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화분, 따라 사고 싶을 정도로 감도 깊은 소품들. 작은 자취방을 오밀조밀 특유의 감성으로 꾸며 ‘공간 크리에이터’로 이름을 알린 ‘예진문’. 그녀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했고, 그때마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자신의 브랜드 ‘Oth,’에서 출시한 첫 번째 제품, ‘한강 패브릭 포스터’는 단 10초 만에 준비한 수량 모두 완판되었고, 출시하는 상품마다 품절 사태를 일으켰다. 성공한 창업자 타이틀을 넘어 ‘10CM(십센치)’ 뮤직비디오 공간 크리에이터, ‘김나영의 노필터 TV(유튜브)’, ‘오늘의집’ 등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승승장구, 그야말로 꽃길만 펼쳐질 것 같던 그녀에게도 추락은 다가왔다. Oth,의 카피캣이 등장하고, 연달아 내놓은 상품은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고 재고가 되어 창고에 처박혔다. 과거 명성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실패’만 남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성공한 삶이라고 떠받들던 시기에 그녀는 가장 깊은 수렁을 만났다.
이 책은 과정보다 결과, 노력보다 성공을 향해 뛰었던 한 개인이 깊고 어두운 심연에 잠겨 있다가, 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삶의 목적을 오직 돈과 성공에 두어, 실패가 부끄럽고 그로 인해 작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통제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 저자 문예진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한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있으며, 그 여정의 흔적을 함께 나누는 브랜드 ‘Oth,’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물성을 활용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자, 작은 일상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도로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yejinmoon_ @othcomma
■ 차례
Prologue. 나를 살게 한 다정함에 대하여
Chaper 1. 씨앗
Chaper 2. 새싹
Chaper 3. 개화
Chaper 4. 낙화
Chaper 5. 개화의 방
Epilogue. 겨울은 시련이 아닌 안전한 출발 기간
이 책은 과정보다 결과, 노력보다 성공을 향해 뛰었던 한 개인이 깊고 어두운 심연에 잠겨 있다가, 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삶의 목적을 오직 돈과 성공에 두어, 실패가 부끄럽고 그로 인해 작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통제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씨앗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어디에서부터 발을 담가야 할까 궁리하다가 페이스북으로 주문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 주기 시작했다. 조개 캐릭터를 그려서 액세서리로 만들거나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 포스터, 스티커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오리엔탈 콘셉트의 브랜드를 론칭하자며 머리도 맞댔다. 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 한 줌의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했다. 브랜드를 오픈하기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시도했던 일들이 전부 실패로 돌아가도 실망하지 않았다. 내게는 실패보다 시도가, 계획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가벼운 시도에는 실패가 뒤따라온다지만 사실 반만 맞는 말이다. 하나씩 꼬인 과정을 풀어 나가다 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이 복잡하고 귀찮은 일을 껴안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답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계획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에서 튀어 오를지 모를 문제들을 온몸으로 부딪혔을 때 얻는 나만의 답안지였다.
또다시 무언가를 해 보겠다며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부모님 댁에 내려왔다. 며칠째 계획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오후, 햇살이 거실 창으로 넉넉하게 들어왔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려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는데 살랑이는 바람에 커튼이 흔들렸다. 그때 스르륵 감기던 눈을 번쩍 떴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사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곧장 핸드폰을 열어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훑어보았다. 매일 습관처럼 찍던 윤슬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윤슬을 품은 물결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가벼운 원단과 만난다면? 움직이는 사진인 동시에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쓸 수 있다면?
패브릭 포스터, 이거다!
계시와 같은 직감이 뇌리에 박혔다. 진한 커피를 연달아 마신 듯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황급히 서울로 출발했다.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도전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명확한 답이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추진력이 순풍을 만난 듯 분주히 움직였다. 얼떨결에 도메인을 구매하고 판매 사이트도 만들었다. 집이 생겼으니 그곳에 맞는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
"Oth,"
Oth,는 "other"의 줄임말이다. 이름에 큰 의미는 없었다. 한창 만들던 패브릭 포스터가 커튼 이외에도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브랜드 이름을 고민 없이 지은 것에 후회하고 있다.)
샘플 제작 기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일 년이 걸린 듯했다. 상품이 나오자마자 인테리어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판매 문의 메시지가 백 개 이상 쌓여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받아도 되는 제품일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패브릭 포스터는 당시 소품 시장에서 볼 수 없던 상품이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한강의 윤슬이나 스위스의 짙은 녹음이 인쇄된 원단은 유행하고 있던 화이트 인테리어에 포인트가 되는 장점도 있었다. 패브릭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강가에 서 있는 것 같았고, 여행을 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던 시기, "답답한 일상의 작은 환기"라는 기획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패브릭 포스터 외에 다른 콘텐츠도 주목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올렸던 유튜브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더니 구독자 수가 껑충 올랐다. 덕분에 "Oth,"와 패브릭 포스터를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들인 노력의 답이었을까.
새싹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블루베리를 가지런히 자른 빵 옆에 놓는다. 커피로 속을 달래고, 올리브 오일과 후추로 볶은 브로콜리로 입안의 감각을 깨운다.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입맛에 맞는 요거트를 후식처럼 먹는다. 덕분에 매일 아침 핀란드의 식탁이 즐거워졌다. 한국에서는 몇 번이나 아침을 먹으려 시도해 보았지만 매번 흐지부지되었다. 이곳에서는 그 다짐이 아무렇지 않게 매일 이루어졌다.
일에서 한발 물러나 고립된 삶을 살게 된 대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얻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사방이 흰 눈밭뿐인지라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남아도는 체력을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에 썼다. 이곳에서의 모든 행위는 오롯이 "나"를 향해 있었다.
간밤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 먼 곳까지 차를 몰아 식재료를 사는 일,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기 위해 영하 이십 도를 뚫고 밖으로 나서는 일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정직한 환경은 침잠해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지내며 바쁘게 몰아세우던 나를 멈춰 세우니, 흐트러졌던 생체리듬이 제자리를 찾았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끼니를 거르고, 좋지 않은 것들로 몸을 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던 것을 이루어 냈을 때,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을까? 돈으로 인해 무엇이 그리 기뻤던 것일까.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채. 돌이켜 보면 결국 텅 비어 있는 순간들뿐인데, 내 목표는 왜 그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을까?
삶의 시선을 타인에게서 나로 돌리고, 사회가 정한 속도와 모양을 넘어설 때 흰 눈밭 위에는 비로소 나만의 궤적이 생긴다. 남들의 박수 소리보다 내 안의 평온함에 귀 기울이는, 적어도 오늘 아침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은 하루를 살고 싶어졌다.
돈을 쫓은 삶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떨렸는지 알아채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Oth,를 재정비하기 전에 선택한 것은 고립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동안 수집했던 영감, 사유들을 정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흡수시키는 데 노력을 쏟았다.
핀란드에서 돌아온 후에도 홀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빼고 수면 위로 얼굴만 내민 채 하염없이 부유하듯 지냈다. 어지럽던 내면의 목소리를 차분히 되새기고 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성을 만들었다. 방황할 때마다 길을 안내해 주고, 희미해지는 내 존재를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삶의 끝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그어 주는 궤적이기도 했다.
단절은 다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타인에게 성에서 나의 보낸 시간은 대단한 계획도,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시기였다.
어느 날부터는 무작정 걸었다. 반려견 '도현'이를 산책시킨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렇게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매일 오가던 길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나뭇잎, 비가 온 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잔디와 흙 내음. 익숙한 곳인데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고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우연히 만난 한 그루의 나무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단단하게 제 몫을 하며 서 있는 나무를 대견하다는 듯 토닥였다. 거친 나무껍질과 그 생이 손바닥을 통해 내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마음속 한구석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던 욕심의 실타래를 살살 풀어 나갔다.
의무로 시작했던 도현이와의 산책은 작은 것에도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었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물길이 되었다. 도현이의 보폭을 따라 자주 걷고 자주 멈추었다. 발걸음에 맞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그렇게 삶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이 되었던 걸까. 나는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하루하루 여행하듯 살 수 있는 법을 배워 갔다.
개화
나는 학생일 때도, 회사원일 때도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내려고 했다. 그래서 Oth,를 시작한 뒤로 "함께 일하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오랜 시간 방황했다.
퍼스널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충돌을 견디며 좋은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쉽지 않았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늘 옳은 사람이고 싶었다. 우기고, 설득하고 때로는 합리화했다. 내 의견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면 도망치기 바빴다.
이제는 도망가던 두 다리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틀렸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차분히 바라보고 싶다. 함께 걸어가는 길을 연습해 보려고 한다. 크고 작은 고난이 있을 테지만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일 뿐.
저마다 다른 꽃들이 모여 꽃다발을 이루고, 조화로운 정원을 만든다. 꽃들은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혼자 빛나는 것보다 서로 기대어 더 넓게 환해지는 방법을.
계절은 늘 꽃으로부터 시작된다. 꽃을 다루는 사람은 한 발짝 먼저 계절을 마중 나간다. 계절의 기척을 손끝으로 감각한다. 꽃은 시간의 흐름을 숨기지 않는다. 피고, 머물고, 스러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꽃을 보면 ‘지금’이라는 짧은 순간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에게 ‘나중’이란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 피어 있는 것을 놓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낙화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생소해서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일정을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인도에서의 여정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흘러가는 물에 카약을 띄우듯, 물살에 노를 갖다 대듯 이 시간을 순리처럼 즐기자는 다짐도 요동치는 너울에 여러 번 뒤집혔다. 그럴 때마다 “킵 고잉(keep going)!”이라고 외쳤다.
덕분에 돈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주는 트로피 같았다. 여행을 끝까지 마칠 수 있다며 격려해 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한 발, 한 발을 떼며 완주할 수 있었다.
함께 걷자고, 춤추자고, 노래를 부르자고, 밥을 먹자고 먼저 손 내밀어 준 이들 덕분에 걱정했던 인도 여행을 매듭지었다. 여기서 받은 사랑을 배낭에 싣고,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돌아가 나누고, 바닥이 보이면 또 다른 여행을 떠나야겠다.
가면을 쓴 듯 갑갑한 느낌이 들 때는 일기장을 펼친다. 꾸밈없는 진짜 나와 인터뷰한다. 오직 내가 묻고 답하는 시간이다. 세상의 질문도, 타인의 시선도 끼어들지 못한다. 종이 위에서 한바탕 맨발로 뛰어논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와 마주하는 사적인 시간이다.
삶의 본질은 자신을 보존하고 확인하려는 의지 속에 있다. 보존은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인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원을 현재로 불러와 다시 숨 쉬게 하는 과정이 된다.
세상에 무의미한 기록은 없다고 믿는다. 꾸준히 자기 방식대로 기록을 하다 보면 언젠가 등불이 되어 준다. 때로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금의 내가 그 질문에 뒤늦게 대답한다.
지금의 자리에서 나를 또렷하게 응시하는 조용한 인터뷰의 시간이 된다.
꽃은 성별과 나이의 경계를 넘어 순수한 기쁨을 준다.
꽃을 선물하며 주고받는 무해한 언어야말로 내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런데 꽃꽂이 수업을 받는 삼 년 동안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수업 후 버려지는 꽃이 눈에 밟혔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꽃이 시들면 버리는 일도 편치 않았다. 그래서 꽃의 시간을 붙잡는 작업, 압화를 시작했다.
압화를 시작할 때 마음에 드는 도구를 찾을 수 없었다.
일명 벽돌로 불리는 무거운 책으로 꽃을 눌렀다. 스무 권에서 서른 권 정도 올려놓고 누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허리가 아팠고, 간혹 꽃이 잘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생겼다.
스스로 발견한 틈을 채워 보겠다는 의지로 Oth, 이름을 걸고 압화 도구를 개발했다. 내가 압화 프레스를 내놓자 사람들은 작품을 팔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단순했다. 이미 뛰어난 작품이 많았고, 기존 작품에 버금가는 상품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여러 해를 보내며 관찰하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보여 주기로 했다.
압화는 결과물보다 과정이 즐거울 때가 많다. 마음에 드는 꽃을 만나면 오늘은 어떤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작업에 들어갔다. 결과물을 빨리 만나 볼 수 없기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조마조마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이 마음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작품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면, 누구나 압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밝혀 주는 상점이 되자.
압화 프레스 덕분에 Oth,는 성장했다. 고객의 능력을 끌어올릴 기회를 제공하는 브랜드로 변모한 것이다.
게임으로 치면 퀘스트를 완료하거나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상점이다.
각자 다른 삶의 방향을 응원해 주고, 어쩌면 이런 삶도 좋을 수 있다는 동경을 심어 주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 브랜드는 고객을 빛나게 하는 조연일 때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전시가 끝났다. 공간을 메웠던 전시물을 철수하고 텅 빈 무서록을 둘러보았다. 그곳을 서성이던 사람들의 눈빛과 발걸음이 떠올랐다.
전시의 마지막 관람객은 Oth,를 모르는 분들이었다.
근처를 지나가다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들어 왔다고 했다. 그들은 공간을 둘러보고, 꼼꼼하게 메모를 읽고, 까치밥나무를 채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이 시간이 어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갈림길에 선 사람들, 막다른 길 앞에서 스스로 문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삶의 운전대를 쥔 이들에게 나는 어떤 표본이 되었을까. 그들에게 전시는 어떻게 닿았고, 나는 어떤 씨앗을 건넸을까. 사실 전시를 시작한 이유는 내가 받았던 용기를 씨앗처럼 퍼뜨려 나눠 주는 것이었지만, 씨앗을 받은 건 결국 나였다.
경복궁의 돌담길이 샛노랗게 물든 어느 가을날, 나는 그들이 준 선물을 내 숲에 심었다. 씨앗이 새싹으로, 꽃으로, 나무로 자라서 굳건히 지켜주리라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