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래된 카페를 오가며 펼쳐지는 오싹한 괴담 모임 '커피 괴담'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 ‘쓰카자키 다몬’은 어느 날 교토에 있는 친구 오노에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교토의 한 오래된 카페로 향한 다몬은 그곳에서 오노에와 또 다른 친구 미즈시마와 조우한다. 오노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카페를 순례하며 각자 알고 있는 괴담을 들려주는 모임, 일명 ‘커피 괴담’을 제안하고, 다몬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아 귀를 기울이는데…….
오래된 카페의 고요한 시간, 낯선 기운이 깃든 순간들, 작가가 직접 겪고 들은 이야기들이 잔잔하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독자를 서늘한 세계로 이끈다.
“괴담을 하고 있을 때의 독특한 친밀감이 좋아. ‘무섭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일체감이 있잖아. 비즈니스를 뺀 일체감. 괴담만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화제는 없어.(…)” -본문에서
■ 저자 온다 리쿠(恩田陸)
1964년에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한때 직장 생활을 했으나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그만두었다. 1991년에 『여섯 번째 사요코』가 제3회 일본 판타지노벨 대상 최종 후보작으로 뽑혔고, 이듬해인 1992년에 출간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후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SF, 모험 소설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스토리텔링의 마법사’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 전개와 섬세한 심리 묘사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작임에도 일정한 수준의 문학성을 유지해, 독자들의 사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으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 『밤의 피크닉』으로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과 제2회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06년에는 『유지니아』로 제5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장편 부문)을, 2007년에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에는 『꿀벌과 천둥』으로 제156회 나오키상과 제14회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모았다.
■ 역자 김석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ㆍ프랑스어ㆍ일본어를 넘나들면서 헨리 소로의 『월든』, 허먼 멜빌의 『모비 딕』,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전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목차
한국어판 서문
커피 괴담 Ⅰ
커피 괴담 Ⅱ
커피 괴담 Ⅲ
커피 괴담 Ⅳ
커피 괴담 Ⅴ
커피 괴담 Ⅵ
덧붙이는 말
일본의 오래된 카페를 오가며 펼쳐지는 오싹한 괴담 모임 "커피 괴담"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 ‘쓰카자키 다몬’은 어느 날 교토에 있는 친구 오노에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커피 괴담 1
나무로 된 커다란 미닫이문을 열자, 그곳은 복고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찻집이었다.
이번에 오노에가 두 사람을 교토로 부른 기획이라는 것은 요컨대 찻집 순례였다. 찻집을 돌아다니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괴담을 이야기하여 더욱 시원해지자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몬도 미즈시마도 이런 기발한 모임을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바쁜 세 사람이 평일 하루를 꼬박 할애하는 일정을 우연히 맞출 수 있었는데, 그 드문 기회를 이런 이벤트에 쓰는 것은 어떨까 싶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들 셋만큼 이런 이벤트가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내 친구 중에 아들과 함께 곤충채집을 취미로 살고 있는 녀석이 있는데......”
어느새 다몬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주말, 그 친구는 여느 때처럼 아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대. 그 친구는 도쿄 교외에 살고 있는데, 비교적 자연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인 모양이야.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희귀한 곤충이 차례로 눈에 띄더래.”
“희귀하다는 건 어느 정도로?”
미즈시마가 끼어든다.
“글쎄. 난 곤충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다몬은 냉담하게 대꾸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치 곤충한테 이끌리듯 평소에는 다니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갔대.”
“‘볏대 부자’ 같은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정신없이 곤충을 잡고 있었는데, 문득 보니까 저 앞에 사마귀 한 마리가 있더래. 길 한복판에 하얀 꽃사마귀가 낫처럼 생긴 앞발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는 거야.”
“꽃사마귀라면 나도 알아. 정말로 꽃과 똑같이 생겼어.”
“이것도 희귀한 곤충이래, 그래서 그 꽃사마귀를 본 순간, ‘이건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왜 오늘따라 가는 곳마다 이렇게 희귀한 곤충만 나타날까?’ 하고 생각했지. 물론 아이는 그런 건 생각지 않으니까 신이 나서 꽃사마귀를 잡았대.”
다몬의 눈에 그 광경이 떠오르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 있는 꽃사마귀. 낫처럼 생긴 작은 하얀색 앞발을 치켜들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그 친구는 문득 자기가 지금까지 와 본 적이 없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고 꽃사마귀가 서 있던 곳의 앞쪽을 보았더니......”
다몬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보았더니?”
오노에와 미즈시마가 동시에 묻는다.
“그 집이 있었대.”
“그 집?”
“20세기 말에 일가족 참살 사건이 있었잖아. 당초에는 범인이 남기고 간 것이 많았기 때문에 곧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
“그 사건이 일어난 집이라고?”
“그래. 뉴스나 주간지에서 몇 번이나 본 집이라서 금방 알 수 있었대. 그런데 바로 그 집이 앞에 서 있어서 깜짝 놀랐대.”
“에에, 그러면 확실히 기분이 꺼림칙하지.”
“그 집을 본 순간, 친구는 집이 이상한 곳에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대. 구획정리 때문인지 뭔지 모르지만, 그 집과 옆집만 주위에서 떨어진 곳에 외따로 서 있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아들이 쓰러졌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털썩.”
“저런.”
“보았더니 낫으로 베인 듯한 상처가 다리에 나 있더래.”
“사마귀한테 베인 게 아닐까?”
“사마귀의 앞발은 사냥감을 꽉 움켜잡기 위한 것이지, 베는 건 아니야.”
“친구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곤충을 전부 다 버려! 하고 외치고는 그날 잡은 곤충을 전부 그 자리에 풀어 주고 쏜살같이 달아났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다몬은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허리와 등 언저리에 묘하게 오싹한 감각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오후의 골목길에서 잠시 열기가 식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느낌을 받은 듯, 미즈시마와 오노에도 몸서리를 쳤다.
커피 괴담 2
나중에 합류할 예정인 구로다가 늦어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저녁 식사는 호텔 안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했다. 일단 바에서 나와 체크인을 했는데, 방에 들어간 다몬은 오노에의 말대로 옷장 문이 젖빛 유리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오노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방의 조명은 고상하고 세련되었다. 요컨대 주로 간접 조명이어서 좀 어둡다는 것이다.
그런 방의 벽에 있는 옷장. 울퉁불퉁한 젖빛 유리 너머로 옷장 안에 걸려 있는 옷이 어렴풋이 떠올라 있어서 야릇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결국 문을 닫고, 되도록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방을 나선다.
셋이 레스토랑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먹고 마시며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결국 구로다한테서 ‘지금 간다’는 연락이 들어온 것은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30분도 채 안 남았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구로다는 확실히 기억 속의 모습보다 볼이 홀쭉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살기를 띠고 있었다. 일할 때의 공기가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듯하다. 검사인 그는 여기 있는 네 사람 중에서 가장 바쁜 것 같았다.
“아이고, 이제야 겨우 일에서 벗어난 것 같군.”
겨우 긴장을 푼 구로다는 친구들과 한동안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갑자기 흠칫 놀란 듯이 등을 곧게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부른 것처럼. 게다가 옷장 쪽을 향해.
모두 대화를 멈추고 구로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구로다는 와인 잔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더니, 벌떡 일어나 옷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구로다는 옷장 문을 활짝 열고 손을 멈추었다.
옷장 안의 불이 탁 켜진다.
구로다는 옷장 안을 들여다본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구로다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접 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방. 곧 자정이 되려 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먹다 남은 샌드위치, 절반 가까이 남아 있는 와인병. 어두컴컴한 호텔 방에서 남자 넷이 침묵에 잠겨 있다.
“이봐, 구로다. 왜 그래?”
미즈시마가 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이상을 눈치채고 있는 것은 그 음색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러자 구로다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쓰러지듯, 옷장에 걸린 오노에와 미즈시마의 코트 사이로 머리를 처박았다.
“......이렇게 해서.”
구로다의 분명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코트와 코트 사이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해서 죽은 거야.”
“뭐라고?”
“여기에 벨트를 묶고......”
구로다의 왼손 검지손가락이 옷걸이가 걸려 있는 가로대에서 획획 움직이고 있었다.
“목을 넣고, 앞으로 고꾸라져서, 이렇게 목을 졸라맸어.”
“구로다!”
미즈시마가 외치면서 몇 걸음 다가가더니, 구로다의 어깨를 움켜잡고 잡아당긴다.
“이렇게 해서 죽었어.”
구로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구로다의 몸 전체가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목을 맨 사람이 죽을 때 경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이어서 저속도로 촬영한 애니메이션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구로다의 얼굴이 맥없이 일그러졌다.
구로다의 얼굴과 목이 천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위턱과 아래턱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암흑이다. 입술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목이 주욱 길어지고, 울대뼈가 올라간다.
-눈이 번쩍 뜨였다.
침대 안에 있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몬은 순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옆 침대에서 구로다가 약간 입을 벌리고 낮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자기가 요코하마의 호텔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큰 한숨이 새어 나와, 다몬은 어둠 속에서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커피 괴담 4
다몬은 바로 앞에 있는 협탁 위의 작은 램프가 마음에 걸렸다.
연한 파스텔 색조의 도자기 인형 위에 버섯 모양을 한 램프가 달려 있다. 아마 스페인의 유명한 도자기 제조업체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귀여운 소녀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고, 그 소녀를 비추도록 되어 있는 램프, 그것이 방금 화제가 된 비탈길 도중의 가로등을 연상시킨다.
“뭔가 잃어버려도 계속 되돌아오는 건 없나?”
다몬은 엉겁결에 그렇게 입 밖에 내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한 뒤에야 친구들이 모두 “응?” 하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 질문의 요점은?”
오노에가 묻는다.
“장갑이나 우산 같은 건 잃어버리기 쉽잖아? 떨어뜨리기도 하고 어딘가에 놔둔 채 잊고 오기도 하지. 요전에는 장갑 한 짝을 연달아 세 번이나 잃어버린 적이 있어. 그건 꽤 심한 충격이었지. 게다가 잃어버린 건 전부 다 오른쪽 장갑이었어. 뭔가 작업을 할 때는 오른손을 쓰게 되고, 그래서 자연히 오른쪽 장갑을 벗기 때문이겠지만.”
다몬의 대답에 오노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몬은 자기가 램프의 ‘갓’을 보고 ‘우산’을 연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음, 뜻밖인걸.”
“왜?”
“왠지 넌 빈손으로 다닐 것 같은 인상이야.”
“그래? 하지만 가지고 다녀. 그래서 접이식 우산도 숱하게 잃어버렸지만, 반드시 돌아오는 우산이 딱 한 개 있어.”
다몬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제일 오래된 접이식 우산이야. 우산 집은 벌써 오래전에 잃어버렸지만, 본체인 우산은 반드시 돌아와. 오래 써서 낡았고 더러워지고 우산살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새것으로 바꾸려고 산 우산은 모두 잃어버린 채 돌아오지 않는데, 그 낡은 우산만은 잃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데도 되찾게 돼. 가게 종업원이 ‘이거 요전에 잃어버리셨죠?’ 하면서 돌려주기도 하고, 지방 호텔에 두고 와서는 잃어버린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는데, 그 호텔에서 집까지 소포로 보내 준 적도 있어.”
“흐음, 그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구로다가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우산이 돌아와 주면 고맙지 않나?”
“그렇긴 하지. 그런데 한번은 한 달쯤 행방불명된 적이 있었어. 술집 순례를 하다가 어떤 가게에 놓고 나와서 그대로 잃어버렸지. 아아, 드디어 잃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시내에 출장을 나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어. 그래서 가까운 편의점에 비를 피하러 들어갔지. 늘 접이식 우산을 갖고 다녔는데, 하필 그때만은 가방에 우산을 넣는 걸 깜빡했거든. 그런데 편의점 입구 우산꽂이에......그게 있었어.”
“설마.”
“어라, 하고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지. 하지만 손잡이에 나 있는 상처도 그렇고, 헝겊에 묻은 얼룩도 그렇고, 역시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우산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