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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시간표
 
지은이 : 정보라
출판사 : 퍼플레인
출판일 : 2025년 10월




  • 정보라 특유의 저주와 복수의 테마에 담긴 선악에 대한 엄정함뿐만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에까지 뻗치는 온정 어린 시선 덕분일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로 자아내는 기이한 위로.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기묘한 돌봄을 실천하는 이상한 연구소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한밤의 시간표

    한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한밤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로 들어가면, 이 시간은 오히려 가장 분주한 무대가 된다. 낮 동안 미뤄두었던 고민과 후회, 잊은 줄 알았던 얼굴과 문장들이 이때를 틈타 차례로 등장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된 불면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묵혀둔 열망이, 누군가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가 찾아온다. 이 책이 말하는 한밤은 단지 시계 위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내면이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감정의 시간표다.

    한밤의 시간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들의 패턴을 읽어내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언제 가장 약해지는지, 언제 가장 예민해지는지, 언제 의미를 강하게 갈망하는지 잘 모른 채 산다. 하지만 반복되는 감정의 시간대가 분명 존재한다. 퇴근길 이후의 한숨, 아이를 재운 뒤 찾아오는 공허, 모두 잠든 뒤 홀로 불을 끄기 전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불안 같은 것들이다. 한밤의 감정 시간표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감정에 기습당하지 않는다. 불청객이 아니라 예고된 손님처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낮에는 견디고, 밤에는 느낀다

    낮의 시간표는 외부 세계가 짠다. 출근 시간, 회의 시간, 약속과 마감, 타인의 메시지와 요청이 우리의 하루를 조각낸다. 이때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움직인다. 반면 한밤의 시간표는 ‘느끼는 일’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누구도 “지금부터 30분간 불안을 느끼십시오”라고 지시하지 않지만, 우리는 거의 정확히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감정과 마주한다. 이 대조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낮에는 버티고, 밤에는 비로소 붕괴하거나 해방된다는 사실이다.

    한밤에 터져 나오는 감정은 낮 동안 부정했던 마음의 반동인 경우가 많다. “괜찮다”라고 말하며 넘긴 일들이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이 늦게서야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밤의 눈물과 후회,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짜증과 예민함을 무조건 ‘나약함’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정신이 스스로를 복구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낮에는 역할을 위해 나를 지우고, 밤에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한밤이 드러내는 관계의 진짜 얼굴

    한밤의 시간표 속에서 특히 또렷해지는 것은 관계의 후유증이다. 낮에는 메신저와 이메일, 짧은 대화와 업무적 언어로 사람을 상대한다. 그러나 한밤이 되면 언어 뒤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쿡쿡 아팠던 이유, 애써 농담처럼 넘겼지만 속으로는 서운했던 장면,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을 여전히 떠올리는 마음이 이때 찾아온다. 이때 떠오르는 얼굴과 대화는, 우리가 누구에게 상처받고 누구에게 기대고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관계의 진짜 상태는 함께 있을 때보다, 헤어지고 난 뒤 한밤에 더 선명해진다. 만남이 즐거웠는지 여부는 한밤의 정적 속에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이 잔잔히 따뜻해지고,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또 어떤 관계는 떠올려지지조차 않고 아무 감흥도 남기지 않는다. 이 감정의 잔향은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나침반이 된다. 한밤에 반복해서 떠오르는 얼굴은 정리하거나 지켜야 할 사람, 그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이 신호를 외면할수록 더 깊은 피로와 엇갈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불면은 실패가 아니라 질문이다

    많은 이가 잠들지 못하는 자신을 탓한다. ‘내일을 위해 빨리 자야 하는데, 왜 이러지’라는 자책이 오히려 잠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한밤의 각성 상태는 단지 몸의 피로가 아니라 마음의 이야기를 반영한다. 일상의 리듬에서 놓친 질문들이 불면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지금 사는 이 방식이 정말 나에게 맞는가, 나의 하루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같은 질문들은 낮의 소음 속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신 한밤의 정적을 빌려 몸을 깨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잠을 강제로 밀어붙이려 애쓰기보다, 잠이 오지 않는 나를 잠시 이해해보려는 태도다. 오늘 하루를 통과해 온 감정이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더 말하고 싶어 하는지 들어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공책 한 장, 짧은 메모 한 줄, 혹은 방 안을 한 바퀴 천천히 도는 산책 같은 작은 의식들은 불면을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닌 성찰의 시간으로 바꿔준다. 불면은 몸이 보내는 고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다시 살펴보라는 초대장일 수도 있다.

    한밤의 시간표를 다시 쓰는 법

    한밤의 시간표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두 가지를 할 수 있게 된다. 첫째, 내 감정의 피크 타임을 예측할 수 있다. 둘째, 그 시간에 나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허무함이 찾아온다면, 그 구간은 SNS나 비교를 자극하는 콘텐츠에서 나를 멀리 두어야 하는 시간일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이 가장 차분해지는 시각을 알게 된다면, 그 시간은 중요한 생각이나 결정을 위해 남겨둘 수 있다. 이렇게 감정의 파도를 시간이라는 틀 안에 위치시키면, 그 거친 움직임도 어느 정도는 항해 가능한 지도가 된다.

    결국 한밤의 시간표를 다시 쓴다는 것은, 나의 취약한 시간을 미리 알고 그때의 나를 돌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그때가 오면 또 버텨야지”가 아니라, “그때가 오면 나는 이렇게 나를 도울 거야”라는 약속을 만드는 것이다. 조용한 음악, 짧은 글쓰기, 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은은한 조명,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한 줄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 한밤의 풍경을 바꾸어준다. 시간표를 다시 쓴다고 해서 밤의 고요와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고요와 슬픔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작은 등불 하나쯤은 갖게 된다.

    한밤은 나의 진짜 속도를 알려준다

    세상은 빠른 사람을 선호한다. 빨리 결정하고, 빨리 답장하고, 빨리 성장하고, 빨리 결과를 내는 인간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한밤은 이 속도와 전혀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다. 생각은 느리게 떠오르고, 마음은 느리게 정리되며, 상처는 느리게 아문다. 이 느림에 몸을 맡기지 못하면 우리는 늘 자신의 회복 속도를 오해하게 된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제 괜찮아져야 하는데, 왜 아직도 이런 걸까”라는 다그침은 대부분 한밤을 건너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밤의 시간표는 우리에게 반대로 속삭인다. “너는 원래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눈에 보이는 치유보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더 긴 법이다. 누군가를 잊는 시간,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시간, 나를 다시 믿게 되는 시간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한밤은 그 긴 과정을 매일 조금씩 이어 붙이는 자리다. 이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만의 속도를 긍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도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시간표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여유도 함께 얻는다.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건너가는 다리

    한밤은 어제와 내일이 맞닿는 경계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의 감정과 아직 시작되지 않은 내일의 불안이 한자리에서 마주 앉는 시간이다. 이 경계를 아무 생각 없이 통과하면, 우리는 어제의 피로를 내일로, 내일의 걱정을 오늘로 계속 끌어당기며 산다. 반대로 이 경계를 의식하며 건너기 시작하면, 하루의 경험은 하루 안에서 어느 정도 소화될 수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작지만 단단한 문장을 마음속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한밤의 얼굴은 달라진다.

    한밤의 시간표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첫 번째 칸에는 반드시 ‘정리’가 들어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한 메시지 대신 내 마음속에서 건네는 작별 인사, 오늘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장면에 대한 짧은 메모, 그래도 감사했던 순간 한두 개를 떠올리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거창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정신이 무사히 다음 날로 건너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짐 정리다. 그렇게 어제를 정리한 뒤에야, 우리는 내일을 향해 조금 더 가벼운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한밤의 나와 손잡는 법

    한밤의 시간표를 통해 결국 우리가 만나게 되는 존재는 낮에는 잘 보지 않으려던 ‘밤의 나’이다. 업무 능력이나 역할, 성과로 설명될 수 없는, 그냥 존재 그 자체인 나. 쉽게 겁먹고 쉽게 상처받고,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끈질기게 내일을 향해 눈을 뜨는 그 사람이다. 이 나와 화해하지 못하면 삶은 늘 낮과 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낮의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밤의 나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이 모순 속에서 에너지는 점점 소진된다.

    밤의 나와 손잡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잠들기 전 마지막 몇 분 동안 오늘의 나에게 “수고했다”라고 속으로 말해보는 것, 실패한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옆에 “미완료”가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표식을 붙여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런 작은 문장들이 한밤의 공기를 조금씩 바꾼다. 비난 대신 이해가, 자책 대신 연민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할 때, 한밤은 더 이상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은밀한 편지가 된다.


    핵심 메시지

    한밤의 시간표는 우리가 낮 동안 미뤄둔 감정과 고민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보여주는 내면의 일정표다.
    이 시간표를 의식적으로 읽어낼 때, 불면과 불안, 공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라는 신호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밤의 나와 화해하고 돌보는 법을 배울수록 우리는 어제의 상처와 내일의 두려움 사이를 더 단단하게 건너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독자 추천글

    한밤마다 비슷한 생각과 감정에 시달리면서도 이유를 몰랐던 이들에게, 자신의 내면 시간표를 함께 읽어주는 따뜻한 해설서가 되어준다.
    화려한 이론보다 구체적인 감정의 순간들을 따라가며, 밤의 불안을 자기 이해와 회복의 시간으로 바꾸고 싶은 독자에게 어울린다.
    하루를 버티는 삶에서 하루를 이해하는 삶으로 건너가고 싶은 사람, 특히 잠들기 전 침묵의 시간이 두려운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힘 있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