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수록된 소설 열두 편은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작가의 고향 인도 카르나타카주의 공용어 ‘칸나다어’로 집필한 작품 중 일부를 영번역가 디파 바스티가 골라 엮은 것이다. 부커상 심사위원장 맥스 포터는 ‘하트 램프’에 “가부장적 체제와 그 저항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며, 바스티가 이 작품을 번역한 방식 또한 독창적”이라고 평했다.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는 장난스러운 아이들, 뻔뻔한 할머니, 우스꽝스러운 이슬람 율법 학자, 폭력적인 친정 식구, 불만투성이 남편,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큰 희생을 감내하며 생존해야 했던 어머니까지, 작가는 현실에 살아 숨 쉴 만한 인물을 묘사해 낸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도 결코 ‘작지 않다’는 믿음에서 태어났어요. 인간 경험이라는 태피스트리에서, 모든 실 한 올 한 올은 그 직물 전체의 무게를 지니고 있어요. 우리를 끊임없이 갈라 놓으려는 이 세계에서, 문학은 우리가 잠시라도 서로의 마음속에서 살아 볼 수 있는 마지막 신성한 공간 중 하나입니다.”
■ 저자 바누 무슈타크
저자 바누 무슈타크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변호사이다. 무슈타크는 1970~80년대 인도 남서부의 진보적 저항 문학 진영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카스트와 계급제도를 비판해 온 반다야 사히티야 운동은 영향력 있는 달리트 및 무슬림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무슈타크는 그중에서도 드문 여성 작가였다. 소설, 에세이, 시집 등 다수의 작품을 칸나다어로 집필했으며, 카르나타카 문학 아카데미상과 다나 친타마니 아티마베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 역자 김석희
역자 김석희는 서울대학교 인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 선집,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 차례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
불의 비
검은 코브라
마음의 결정
붉은 룽기
하트 램프
하이힐
조용한 속삭임
천국의 맛
수의
아랍어 교사와 고비 만추리
오 주여, 한번 여자가 되어 보세요
옮긴이의 덧붙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초 단편집 수상작. 가족 및 지역 사회의 갈등을 연민 어린 애정과 냉소적인 유머로 풀어냈다. 열두 편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변방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일상을 풍부한 구어체로 정교하게 포착해 보여주고 있다.
하트 램프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
콘크리트 정글로부터, 성냥갑처럼 하늘까지 쌓아 올려 진 화려한 아파트 건물들로부터, 끊임없는 이동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양 연기를 내뿜고 경적을 울리며 밤낮으로 움직이고 있는 차량들로부터,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서로에 대한 사랑도 없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없고, 화합도 없고, 알아보았을 때도 미소조차 없는 사람들로부터-그런 숨 막히는 환경으로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자히드가 전출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아차, 깜박했는데, 무자히드가 누구인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무자히드는 나의 집-사람이다. 아니, 이건 좀 이상하게 들린다. 대개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내이고, 그래서 아내가 집-사람이 되니까. 그렇다면 무자히드는 나의 사무실-사람이다. 이런! 내가 또 실수를 했군. 사무실은 내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걸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야자마나’라는 말을 써서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나는 마치 개나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래도 약간 교육을 받았고, 학위도 땄다. 나는 주인과 하녀 같은 역할 설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 다면 남편을 ‘간다’라고 부를까? 그것도 너무 무거운 말이다. 마치 큰 재앙을 뜻하는 ‘간단타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왜 쓸데없이 사서 고생이야? 남편을 뜻하는 ‘파티’라는 멋진 말을 쓰면 되잖아? 여러분은 그렇게 제안할 수도 있을 테지만, 여러분 집에 찾아오는 어떤 여자도 자기 남편을 “이쪽은 내 파티예요”라고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단어는 일상 대화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그건 매우 유식한 척하는 표현이다. ‘파티’라는 단어를 쓰면 왠지 ‘하늘 같은’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그건 남편을 신처럼 여기는 통속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나는 무자히드에게 그런 높은 지위를 주고 싶지 않다.
지금쯤은 여러분도 무자히드와 나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동시에 내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무자히드, 즉 내 평생의 반려자가 전출되면서 우리는 크리슈나 라자사가라 지역의 아름다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런 다음 그는 나를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잭프루트와 레몬 나무, 달리아, 재스민, 국화, 장미, 그리고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커리잎, 콩, 여주 덩굴과 함께 놓아두었다. 한편 무자히드 자신은 하루 24시간 가운데 28시간을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카르나타카 공학 연구소’에서 일하느라 바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내 몸과 마음을 간질이고 있다. 나는 대화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여기 정원 한가운데에 앉아서, 이른바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분에게 털어놓고 있다. 하지만...... 아니! 저게 뭐지? 무자히드의 스쿠터잖아. 그것도 지금 이 시간에!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겨우 5시밖에 안 됐는데.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자히드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나는 내 치아를 입술 뒤에 꽁꽁 가두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려 자기 헬멧을 내 머리 위에 올려놓고 내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자, 어서 서둘러! 당신한테 8분 줄게.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와야 해. 안 그러면.......”
잠깐만 시간을 내 달라. 여러분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겠다. 우리는 신혼부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열 달 하고도 13일 전에 결혼했다. 무자히드는 전에도 이런 저런 수작을 부린 적이 있다. 한번은 내 머리를 열심히 땋아서 틀어 올렸고, 그 머리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118개나 되는 핀을 머리에 꽂아 주었다. 그 모양이 아주 예뻐 보인다면서 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원숭이 같았다. 또 어느 날은 나한테 바지를 입히려고 했지만, 가장 헐렁한 그의 바지도 내가 입으면 솔기가 틀어져 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그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무자히드는 사람들한데 매우 살갑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어서, 나를 부추겨 담배를 피우게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면 몹시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는 대신 목구멍 안에 가두고 기침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숨쉬기가 어려운 것처럼 굴었다. 남편은 가엾게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재난은 우리가 결혼한 지 석 달도 되기 전에 다 지나갔고, 이제 우리는 매우 ‘정상적인’ 부부다.
“어디 갈 건지 물어봐도 돼?”
“물론 물어봐도 되지.” 무자히드가 대답했다. “벨라골라 공장에 이프티카르 아메드라는 분이 있어. 겨우 여드레 전에 그분을 처음 만났는데, 오늘 우리를 집에 초대했어. 그래서 벨라골라에 가야 해.”
우리가 탄 스쿠터가 어떤 집으로 다가가자, 밖에 서 있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위해 대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나는 스쿠터에서 내려 집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 올라갔다. 이 저택은 부지만으로도 우리 동네보다 넓은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온갖 쾌적한 설비들을 보았을 때 나는 여기가 정원이나 공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도 양쪽에는 구아바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었고, 나무의 굵은 가지에는 그네가 쇠줄로 매달려 있었다. 그 주위에는 덩굴식물인 재스민과 다양한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밖에 서 있는 남자가 이프티카르일 거라고 짐작했다. 바로 그때 안주인이 나와서 정중한 인사로 우리를 맞이하고, 자기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이프티카르 형님과 샤이스타 형수는 우리와 무척 잘 어울리게 되었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무자히드가 주로 샤이스타 형수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가 단둘이 있을 때 그걸 가지고 남편을 좀 놀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무자히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마음이 순수하고 딴 속셈도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녀에 대해 농담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샤이스타는 아주 순박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여자였고, 몇 분도 지나기 전에 아이 여섯 명을 모두 우리 앞에 불러서 소개해 주었다. 딸 셋, 아들 셋이었는데, 맏이인 아시파를 빼고는 모두 꼬리 없는 원숭이 같았다. 샤이스타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어쩌겠어, 지나트.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더라고. 그런데 내가 불임수술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샤이스타는 이프티카르 쪽으로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저기 형님이 수술을 방해했지 뭐야. 이제 곧 일곱 번째 아이를 낳고 나면 꼭 수술하고 말 거야.”
“그럴 필요 없어, 샤이스타.” 이프티카르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나야. 그런데 왜 당신이 걱정하지? 신의 은총 덕분에 나는 아이들을 모두 잘 돌볼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있잖아.”
“돈벌이만 충분하면 그만인가요? 큰딸 아시파는 나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어요. 그게 나한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 당신 알기나 해요?”
무자히드와 나는 그들 부부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 토론의 주제인 아시파는 남동생을 안은 채 창가에 서 있었다. 풋풋하고 아름다운 아시파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장래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듣고 있자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샤이스타는 나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이프티카르는 무언가를 방금 생각해 낸 것처럼 일어나서 말했다.
“샤이스타, 지나트하고 밖에 나와서 여기 앉아요. 내가 꽃을 좀 꺾어 올 테니......”
샤이스타와 나는 밖으로 나갔다. 아시파는 남동생에게 젖병을 물려 주고 다정하게 토닥이고 있었다. 샤이스타는 한쪽 그네에 앉았고 나는 다른 쪽 그네에 앉았다. 나는 그네를 무척 좋아해서, 더 높고 더 빠르게 그네를 구르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는 기쁨, 아래로 내려올 때 다시 땅을 차는 즐거움! 바로 그때, 이프티카르가 플라스틱 바구니를 허리에 차고 작은 재스민 꽃봉오리를 따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무자히드는 앞마당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잠시 뒤에 이프티카르가 와서 바구니를 아내에게 건네주더니 구아바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샤이스타는 그네에 앉은 채 꽃봉오리를 끈으로 엮어 화환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가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프티카르가 말했다.
“지나트, 여길 좀 봐요. 이 구아바나무는 내가 샤이스타를 위해 심은 거야. 여기 있는 나무와 꽃은 모두 샤이스타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이 포도나무도 아내를 위해 심었고 이 그네들도...... 아내는 이 그네들을 무척 좋아하지.”
“이프티카르 형부, 두 분을 함께 뵙게 돼서 정말 기뻐요. 형부는 언니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시는 것 같아요.”
“이것만이 아니야. 내가 황제라면 타지마할조차도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궁전을 짓고 그것을 샤이스타마할이라고.......”
그때쯤 무자히드는 아이들과 노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 옆으로 다가오다가 그 말을 듣고는 이프티카르의 말을 잘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프티카르 형님.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시나 보군요. 황제는 타지마할을 죽은 아내의 무덤으로 지었다고요. 알라여, 여기 형수님께 장수를 누리게 해 주소서. 형수님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형님은 샤이스타마할을 짓겠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아무도 타지마할을 무덤으로 생각지 않아. 사람들은 그걸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지.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걸세.”
“그래요. 죽은 사랑의 상징이죠.”
“하지만 사랑은 죽지 않아, 무자히드.”
“으흠......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건 너무 영화 같은 소리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머니의 사랑도 함께 죽습니다. 그런 종류의 사랑은 다른 누구한테서도 받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내가 죽는 건 다른 문제예요.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무자히드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희미한 미소가 샤이스타의 얼굴을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우리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죠. 마누라가 죽으면 그게 남편에게는 팔꿈치에 입은 상처 같은 거라고. 이거 알아, 지나트? 팔꿈치를 다치면 한순간은 통증이 심해.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지. 하지만 그 통증은 몇 초밖에 가지 않아. 그 몇 초만 지나면 아무것도 못 느껴. 상처도 없고, 피도 안 나고, 흉터도 안 남고, 고통도 없고.......”
우리는 곧 그 집을 나왔다.
새벽 5시에 자명종이 울렸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담요를 더욱 몸에 휘감고 좀 더 자고 싶었다. 그때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숄을 단단히 두르고 밖으로 나갔다. 찾아온 사람은 이프티카르였다.
“어머나, 이프티카르 형부, 어서 들어오세요. 이렇게 일찍 웬일이세요?”
“들어가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가 여기를 떠난 뒤 밤중에 1시쯤 샤이스타가 진통을 시작했어. 당장 아내를 공장 지프에 태우고 마이소르로 데려갔지. 아내는 지금 실파 조산원에 있어. 3시쯤 아기를 낳았는데 아들이야.” 이 말을 할 때 이프티카르의 얼굴이 약간 상기된 것 같았다.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갓난아기를 보고, 탄생을 둘러싼 온갖 잔치에 참석해 본 게 몇 년 만인가! 나는 이프티카르를 그 자리에 남겨 두고, 쿰바카르나처럼 잠꾸러기인 무자히드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가 덮고 있는 담요를 걷어 던지고는 그를 깨우려고 애썼다.
내가 차 한 잔을 가져갔을 때쯤, 이프티카르는 담배를 벌써 너덧 대나 피운 뒤였다. 나는 그에게 찻잔을 건네면서 물었다.
“언니는 어때요? 건강은 괜찮겠죠?”
“으흠, 그건 괜찮아.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 의사가 수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럴 필요는 없었지. 그렇지만 샤이스타는 몹시 허약해진 상태야. 그래서 나도 이젠 가 봐야겠어.” 이프티카르는 찻잔을 내려놓고, 게으른 무자히드가 방에서 나오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조산원에 도착해 보니, 이프티카르의 온 가족이 거기에 모여 있었다. 아이들이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아시파는 동생들을 모두 밖에다 모아 놓았다. 아시파는 우리를 보고 방긋 웃었다.
우리는 저녁까지 머물러 있다가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샤이스타에게 말했다.
“아시파가 동생들을 돌보면서, 언니가 먹을 음식까지 조산원에 보내기는 어려울지 몰라요. 언니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살루와 임무, 나벤과 카말은 내가 대신 돌보면 안 될까요?”
“괜찮아, 지나트. 아시파는 내 딸이 아니라 엄마 같아. 지금만이 아니라 학교를 그만둔 뒤부터 줄곧 그랬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동생들을 모두 돌봤지. 나는 여기 오래 있지 않을 거야. 낼모레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샤이스타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두세 번 그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무자히드와 내가 어느 일요일 마이소르로 가는 길에 본 광경이었다.
그날 우리는 식료품을 집에 들여놓아야 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기차가 벨라골라에 정차했는데, 놀랍게도 샤이스타가 긴소매 스웨터를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른 채 이프티카르와 함께 플랫폼에 서 있었다. 무자히드는 열차 문간에 서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들은 우리가 있는 객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마이소르엔 어쩐 일로 가시는 거예요?”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샤이스타는 예전의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해산한 지 겨우 보름밖에 안 된 산모가, 게다가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안락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무슨 볼일이 있기에 마이소르까지 직접 가야 할까? 샤이스타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보름 이상 산후조리를 한 적이 없어. 그냥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만 하면 돼. 내가 함께 있지 않으면 남편이 몹시 따분해지거든. 난 건강해. 그런데 왜 줄곧 드러누워 있어야 하지? 큰애가 태어났을 때도 나는 보름 동안만 자리에 누워 있었어.”
엄마는 이런 견해를 털어놓곤 했다. 방금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 일어나 앉으면, 엄마는 나쁜 물이 산모의 허리로 흘러내릴 거라고 말했고, 산모들이 일어서면 기절해서 쓰러질 거라고 겁을 주면서 일어나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당부했다. “해산한 뒤 40일 동안은 40개의 무덤이 아기와 산모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단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무덤이 하나씩 입을 닫지. 새로운 생명이 사람 몸에서 태어나는데, 그게 어디 작은 일이냐? 그건 어머니 자신이 새 생명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야.”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의 말을 믿는다면, 샤이스타에게는 아직도 25개의 무덤이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녀는 벌써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모든 생각이 순식간에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집에 도착해서 보니, 정원이 왠지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아이들이 있는 기미도 없었다. 나는 거실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샤이스타의 방으로 통하는 문은 닫혀 있었다. 무자히드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집어 들었다. 달리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았다. 샤이스타는 무슨 낮잠을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자고 있는지 이상해서 나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빗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어 이프티카르가 나타났다. 나는 그가 공장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당황해서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프티카르는 무자히드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게 다였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창문과 출입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실내에는 청록색 사리 차림의 여자가 침대 조명등의 희미한 불빛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샤이스타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열여덟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 고개를 숙이고 두 손과 다리에 새로 문신을 한 여자, 기다란 베일로 얼굴과 머리를 완전히 가린 여자, 초록색과 빨간색 팔찌로 두 팔을 장식한 여자는 절대로 샤이스타가 아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전에 나는 방에서 나와 이프티카르에게 물었다.
“언니는, 샤이스타는 어디 있죠?”
“샤이스타는 더 이상 여기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우리한테서 아주 멀리 떠나 버렸어.”
“그럼 저 여자는 누구죠?” 나는 가차 없이 물었다.
“샤이스타가 죽은 지 40일째 되는 날 의식을 치르고, 바로 그 이튿날 저 여자랑 결혼했어. 저 여자는 가난한 집 출신이야. 어쨌든 나는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 그게 이유야.”
“아아, 물론...... 저 여자는...... 저 여자는 아이들을 잘 돌봐 주고 있어요. 그건 분명해요. 형부가 무엇을 하든, 그건 다 좋아요. 하지만 형부가 언니에게 했던 사랑의 맹세를 저 여자한테도 되풀이하지는 마세요. 형부가 샤이스타마할을 짓지 않는다 해도, 샤이스타의 무덤 주위에 둘러칠 석판을 준비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형부의 영원하고 강렬한 사랑이 언니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래서 샤이스타가 깨어나 여기로 돌아오면, 형부는 난처해질 거예요.”
막판에는 어떤 말까지 하게 될지 두려워서, 나는 밖으로 달려 나왔다. 아시파는 학교에서 남동생과 여동생들을 모두 데려와 정원에 앉혀 놓았다. 아마 아버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시파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트 아줌마!” 아이들이 모두 달려와서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아시파도 내 옆에 와서 섰다. 어린아이들은 아시파 주위에 모여 있었고, 두 달밖에 안 된 갓난아기는 아시파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시파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어딘가 멀리서 샤이스타가 속삭이고 있었다. “아시파는 내 딸이 아니라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