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지은이 : 이동원
출판사 : 라곰
출판일 : 2026년 03월



  • 직업인으로서 현장에서 목격해온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건 사고 속 인간의 내면, 관계, 사고방식에 관심을 갖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저자가 긴 시간 마음에 품으며 만들어낸 인물들의 기구한 인생을 그려낸 첫 소설집.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일요일의 소아과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아침부터 그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왔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의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요즘 맘카페에서 완전 핫한 거 아시죠? 제가 소문 많이 냈어요.”

    미국에서 몇 년 살다 왔다고,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소위 ‘스피커맘’. 명품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치마와 가방, 평범한 동네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차림새. 그녀는 대기실 문을 밀치고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병원 전체를 훑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큰애부터 볼까요?”

    다섯 살 큰애는 건강했다. 폐 소리 깨끗하고, 체온 정상. 진료실 장난감을 보자마자 뛰어가는 아이들 특유의 에너지가 있었다. 문제는 세 살짜리 둘째였다. 둘째는 엄마 뒤에 반쯤 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이를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 치마를 꼭 잡았다. 손등에는 오래된 멍이 옅게 퍼져 있었고, 팔뚝에는 긁힌 자국들이 몇 개 보였다. 피부는 잿빛에 가까운 누런색이었다.

    문제는 아이의 몸 전체였다. 팔과 다리, 배. 청진기를 대느라 윗옷을 올리자, 여기저기 색이 다른 자국들이 보였다. 오래된 멍과 새로운 멍, 긁힌 자리, 눌린 자국.

    나도 모르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내 시선을 읽은 듯, 먼저 말했다.

    “애가요, 좀 산만해요. 혼자 뛰어다니다가 자꾸 부딪히고 넘어지고 그래요. 저도 너무 힘들어요, 진짜.”

    그 말, 너무 많이 들어봤다. 산만해서 그렇다는 말. 애가 원래 그렇다는 말. 나는 그 말 뒤에 무엇이 숨었는지 대충 아는 경력이 되었다. 머릿속에서 두 개의 문장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 대상이다.’

    ‘하지만 괜히 신고했다가 더욱 큰일이 난다.’

    소아과 의사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다. 의심이 들면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지 않았을 때,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교과서에 나온 문장들, 학회에서 교육 받을 때 수십 번 들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맘카페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들은 사람이며, 이미 우리 병원을 엄마들에게 추천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원칙을 선택했다. 욕을 먹더라도, 그게 내 직업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소아과 전문의고,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니까. 평소의 나답지 않게 사명감이 발동해버린 것이다.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쓰는 척하며, 다른 손으로 전화를 들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서로 연결되는 번호를 눌렀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 몸에 다수의 멍, 보호자의 진술과 상반되는 양상, 다니는 어린이집과의 연락 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아이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형사들이 찾아왔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도 사람이 왔다. 진료실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아이를 살펴보고, 엄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나고, 그들이 나왔다.

    “특이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형사가 말했다. “아이도 별다른 진술은 안 하고요. 상처들도 대부분 넘어지면서 생길 수 있는 정도라고 해서... 일단 더 지켜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엄마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상태였다.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오더니, 낮게 말했다.

    “원장님,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도 있는 거 아세요?”

    그 말은 위협이자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그녀는 정말로 내 삶을 서서히 죽이기 시작했다.

    아무 잘못 없는 엄마를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간 동네 소아과

    맘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병원 이름, 위치를 대놓고 노출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병원임을 눈치챈 사람들의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다.

    누군가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사이트 캡처를 올렸고, 누군가는 병원 상호를 검색해 등장하는 옛날 기사 링크를 퍼왔다. 학회 발표 자료에서 잘려 나온 내 얼굴 사진이, 굳이 이름과 함께 다시 붙었다. SNS도 안 하는 내가, 맘카페 게시글 속에서는 온갖 정보가 정리된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 ‘이런 사람은 제대로 신상 털어야 해요’라고 남긴 댓글 아래에는, 좋아요가 수십 개 달렸다. 다른 글에서는 우리 가족 사진까지 퍼와 모자이크 처리한 뒤, ‘애 학교는 이쪽 아닐까’라며 추측을 이어갔다. 딸의 SNS가 털린 모양이었다.

    고3 딸이 학교를 가기 싫다고 울었다. 딸의 인스타그램에도 악플이 달렸고, 반 애들도 병원 이름을 다 알게 되었다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며칠 뒤, 병원으로 등기 한 통이 도착했다.

    내용증명이었다. 발신인은 그 엄마였다.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나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예고장이었다. 요즘 잘나간다는 대형 로펌 이름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3주가 더 지났다. 나는 여전히 나를 응원해주는 댓글을 찾아, 유튜브 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그때 같은 방송국 뉴스 클립에서 익숙한 얼굴이 또다시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온 걸 발견했다. 이번 섬네일은 제목이 달라져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 이후 한 달 만에... 세 살 아이 결국 숨져

    화면 속 아파트 단지 입구, 취재진을 피해 얼굴을 가리는 애 엄마의 실루엣.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그녀를 차에 태우는 형사들의 어두운 표정.

    “앞서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추가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비극입니다. 경찰은 아이의 친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화면 구석에 잡힌 엄마의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명품 브랜드 로고는 아무리 모자이크를 해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 엄마가 맞았다.

    아이는 결국 죽었다. 내가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처음 신고했던 세 살짜리 아이, 병원으로 지난번과 같은 형사들이 찾아왔다. 이번엔 전화도 예고도 없이 나타나, 영장을 들이밀었다.

    며칠 동안 뉴스가 쏟아졌다. 기사마다 아이의 죽음을 다루며, 초기에 신고가 있었지만 적절한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자막에 이런 내용이 짧게 지나갔다.

    ‘첫 신고를 했던 동네 소아과 의사 A씨는, “당시 아이의 몸 상태를 보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과도한 신고처럼 보이던 말이, 이제는 늦게라도 경고를 보낸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그다음부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뉴스 클립이 온라인에 올라가자, 누군가가 내 과거 방송 인터뷰 화면을 끌어와 붙였다. 없는 SNS 계정까지 만들어가며 내 실명과 얼굴을 태그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육아 카페 게시판에는 같은 영상 링크가 몇 번이고 공유됐다.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은 했다

    이런 문장이 섬네일 위에 얹혀 있었다. 나를 ‘학대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고 부르는 글들이 돌기 시작했다. 내 이름 검색 결과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내 얼굴 캡처 사진이 돌아다녔다. 병원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외래 예약을 다시 잡는 부모들이 생겨났다.

    그 사이, 조카가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수줍게 내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청구서였다. 깔끔한 서식 위에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자문료, 언론 대응료, 인터뷰 동행료, 문서 검토 비용. 마지막 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민사가 취하되어 실제 소송 없이 잘 정리된 점을 고려하여, 이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비용을 청구드립니다.

    잘 정리되었다는 말이 눈에 걸렸다. 아이는 죽었다. 엄마는 구속됐다. 나와 우리 소아과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변호사는 사건이 잘 마무리되었다며, 돈을 청구했다. 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두통이 올 것만 같았다. 애써 청구서를 옆으로 밀어두려는 그때, 조카가 말했다.

    “삼촌,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그녀는 또다시 그 눈을 반짝였다.

    “시민단체에서 상 준다고 연락 왔죠? TV 출연도 몇 군데 섭외 들어왔고, 출판사 쪽에서도 관심 있대요. 아동학대 신고와 의료윤리 이런 걸 주제로 책 한 권 내는 거예요. 삼촌이 쓰시면, 저는 법률 자문을 같이 해드릴게요. 앞으로도 제가 항상 옆에서 삼촌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어드릴게요.”

    “삼촌? 듣고 계세요? 제가 이번에 제대로....”

    “야, 이 새끼야! 이제 그만 좀 해! 확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당황한 조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번 더 큰소리로 욕을 퍼붓자, 놀라서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 제발 조용히 살자.

    나는 그저, 욕먹기 싫은 사람일 뿐이라고.


    나의 프로파일링 비밀 노트
    나는 프로파일링 자판기다. 내가 스스로 붙인 별명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른다. 범죄 자료만 넣으면 뭐든 나오는 기계. 버튼만 누르면 음료가 나오듯, 프로파일링을 툭툭 뽑아내는 여자 사람 경찰. 그래서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 강원도든, 전라도든, 경상도든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한 달에 스무 날은 지방 어딘가에 파견된 상태다.

    현장을 뛰는 형사들은 대부분 나를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그들은 밤을 새우고, 잠복하고, 피해자에게 멱살 잡혀가면서 수사를 한다. 어렵게 끌고 온 사건이, 결국 브리핑 때가 되면 내 이름으로 정리된다. 나는 카메라 앞에 나와서 이러쿵 저러쿵 말한다. 마치 프로파일러인 내가 다 해결한 것처럼. 그럴 때마다 형사들은 사건을 뺏긴 기분이 들 것이다.

    그 마음, 너무 잘 이해한다. 왜냐고? 나 역시 현장 수사 경력이 7년은 넘기 때문이다. 초창기 형사였던 시절, 텔레비전 속 전문가들이 사건을 분석해 설명하는 걸 보며, 나 역시 욕을 했다.

    어쨌거나 지금 난 형사과장실을 나온 뒤, 강력팀장을 따라 드디어 형사들이 드글드글한 강력계 사무실 앞에 섰다. 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눈빛의 온도였다.

    “기록 좀 볼 수 있을까요?” 강력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 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책상 위에 서류가 놓여 있었다. 대낮에 길에서 발생한 60대 남성 피살사건이었다. 근데 놓여 있는 종이의 두께가 너무 얇았다. 몇 장 안 되는 보고서, 사건 개요, 피해자 인적 사항 한 장, 112 신고 접수 일지 출력본, 증거 목록도 비어 있었다. 현장 사진도 몇 장뿐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3일이 지난 상태였다. 별별 사건 자료를 다 받아봤지만, 이처럼 허술한 적은 없었다. 이걸 읽고 범인을 잡아보라는 건가. 차라리 AI한테 물어보지.

    “그럼 혹시 이거 말고 정보가 더 있나요?”

    “아니요. 그게 전부예요.”

    이게 전부라니. 근데 저렇게 태연한가. 이 자료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범인 잡을 생각이 없는 건가. 하지만 어쩌면, 그들만의 정보가 따로 있고, 나를 떠보는 걸지도 모른다. 범인 잡기도 바쁜 세상에, 굳이 프로파일러 하나 더 끼워 넣어놓고, 그 프로파일러가 맞히나 틀리나 테스트까지 하느라 바쁜 형사들. 그 와중에 나는 또 그 형사들을 프로파일링하고 있다.

    수사팀이 정보를 감추든, 진짜로 모르든,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진 건 똑같다.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프로파일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데이터가 없으면, 말 그대로 ‘소설’이 된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나는 무당이 아니다. 미래를 점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서 패턴을 찾을 뿐이다. 하지만 브리핑은 두 시간 뒤라고 했다. 이 서류에서 뭐라도 읽어내고, 어떻게든 뭔가를 말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농담처럼 말한다.

    “때려 맞추기라도 해보자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브리핑룸에 내가 서 있었다. 젠장. 한 줄도 못 써왔는데. 브리핑룸 앞줄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몇 대 서 있었다. 삼각대 위 카메라의 붉은색 녹화 표시 불빛이 허공에 점처럼 떠 있었다. 기자들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손가락을 풀고 있었다. 벽 한쪽에는 경찰청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사회자가 짧게 멘트를 했다.

    입에서 나온 문장은, 내가 수십 번 반복해온 문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낮에 범행을 저지른 점, 그리고 범행 현장에서 칼을 남겨 두고 갔던 점을 볼 때, 상당히 대담하고 배짱이 있는 성격으로 보입니다. 이런 유형의 경우, 전과가 있거나, 폭력 성향으로 주변에 알려진 인물일 수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불안정한 가정 환경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현재도 주거지가 불안정하거나, 가족 범위 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남성은....”

    “엇, 잠깐만요.”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범인이 남자로 특정된 겁니까? 어떤 근거로 그런 겁니까?”

    썩을. 지뢰를 밟았다. 성별을 굳이 지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실수로 ‘이 남성’이라고 뱉어버렸다.

    “아, 그건....”

    그때였다.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브리핑룸 구석에서 나를 지켜보던 강력팀 형사였다. 그는 잠시 나를 카메라 밖으로 불러낸 뒤, 몸을 숙인 채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저희가 용의자로 의심해서 조사 중인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피해자 아들입니다. 근처에서 정육점을 하다가 망해서, 요즘은 여기저기 우시장 돌아다니면서 발골만 전문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전 이 동네를 기웃거렸다는 정보가 있어서, 지금 다른 팀이 만나서 조사 중인데요. 곧 자백을 할 것 같습니다.”

    정육점. 발골. 재개발. 나는 아까 브리핑에서, 평소 칼을 많이 쓰는 사람, 이 일대를 잘 아는 사람, 피해자의 죽음으로 금전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조건에 딱 맞는 인물이 이미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럼... 왜 이걸 이제야 말해요?”

    “아,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해서요. 팀장님께서 프로파일러의 분석을 듣고,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면 그 뒤에 따로 브리핑 하자고....”

    배신감보다는 허무함이 먼저 밀려왔다. 정보가 더 있었던 거다. 나는 반쯤 빈 상자만 들여다보면서, 상자 모양을 맞춰보려 애쓰고 있었다. 알고 보니 모서리 몇 개는 이미 다른 방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기자들이 다시 손을 들었다.

    나는 마이크 앞으로 돌아왔다.

    “수사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용의자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추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기자들은 내 말은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사 업로드를 시작했다.

    형사들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강력팀 몇 명은 아예 브리핑 도중 자리를 떴다. 형사과장은 내 쪽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한 형사가 다시 내 귀에 속삭였다.

    “아들에게 자백 받았습니다. 보상 문제로 아버지랑 다투다가 살해했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거랑 똑같아서, 저도 소름 돋았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내 실력이 뛰어난 건지, 통계가 날 도와준 건지, 아니면 어차피 이 나라의 살인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에서 일어나는 건지.
    전국 모든 언론에서 속보를 알리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야 모든 것이 잠잠해졌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KTX 막차에 몸을 실었다.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두 개와 서장님이 지역 특산품이라며 건넨 오미자즙을 손에 든 채로.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열었다. 포털 메인에는 내가 한 말들을 따온 기사 헤드라인이 줄줄이 떠 있었다. ‘용의자는 피해자 아들...’, ‘프로파일링 적중’ 같은 문장들이 화면을 뒤덮었다. 이곳저곳에서 내 얼굴이 나왔다. 잠깐, 오늘 하루를 겨우 버텨낸 보람 같은 게 가슴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차가운 삼각김밥으로도 위장이 따뜻해지는 느낌. 이게 아마 행복이라는 거였지?

    도파민의 기운이 정점으로 차오를 때, 남자친구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왔다. 당연히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오늘 브리핑하는 거 봤어. 축하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랑 안 맞는 것 같아. 우리 헤어지자.

    짜증 나게 진짜. 알아. 나도 너랑 안 맞는 거. 근데 꼭 이 타이밍에, 문자로 그런 말을 보내야겠니?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제대로 하고 브리핑할걸. 개떡 같은 얼굴로 차였네.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