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한 PD     010-5107-0996      kfp_center@naver.com
  모성
 
지은이 : 미나토 가나에 (지은이), 김진환 (옮긴이)
출판사 : 알토북스
출판일 : 2026년 02월




  •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엇갈리며 한 여고생의 추락 사건을 다시 구성한다. 자살 시도인지 살인 시도인지 모호한 사건을 중심으로, 모성은 본능인가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모녀 미스터리라는 형식은 독자를 끝까지 사건의 내부로 끌어당긴다.



    엄숙한 시간

    모성에 관하여
    10월 20일 오전 6시경, Y현 Y시의 다세대 주택 화단에 여학생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여학생의 엄마였다.

    경찰은 여학생이 4층의 자택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사고와 자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조사 중이다.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태도가 성실하고 반 친구들의 신뢰도 두터웠으며 특별한 고민은 없어 보였다.”라고 진술했다.

    한편 신고자인 어머니는 “모든 걸 바쳐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엄마의 고백
    “저는 모든 걸 바쳐 딸아이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하는 저를 보며 신부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그러셨지요?”
    단순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더군요. 신부님은 “답은 다음에 하셔도 되니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이 노트에 마음을 풀어놓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는가?”
    이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노트에 글을 적다 보니 깨달은 사실이죠.

    이런 질문은 당연히 나쁜 짓을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나쁜 짓에 대한 ‘이유’를 물을 때와는 명백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질문하는 사람도 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닙니다. 답을 알면서도 상대방의 입으로 직접 듣고 ‘확인’하고 싶어서 굳이 물어보는 것이니까요.

    네가 노력했으니까.
    네가 좋으니까.
    널 사랑하니까.

    귀를 사르르 녹이고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던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저는 엄마에게 수도 없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엄마의 애정을, 제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거든요. 엄마의 대답은 항상 제가 예상한 대로거나 그걸 뛰어넘어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딸의 독백
    사랑받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기뻐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런 말은 내 인생에서 등장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등장했었다. 먼 옛날에는. 내가 암흑 속에서 갈구하던 것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무조건적 사랑’이다. 

    모녀가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버스로 외할머니 집에 갔다. 가는 도중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렴. ‘잘 지내셨어요?’라던가 ‘춥진 않으세요?’라고 말씀드려. 할머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실지 잘 생각해봐.”
    “네, 엄마.” 

    다음부터는 엄마가 재촉하지 않아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말은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원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도 있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그렇게 말할 때 할머니가 가장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할미도 많이 사랑한단다.” 그 말을 들으면 온몸 구석구석까지 기쁨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외할머니와 손을 맞잡고 과자를 사러 가고 종이접기를 함께 한 기억은 행복으로 잔뜩 남아 있다. 외할머니에게 받았던 건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받았던 건...물론 나를 애지중지했던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거다. 내 존재란 엄마가 꿈꾸는 행복이라는 그림에서 극히 일부분, ‘소품’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언덕 위의 꿈같은 집이 소실되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 분명 엄마와 아빠도 그걸 잃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닫는다 한들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을 무너뜨린 사람은 바로 나니까. 

    소실된 집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외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그런 내 인생도 이제 곧 끝난다. 상상 따윈 어떤 구원도 되지 못한다. 


    석상의 노래
    엄마의 고백
    결혼한 지 7년, 제가 막 서른한 살이 된 가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반년 후에 초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었어요. 이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쓰고 읽었기에 저는 자주 외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 “우리 집에 또 놀러 오세요.” 편지의 맺음말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물론 엄마가 우리 집에 와주길 바라는 마음은 딸아이보다 제 쪽이 더 강했지만요. 

    그 시절에는 아직 경기도 좋았고 타도코로가 일하는 철공소는 24시간 체제로 기계를 쉬지 않고 가동시켰습니다. 덕분에 타도코로는 사흘에 한 번꼴로 밤샘 근무를 해야 했지요.

    남편 없이 보내는 밤에는 거실 불을 끌 수도, 무더운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잠들지 못해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는데 옆에서는 딸아이가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부모가 당연히 지켜줄 거라고 안심하는 모습이 얄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엄마는 남편의 밤샘 근무 날엔 함께 자러 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우울한 밤샘 근무일을 가리키던 달력의 붉은 동그라미가 이제는 저를 설레게 만드는 표시로 바뀌었지요. 

    저녁 5시 반에 엄마와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고 7시에 남편이 출근, 9시에 딸아이를 재운 뒤부터는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맛있는 홍차에 쿠키 같은 과자를 곁들이면서 수다를 떠는 밤은 낮에 만날 때와는 다른 부드러운 공기가 흘렀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지요.

    엄마와 내가 함께 새기는 시간….

    엄마는 딸아이를 위해 책가방을 사주었고, 급식 주머니와 에코백도 저와 함께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재봉틀을 돌리면 엄마가 자수를 놓았지요.

    “토끼를 넣어줄까?” 하고 물어봤더니 병아리가 좋다더구나. 생각해보면 그 애한테는 병아리가 잘 어울리긴 해.”

    다음 날 아침, 딸아이는 완성된 급식 주머니와 에코백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손에 들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더니,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소중히 보관해둬야겠다며 예쁘게 접어 자기 서랍장에 정리했지요. 엄마는 감동한 듯 지그시 미소 지으며 흐뭇하게 딸아이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피아노 가방은 키티가 그려진 걸 갖고 싶어요.”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 학원도 등록했는데, 시판되는 캐릭터 가방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한 겁니다. 한 땀 한 땀 사랑을 담아 수놓은 병아리 가방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처음 말문이 트였을 때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가 되도록 그렇게나 가르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소중한 우리 엄마를 슬프게 만드는 말을 하다니, 역시 이 아이에겐 타도코로의 피도 흐르고 있는 거야.’

    저는 항상 제가 엄마의 분신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얼굴도 많이 닮았고 사고방식이나 감성도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제 분신 같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저와 엄마를 많이 닮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감성도 부족하고 정서도 풍부하지 않았지요.

    분명 타도코로 집안의 유전자를 더 많이 받은 아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침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라 손을 뗄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 다음엔 키티로 줄게.”

    엄마가 웃으며 딸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거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안 계실 때 다시 병아리 가방이 좋다고 말하도록 유도하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타도코로가 퇴근해서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어머, 어쩜 이렇게 맛있니?”
    엄마가 제 요리를 칭찬해주었습니다.

    4인용 식탁에 엄마의 자리가 생겼고 식기 선반에는 엄마의 밥그릇과 국그릇, 머그컵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이대로 쭉 엄마와 함께 살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기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정전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저녁 8시 무렵이었고요. 부엌과 거실 테이블에 작은 그릇을 놓고 양초를 세워 불을 붙였습니다.

    유리창을 때리는 비바람 소리에 대형 태풍이 꽤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오렌지색 불빛에 감싸여 있으니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빨리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을 거라 이야기하며 태풍이 지나간 뒤의 맑은 하늘을 상상했습니다.

    그대로 쭉 눈을 감고 있다가,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빗방울이 조금씩인 해도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빗소리가 작아질수록 다른 소리, ‘삐이익!’ 하는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자동차 경적이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수십 대, 아니 수백 대가 넘는 근방의 자동차가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집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설마!’ 하고 몸을 일으킨 것과 동시에 집이 크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뒷산이 무너지며 토사가 쏟아져 들어온 것입니다. ‘콰과쾅!’하고 크고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엄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저는 도움닫기를 하며 여러 번 몸을 부딪친 끝에 장지문을 뚫어냈습니다. 어둑어둑한 불빛 너머로 문 안쪽에 보인 것은 쓰러진 장롱이었습니다. 산 쪽에 면한 벽이 무너지면서 일본식 장롱과 서양식 장롱이 나란히 쓰러져 있었습니다.

    “엄마!”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식 장롱은 완전히 넘어졌지만 서양식 장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식 장롱과 앞쪽 벽 사이의 좁은 틈새를 통해 방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서양식 장롱 밑에 엎드린 채 깔린 엄마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사이에 이불이 끼어 있긴 했지만 묵직한 장롱은 엄마의 등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장롱 밑쪽은 무너진 벽과 진흙 같은 토사로 파묻혀 있었습니다.

    온몸이 떨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이 몸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왔습니다. 저는 서양식 장롱 끝에 손을 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들어 올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난 괜찮으니까 아이를……."
    엄마가 엎드린 채 말했습니다. 장롱 밑을 들여다보자 안쪽에 이불을 뒤집어쓴 딸아이의 머리도 보였습니다.

    "엄마, 도와줘!"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명씩 구하려다간 남아 있는 쪽이 더 심하게 깔리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사람을 불러올게."

    그렇게 말하며 거실로 나서는 제 눈에 불덩어리가 보였습니다. 거실 소파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불은 이미 커튼에도 옮겨붙었고, 멍하니 서 있는 제 눈앞에서 불길은 점점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갔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나간 사이에 집 전체를 삼켜버릴 기세였습니다. 집에는 소화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부엌에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 끼얹는 정도로는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집 밖에서는 빗물이 계속 들이치는데, 집 안에는 불길이 거침없이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늦겠어, 빨리."
    엄마도 연기 냄새를 맡고 집이 불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겠지요. 짓눌린 몸으로 최대한의 목소리를 쥐어짜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장롱 방으로 돌아와 서양 장롱 밑에 두 손을 뻗어 엄마의 양팔을 잡았습니다.

    "나 말고!"
    엄마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왜? 어째서?"
    "네가 구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잖니."
    "엄마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날 낳고 길러준 사람이잖아."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습니다.

    "바보처럼 굴지 마. 넌 이제 애가 아니야. 엄마란다."
    "싫어, 난 엄마 딸이야."
    그저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나 고작 10센티미터 정도 앞으로 빠져나왔을 뿐입니다.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다시 집어넣고 더 강하게 잡아당기자 이번에는 15센티미터 정도 빠져나왔습니다.

    "그만해. 그만하렴. 왜 엄마 말을 못 알아듣니?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부터 구해야지."
    엄마는 장롱 밑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머리를 들어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자식……. 불길에 놀라 냉정을 잃었던 저는 엄마의 눈을 보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딸아이의 존재를 떠올렸습니다.
    그래, 이 밑에는 내 딸도 있어.
    그런데도 저는 엄마에게서 손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등 뒤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타닥타닥하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두 사람을 다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한 명밖에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저했습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낳은 사람을 구할 것인가?""

    그리고 제가 얼마나 찢어지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는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겁니다.

    아아, 신부님!
    넋이 나간 상태였던 터라 그 뒤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열기와 연기로 가득한 가운데에서 장롱 밑의 딸을 구해내고, 품에 안은 채 불 속을 뚫고 밖으로 나왔던 게 아닐까 합니다.
    엄마를 거기에 그대로 두고서요. 관에 넣어 꽃으로 장식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타도코로는 그로부터 잠시 뒤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엄마를 구하려고 활활 타오르는 집 안으로 뛰어들려는 것처럼 보였는지, 기름 냄새 나는 팔로 저를 뒤에서 붙잡았던 감촉을 기억합니다.
    엄마의 목숨을 대신해서 딸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모든 걸 바쳐서……. 이제 답을 알아냈네요.
    제가 딸아이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건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 손으로 어찌 딸아이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