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반면 엄마들이 내린 결론은 ‘엄마들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일찍 딸을 자립시켜야 한다’였다. ‘딸을 어떻게 하겠다’는 발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엄마 본인도 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딸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딸을 어떻게든 바꿔서 괴로운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며 딸을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많은 경우 엄마의 가치관이나 엄마가 딸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에도 권력자인 엄마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변화를 강요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수도 있다. 딸 스스로 엄마와 관계 맺는 방식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엄마가 딸에게 상처 주는 이유

    사회는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한다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 이 말은 성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고방식이다. 사회가 남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돈을 버는 것이고,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가정의일원이 되어 살림에 전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이때 쓰이는 ‘역할’이란 말은, 특정한 사회적 지위나 입장에 따르는 행동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가리킨다. 이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그 사람 스스로 이런 역할을 해내고 싶다고 목표하는 주관적 역할과는 다르다. 또 ‘역할 기대’란 특정한 사람과 관련된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품는 기대 또는 신념으로, 그 사람이 완주해야 할 권리나 의무를 포함한다.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엄마가 되는 것’, 즉 아이를 낳는 일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해내려면 누군가의 아내가 돼야 한다. 결혼식에서 흔히 ‘얼른 귀여운 아기 얼굴 보여 달라’고 축하 인사를 하듯이, ‘결혼’과 ‘출산’은 한 몸이다. 이렇게 한 몸인 결혼과 출산에 사회는 행복의 이미지까지 덧씌운다. 민간한 사람이 아니면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은 이 같은 현실에 고통 받는다.


    이런 까닭에 딸이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가 오히려 딸에게 가장 큰 결혼 압력과 출산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호하고 싶지 않은 딸, 결혼하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 딸 모두 엄마의 압력을 버겁게 느끼며, 많은 여성이 그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엄마보다 아이가 먼저인 생활

    결혼 압력과 출산 압력은 결혼과 출산을 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출산 후에는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육아의 1차적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여긴다. 이 육아로 말하자면, 혼자서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일을 떠맡으려 할 경우 도저히 해내기 어려울 만큼 고되다. 이때 엄마인 여성은 사적인 용무를 전혀 처리할 수 없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도, 샤워를 할 수도, 심지어 맘 편히 화장실에 갈 수조차 없다.


    육아 강좌에서 엄마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차분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고 싶다, 도중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고 싶다. 방해받지 않고 드라마를 보고 싶다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일조차 불가능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어떤 엄마는 남편이 휴일에도 출근하는 바람에 육아 중에는 치과는 물론이거니와 미용실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생활을 강요받는 사람이 바로 육아 중인 여성이다.


    여성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뭘까?

    남편과 자녀에게 배신당한 인생

    지요노는 이른바 엘리트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다. 지요노의 아버지, 남자 형제, 제부 모두 지적인 일에 종사한다. 그러나 이 남성들의 배우자, 즉 엄마, 올케, 여동생 그리고 지요노는 전업주부다. 오늘날에는 대학교수의 아내면서 자신도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도 있지만, 현재 74세인 지요노 세대에는 그런 여성이 드물었다.


    지요노는 남편이 고작 지방 대학의 교수인 사실이 무엇보다 불만스러웠다. 도시 생활 역시 지요노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남편이 다른 지방의 학교로 가게 됐을 때로 함께 따라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지요노의 유일한 기쁨은 가끔 오는 아들 슈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아들을 남편처럼 시골 대학의 교수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한 지요노는 그 결과 아들의 독립을 방해하고 아들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요노는 아들까지 시골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요노는 현재 류머티즘이 발병해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또한 그녀를 불행하게 한다. 그리고 지요노는 인정하지 않지만 남편의 마음까지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법률상으로 혼인 관계이기는 하나, 남편인 야스유키의 마음은 지요노 곁에 없다.


    남편 야스유키가 집을 나갔을 무렵, 지요노는 유치원생이었던 아들 슈에게 푹 빠져 있었다. 국립대학 부속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아들을 유치원생 대상의 입시 학원에 보냈고, 수영, 영어, 피아노를 가르쳤다. 딸인 다키코도 국립대학 부속유치원의 입시를 치렀지만 추첨에서 떨어져버렸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입시를 치르기 위해 유아 대상 학원에도 보냈지만 학원이 맞지 않았는지 한밤중에 가위가 눌리는 등 정서가 불안정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나기도 했다. 


    정서 불안정으로 종종 몸 상태가 나빠지는 딸을 보고 남편은 애가 너무 바쁜 것 아니냐며 한 소리 했다. 이 말이 지요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딸이 다니던 학원을 전부 끊고 그 후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 하나 끝까지 하지 못한다, 무엇을 시켜도 안 된다며 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요노는 남편 또는 아이에게 꿈을 위탁했다가 배반당하는 인생을 되풀이해왔다. 남편은 지요노의 만류를 무릅쓰고 지방 대학에 부임해버렸다. 딸은 국립대학 부속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추첨에서 떨어졌고, 초등학교 입시를 치르기도 전에 입시 체제에서 탈락해버렸다. 게다가 아들 역시 딸과 마찬가지로 유치원 입시와 초등학교 입시 때 추첨에서 탈락했다. 그 후 아들은 중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 대학 입시, 대학원까지는 지요노의 기대에 부응했지만, 대도시권 국ㆍ공립대학의 교수직을 얻길 바랐던 기대에는 끝내 부응하지 못했다.


    엄마의 꿈은 가족의 성공

    지요노의 꿈은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성취한 사람의 아내 또는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지요노는 ‘명문 교토대 교수의 아내’이자 ‘국립대 교수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이나 아들의 업적에는 관심이 없고, 남편과 아들이 오로지 직함을 획득해주기만을 바랐다.


    지요노의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난폭하고 남존여비 사상을 지닌 아버지를 묵묵히 따랐다. 손님이 많이 오는 집이어서 학생들을 초대해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런 집안에서 딸인 지요노는 엄마를 도우며 자랐다.


    밖에 나가면 부잣집 딸로 대접받는 지요노였지만, 집에서는 엄마와 똑같이 하녀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와 똑같이 대접받았던 오빠 2명은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지요노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여자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지요노가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와 오빠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자녀가 그들보다 더 뛰어난 직함을 얻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성장기를 보내는 동안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아본 적이 없는 탓에, 지요노는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행복했던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다. 행복을 경험해보지 못한 지요노는 행복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럴수록 포장인 직함을 획득하는 일에만 집착했다. 그런데 포장을 마땅히 가져다주어야 할 남편이 이를 얻지 못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결혼 약속을 남편은 지키지 못한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지요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딸인 다키코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지요노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분노이자 증오였다. 


    자아를 잃어버린 여성들

    엄마가 딸을 놓지 못하는 이유

    젠더화되는 사람은 여자아이뿐만이 아니다. 남자아이에게도 젠더 교육이 이루어진다. 남자아이에 대한 젠더 교육은 “더 높이 날아올라 세상으로 나가라”다. 고향을 떠나지 말라는 부모도 있지만, 이 역시 직업을 갖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성은 인생의 단계마다 가르침의 내용이 달라지지만, 남성은 어린아이일 때부터 더 노력하라, 더 위로 가라, 승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일관되게 받는다. 따라서 더 위로 갈 사람을 뒷받침하는 역할은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맡게 된다. 아이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므로, 남자아이는 엄마에게 여성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이중으로 지원을 받는 셈이다.


    남자 형제와 차별받으며 자랐다는 딸의 항의를 듣고 자신은 차별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엄마가 있는데, 이는 거짓말이 아니다.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건 의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이므로 엄마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자 우선 사고는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혼 상대를 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타자 우선 자세는 여성의 심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여성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뭘 기대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맞춰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사이, 정작 자신이 뭘 생각하고 뭘 느끼는지는 알 수 없어진다. 내적 기준이 없는 여성은 외부 불확실한 사회 기준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점점 자아를 상실한다.


    자아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은 여성은 자신이 무력해짐을 느끼면서 타자 우선 자세로 채색된 환경에 조바심과 짜증을 낸다. 조바심이나 짜증은 아이를 향한 분노가 되기도 하는데, 자아를 성찰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 분노가 사실은 다른 요소, 이를테면 비협조적인 남편이나 이해심 없는 부모를 향한 분노라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이 없는 여성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의 내면에 없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을 만큼 불안한 상황인데도, 불안의 진짜 원인은 알지 못한 채 순간의 안심을 위해 불확실한 외적 기준에 자신을 맞춰나간다. 즉, 자신이 판단하기에 세상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여성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세상은 물론 저마다 바람직하게 여기는 여성상 또한 균일하지 않다. 공통점이 있다면 돌보는 역할을 한다는 것뿐이다.


    여성 특유의 돌봄 역할과 반응 언어

    아무런 부족함도 없고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돌봄 역할을 맡은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없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주시한다. 아이 주변에서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아이가 어리다면 엄마가 부족함을 채워준다. 그러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엄마는 부족함을 지적하고 아이 스스로 채우게 한다.


    식당 같은 곳에서도 아이의 행동을 일일이 지적하는 부모를 볼 때가 있다. “똑바로 앉아”에서 시작해, “그러다 쏟는다”, “제대로 씹어” 등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부모다. 이렇게 상대의 언행에 수반돼 반쯤 자동으로 나오는 말은 나는 ‘반응 언어’라고 부른다. 반응 언어에는 의미가 없다. 마치 배 부분을 누르면 말을 하는 인형처럼, 아이의 행동을 봤을 때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쾌해서 흘려듣기 힘든 사람은 자신이 엄마에게 어떻게 항의하는지 되짚어보기 바란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같은 질문형,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해줘” 같은 의뢰형으로 말하지는 않는가? 이런 항의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이렇게 말할 바에야 뾰로통하게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편이 낫다. 반응 언어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지적한 다음 확인하거나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이다.


    엄마가 불편함을 느낀 나머지 도리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부모임을 어필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목적이 없는 반응 언어는 다른 사람이 강렬하게 불쾌감을 표명해도 이를 무시하고 계속 표현될 만큼의 의미도, 힘도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엄마와 관계 유지하는 법

    내 인생을 되찾기 위하여

    엄마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한 4가지 키워드

    첫 번째 키워드는 ‘경계선 긋기’다. 핵심은 기본적으로 어느 유형의 엄마든 딸이 먼저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데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단념하기’다. 엄마가 내가 원하는 걸 주지 않을 때 이를 단념함으로써 딸은 성장한다. 사람은 스스로 어찌하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성숙해진다. 세 번째 키워드는 ‘배은망덕한 딸 되기’다. 엄마에게 받기를 단념한 딸은 엄마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엄마가 낳아주고 키워줬다고 해서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낳아주고 키워준 데 대한 가장 큰 보답은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이다.


    엄마라는 족쇄를 풀어버리면 ‘배은망덕한 딸’, ‘불효녀’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의무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배은망덕한 딸이 되어야 한다면 당당하게 그런 딸이 되면 그만이다. 자기 행복에 대한 책임보다 더 막중한 책임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구 만들기’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사회는 엄마라면 누구나 딸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인식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혼자서 맞서면 자칫 자존감과 의지 모두 잃을 수 있다. 작가 겸 탤런트 나카야마는 같은 책에서 친구들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며 자존감을 지탱해준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엄마를 병간호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엄마에게 맞설 때는 물론 엄마와 관계를 유지할 때도 친구가 필요하다. 상담이나 강좌도 좋고, 그룹 활동, 가치관을 공유하는 친구도 괜찮다. 누구든 안심하고 엄마의 험담을 할 수 있는 친구를 꼭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이제는 엄마가 된 딸에게

    엄마가 된 딸이 느끼는 육아 불안

    모녀 관계를 주제로 강연하면 엄마의 관점에서 모녀 관계를 생각하고 싶다는 참가자가 항상 10%쯤 있다. 10%라는 비율은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는데, 최근 2~3년간 엄마 입장에서 참가하는 사람이 20 ~ 30% 정도로 늘었다. 늘어난 10~20%의 엄마의 자녀는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하다. 아직 아이가 엄마에게 반항하지 않을 법한 나이대다. 문제도 갈등도 생기지 않았는데 왜 모녀 관계 강좌에 참가한 걸까?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엄마에게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서 힘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를 엄하게 대한다(또는 하마터면 엄하게 대할 뻔 했다). 어떻게든 달라지고 싶다’는 이유부터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문제가 일어날 것 같다. 그때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미리 공부해두고 싶다’는 예기불안(자신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생기는 신경증 – 옮긴이) 같은 이유도 있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육아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엄마들이 바로 ‘엄마가 된 딸’이다. 그들은 스스로 육아에서 뭔가 실수하지는 않을까,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지는 않을까, 그 결과 아이에게 미움 받게 되지 않을까 같은 불안을 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 갖기를 망설이는 여성도 있다. 그들은 아이를 쓸모 있는 어른으로 키우는 일과 마찬가지로 아이와의 관계를 소중히 가꿔나가고 싶어 한다. 물론 옛날 사람들도 아이를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으로 키우는 일은 중시했겠지만, ‘아이와의 관계’를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엄마가 된 딸은 이런 엄마의 자신감이 때론 아이에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또 자신과 엄마의 관계를 돌이켜봤을 때 엄마가 좋다고 생각하는 관계를 아이 스스로는 절대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안다. 자신은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된 딸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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