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미래”로 선정된 청예의 첫 중편소설 『반 고흐의 마지막 획』이 ‘림’의 중편소설 시리즈 〈사이림(s a i l i m)〉으로 출간되었다.
한 사람으로부터 파생되는 삶의 균열과 사건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 감정의 궤적을 포착하려는 〈사이림〉과 청예가 만나, 한 인간의 내면과 예술 그리고 그 이후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하나의 세계를 선보인다. SF, 오컬트 스릴러,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서사의 외연을 확장해 온 청예는 이번 작품에서 19세기 유럽과 21세기 한국을 교차시키며, 믿기 어려운 진술과 허무하면서도 아름다운 과거를 정교하게 교직한다.
마치 고흐와 고갱이 환생한 듯한 ‘공후’와 ‘고경’ 두 여자는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용의자와 피해자라는 다층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관계로는 환원될 수 없는 긴장감을 형성한다. 한때 같은 빛을 응시했으나 끝내 서로 다른 어둠에 가닿은 두 화가를 닮은 둘은 서로를 비추고 비틀며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술가로서의 동행을 넘어 존재론적 균열을 발생시키는 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은 타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소거하려는 모순 위에서 작동하고, 그 필연적 귀결로서 파열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외로움으로는 오직 나만을 원망했어야 했다”는 공후의 마지막 말은, 세속적 가치와 주변의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끝내 예술만을 끌어안은 선택의 그림자와 겹쳐진다.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을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의 끝에서, 슬픔을 품은 젊은 화가의 마지막 선택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획을 남긴다.
■ 작가정보
청예
2021년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으로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일억 번째 여름』 『낭만 사랑니』 『오렌지와 빵칼』 『라스트 젤리 샷』 등을 펴냈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K-스토리 공모전 드라마 및 SF 부문 최우수상,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4년, 2025년 예스24가 한국문학의 미래로 꼽은 ‘젊은 작가’로 선정되었다.
■ 목차
반 고흐의 마지막 획
소설, 쓰다 - 수련과 붉은 지붕으로 이뤄진 마음
예술가로서의 동행을 넘어 존재론적 균열을 발생시키는 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은 타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소거하려는 모순 위에서 작동하고, 그 필연적 귀결로서 파열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흐의 마지막 그림 앞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
어떤 예술가의 삶은 작품보다 먼저 전설이 된다. 우리는 반 고흐를 떠올릴 때 강렬한 색채와 소용돌이치는 하늘, 잘린 귀, 가난, 광기,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함께 떠올린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비극으로만 읽기 시작하면, 정작 그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무너지면서도 끝내 세계를 바라보려 했던 시선, 절망 속에서도 색을 통해 삶을 번역하려 했던 의지다.
반 고흐의 마지막 시기를 다룬 이야기는 단순히 천재의 몰락을 보여주는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장 불안정한 순간에도 어떻게 자기만의 표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삶이 흔들릴수록 어떤 사람은 침묵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치열하게 자기 안의 진실을 그려낸다. 고흐는 분명 후자였다. 그는 평온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평온할 수 없었기에 더 절실하게 그렸다.
고통은 예술을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술 자체는 아니다
대중은 종종 위대한 예술을 고통과 동일시한다. 많이 아픈 사람이 더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든다고 믿고, 파괴적인 삶을 어떤 진실성의 증거처럼 소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흐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고통이 작품의 배경이 될 수는 있어도 작품의 본질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술을 완성하는 것은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상처를 바라보고 형상화하는 감각과 노동이다.
고흐의 그림에는 감정의 격렬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화면은 단지 감정이 폭발한 흔적이 아니다. 거기에는 색의 균형을 찾으려는 계산, 풍경의 구조를 붙들려는 집중, 그리고 매일 반복해서 붓을 드는 성실함이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영감에 휩쓸린 사람이기 이전에, 끝없이 관찰하고 시도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불행한 삶 때문이 아니라, 그 불행을 예술의 언어로 바꾸기 위해 치른 치열한 훈련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오히려 삶을 또렷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마지막 시기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남긴 말과 행동과 그림의 모든 조각을 예언처럼 읽고 싶어진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결말을 모른 채 진행되는 현재형의 시간이다. 반 고흐 역시 자신의 하루하루를 마지막 장면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또한 오늘의 빛과 바람, 들판의 움직임, 구름의 결을 붙잡으려 했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지막이라는 관점은 우리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늘 미래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믿으며 하고 싶은 말을 미루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늦추고, 지금 몰두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넘긴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의식하는 순간, 삶은 갑자기 추상에서 구체로 바뀐다. 오늘 한 번 더 들여다본 풍경, 한 사람에게 건넨 진심, 끝내 포기하지 않고 붙잡은 작업이야말로 인생을 이루는 실제 내용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예민함은 약점이 아니라 세계를 깊게 느끼는 방식이다
반 고흐의 삶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는 예민함이다. 그는 남들보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상처받고, 감각적으로 과도하게 열려 있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기질이 종종 결함처럼 취급된다. 무던함이 생존에 유리하고, 감정을 빨리 털어내는 사람이 강한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민함은 단지 불편한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고흐는 평범한 들판을 단순한 배경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밀밭의 움직임에서 생명의 떨림을 보고,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빛을 발견했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그만큼 더 쉽게 다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능력 덕분에 세상이 무심코 지나치는 아름다움도 먼저 붙잡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민함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삶의 형식을 배우는 일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다
반 고흐의 생애는 인정받지 못한 시간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살아 있는 동안 충분한 성공을 누리지 못했고, 작품의 가치는 사후에 더 크게 조명되었다. 이런 서사는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동시에 중요한 통찰도 준다. 세상이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곧 그 가치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에서 긴 무명의 시간을 통과한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보이지 않는 시기, 진심이 쉽게 전달되지 않는 관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어떤 시간은 박수보다 먼저 내면의 깊이를 만든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정이 없더라도, 그 시간은 사람을 익히고 시선을 단련하며 자기만의 리듬을 만든다. 고흐의 삶은 성공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삶 전체를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거대한 희망보다 작은 지속이다
비극적인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종종 결정적인 사건만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 삶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반복적인 지속이다. 편지를 쓰는 일, 아침에 다시 일어나는 일, 눈앞의 풍경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업을 다시 붙드는 일 같은 것들이다. 반 고흐의 삶 역시 그런 지속의 연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단번에 구원받지 못했다. 대신 매일의 노동 속에서 자신을 이어갔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삶이 무너질 듯할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오늘을 통과하게 해주는 작은 행동일 수 있다. 한 페이지를 읽는 일, 짧은 산책, 미뤄두었던 대화, 조용히 감정을 적어보는 시간이 때로는 한 사람을 다음 날로 데려간다. 인간은 대단한 확신으로만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미세한 반복으로도 살아남는 존재다.
예술은 삶을 구원하지 못해도 삶을 견디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예술에 지나치게 큰 역할을 기대한다. 예술이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고, 혼란을 정리하고, 삶을 구원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예술의 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술은 삶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에 형태를 부여하고, 견딜 수 없던 감정을 잠시 바깥에 놓이게 하며,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어떤 공명을 건넨다.
반 고흐의 그림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은 고통 없는 세계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 속에서도 이토록 강렬한 색을 볼 수 있고, 무너지는 마음으로도 세계를 끝까지 사랑하려는 시선이 가능하다고 보여준다. 그것은 구원의 선언이라기보다 버팀의 증언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서 감탄만이 아니라 위로도 받게 된다.
마지막 획은 끝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질문이 된다
한 화가의 마지막 획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한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이다. 반 고흐에게 그것은 아마도 세계를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자기만의 색으로 응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삶 앞에서도 끝내 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마지막 획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다. 그 사실이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묻게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해야 할 사람, 더 솔직해져야 할 마음, 더 오래 바라보아야 할 풍경이 있다. 결국 좋은 삶이란 완벽한 결말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한 획을 진심으로 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핵심 메시지
반 고흐의 삶은 고통 자체보다 고통을 끝내 표현으로 바꾸려 했던 의지의 힘을 보여준다. 예민함과 불안정함은 결함만이 아니라 세계를 더 깊고 강렬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거대한 해답보다 오늘을 이어가게 하는 작은 지속과 진심 어린 한 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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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를 비극의 아이콘이 아니라 끝까지 세계를 사랑하려 한 한 인간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다. 예술가의 생애를 따라가면서도 결국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에세이를 찾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다. 불안과 예민함을 약점으로만 여겨왔던 독자라면, 그것을 새로운 감각과 시선의 가능성으로 바꾸어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