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하고 충격적인 전개, 강력한 흡인력, 허를 찌르는 반전 등으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 그녀는 대표작이라 할 만한 『고백』으로 데뷔작이 ‘서점 대상’을 수상하는 일본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일본 문학계에 ‘미나토 가나에 돌풍’을 일으켰고, 작품 대부분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녀에게 ‘이야마스(꺼림칙한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끔찍한 사건들을 토대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은 그저 흥미와 자극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독자가 지금껏 결코 생각해본 적 없는 어려운 질문과 마주하게 만든다. 『고백』에서는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학교폭력을 비롯한 일본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과제를 남겼고,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인간 표본』에서는 나비의 눈에 매혹된 주인공이 소년들을 나비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우리는 과연 동일한 세계를 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녀의 또 다른 문제작 『모성』의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이 전격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엄마’라는 이름에 대해 독자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관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즉, 모성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한 건 아닌지, 애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주입된 감정은 아닌지.
우리는 감히 모성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는 당연히 모성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의 성역처럼 모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영아 유기, 자녀 학대 같은 사건을 보며 ‘인간이기를 포기한 부모’라며 혀를 찬다. 그렇다면 도대체 ‘모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본능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사회화되며 만들어진 것인가?’
이 소설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그녀 특유의 집요한 심리 묘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사랑받고 싶은 딸, 그리고 외면하는 엄마의 교차되는 시선, 작가 특유의 독백체 서술이 위험하고 위태로운 속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소설은 열일곱 살 여고생이 4층인 자신의 집에서 추락하는 사건을 알리며 시작한다. 자살 시도쯤으로 치부되던 그 사건을 통해 모녀는 11년 전 태풍이 불던 날로 거슬러 올라가, 엄마의 고백과 딸의 독백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과연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진실이 드러난다.
■ 작가정보
미나토 가나에 湊かなえ
1973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났다. 2007년 단편 『성직자』를 발표, 제29회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정식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듬해 내놓은 첫 장편소설 『고백』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치밀한 복선과 탄탄한 구성으로 각종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며 ‘미나토 가나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제6회 서점대상을 수상한 『고백』은 일본에서만 3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일본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인간 표본』 『속죄』 『N을 위하여』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꽃 사슬』 『백설 공주 살인사건』 『리버스』 『유토피아』 『일몰』 『조각들』 등이 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이야미스(꺼림칙한 미스터리)’ 장르를 개척해 일본 미스터리의 지형을 바꾼 미나토 가나에. 그녀는 “이 책을 다 쓴다면, 작가를 그만둬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모성』에 그간 쌓아온 역량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모성』은 2022년 일본 인기 배우 토다 에리카와 나가노 메이 주연으로 영화화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번역 김진환
단국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국보』(상·하) 『오랜 거짓말이 끝나는 날에』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 『미안한데 널 위한 게 아니야』 외 다수가 있다.
■ 목차
제1장 | 엄숙한 시간
제2장 | 석상의 노래
제3장 | 탄식
제4장 | 오오, 눈물로 가득한 사람아
제5장 | 눈물 항아리
제6장 | 오너라, 최후의 고통이여
제7장 | 사랑의 노래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엇갈리며 한 여고생의 추락 사건을 다시 구성한다. 자살 시도인지 살인 시도인지 모호한 사건을 중심으로, 모성은 본능인가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모녀 미스터리라는 형식은 독자를 끝까지 사건의 내부로 끌어당긴다.
모성
사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름, 모성
모성은 흔히 가장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의 모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랑과 희생, 기쁨과 분노, 애착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는 복잡한 감정의 집합에 가깝다. 아이를 낳은 순간 ‘본능’이 깨어나 완전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낯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매일 조금씩 만들어가는 관계의 과정이 바로 모성이다.
우리는 모성을 너무 자주 이상화한다. “엄마니까 당연히”,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라는 말 속에는, 한 사람의 개별적인 감정과 욕망이 사라진다. 모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신화를 걷어내고, 엄마가 되기 전에도 이미 하나의 삶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회복하는 일이다.
본능이 아니라 관계로서의 모성
모성을 본능으로만 설명하면, 엄마의 고통과 ambivalent한 감정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출산 직후 눈물이 나도록 아이가 사랑스럽다가도,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질수록 “내 삶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절망이 함께 찾아온다. 이 사랑과 고통이 동시에 밀려오는 경험은, 본능보다 관계의 언어로 설명할 때 비로소 이해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다. 엄마는 이 절대적 의존 앞에서 강렬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의존 욕구를 급히 숨기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나 역시 돌봄 받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사회는 이제 “당신은 엄마니까 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간극에서 죄책감과 분노가 생기고, 때로는 아이를 향한 공격적 상상조차 스쳐 지나간다.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이런 상상은 모성을 부정하는 증거가 아니라, 버거움의 신호에 가깝다.
모성을 관계로 본다는 것은, 이 감정들을 ‘정상 vs 비정상’으로 나누지 않고,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하는 다양한 목소리로 인정하는 태도다. “나는 좋은 엄마여야 해”라는 이상과 “나는 그냥 쉬고 싶다”는 솔직한 욕구가 충돌할 때, 모성은 비로소 하나의 인간적 경험으로 내려온다.
엄마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모성은 출산으로 갑자기 생겨나는 능력이 아니다. 엄마가 자라온 환경, 어릴 적 돌봄의 기억, 부모와의 관계가 모두 모성의 토양이 된다. 충분히 돌봄 받지 못한 사람은 엄마가 된 뒤에도 ‘어린 나’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아이를 돌보게 된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나도 돌봐 달라”고 울고 있는 아이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모성은 종종 두 사람의 욕구가 충돌하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실제 아이와, 엄마 마음속의 ‘내면 아이’가 동시에 돌봄을 요구한다. 아이가 울 때 설명하기 힘든 분노가 치밀거나, 아이의 사소한 말에 과도하게 상처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촉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나는 왜 이렇게 못된 엄마일까”라는 자기비난이 아니라, “지금 힘들어하는 건 아이뿐 아니라, 나의 과거도 함께다”라는 자기 이해다. 엄마로서의 나는 부족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부족함을 인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상처의 패턴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의 얼굴
모성을 이야기할 때, 개인의 성향만을 탓하는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경쟁 중심의 노동 환경, 육아를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화, 돌봄을 ‘개인적 선택’으로 치부하는 제도는 모두 모성의 경험을 규정한다. 충분한 지원 없이 끝없는 헌신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누가 쉽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주변에서는 무수한 명령이 쏟아진다.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아이 발달을 위해 이대로는 부족하다, 커리어를 이어가면 이기적인 엄마다, 전업을 하면 자기계발을 포기한 사람이다. 서로 모순되는 기준들이 동시에 주어질 때, 엄마는 무엇을 선택해도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이게 된다.
결국 많은 엄마들은 스스로를 향해 엄격한 재판관이 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하루를 끝낼 때마다 들려온다. 그러나 이런 죄책감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모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엄마 한 사람에게 집중된 책임의 무게를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이와 엄마,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
모성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다. 아이는 돌봄을 받으며 세상을 배우지만, 엄마 역시 아이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배우게 된다. 아이의 요구를 맞추려 애쓰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깨어난다. 사랑과 연민뿐 아니라, 두려움과 질투, 통제 욕구와 무력감이 선명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 태도다.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그 생각을 억누르기보다 조심스럽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낸 뒤 찾아오는 자책감은,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마음을 알아차릴 때, 엄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닌, 실수하면서도 계속 배우는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게 된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거울이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엄마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이 상호 작용의 과정에서, 모성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이야기로 남는다.
모성을 다시 말한다는 것의 의미
모성을 둘러싼 신화를 걷어내는 일은 엄마들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엄마가 되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사랑하면서도 지칠 수 있고, 지치면서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모순된 진실을 함께 견디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다.
모성을 다시 말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패와 불완전함까지 이야기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일이다.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를 보여주는 것보다, 실수한 뒤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더 큰 배움이 될 수 있다. 모성은 결코 흠 없는 초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매일 수정되는 연필선 같은 것이다.
우리가 모성을 하나의 신성한 역할이 아니라, 다층적인 인간 경험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엄마와 아이 모두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엄마는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고, 아이는 엄마의 삶 전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모성을 다시 쓰는 일은, 한 세대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과도 같다.
핵심 메시지
모성은 타고나는 본능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회적 조건 속에서 아이와 맺어가는 관계의 과정이다.
엄마의 분노와 죄책감, 지침과 양가감정은 비정상이 아니라, 과도한 기대와 부족한 돌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마음의 반응이다.
모성을 이해하고 다시 말할 때, 엄마와 아이는 완벽함의 압박에서 벗어나 서로의 불완전함을 함께 견디는 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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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 아래 숨겨졌던 자신의 진짜 감정과 욕망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이다.
모성 신화에 지치고, “좋은 엄마”라는 기준 사이에서 방황해온 독자라면, 이 에세이를 통해 비로소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도,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이해하고 돌봄의 책임을 어떻게 함께 나눌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