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지은이 : 메흐틸트 그로스만 외(역:이덕임)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21년 04월




  •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손녀의 도움을 받아 책을 출간하게 된 메흐틸트 할머니는 전형적인 도시 할머니다. 하루 24시간이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을 꼽으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느긋이 조간신문을 읽는 아침 시간, 나른한 오후의 낮잠 시간, 그리고 더 이상 건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기에 눈치 보지 않고 먹는 달콤한 디저트 시간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아이쿠! 나 늙었구나! 나이에 겁먹는다는 것

    젊은 시절에 나는 어른이 되면 분명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노인이 되면 분명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나는 내가 젊다고 느낀다. 마음이나 영혼, 뭐라고 부르건 그런 것들도 늙는 것인지 나는궁금하다. 뭔가를 생각할 때 항상 내 머릿속에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젊은 시절부터 변한 것이 없다.


    물론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느새 나는 유부녀가 아니고 미망인이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가 아니라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일정한 스케줄이 없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더 오래 머물러 있어도 된다.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상이나 방금 전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부분 병원에 간 얘기, 달고 다니는 질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게다가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 않다면 젊은 사람들이 나에게 세상에 대해 설명하는 얘기를 줄기차게, 정말로 줄기차게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늙어가는 것의 한 부분일 뿐이다. 늙는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자잘하지만 멋진 순간들이 있다. 가령 나는 내 나이에 비해 몸이 매우 건강하다고 느끼는데 아침에 수영을 하러 갈 수도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 놀라울 정도의 자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다. 크림 케이크도 내가 선택하고 향기로운 리슬링 와인도 선택할 수 있다. 멋진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용기는 분명 가치 있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결과를 극복할 때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손녀가 전화를 걸어 나이가 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순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마음속의 나는 전혀 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했는가? 게다가 손녀에게 이런 내 마음을 모두 보여주려면 이 모든 것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을 두렵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사람들은 백발과 삐걱거리고 아픈 관절, 그리고 은퇴 후의 하품으로 점철된 공허한 날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가 나이 들어 배운 것이 있다면 이것 하나이다. 인생 최고의 시기는 노년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노년은 단지 시작일지 모른다. 무릎이 쥐어짜듯 아프건 말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크고 다채롭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로마를 구경하고 죽다 _ 크고 작은 모험들

    한밤 중 로마의 한 골목에서 나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이 듬뿍 든 와플을 들고 있다. 내가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최고이다. 크림과 피스타치오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의 감기 기운이 남아 있던 나의 목에 걸린 피스타치오 조각들은 기침을 유발시킨다. 내가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인가? 80살이 다 된 나이에 낯선 도시에서 한밤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다니!


    오랫동안 나는 로마에 가는 것을 꿈꿨다. 남편은 대도시를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로마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항상 한적한 곳으로만 다녔다. 괴테는 나폴리 여행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나폴리를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항상 이 인용구의 도시를 로마로 바꾸었다. 또 흑백영화에 나오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여주인공 아니타 에크베르그가 보자마자 탄성을 내지르며 들어가서 물장난을 치던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어떤가!


    손녀딸은 언젠가 요즘 젊은이들은 평생 살면서 경험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한 것이 맞다면 그걸 ‘버킷 리스트’라고 부를 것이다. 내 버킷 리스트 중 로마는 언제나 우선 순위에 놓여 있다. 손녀에게서 버킷 리스트 얘기를 들은 후 내 마음속에는 연쇄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손녀가 로마 여행 안내서를 주면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청했다. 몇 달 후, 나는 티셔츠 네 벌과 속옷 네 벌, 양말 네 켤레, 바지 한 벌, 그리고 수많은 알약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이 순조롭게 흘러갈 때 행복을 느낀다. 가령 밤에 베개 위로 머리를 눕힐 때, 아침 커피가 항상 같은 온도로 유지될 때, 냉장고에 좋아하는 치즈가 들어있고 신문이 우체통에 도착할 때 이들은 행복을 느낀다. 반면 나는 언제나 모험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새벽 4시, 공항으로 가는 S-반(Bahn) 기차를 기다릴 때 모험을 조금 줄이고 좀 더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게 나에겐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긴 했다.


    그 질문은 이후로도 거듭 머릿속에 떠올랐다. 공항의 표지판을 읽지 못할 때, 손녀가 보안 검색대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할 때, 베네치아에서 오토바이에 치이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려 애쓸 때,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고 밤에 기침 발작을 일으켰을 때도.


    그러나 로마에서 나흘을 보낸 후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용기 낼 가치가 충분한 여행이었다!


    내가 보기에 행복은 큰 행복과 작은 행복,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큰 행복은 나에게 멋진 가족이 있고 내가 여전히 꽤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작은 행복은 인생의 좋은 순간을 맛보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것, 트레비 분수의 찬란한 빛을 보는 것, 일정한 목적지 없이 로마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것, 저녁에 좋은 포도주를 한 잔 마시는 것.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나는 작별인사를 싫어하는데 장소와 작별하는 것도 이에 포함되어 있다. ‘모든 이별은 작은 죽음’이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나는 좋아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작별의 슬픔을 위로하곤 했다. 하지만 로마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손녀는 몇 년 후에 다시 로마를 찾아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겠지. 나는 다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년에는 암스테르담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해서 운전하렴 _ 나이 들면 모성이 사라질까?

    내 딸 중 한 명은 나와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산다. 우리는 만날 때면 늘 며칠 동안은 같이 시간을 보낸다. 딸과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딸의 차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애에게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말해야겠어. 정말 조심해야 한다니까. 혹시라도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미리 말해두는 게 좋겠어.’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느긋하게 미소 지으려 애쓰면서 말한다.


    “얘야, 잘 가렴. 집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줘.”


    나는 불안한 모습으로 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불안함은 항상 내 안에 있다. 내 아이들이 몇 살이 되었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엄마인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내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전에는 인생에서 별로 두려울 것이 없었고 나 자신도 겁이 많은 타입이 아니었다.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까지는.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내가 아이들 곁에 머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워 내 건강에도 훨씬 신경을 많이 썼다. 또한 내가 알고 있던 어떤 감정보다도 압도적인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나쁜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또한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늘 속삭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언제든 미리 경고를 하거나 내가 돌볼 수 있었으니까.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을 깨지기 쉬운 날달걀처럼 다루기도 했다. 애들이 밤길을 걷는 것이 불안하게 여겨져서 친구 집에서 차로 데려오는 것도 괜찮았다.


    그때는 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머릿속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해가 갈수록 나는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결정하고 행하는 일들에 지나치게 간섭할 권리를 잃어갔다. 자녀들에게 걱정을 내보이는 것은 내가 그들의 삶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참지 못하고 간섭을 시작할 때 그것이 어떤 문제로, 폭발로 이어지는지 아는 여러 상황을 경험하면서 잘 알게 되었다. 또한 누구도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러니 나는 말을 꺼내기 전에 수많은 생각을 품은 채 침묵을 지킨다. 나는 정말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먼저 체크한다. 나는 엄마 노릇을 하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한다. 나 또한 부모님들이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이 얼마나 성가셨는지도. 아이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내게 조언을 청하는 것은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


    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다.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할 말이 맴도니까. 하지만 내가 말을 내뱉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내 아이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독립적인지, 또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잘 꾸려가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웠으므로 내가 없이도 세상을 잘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엄마로서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 아니겠는가.



    나의 행복, 너의 행복 자원봉사 _ 활동의 가치

    남편이 죽은 후 나는 상실을 안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을 떠받치던 구조물이 무너져버렸다. 이제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울리는 요양원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더 이상 의사를 보러 갈 때나 병원에 갈 때 그와 동행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죽은 후 장례식에서 잠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을 뿐이다. 그 다음에는 암흑이 찾아왔다. 엄청난 슬픔, 그리고 내가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제공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


    가까운 이를 잃고 난 후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돌봐야만 하는 바쁜 단계에서 아무런 도움도, 계획도 없는 단계로 미끄러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후에 이제 새롭게 삶을 배워야만 한다. 이 과정은 미칠 듯이 느리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슬픔이 너무 강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조차 느끼고 싶지 않다.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도 맛보고 싶지 않다. 그저 남편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암흑이 내 삶에서 아름다움을 모조리 앗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느낌에 완전히 빠져들지 말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암흑을 벗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암흑 속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에 빛이 새어 들어올 것이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어둠을 같이 물리쳐주려는 작은 망치들이 많이 있었다.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내 삶에서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온 한 지인.


    나는 이웃에 살던 그녀와 그저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서 몇 주 후 그녀가 우리 집 초인종을 울렸다. 손에 케이크 조각이 담긴 접시를 든 그녀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나중에는 부엌 식탁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 삶에 가득 차 있던 검은 장막을 스르르 걷어내 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자원봉사 일을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슬픔 속에서도 ‘예스’라고 말하고 새롭게 삶에 참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딘가로 숨는 대신에 새로운 일이 주는 여러 가지 감각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지만 새로운 일은 내가 절박하게 그리워하던 내 삶의 한 부분을 되찾아주었다. 견고한 삶의 구조 말이다. 이제 어떤 요일의 오전에 가게에 나가야 하는지 나는 안다. 거기서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이고 동료들은 기꺼이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남편이 죽은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외로운 순간을 더 잘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중단하지 않고 내 자신에게 할 일을 준 덕분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보여줄 수 있는 노년기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나눌 수 있으며,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는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보수를 기대하지 않고 자원봉사하기, 요양원의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가 도움을 주거나 이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기, 혹은 조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아 주기, 동물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수리점에서 당신의 손재주를 발휘해보기…… 등. 나의 경우에는 공정무역 제품을 다루는 가게에서 나의 사교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삶의 풍요로운 이면을 보여준 이웃에게 내가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가게에서 멋진 삶을 누리고 있는 새로운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되었는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근무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매장에 근무하면서 겪게 되는 손님들과의 아름다운 만남들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만든다.


    이제 내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가게의 계산대를 지키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 다음 일을 찾아볼 것이다. 나는 집에서 홀로 묵묵히 앉아 최후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친구들을 사귀고 세상이 나에게 덤벼드는 듯한 이 짜릿한 모험을 매일 경험하고 싶다.



    느림의 발견 _ 절반의 속도로 산다는 것

    요즘에는 일기를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과를 몇 페이지의 일기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내가 하는 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쓰다 보면 한 페이지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저녁에 책상 앞에 앉아 하루의 일을 문장으로 써 내려 갈 시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이 느리게 느껴진다. 과거보다 경험하는 일은 훨씬 적지만 그 모든 것이 훨씬 시간이 더 걸린다. 마치 더 느리게 상영되는 영화처럼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절반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일어나서 샤워하고 커피를 만들고,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안경을 찾고……. 과거에는 이 모든 것을 몇 분 안에 해치울 수 있었다. 가족이 다 모이는 아침 식사도 어떻게든 제시간에 끝냈기에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들려서 집 밖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요즘에는 이 모든 아침 시간의 의식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몸에는 별다른 통증이 없지만 근육은 이미 탄력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나는 매우 빨리 방전되는 배터리처럼 쉽게 지친다. 친구와 커피를 마실 약속이라도 있다면 하루 일은 그것으로 족하다. 나머지 시간은 침대나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보낸다. 그리고 나서는 긴 낮잠을 잔다.


    보통 주중에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나는 달력의 공백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가령 금요일 오후에는 가능하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남독일 차이퉁> 지면에 내가 좋아하는 크로스워드 퍼즐 문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실에 앉아 공책을 옆에 두고 머릿속으로 답을 찾는 시간은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한다. 나는 그날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속도가 줄어든 나의 삶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노년의 여유 있는 시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즐길 수 있다. 시장을 오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리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가는 길에 나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만끽할 수 있다. 공원의 나무와 새들의 지저귐을 기꺼이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 수업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명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걱정하지 말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것이 이루어진다. 느린 걸음걸이가 당신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 속에서 살도록 만든다. 나이는 등록할 필요가 없는 명상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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