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지은이 : 홍민지
출판사 : 다산북스
출판일 : 2022년 03월




  • 사회라는 돌판을 뚫고 나온 90년대생 직업인의 외침! 직장보다 직업이 더 중요한 외침, 목표지향적 사회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달려가기보다 자기만의 방식을 지키며 생존에 성공하고 싶은 90년대생 직장인 홍민지 PD의 솔직한 마음과 만나보기!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기적으로 일한다

    선배인 팀장들이 나에게 가끔 역으로 고민 상담을 요청할 때가 있다. 90년대생 팀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서 나를 부르는 게 대부분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90년대생은 윗세대보다 이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팀원들은 아직 퇴근하지 못했는데 혼자 칼퇴를 하고, 휴가 때 카톡을 하면 아예 읽씹을 한단다. 프로필에 ‘카톡X 전화X’라고 써두어서 연락을 하기도 전에 찔리게 만들기도 한다고. 퇴사를 할 거라고 크게 떠들고 다니기도 해서 상처를 받은 팀장도 봤다.


    나는 팀장의 역할도 하고 있고 90년대생이기도 하기 때문에 두 입장에 모두 공감이 간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팀장 직급이 들으면 속 터지겠지만 이기적으로 퇴근해버리는 팀원이 있어야 칼퇴 문화가 정착한다. 그 팀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오전 시간을 좀 더 타이트하게 활용하거나, 불필요한 보고 절차를 생략하거나,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하게 됐다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눈치만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팀원들만 있는 회사에서는 절대 생각도 못할 대안들이다.


    이런 대안들이 실행되고 효율성이 높아지면 직원들이 일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 그러면 회사라는 공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더불어 성과도 올라간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90년대생을 탓하지만 말고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나가는 게 연륜 있는 팀장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가진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의 이기적인 특성을 스스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일에 대한 열정을 조금 더 유지할 수 있는 원료로 쓰는 거다.


    공덕동에 내가 좋아하는 오마카세 식당이 있다. 고급스러운 여느 오마카세 식당들과는 다르게 나무 테이블도 삐거덕거리고 비싼 그릇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단골들이 넘쳐난다. 주방장님은 손목이 아파서 가게 규모를 더 작은 곳으로 옮겼지만 위치가 바뀌어도 단골들은 열렬히 쫓아갔다. 주방장님께 물었다. “주방장님은 왜 단골이 많은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그러자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 “솔직히 손님들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제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내놓아서 그런 것 같아요.”


    ‘손님은 왕’이라는 고릿적 말처럼, 식당의 음식은 손님의 입맛에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대접하는 게 손님에게도 이득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일 테니까 말이다.



    자존감을 높여준 기억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충분하다


    대학생 때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꽤 오랜 시간 동안 했었다. 내신과 수능을 대비한 영어를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어느 날 영어 수행평가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시험을 대비해 본문을 열심히 외워 갔던 한 학생이 방과 후 학원에 왔는데 표정이 영 심드렁했다. 수행평가를 잘 못 봤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은 만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전혀 기뻐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번 수행평가는 내신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 않아 만점이어도 큰 소용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몇 주 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고 그 학생은 안쓰러울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수업 시간에 필기도 꼼꼼히 하고 숙제도 완벽히 해 왔다. 시험 전날에 중간고사를 대비해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본 결과 그 학생은 만점을 받았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중간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지 않을까, 강사로서 내심 기대했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그 학생은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봤더니 학생은 중간고사를 망쳤다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기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 같다면서 잔뜩 구겨진 정신으로 울음을 꾹꾹 참아내는 듯했다. 어떤 말로 그 학생을 위로할 수 있을까 감이 잡히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자연스럽게 나와 내 친구들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괴하기 바빴다. 수행평가 때 만점을 받아도 나 자신을 칭찬해준 기억이 없다. 사실 엄청 대단한 일인데 말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자라 제삼자의 시선으로 고등학생을 보니, 그 학생이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주변인이었던 내가 충분히 칭찬해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간고사와 수행평가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같은 노력을 했고 실수 없이 성과를 냈다는 것만으로 성취감을 느끼도록 도왔어야 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건 아주 뿌듯해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중간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서 스스로에게 실망할 순 있겠지만, 스스로를 칭찬할 수 없다 해도 자괴할 필요까진 없다.


    내 경우엔 스스로를 칭찬하는 정도와 자괴하는 정도의 밸런스를 맞출 때 자존감이 더 높아진다. 본인을 사랑하기만 했을 때는 오히려 내 약점을 들키기 싫어서 남들에게 그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자괴하기만 했을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정도로 나에 대한 검열과 자책도 하는 편이다. 돌아보면 마음을 먹고 자존감을 높여야겠다는 작전 같은 걸 세워본 적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됐다.


    내 마음의 근원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조각 난 기억들에서 온다. 그 기억의 중심에는 한 명의 인물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노은숙 선생님이다.


    학급에는 남자 회장과 여자 회장이 있었는데, 주로 남자 회장이 핵심적인 일을 맡아 주도하면 여자 회장은 덜 중요한 일들을 처리했다. 여자 회장에 당선된 나는 노은숙 선생님께 반기를 들었다. 저도 같은 회장인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느냐는 물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남자 회장과 똑같은 일을 나눠주셨다.


    학창 시절에 만난 모든 선생님들이 나의 이런 면을 존중해주셨던 건 아니다. 하지만 노은숙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던 오래된 기억이 훨씬 선명해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결국 내 자존감을 지켜주는 기억은 많아봐야 이 정도 에피소드가 전부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기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정한 성과나 성공의 의미는 스스로 정한다

    나의 동년배라면 “내가 다 겪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귀에 딱지로 앉았을 것이다. 조언을 못 하고 죽은 귀신이 단체로 어른들의 영혼에 들어갔는지 왜들 그렇게 조언을 하려고 안달일까. 나도 30년을 살면서 무수한 조언을 들으며 자라왔고 여전히 조언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나도 너 나이 때 일해봐서 아는데 그때 아니면 그렇게 못해.”


    이처럼 영양가 없는 문장이 또 있을까. 아무런 해결책도 없고 위로도 안 된다. 이 레퍼토리에서 조언을 하지 않고 대화를 마무리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아무 말 없이 달달한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이다. 비싼 것도 필요 없다. 딱 5천원짜리면 된다.


    문명특급에 계속 몸담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어른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한 프로그램만 오래 잡고 있으면 나에 대한 평가도 안 좋아질 거라며 말이다. 애정 어린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애초부터 나는 업계에 도는 나에 대한 평가를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평가하는 나보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이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과의 기준에서 나는 저 멀리 벗어나 있다.

     

    잘하는 것을 하기보단 못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내가 생존해온 방식은 차라리 못하는 걸 끝까지 외면해버리는 거다. 못하는 걸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는데 도저히 못 따라가겠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안 했다. 9등급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일본어를 공부하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저 말고도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씀드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일본어를 9등급 받았다 해서 생기는 불이익은 없다. 못하는 걸 포기하면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나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도 못하는 일은 그냥 안 하면서 살 것이다. 나 말고 잘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널렸는데 나까지 뭐 하러 잘하려고 아득바득 애쓰며 살아야 하나 싶다. 대신에 내가 잘 못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도와주면서 상호보완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 여태껏 나는 못하는 걸 포기하면서 생존하는 대신에 누군가와 협업하는 능력을 키우는 중이다.


    TV 특별판으로 <컴눈명 스페셜>을 진행하게 됐을 때 음악 방송 포맷을 처음 해봐서 자신이 없었다. 음악 방송을 보면 1번 카메라부터 7번 카메라까지 있고, PD들이 커팅을 한다(커팅이란 아티스트가 공연을 할 때 원샷이 나왔다가 풀샷이 나오고 그룹샷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PD들이 콘티를 짜서 디렉팅하는 일이다). 이 일을 내가 배워서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운다고 해서 꼭 잘할 것 같지도 않고 못하는 걸 굳이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경력이 오래된 능력자를 찾아 도와달라고 했다. 민선홍 PD님은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면서 즐거워하며 흔쾌히 응해주셨다.


    더불어 내가 무대 연출을 처음 하다 보니 실수가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촬영팀을 찾아가서 제가 너무 못할 것 같은데 제일 잘하는 선배님들과 할 수 있겠냐는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농담 삼아 “막내 나이가 쉰이야”라고 하시며 가장 오랜 경력자 촬영 감독님들과 팀을 맺어주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내가 아주 진행을 못했는데 내 낮은 역량을 커버해줄 수 있는 감독님들이 계셔서 무사히 녹화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을 함께라서 잘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감독님들은 신선한 기획에 참여해서 즐거웠다는 의견을 주셨다. 내가 가진 새로운 아이디어와 높은 역량을 가진 전문가들이 합쳐져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능력 위주로 인정을 받는 사회 속에서 태어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이상 무엇 하나는 자신 있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게 된다. 아마도 태어났을 때부터 뭐 하나라도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잘해내지 못했을 때 열등감이 폭발하고 자신과 비교되는 사람을 난도질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푸는 갈등도 일어난다.


    자신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도 자신 없는 일을 지워가며 내가 할 일을 찾아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며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성장한 능력으로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동료가 많아지면 좋겠다.



    큰 그림은 6개월까지만 그린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고정 문항 중 가장 답하기 힘들었던 것은 “10년 뒤 내 모습을 예측하라”였다. 나는 당장 한치 앞도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만 인생의 큰 그림을 알려달라고 하는 걸까? 목표 없이 내달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최종 목적지 같은 걸 정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문명특급을 만들어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10년 뒤에 어떤 PD가 되어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장 다음 주라도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계획이 그려지지 않는 막연한 바람이 아닌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있을 만한 미래를 그려보자면 10년 뒤는 나에게 너무 먼 미래다.


    문명특급은 팀의 계획을 세울 때 6개월 단위로 정한다. 10년 뒤, 3년 뒤, 1년 뒤의 목표는 절대 세우지 않는다.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다. 사람들이 말하는 ‘통찰’ 같은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래서 굳이 예측하거나 호언장담하지 않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루살이처럼 살아온 생존본능 때문이다. 6개월짜리 인턴으로 이 회사에 들어와서 1년 정도의 프리랜서 기간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 탑재되었다. 부장으로 승진한 내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당장 내일 나의 쓸모를 증명해내야 하는 일이 더 급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단기 목표를 세우는 일에 집착하게 되었고 중장기 목표를 세우는 일은 뜬구름 같아 보였다. “2년 뒤에 우리 조직은 이런저런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팀장이 말하면 “2년 뒤에 제가 이곳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때 가서 얘기해주세요”라고 답하는 팀원이었다. 이 고용 구조가 안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상 하루하루 잘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매일이 계속될 것이다. 내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는 말이다.


    중장기 목표는 세우기 힘들지만 단기 목표를 세우는 데는 자신이 있었던 하루살이 기질 덕분에 문명특급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만 버텨보자.

    다음 달만 버텨보자.

    6개월만 더 버텨보자.

    남은 하반기만 더 버텨보자.


    절절하게 버틴 하루, 한 달, 1년이 모이면 어느새 10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당장 내일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는 팀을 운영해보고 싶다. 그 결과는 나도 모르겠다.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또 그 때 가서 다른 방법을 도모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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