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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고 명랑하게, 매일 하는 심신단련
 
지은이 : 신미경 (지은이)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5년 06월




  • 번아웃과 무기력에 빠진 일상 속에서 작고 현실적인 루틴으로 삶의 에너지를 회복한 100일간의 기록입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걷기, 제철 음식 먹기, 소소한 기쁨에 집중하기 같은 실천 가능한 습관을 통해 자기 돌봄의 힘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작고 구체적인 변화가 주는 회복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느리고 명랑하게, 매일 하는 심신단련


    세상의 소음을 끄다_ 디지털 디톡스 100일

    도시에서 숨는 법

    디지털 세계는 도시의 움직이는 은둔자들이 숨기 좋은 곳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혹은 걸어가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헤드셋을 낀 채 스마트폰 스크린 속에 빠져 원하는 것만 골라 듣고 보는 즐거움. 세상에 벽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온몸으로 보내는 신호는 하나다. '혼자 있고 싶어.' 어디에서든 디지털 기기를 끼고 아늑한 안식처를 만드는 '디지털 코쿠닝'이라는 세태는 주변의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고, 상호 작용할 생각조차 없음을 드러낸다. 알아서들 피해 가시라.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는 오늘도 거리 곳곳에 출몰한다. 즐거움을 주는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는 언뜻 나쁠 게 없어 보인다. 낯설고 예측 불가한 타인들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보다는 현명한 선택 같기도 하다. 이런 도피가 조금씩 현실에서 마주하는, 실제 존재를 수용하거나 참는 힘을 약하게 만들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정신이 너무 산만해. 왜 사는 게 이다지도 숨 가쁜 거야.'


    쳇바퀴 같은 삶은 익숙하지만, 그 안의 다람쥐는 점점 지쳐갔다. '삶의 질을 올리고 싶어. 어떻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방해물을 하나씩 치우는 데 있다. 그즈음 나는 여느 때처럼 스몸비를 피해 길을 걸으며 문득 적대감이 싹트는 걸 느꼈다.


    '매번 나만 부딪치지 않도록 안전 보행에 신경 써야 하는 건가.' 그사이 전동 킥보드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인도에서,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거리는 위협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마치 나는 단 한 번도 스몸비로 걸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기적인 타인에게 불만을 터트린다. 오래전에 급하지도 않은 업무 문자를 보내며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주머니에게 대차게 욕을 먹었던 내 모습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이. 타인의 어떤 특정한 모습이 심하게 거슬린다는 소리는 내게도 그런 면이 있다는 뜻이다. 나의 싫은 부분을 거울처럼 보게 되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더는 스몸비로 살지 않기로 한 나는 먼저 소리로부터 멀어졌다. 내 인생의 배경음악이라며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틈새 시간에 어학 능력을 키워보겠다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길을 걷곤 했는데, 모두 그만뒀다. 이보다는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구 밀도가 높은 사무실은 여러 대화가 오가곤 해서 남들의 말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며 산만해지곤 했는데, 이때 음악이 나오는 귀마개가 구세주였다. 이어폰은 전화를 받으며 메모를 할 때도 유용했다.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시끄러움을 막고자 볼륨을 높이다 보면 소음에 소음이 겹쳐져 정신이 더욱 사나워졌다. 난청의 위험만 높아진다는 자각에도 이어폰 없이 살아가긴 어려울 거라고 마음이 갈팡질팡하던 어느 날, 계기가 생겼다.


    "드디어 1세대 에어팟이 고장 났군." 늘 한쪽 귀에 이어폰을 한 몸처럼 꽂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동료가 침울해하며 고물이 되어버린 에어팟을 케이스에 넣으며 말했고, 나는 충동적으로 "제 거 사실래요? 얼마 안 썼어요" 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나의 에어팟2는 그길로 홀연히 사라져 은행 계좌에 구입 가격의 절반인 금액으로 남았다. 새로운 이어폰과 한 몸이 된 직장 동료가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괜히 팔아버렸나, 약간의 망설임이 찾아오기도 했다. 한동안 열린 귀가 어색해서 일에 집중한답시고 뭔가 듣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으나, 몇 번 참아내다 보니 1년 가까이 세상을 향해 두 귀를 쫑긋 열고 살게 됐다.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잖아, 그런 홀가분한 기분마저 든다.


    3년 전만 해도, 평온한 삶을 위해 몸에 부착하는 디지털 기기는 내 삶에서 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가도 매번 약속을 지키기 힘들었다. 친구가 적극 추천해서 입문한 스마트워치는 애용하는 수준이었고, 에어팟은 내가 의도적으로 세상에서 고립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깨진 약속을 다시 이어붙인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살 필요성을 못 느끼므로 열린 내 귀로 소음이 그대로 꽂힌다. 갑작스러운 고성, 자동차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전동 킥보드 폭주족이 내는 소리도 기민하게 감지하고 획 피한다. 몸을 다치면 나만 손해니까. 거리 소음을 비집고 연한 바람 소리나 새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모르는 이들의 웃긴 대화를 엿듣고 웃지 않으려 입술을 악물고 참을 때도 있다. 신기하게 여러 소리가 뒤섞인 지금의 상태가 더 편하다. 도망칠 구석이 없다 보니 적응해버린다. 내가 진짜 집중하면 어떤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말을 걸어도 "응? 못 들었는데?"가 된다는 사실도 참 오랜만에 느낀다.


    오프라인 생활의 온기 넘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자 나는 집 바깥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수상한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서 가급적 스마트폰을 꺼내지 말자는 결심에 불과한데도 이내 홀가분함이 차오른다.


    오프라인 장보기부터 손글씨, 종이책, 그리고 어떤 날에는 영화관에 가는 아날로그 생활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기계와 맞닿은 생활을 줄여나가자 결국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면 너머에 사람 있어요!' 이런 외침은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에서는 공허한 주장이 될 때가 많다. 상대가 나를 모른다는 이유로 나쁜 인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서로를 마주하는 현실에서라면 조금 더 많은 점을 살피게 된다. 공감과 배려는 감정이입에서 출발하는데 논리와 객관성으로 무장한 기계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무뎌지는 감각이다. 



    더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_ 밀가루 단식 80일

    밀가루를 그만 먹기로 결심하다

    생태계에는 먹이사슬이 있다. 풀은 사슴의 먹이고, 사슴은 호랑이의 먹이다. 호랑이는 사냥꾼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역시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다. 식습관 교정도 연쇄 사슬이 있는데 설탕, 밀가루, 나쁜 기름 순으로 이어진다. 설탕이라는 엄청난 중독 물질을 먼저 통제하면 그다음 또 다른 단순당인 정제 밀가루와 쉽게 멀어진다. 빵부터 일단 끊어야지가 아니라 설탕 음료를 멀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본래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젓가락질도 하기 힘든 국수나 수제비 같은 밀가루 음식을 크게 즐기지 않지만, 빵은 자주 먹는 편이었다. 이는 밀가루가 설탕의 단맛, 버터의 고소함, 소금의 짭조름함을 섞어서 제공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서다. 홍차에는 마들렌을, 그리고 녹차를 마실 때는 팥이 든 과자를 먹으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단맛에 무한대로 관대했을 적에는 버터를 얹어 구운 식빵에 잼을 발라 먹거나 주말이면 팬케이크를 구워 온갖 과일을 곁들여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음식은 먹을 때만 좋고, 먹고 나면 체감상 볼이 빵빵하게 부었다.


    먹으면서 실시간으로 살이 찔 수 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나의 또 다른 식습관 문제는 튀긴 음식을 꽤나 좋아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밀가루를 끊자 자연스럽게 튀김이 사라져 질 낮은 기름을 섭취할 일도 없어졌다. 한마디로 풀(설탕)이 사라지면 사슴(밀가루)이 모두 죽고, 호랑이(나쁜 기름)도 더는 먹을 게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인간도 살지 못하는데···.


    밀가루 단식을 하게 되자 외식의 선택지가 좁아졌다. 어차피 주로 집밥을 먹어서 혼자 먹는 건 상관없으나, 사회적 식사가 어려워졌다. 내가 가려 먹는 음식이 있으면 상대가 나서서 배려해줄 때가 많지만 언제까지고 내 뜻대로 살지는 못하겠지.


    "뭐 먹고 싶은데?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신세 졌던 친구 H에게 모처럼 점심을 사겠다고 메뉴를 골라보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이때만 해도 나의 머리는 순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중국 음식 먹을까?"


    뭐라고! H의 가벼운 한마디로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면과 튀긴 고기와 달달한 소스가 끊임없이 오갔다. 난감하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는 점심에 내가 먹을 만한 외식 메뉴를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세상에는 나처럼 안 좋은 건 피하고 절제하자는 주의가 있는 반면, 또 누군가는 한 번뿐인 인생,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즐겁게 지내자는 자극 추구 성향도 있다. 금욕주의와 향락주의는 양극단에 있지만 두 가지 유형 모두 사회에서 사람들과 두루두루 원만히 지내고자 한다면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중용의 미덕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고립을 자처하는 진정한 은둔자였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겠지만, 나는 사회에 발을 걸치고 있는 데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특별한 지병도 없으니 인간관계를 담보로 식사 메뉴에 까다롭게 굴면 곤란하다. 때론 상대의 기분을 맞출 줄도 알아야 한다. 찰나의 순간 '두뇌 풀가동'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한 끝에 중국 음식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H가 나의 머뭇거림을 느꼈는지, 메뉴를 한식으로 바꿨다. 이건 너무 미안하잖아.


    나는 어쩌다 밀가루까지 안 먹기로 결심했는가. 설탕 중독이 희미해지자 식습관 교정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처음에는 살을 빼고 싶었다. 어느새 표준 이상으로 불어난 체지방이 문제였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으로부터 세뇌당한 비만한 몸이 가져올 온갖 나쁜 질병을 떠올려보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살이 찌면 하체에 힘이 실리는 운동, 심지어 걷기마저도 무릎에 부담이 되고, 혈압과 당뇨로 가는 성인병의 고속도로를 타는 건 시간문제라서 나이가 들면 비만이 단순히 외모에 국한되지 않는다. 목숨이 걸려 있다!


    인바디가 제시한 나의 목표 몸무게는 정확히 최근 퇴사한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의 몸무게였다. 지난 회사가 암암리에 제공한 풍족한 외식 환경과 스트레스성 과식으로 수년 사이 10킬로그램 가까이 쪘고, 이를 다시 빼야 했다. 다이어트는 식이조절이 거의 전부다. 나도 가장 살찌는 음식인 설탕과 밀가루, 나쁜 기름을 단계별로 끊고 나자 한 달 만에 3킬로그램이 빠졌다. 주변 사람들은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했지만, 아직은 조금만 노력해도 몸이 나아진다는 것 자체가 내겐 위안이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나를 완전히 놓아버렸다면 살이 안 빠지는 체질이 되고 비만한 몸에 불편함이 하나씩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빵을 안 먹을 수 있어!?"


    밀가루 단식을 선언하자 주변의 밀가루 음식 애호가들이 그게 가능한 발상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통밀빵이나 파스타를 만드는 듀럼밀은 괜찮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다. 사실 그런 종류의 밀가루 음식은 중독되지 않는다. 거친 잡곡밥이 윤기 도는 흰쌀밥만큼 당기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비록 통밀빵이나 파스타라 할지라도 밀가루는 밀가루라서 안 먹고 있다. 가루로 만든 음식이라 대체로 한 끼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아지고, 그런 밀가루일지라도 한번 먹기 시작하면 입맛이 길들어 흰 식빵이나 쿠키 같은 과자의 유혹에 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직 내 의지를 믿지 못한다. 일상 식단에 밀가루 포함 여부가 중요해지자 냉장고에서 모든 가공식품이 사라졌다. 어묵, 만두부터 시판용 소스까지 모두.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집밥일 때만 가능하다. 외식은 알게 모르게 음식에 설탕도 밀가루도 섞여 있을 게 분명해서 나도 모르게 섭취하게 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칩거 중이라 식사 약속은 대체로 한 달에 두어 번뿐인 데다 식사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니 과하게 예민해지고 싶지 않다.


    "한식 아니면 샐러드."


    뭐가 먹고 싶냐고 질문받으면 내가 하는 대답은 늘 비슷하다. 바깥에서 음식을 고를 때 두 가지 옵션밖에 없어서 메뉴 고민은 줄었고, 색다른 맛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도 다행히 없다. 생선은 담백하고 샐러드는 풀 맛이 난다. 모두 내가 아는 건강한 맛이다. 식도락을 즐기지 않고 심플한 식사를 선호하는 게 좋은가 나쁜가는 자신이 무엇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사느냐에 좌우될 뿐 정답은 없다. 우리는 자유주의 시대에 태어난 까닭에 중세처럼 엄격한 종교적인 규율이 일상을 통제하지 않고, 라마단처럼 정해진 금식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너른 선택의 자유는 존중하나 그 책임 역시 한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세태 속에서 스스로 중심을 잘 잡지 못하거나 몸이 상하면 자기 관리를 못 한 내 탓이 되기에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나도 10킬로그램이 불어난 몸이 전부 내 잘못 같았다. '그때 스트레스에 더 담대하게 반응했더라면!', '선물로 받은 유명한 제과점 디저트를 먹지 않고 꾹 참을걸!' 같은 온갖 후회를 했다. 돈과 체중은 한 번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른다더니 나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온몸의 세포가 바뀌는 기간이 80일이라 한다. 그동안 밀가루 단식을 이어간다. 설탕, 밀가루, 기름에 볶거나 튀긴 음식이 사라진 식탁에 쾌락은 없지만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 청경채, 브로콜리의 맛을 온전히 느끼는 미뢰. 예전보다 가벼운 몸, 일정한 기분을 유지하는 정신, 빛나는 피부처럼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절제력만으로 해결이 된다면 얼마나 저렴한지 모를 일이다.



    마음챙김 글쓰기_낙관주의 연습 30일

    단순한 기쁨

    디지털 디톡스, 식습관 교정, 운동 포트폴리오 계획과 실천···. 앞선 모든 시도는 명확했다. 목표는 분명했고, 지켜야 할 규칙은 뚜렷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데이터라는 근거가 있어 나와 약속한 기간이 끝난 후에도 더 나아 보이는 방향으로 바꿔나가기도 쉬웠다. 그러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만큼은 어려웠다. 인터넷에서 쉽게 해 보는 성격 테스트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전문적인 기질 검사를 받거나 심리상담을 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마음이 힘든가 질문해보면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디에 시간을 써야 삶이 즐거워질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요즘이라 주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여러 책을 찾아 읽는다. 적극적으로 답을 구하면서도 오늘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 나의 생각은 대체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기분이 극도로 좋았다가 평정심을 이어가다가 침체되고 어두워지는 감정의 흐름은 보통 여성 호르몬의 강도에 따라 매월 달라지는데, 심할 때는 무기력하고 평소보다 불안감이 강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호르몬 탓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감정 기복 역시 크지 않은 셈이다.


    "불안이, 인기 많잖아요!"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 2를 홍보하는 팝업스토어에 갔다가 애니메이션 PD로 일해온 후배로부터 '불안이'를 소개받았다. 붉게 용솟음치는 헤어스타일을 한 캐릭터의 겉모습을 보고 '귀엽지는 않은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으나 영화만큼은 보고 싶어졌다. 불안은 나의 오랜 동반자와 같은 감정이고, 천재적인 스토리텔링을 하는 픽사에서 불안을 어떻게 다룰지 너무도 궁금했다. 얼마 후 습한 장마 기간임에도 오전 업무를 마치고 인터넷으로 영화 티켓을 예매한 다음 나갈 채비를 했는데 흠, 나의 일처리 순서만 봐도 불안이 보였다. 업무(숙제)를 마치지 않으면 마음에 걸려서 재미있게 놀 수 없으니 업무 먼저, 평일 오후라서 표가 없진 않겠지만 현장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건 시간 낭비라 사전 예매, 그다음 영화관에서 쾌적하게 지내기 위한 준비물을 챙기기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몸에 묻을 게 뻔한 장맛비를 닦을 손수건, 긴팔 셔츠와 보온병 같은 것들을 작은 가방에 담는다. 모두 불안이 만들어낸 일처리 순서이자 계획적인 성향이다. 이러니 삶을 가꾸는 데 가장 필요한 감정인 불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한여름의 영화관 내부는 예상대로 쾌적하면서도 약간 쌀쌀했다. 가방에서 담요를 대신할 체크무늬 긴팔 셔츠를 꺼내 무릎 위에 펼쳐 덮고, 보온병에 담아 온 보이차를 작은 도자기 찻잔에 따른 다음 조금씩 음미하듯 마시며 영화 시작 전 광고와 예고편을 보았다. 서늘하지만 보송보송한 실내, 따뜻한 차, 그리고 보고 싶었던 영화까지···. 내 주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전체 관람객은 스무 명도 채 안 되었다. 인구 밀도가 낮은 영화관에서 편안함에 기대어 나를 잠시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영화의 시작을 기다릴 때의 설렘이란. 팝콘이나 탄산음료 등을 먹지 않은 지 10년은 넘은 데다, 따뜻하고 질 좋은 차로 음료 취향이 바뀐 후론 이제껏 영화관에서는 기껏해야 물이나 마셨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익숙한 장소에서 다른 경험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집중해 보다가 막판에는 코가 찡해지면서 눈물이 주룩주룩 났는데, 역시 눈치 볼 주변 사람이 없으니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감정을 자제하지 않았다. 딱히 슬픈 장면이 나와서는 아니었고, 잃어버린 나의 '기쁨이'를 찾고 싶다는 내면의 자각이 나를 울게 했다. 인사이드아웃 2는 주인공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감정 세계를 보여주는데, 본래 '기쁨이'가 리더였다가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로 '불안이'가 키를 잡게 된다. 불안의 감정이 우세해지며 미래를 계획하고 대비하는 성격이 강해진 라일리는 불안 때문에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불안이 우세할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빈도가 줄어들고 기쁨은 컨트롤센터에서 추방당하며 불안이 라일리의 감정을 지배한다. 내 모습이잖아? 아니 꼭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이겠지.


    지금 나를 움직이는 감정이 뭔지 떠올려보았다. 확실히 은둔자가 된 후로 스트레스가 줄었기에 편안함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전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영화의 결말을 보며 소리 없이 울던 나는 마지막 장면쯤에서 기쁨이가 불안이를 의자에 앉히고 따뜻한 허브차를 건네는 모습에서 아마 내 불안이도 지금 그렇게 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 삶에 기쁨이를 더 많이 불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단순한 기쁨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해보는 건 어떨까. 불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확실히 나에겐 기쁨이 결핍되어 있다. '다 해본 일이라서 설레지 않아'가 중년 감정의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관에서 평소와 달리 차를 마시거나 참지 않고 마구 울며 시간을 보내니 훨씬 즐거웠다. 단순한 기쁨이다. 성취에 얽매여 성장, 또 성장을 외쳐봤자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갈망은 이와 상관없이 홀로 커지기만 할 때가 많았다. 빠른 결과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과도한 노력을 하고, 그 끝은 체력과 정신력의 동반 고갈로 번아웃이 올 뿐이다. 기쁨을 자주 느끼고 또 쌓아간다면 삶에 주어지는 여러 과업을 놀이라 여기게 될 테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어디까지나 나처럼 (종종) 성취 지향적인 사람에게 맞는 처방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반대로 자고 있는 불안이를 깨워야 할 테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감정만큼 어려운 균형 잡기는 없지만 최근 들어 이렇다 할 삶의 즐거움이 없었던 나에게는 확실히 기쁨이 필요하다.


    앞으로 30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해보기로 했다. 몸보다 머리가 바빴던 목표와 계획은 미뤄둔 채 다시 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일하거나 책에 빠져 있는 평소 방식대로 살아가기보다 진짜 세상 속에서 놀기, 자주 해봤던 것 말고 안 해본 거 하기. 혹은 조금은 비틀어서 다른 방식으로 놀아봐도 좋겠지.


    결과부터 말하자면 처음의 들뜸이 가시고, 날이 갈수록 각오는 수그러들었다. 오전에 일하고 나서 운동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외출로까지 시간을 쓴다는 것 자체가 피로한 일이었다. 게다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자주 나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나 놀이라는 개념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바깥에서 놀든 집에서 놀든 매일의 감정은 다르며, 책보다 현실에서 피부에 바로 와닿는 자극이 더 강렬했을 뿐이다. 다만 감정의 메신저가 무엇이든 날것 그대로를 느끼되 결국 기쁨에 가닿기 위해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고차원적인 훈련을 한다. 여태 불안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 해보는 낙관주의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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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