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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소설이 나에게
 
지은이 : 오정호
출판사 : 몽스북
출판일 : 2026년 01월



  • 연애는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를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는 작은 파열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 파열을 두려워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바라본다. 연애는 부서짐이 아니라 ‘쪼개짐’이고, 그 틈으로 비로소 자신이라는 사람이 다시 보이게 된다는 해석은 이 책이 가진 가장 매력적인 통찰이다.



    연애 소설이 나에게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연애는 사랑과는 꽤나 다르고, 연애 소설은 에로티카, 로맨스, 러브 스토리 그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우연히 만난 좋은 연애 소설은 다섯 개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그 풍경 속 주인공들의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을 목격하게 한다.

    그리고 이루지 못한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연애라는 진부하고 세속적인 인간의 행위가 우리 마음속 우주를 더 넓고, 더 깊게 만든다는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가끔 나는 믿는다. 좋은 연애 소설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어쩌면 그것은 작은 구원일지 모른다고.

    “좋아했거나 기억에 남는 연애 소설이 있나요?”

    뜬금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의 눈동자 모양이 제각각이다. “연애 소설이요?” 하면서, 달달한 첫사랑 정도로 알아듣고 얼굴 발개지는 이도 있고, “에이, 이제는 안 읽어요.”라며 무슨 이유에선가 편의점 도시락처럼 가볍고 유치한 할리퀸 문고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1953)라고 대답한 사람도 세 명이나 봤다.

    파편_fragment
    온전한 것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온전한 것이 부서진 조각들.
    숨어 있다가 가끔 반짝거린다.

    솔직히 말해, 나이 오십에 에세이를 쓴다면 뭔가 고상한 주제에 대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는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요가나 명상, 수영이나 달리기도 아닌 연애 소설이라니. 사실 원래 염두에 둔 주제는 ‘야한 소설’이었다. 즉, 이 책의 제목이 ‘연애 소설이 나에게’가 아니라 ‘야한 소설이 나에게’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독자들의 눈에 들어 꽤 팔릴 수도 있는 제목이지만, 내가 다니는 직장의 이름과 야한 소설이라는 단어를 번갈아 소리 내서 읊조리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필립 로스, 아나이스 닌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각을 상세히 묘사했다가는, 왠지 근엄한 독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나 받지 않겠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럼 연애 소설은 어떠세요?”

    출판사 대표의 제안은 솔깃했다. “글쎄요, 연애 소설이라면. 한번 써볼게요.” 승낙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무엇이 연애인지, 어디까지가 연애 소설인지 그 기준이 모호했다. 무엇보다도 연애 소설이 명상이나 수영처럼 한 인간을 더 자유롭게, 더 심오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경험인지 자신이 없었다. 연애의 고통에 빠진 인간들을 구경하는 것이 뭐가 좋기에, 도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고개를 들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본다.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돈키호테』, 『모비 딕』, 『코스모스』, 『축의 시대』, 『마음의 진보』,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그림 형제 민담집』 등 ‘벽돌책’들이 보기 좋게 모여 있다.

    사십 이후 나는 어떤 강박에 빠져 있었다. 똑똑한 인간,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내가 연애 소설에 대한 에세이를 낸다면 주위 사람들은 꽤 놀랄 것이다. 가솔린 엔진에 경유를 넣는 혼유 사고라도 본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볼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봐도 아찔하고 즐겁다.

    술자리가 익은 밤, 앤드루 포터의 단편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줄거리를 말해 주면 그런 책도 읽냐며 놀란다. 그리고 한 주나 두 주 후에 문자가 온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 읽게 되어 감사하다고 그는 말한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그랬고,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도 그러했다.

    연애 소설 따위에서 사람들이 느낀 그 모호하면서도 뭉클한 느낌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깨진 연애,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반짝거리는 그 물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불현듯 연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쓰되 연애의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과정을 몇 개의 단어로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모험심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도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이 책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대한 나의 오마주다.

    어차피 모든 연애는 파편으로 부서지고, 모든 연애 이야기는 그 파편에 대한 단상일 수밖에 없으니, 이 글쓰기 작업도 파편에서 시작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Write about obscure things but don't write obscurely.
    모호한 것에 대해 쓰되 모호하게는 쓰지 말라.

    걱정은 하나 있다. W. G. 제발트의 이 글쓰기 조언과는 완전히 거꾸로인 셈이다. 연애처럼 명쾌한 것을 글처럼 모호한 것으로 풀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해”
    “I love you”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

    결국 사랑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답을 찾아야 한다. 연애 소설을 한 편 한 편 끝낼 때마다 이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무엇인가. 명쾌한 대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가 내린 사랑에 관한 정의를 되뇐다. 선문답 같지만, 아직은 이게 최고다. 부코스키 만세.

    Love is a horse with a broken leg
    trying to stand while 55,000 people watch.
    사랑은 5만 5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러진 한쪽 다리로 일어나려는 한 마리의 말

    사랑은 처절한 고통이다. 행복한 사랑이든, 불행한 사랑이든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이에게 사랑은 그저 재난이라고, 줄리언 반스는 말했다. 그는 덧붙인다. 더 사랑하고 더 고통받을 것인가. 덜 사랑하고 덜 고통받을 것인가. 질문인지, 조언인지, 그것은 각자가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수십 년 만에 다시 읽는다. 삽화가 그려져 있는 1888년 초판본을 번역한 책이다. 아마 열 살쯤, 나는 이 잔혹한 동화를 처음 읽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다 누더기가 되어버린 왕자. 왕자를 도와주다 결국 주검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비. 온몸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온몸을 내놓아야 가능한 일임을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사랑은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으스러지는 고통임을 지금도 깨닫는다.

    이후 단 한 번도 「행복한 왕자」를 펼쳐보지 않았다. 이제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 다시 읽으니, 「행복한 왕자」는 한 편의 연애 소설임을 알게 된다.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도시. 작은 제비 한 마리는 여름 내내 갈대에게 구애하느라 정신없었다. 모든 제비가 따뜻한 이집트로 떠났지만, 사랑하기에 바빴던 그는 아직도 남쪽으로 떠나지 못했다. 도시를 떠나려던 제비는 우연히 몸 전체가 황금, 두 눈은 사파이어, 칼자루에는 루비가 박혀 있는 행복한 왕자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지켜보며 슬픈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왕자에게 호감을 느낀 제비는 그의 심부름꾼이 되어 아픈 아이의 엄마, 가난한 작가, 성냥팔이 소녀에게 왕자의 몸에서 뜯어낸 보석을 물어다 준다. 이제는 정말 이집트로 떠나려는 작은 제비. 하지만 번번이 왕자는 부탁한다. “하룻밤만 더 머물러주면 안 되겠니?” 어느새 눈이 내린다. 보석과 황금을 모두 떼어낸 왕자는 더 이상 화려하지 않다. 언제부터 이렇게 볼품없어졌냐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제비는 알고 있다. 어느새 자신은 왕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사실을. 작은 제비는 왕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하겠노라 선언한 사람은, 떠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고, 사랑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의 반대말이다. 사랑하는 이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랑에 끌리는 대로 움직이고, 움직이는 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는 불완전하다. 완벽했던 사람도 사랑의 혼돈 속에서 불완전해진다.

    연인들은 불안하다. 행복한 사랑을 잃을 수 있다는 절망감 속에서, 불행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사랑은 지속된다. 인도의 라타 야트라(Ratha Yatra) 축제에 나오는 거대한 수레 저거너트(juggernaut)처럼 사랑의 수레바퀴는 무심하게 굴러간다. 어느 순간, 저거너트 바퀴 밑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 먼 옛날의 인도인들처럼 연인들은 기꺼이 자신을 던진다.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사랑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다.


    구원_salvation
    한 인간의 본질적인 우아함은 오직 타인의 시선 속에서 발견된다.

    대부분의 연애는 고통이다. 이미 끝났지만 끝이 나지 않은 연애,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끝난 연애는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그 고통 때문에 다시는 연애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흔들린다. 왜 우리는 사랑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의 미스터리다.

    인간은 의미의 존재다.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다. 연인들은 기꺼이 자신을 혼란의 드라마 속으로 밀어 넣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흩어진다. 그 혼란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질서를 찾고 마침내 의미를 발견한다. 비록 모호하거나 덧없는 단상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의미의 순간은 찾아온다.

    랴보비치가 느낀 허무함, 게라심이 느낀 해방감, 이선이 느낀 고요함, 사랑 후에 찾아오는 연인들의 슬픔은 의미를 찾아낸 인간의 성장을 의미한다. 

    사랑은 왜 끝나고,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을 잃은 연인들은 그 답을 찾아 과거의 시간 속을 헤맨다. 그의 표정을 떠올리고, 그와 주고받았던 말을 복원하려 애쓴다. 시간을 거슬러 어릴 적 자신까지 올라간다. 어떤 이는 사랑을 실패한 이유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품었던 이루지 못한 욕망 탓이라고 돌린다. 

    아쉽고 부끄러웠던 순간들.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를 닮은, 울고 있는 내면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가졌던 미완의 욕망을 현재의 연애를 통해 만회하려 하는 본능이 있다. 한 개인이 품고 있는 과거의 욕망이 현재의 욕망을 규정하는 것이다. 

    반면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다른 주장을 한다. 사랑이 실패하고 끝나는 이유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틀에서 규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애는 더 이상 개인의 낭만적인 선택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회적 욕망의 발현이며, 자본주의 시장 체제 속 상상력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 속 많은 연인은 본인의 열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강제되거나 주입된 이미지에 이끌린 연애를 추종한다. 내가 아무리 진지하게 나만의 사랑을 한다고 해도 어딘가 짝짓기 TV 프로그램 속 연인들을 닮아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인가, 사회적인 복제인가. 나는 연애를 바라보는 그 두 가지의 관점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조건을 따지는 자본주의적 상상력 때문에 연애가 시작되고 사랑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연인을 목격할 때가 있다. 발 밑에는 꽃다발이 버려져 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나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아주 사소한 이유다. 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이 싸우고 있다. 그와 그녀 그리고 그들 마음속에 깃든 그 소년과 그 소녀. 아마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같고, 그녀 역시 그의 마음속에 웅크려 울고 있는 소년의 부끄러움을 들춰낸 듯하다.

    Keep Ithaka always in your mind.
    Arriving there is what you are destined for.
    But do not hurry the journey at all.
    Better if it lasts for years,
    so you are old by the time you reach the island,
    wealthy with all you have gained on the way,
    not expecting Ithaka to make you rich.

    항상 마음속엔 이타카를 품어야 해
    거기에 다다르는 것이 너의 운명
    하지만 여행을 절대 서두르지는 마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섬에 닿을 때면 나이가 들었을 거야
    가는 도중에 얻은 것들이 너를 부자로 만들어줄 터이니
    이타카가 너를 부자로 만들어주리라고 생각하지는 마

    Ithaka gave you the marvelous journey.
    Without her you would not have set out.
    She has nothing left to give you now.

    이타카는 너에게 놀라운 여행을 선사해 주었어
    이타카 없이는 너는 떠나지도 않았겠지
    이제 이타카가 네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어

    And if you find her poor, Ithaka won't have fooled you.
    Wise as you will have become, so full of experience,
    you will have understood by then what these Ithakas mean.

    이타카가 초라해 보여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게 아닐 거야
    너는 수많은 경험으로 현명해질 거야
    이타카에 닿을 즈음 너는 이 이타카들이 무엇인지 결국 알게 될 거야

    연애를 할 수 있는 자는 인생의 지도에서 지중해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모든 인간의 지도에는 지중해가 숨어 있다. 연애란 무엇일까. 낯선 섬을 꿈꾸며 거친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 우리는 기꺼이 오디세우스가 되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그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 이타카(Ithaka)다. 사이렌의 유혹이, 난파선의 전설이 가득한 바다지만 우리는 이타카를 꿈꾸며 파도의 흔들림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리스의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Konstantinos Petrou Kavafis)의 시 「이타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타카는 보이지 않고, 이타카로 가는 길만 보인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보이지 않고, 사랑으로 향하는 길만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텅 빈 공간 앞에서 돛을 올린다. 우리의 사랑 역시 비어 있음, 공허를 느끼고 무(無)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포구를 향한 지독한 항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것은 이타카가 아니라 이타카로 가는 길이었듯, 우리를 더 깊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연애는 나쁘게 끝나요.”

    소설 『스토너』의 캐서린은 이렇게 말했다. 연애의 끝. 마침내 다다르게 되는 이타카는 초라하고 볼품없다. 연애가 이기고 사랑이 승리한다고, 누가 이야기했을까. 긴 항해에 지친 그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타카에 도착하기 전에 수많은 이타카를 스쳐 지났음을 안다. 이타카에 다다르기 전에, 그들은 이미 이타카에 이르렀다.

    연애는 결국 무엇일까. 타인을 향한 항해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하나의 구원, 세속적 구원이 아닐까. 고통 속에서 깨닫는 세속적 구원. 하지만 연애를 통한 구원은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구원이다. 오직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만 그 구원은 가능하다.

    뒤라스의 『연인』의 주인공 소녀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우아함 을 모른다고.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말해 주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의 본질적인 우아함을 발견해 준 사람은 누구였는지 곰곰이 돌이켜 보자. 진정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을 구원해 준 이는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가 당신 내면의 우아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의미 없는 연애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