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 작가, 이인애의 신작 장편소설 『탄광마을 사우나』가 열림원에서 출간됐다. 이인애 작가는 이전 작품으로 코로나 시대 자영업자의 애환을 그린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경력 단절 여성의 현실을 다룬 『연아의 봄』 등을 통해 날카로운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과 현실 속 아이러니를 꾸준하게 선보여 왔다.
이번 신작 장편소설 『탄광마을 사우나』에서는 가상의 탄광마을 ‘설백’을 무대로, 탄광의 쇠락과 함께 시간이 봉인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마을 공동체의 오늘을 그린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와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지방소멸’, ‘마을 공동체’, ‘공동체 회복’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촘촘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로 풀어냈다.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가상의 공간 '설백'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지닌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말하는 비누 거품’이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도입해,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사회 이슈를 위트 있고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적 위기와 공동체의 의미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담아낸 『탄광마을 사우나』는 그동안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인애 작가의 따뜻한 판타지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탄광마을 사우나』를 한 장씩 넘겨 가며, 독자들은 마음속 깊이 잔잔한 온기와 위로를 전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훈기가 가득한 ‘탄광마을 사우나’에서 잠시나마 보다 많은 이들이 쉬어 가기를 바란다.
■ 작가정보
이인애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휴학한 뒤 무작정 소설을 쓰기 시작해 『백(百)』과 『닥터 브라운』을 차례로 출간했다. 코로나19 시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 낸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 집필한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로 제9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연재한 에세이 『창수야, 언니가』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집필한 장편소설 『연아의 봄』을 출간했다.
■ 목차
프롤로그
1. 고양이 털 뭉치
2. 티라미수케이크
3. 달방
4. 송 씨 아저씨
5. 여탕
6. 회복탄력성
7. 나영
8. 소멸해 가는 너의 무릎을 베고 누워
9. 탄광 사우나
10. 로라케이크
11. 위클래스
12. 지방에 삽니다, 놀랍게도 청년이고요
에필로그
탄광마을 ‘설백’을 무대로, 탄광의 쇠락과 함께 시간이 봉인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마을 공동체의 오늘을 그린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와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지방소멸’, ‘마을 공동체’, ‘공동체 회복’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촘촘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로 풀어냈다.
탄광마을 사우나
욕실이 아니라, 마을의 심장
탄광마을의 사우나는 땀을 빼는 곳이기 전에, 말과 침묵이 모이는 장소다. 탄가루가 스며든 피부를 문지르며 하루를 씻어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한다. 직장도 집도 사회적 역할도 벗겨진 채, 같은 증기로 숨 쉬는 동안에야 비로소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한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땀만이 아니다. 견디기 위해 삼켰던 말들, 가족에게조차 털어놓기 어려운 불안, 내일 갱도에 내려가야 한다는 공포가 함께 흘러내린다. 사우나는 공동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받아내는 거대한 그릇이며, 그릇이 식어버리는 순간 마을의 결도 함께 갈라지기 시작한다.
노동이 만들어낸 몸의 기억
탄광에서의 노동은 시간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허리를 굽힌 자세, 진동을 전해오는 드릴의 감각, 어둠 속에서 불을 찾기 위해 눈을 좁히던 버릇이 퇴근 후에도 남는다. 사우나의 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이 모든 기억은 통증이 되어 떠오른다. 뜨거운 물이 닿을수록, 자신이 어디까지 소모되었는지 선명해진다.
하지만 그 통증은 단지 고통이 아니라, 살아 돌아왔다는 증명에 가깝다. 오늘도 이 물의 열기를 느낀다는 것은, 무너진 갱도와 가스 폭발의 위험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탄광마을의 사우나는 살아남은 자들이 매일 갱신하는 생존 신고서와 같다. 서로의 어깨를 바라보는 일은 서로의 삶을 확인하는 행위다.
벗어야만 보이는 계급의 선
사우나는 모든 옷을 벗는 공간이지만, 계급의 경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몸에는 오래된 흉터가, 누군가의 몸에는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또 다른 누군가의 몸에는 사무실 의자에서 생긴 굽은 어깨가 있다. 직책과 월급 차이는 가려져도, 어떤 몸이 얼마나 위험에 가까이 있었는지는 숨길 수 없다.
이 벗은 몸들은 말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불평등을 무언의 지도처럼 보여준다. 같은 마을, 같은 사우나를 이용해도 어떤 사람은 늘 가장 뜨거운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구석에 몸을 말고 앉는다.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마을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서열과 눈치의 공기다.
아이들은 이 공기를 몸으로 먼저 배운다. 누구 옆에는 자연스럽게 붙어 앉아도 되는지, 누구 근처에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는지. 사우나는 어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다음 세대에게 마을의 규칙을 전수하는 교실이기도 하다.
뜨거운 증기와 식어가는 연대
탄광이 사라지고 마을의 경제가 기울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일터가 아니라 일터를 둘러싼 관계들이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사람들은 서로의 사정을 묻는 대신, 누가 먼저 기회를 잡을지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는 사우나의 공기를 가장 민감하게 바꾼다.
예전에는 같은 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농담이 줄어들고, 말과 말 사이에 긴 침묵이 끼어든다.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더 이상 가볍게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 생긴다. 갱도가 아닌 다른 도시로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온도의 변화처럼 서서히 느껴진다. 자리를 잡고 있던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질수록, 사우나는 마을의 쇠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체온계가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을이 약해질수록 사우나의 필요성은 커진다.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위로는, 여전히 같은 열기 속에서 누군가와 숨을 섞는 경험이다. 연대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에게서 나는 땀냄새와 한숨을 계속 맡아주는 끈기에서 출발한다.
사라지는 장소가 지우는 역사
탄광이 폐쇄되고, 마을에 새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오래된 공용 시설들이다. 낡은 사우나 건물은 개발의 논리 앞에서 순식간에 철거 대상이 된다. 누구도 사우나를 문화재로 등록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온 대화와 다툼, 화해와 침묵은 그 마을의 사회사를 이루는 중요한 기록이다.
장소가 사라지면, 그 안에서 형성되었던 관계의 방식도 함께 지워진다. 더 이상 우연히 마주치지 않게 된 사람들은, 안부를 물을 이유도 점점 잃어간다. 사우나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마을이 서로를 관리하고 돌보던 비공식 시스템이었다. 개발은 물리적 환경을 바꾸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자신을 유지하던 장치를 허물어버린다.
새로운 주거 환경은 더 쾌적하고,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각자의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뒤, 자기 집 안에서만 피곤을 덜어내는 삶은 다른 종류의 고립을 낳는다. 몸은 깨끗해졌지만, 마음은 누구와도 온도를 나누지 못한 채 식어간다.
목욕탕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것
공용 사우나는 소규모 민주주의가 실험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누군가 탕의 온도에 불만을 제기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의견이 오간다. 이 정도가 좋다는 사람, 더 뜨거워야 한다는 사람, 이미 너무 뜨겁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때, 탕의 온도는 합의를 통해 조정된다. 작은 갈등과 협상의 경험이 매일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 주장만 내세울 수 없다. 내일도 또 만나야 할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결정은 오늘로 끝나지 않고, 다음 만남의 공기를 좌우한다. 그래서 공공의 공간에서 몸을 섞는 일은, 단지 자원을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고려하는 연습이 된다.
개별 가정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일수록, 이런 연습의 기회는 줄어든다. 목욕탕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말은, 각자의 욕실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나의 안락함과 타인의 안락함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보는 경험을 다시 회복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탄광마을 사우나가 지금 우리에게 묻는 것
탄광마을 사우나의 풍경은 과거의 산업화 시대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장면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도시의 대형 찜질방, 피트니스 센터의 샤워실, 작은 동네 목욕탕 역시 비슷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공용의 열기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가.
불편함을 피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점점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선택한다. 집으로 배달되는 모든 것, 집 안에서 해결되는 대부분의 일상.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의 낭비뿐 아니라, 타인의 숨소리와 체온을 견디는 능력이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이런 시대에 되묻는다. 완벽하게 분리된 편안함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삶의 형태인지.
지금 우리의 마을에는 어떤 사우나가 남아 있는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말과 땀이 동시에 증발하는 장소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일은 곧 나의 고독을 방치하지 않는 일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공동체의 온도를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핵심 메시지
탄광마을 사우나는 노동의 피로를 씻어내는 공간을 넘어, 생존과 연대, 계급과 기억이 뒤섞이는 마을의 심장이다.
공용의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몸과 사정을 마주하며,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역사를 함께 견뎌 왔다.
이런 장소가 사라질수록 우리는 더 깨끗하고 편안해지지만, 동시에 서로의 온도를 나누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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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우나와 목욕탕이 마을의 중심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글은 잊고 있던 온도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개인화된 삶 속에서 점점 고립감을 느끼는 독자라면, 왜 공용의 공간이 여전히 필요한지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노동, 장소, 공동체의 의미를 함께 되짚어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탄광마을 사우나라는 장면을 빌려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추어보는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