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출판계에 기적 같은 바람을 몰고 왔다. 모처럼 서점가에 활기가 돌았고, 책을 읽는 행위가 힙(Hip)하고 멋지다는 ‘텍스트힙’ 현상이 2026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통계로 드러난 출판업계의 현실은 여전히 냉랭하다. 2025년 대한민국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한 비율이 25.7%로 가장 높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개그맨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핑계고》는 한 회당 60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지만, 조회 수는 100만 회를 우습게 넘긴다. 왜 책 읽을 시간은 없지만, 유튜브는 자연스럽게 찾게 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책은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영상은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독서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우리는 책을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무언가를 얻고 학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이 부담감이 독서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든다. 매년 독서를 결심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세’든 ‘심심풀이’든 좋으니 우리도 책여사처럼 일단 책을 펼쳐보자. 독서가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지친 내면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다져줄 수만 개의 문장, 수만 개의 새로운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부터 ‘읽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당신에게, 이 책은 가장 단단하고 다정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저자 책여사(이지혜)
15만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북플루언서이자 에세이스트. 인스타그램 계정 ‘책여사’를 통해 독서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감성을 건드리는 진심 어린 책 소개로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편집 디자이너 출신 특유의 심미안을 발휘해, 책이 지닌 물성과 분위기를 감각적인 영상과 사진에 담아낸다.
처음부터 책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과 담을 쌓고 밖으로 나돌기 좋아하던 평범한 20대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모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병실에서 운명처럼 책을 집어 들었다. 그날 이후 삶의 모든 궤적이 달라졌다. 타인과의 비교로 무너진 자존감, 내면을 갉아먹던 불안, 상처만 주고받던 관계까지,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책에서 만난 문장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10년을 보냈다. 이제는 ‘독서 커뮤니케이터’라는 이름으로 책과 사람을 잇고 있다. 부산에서 읽고 쓰는 삶을 지속하고 있으며, 특유의 다정하면서도 위트 있는 언어로 독자들과 긴밀하게 교감 중이다.
■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 1년에 0권 읽던 내가 15만 명의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1장 어느 날 책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교통사고가 가르쳐준 멈춤의 기술
책이라는 낯선 세계로 뛰어들다
가면 쓴 ‘착한 아이’가 책을 만났을 때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준 고전의 문장
최악의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쌓이는 나만의 자신감
책여사의 독서 꿀팁) 내 마음을 읽어주는 책 처방전
2장 책이라는 낯선 세계로 뛰어든 당신에게
베스트셀러보다 내 감각을 믿기
책여사의 독서 꿀팁) 독서 입문자를 위한 추천 도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아
죽은 시간을 살리는 틈새 독서의 기술
밤 독서를 위한 나만의 서재 만들기
의지박약을 위한 작심삼일 독서법
얇은 책, 만만한 책, 예쁜 책으로 책태기 극복하기
책여사의 독서 꿀팁) 하루 10분 독서 루틴 워크북
3장 독서로 더 충만해지는 일상
호캉스 대신 떠나는 북캉스
독서는 최고의 수면제
책여사의 독서 꿀팁) ‘꿀잠’을 위한 침실 독서 루틴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 선물하기
숙성 독서의 기쁨과 슬픔
독서 대식가에서 미식가로
이왕이면 같이 읽는 게 좋잖아요?
독서 모임에서 ‘쭈글이’가 되지 않는 방법
책여사의 독서 꿀팁) 실패 없는 독서 모임 200% 활용 팁
4장 꾸준히 읽는 사람은 어디로든 나아간다
기록하면 연결된다
알고리즘도 감동한 진심 가득 책 리뷰
정체기는 더 큰 도약의 시작
성공한 덕후, 작가를 인터뷰하다
뻔한 인생을 뒤집는 책의 힘
책여사의 독서 꿀팁) ‘좋아요’를 부르는 SNS 게시물의 비밀
5장 읽기의 세계에서 쓰기의 세계로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엉망진창 초고가 답이다
레몬트리에게 배운 덜어냄의 미학
다시, 첫 페이지를 넘기며
책여사의 독서 꿀팁) 책여사의 인생 책
에필로그 | 책을 읽고 나는 내가 더 좋아졌다
이 책에 소개된 도서 목록
‘허세’든 ‘심심풀이’든 좋으니 우리도 책여사처럼 일단 책을 펼쳐자. 독서가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지친 내면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다져줄 수만 개의 문장, 수만 개의 새로운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같이 읽어요, 오늘도
어느 날 책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최악의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지혜, 너는 네 단점이 뭐라고 생각해?”
독일에서 만난 포르투갈 친구가 맥주를 마시다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음…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해. 쉽게 슬프고 우울해져서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사실 이 말은 학창 시절 첫사랑에게 들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이 말이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내 단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친구는 내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야, 감정 기복 심한 게 네 단점이라면, 포르투갈 인구의 98%는 다 너랑 똑같은 단점을 가지고 있을걸? 그런데 그걸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처를 알 수 없는 ‘98%’라는 숫자에 헛웃음이 터졌지만, 그 근거 없는 숫자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최악의 시절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최악의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라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엄마에게 비수를 꽂았다. 헌신적이었던 남자 친구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고했고, 더 불투명한 내 미래를 원망했다. 그들에게 꽂은 비수는 사실 나 자신을 향한 공격이기도 했다. 내 불안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내가 자주 쓰던 방법이었다. 그런 내가 나도 싫었지만, 주변 환경을 탓하며 스스로를 점점 더 그런 인간으로 몰아갔다.
그런데 그런 나를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시기, 동네 시장 안에 있는 회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하루 7시간을 꼬박 서서 접시를 날려야 했지만 스펙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였다. 세상의 소음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안을 차단하고자 음량을 최대치로 높인 이어폰을 낀 채 45분을 꼬박 걸어서 출근하곤 했다. 손님들의 고성방가와 무례한 언사, 비릿한 생선 냄새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내 인생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평생 이 비린내를 못 벗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늘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마감 시간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한 테이블에 소박해 보이는 노부부가 매운탕에 소주를 마시고 계셨다. ‘제발 빨리 좀 가라.’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바닥을 쓸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지나가던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잠깐 이리 와봐.” 또 술주정인가 싶어 경계심을 품고 다가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탁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더니,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던졌다. “이곳에 오래 있을 사람 같지는 않네.”
할아버지는 멍해진 내 손에 “알바 끝나고 맛있는 거 사 먹어”라며,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는 사라지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회 접시를 나르는 내 모습에서 무엇을 봤길래 그런 말을 한 걸까. 이해도 할 수 없고 크게 의미가 있는 말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어쩌면 나조차 싫어했던 나의 초라한 모습을 밉지 않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어느 쉬는 날에 특별히 찾는 책 없이 습관처럼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다. 널찍한 여백이 여유롭게 느껴졌고, 사진도 많아 빨리 읽을 수 있겠다는 얄팍한 기대 하나로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삐딱한 자세로 책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갈수록,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문장 앞에서 숨을 멈췄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쌩뚱맞게도 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분이 보고 있었던 것은 회 센터에서 접시를 나르던 나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분도 내게서 별의 가능성을 보신 걸까. 그때의 내가 찍고 있는 초라한 점들, 엄마를 울리고 사랑을 놓치고 회 센터에서 흘린 땀방울 같은 점들이 실패가 아니라 ‘별이 되는 과정’임을 아셨던 걸까.
그때 이후로 나의 초라한 모습, 최악의 모습, 내 단점을 마주할 때도 그것들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자 별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단점들이 마냥 밉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그 삐뚤빼뚤한 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라는 별자리도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내가 너무 못나 보이고 최악으로 여겨질 때도 이 문장이 여전히 말해준다. “괜찮아. 지금 찍는 그 점도 나중에는 별처럼 빛날 거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최악인 것만 같고, 지난날의 실수와 부끄러움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해도 감히 말하건대, 그런 시절 없이는 빛나는 시기도 없다. 우리가 매일 찍는 점 하나하나는 분명한 의미를 품고 있다. 어떤 날은 너무 작고 흔들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점들이 이어져 결국 당신만의 별자리를 완성해갈 것이다. 그러니, 책을 펼쳐 들고 한 걸음 뒤에서 오늘의 당신을 바라보자. 불완전하고 서툴러 보이더라도, 최악이라 여긴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이미 빛나는 존재다.
책을 읽으면서 쌓이는 나만의 자신감
또 실패다. 150cm 초반의 아담한 키, 한 끼만 잘 먹어도 60kg을 가뿐히 넘기는 둥글고 묵직한 몸. 오롯이 지방으로만 채워진 정직한 무게감. 무릎이 시큰거리지 않았다면 다이어트 따위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관절이 혈기 왕성한 식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업을 선언하는 바람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뭐 그렇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빵집 문을 열면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나를 반긴다. 빵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돌아와 왼손엔 빵, 오른손엔 리모컨을 쥐고 TV 앞에 앉는다. 시큰거리는 무릎 따위는 잊고 빵과 TV가 만들어주는 천국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면, 텅 빈 빵 봉투만큼이나 텅 빈 마음속에서 메아리가 울린다. ‘야, 너 백수잖아. 언제까지 이러고 살래? 에잇, 빵 맛 떨어져….’
구체적인 노력 없는 걱정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라났다. 이 무렵 내가 느낀 가장 큰 공포는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라는 무력감이었다. 먹는 것 하나 참지 못하는 의지박약, 서류 전형에서 족족 떨어지는 무능력….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그 숨 막히는 자기혐오 속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였다.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시간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심지어 별다른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운동장을 뛰는 건 숨이 찼고, 자격증 공부는 머리가 아팠지만, 책을 읽는 건 가만히 앉아서 눈동자만 굴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 이 얇은 책 한 권도 끝까지 못 읽으면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다.” 그건 희망이라기보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오기였다.
그 시절 읽은 책들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지식이나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읽었던 수많은 책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 휘발되었다. 어떤 책은 제목조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느꼈던 그 짜릿한 ‘감각’만큼은 지금도 몸이 기억한다. 아주 느린 속도였지만,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나 꽤 끈기 있는 사람이네? 시작한 걸 끝냈잖아.”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고 믿었던 내게 ‘완독’이라는 작은 성취는 마법 같은 위로였다. 그 묘한 해방감에 중독되어 나는 다음 책, 또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책을 끝까지 ‘완독’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성공이었다.
자신감이 붙자 욕심이 생겼다. ‘셀프 챌린지: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탁상 달력에 형광펜으로 일주일을 가로지르는 긴 네모를 그리고, 1권, 2권, 3권… 목표 숫자를 적어 넣었다. 완독하면 동그라미를 치고 책 제목을 적어 넣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챌린지 첫 주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화요일엔 친구와의 약속, 목요일엔 컨디션 난조, 주말엔 남자 친구와의 다툼…. 핑계는 차고 넘쳤다. 그때마다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다. ‘야, 뭘 그렇게 애쓰냐? 어차피 너 또 포기할 거잖아. 다이어트처럼.’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맞아, 지금까지는 그랬어. 인정!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거야. 포기? 그건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누가 그러더라. 근데 난 김장도 안 해! 그러니까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
그렇게 악착같이 읽어가다 보니 한 달에 네 권 정도 읽기가 가능해졌다. 그때부터 독후감 쓰기에 도전했고, 쓰기가 익숙해진 후에는 독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읽고 기록하고 나누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년에 150권가량의 책을 읽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에서 15만 명의 책 친구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나보다 글을 잘 쓰고, 사진도 멋지게 찍고, 영상까지 완벽하게 만드는 ‘능력자’들을 볼 때면 내 성취가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라톤에서 이겨야 할 상대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과거의 나”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마라톤 선수는 아니지만,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에서만큼은 이 말이 유효하다고 믿는다. 어제의 나보다 0.1cm라도 성장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은 고리 하나가 없으면 갑옷은 완성되지 않는다. 내가 매일 촘촘하게 엮은 이 독서의 사슬들이 언젠가 닥쳐올 시련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다.
꽤 많은 책을 읽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늘 책을 읽은 나는, 어제의 나보다 분명 더 단단해졌다고. 그리고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독서로 더 충만해지는 일상
독서 대식가에서 미식가로
독서를 처음 시작하고 한동안은 ‘허세 독서’에 빠져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제목만 들어도 지적 허영심이 차오르는 이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카페에 갔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테이블 위에 무심한 듯 툭 올려둔 뒤, 표지가 잘 보이게 사진을 먼저 찍는다.
SNS에 올릴 사진은 건졌으니 이제 읽어볼까 싶어 책을 펼쳤는데, 웬걸. 제대로 읽히는 책이 없었다. 『마담 보바리』는 줄거리만 들었을 땐 자극적이고 술술 넘어가는 치정극일 줄 알았다. 꽤 두껍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도무지 자극점을 찾을 수 없는 지루한 묘사들뿐이었다.
사르트르의 책은 더 심각했다. 분명 한글로 쓰여 있는데, 내 눈에는 외계어처럼 보였다.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3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나중에야 그 책이 고전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책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결국 그 책들은 허세가 낳은 비싼 라면 냄비 받침대가 되었다. ‘이러다가 냄비 받침으로 책장이 가득해지는 거 아니야…?’
인터넷 서점은 더 큰 실패의 현장이였다. “N만 원 이상 구매 시 무료 배송, 굿즈를 바로 받을 수 있는 포인트 선지급!” 광고 문구에 홀려 배송비를 아끼겠다며 급하게 고른 책으로 최소 금액을 채우곤 했다.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의 설레도 딱 거기까지. 굿즈를 사니 책이 딸려 왔다는 농담처럼, 억지로 끼워 넣은 책들은 결국 읽히지 못하고 책 납골당으로 직행했다. 독서 10년 차인 지금은 안 그럴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나도 인간인지라 아직도 종종 이 ‘지름신’의 덫에 걸려 허우적댄다. 허세 독서와 물욕에 과연 끝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기 전에는 분명히 나를 흥분시켰던 책들인데, 막상 내 것이 되고 나면 그 뜨거웠던 설렘이 식어버리기 일쑤다. 잡은 물고기에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더니, 책과 밀당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렇게 잡힌 물고기 신세가 되어버린 안쓰러운 책들은 책장에서 기약 없는 숙성의 시간을 거친다.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사는지, 한 달 도서 구매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데, 사실 나조차 정확히는 모른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온라인 서점의 회원 등급이 언젠가부터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오프라인 서점에 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꼭 한 두 권은 사고야 만다는 점 정도다. 남편은 종종 내가 답하지 못할 질문을 한다. “안 읽은 책 많다고 하지 않았나?”, “올해는 진짜 그만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짐짓 당당한 척 대꾸한다. “아니, 내가 명품을 맨날 사들이는 것도 아니고, 빚져서 사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도 못 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찔린다. 과연 죽기 전에 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새 책을 살 때면 남편에게 이벤트로 받은 책이라며 능청맞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또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남편보다 빠르게 집에 도착해 상자를 뜯고, 읽지 않은 책들 사이에 새 책을 숨겨두기도 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를 둔 남편들이여(그 반대의 경우도), 수상한 택배 상자는 그냥 좀 눈감아주자. 그 눈감음은 사랑으로 보답받을 것이니….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 더 이상 안 읽은 책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좀 뻔뻔해지자. 집에서는 눈치를 보며 상자를 뜯는 신세지만, 우리야말로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란 걸 잊지 말자. 우리가 없으면 안 그래도 불황인 대한민국 출판계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명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결제 버튼을 누르자. 책이 꼭 읽어야만 맛인가? 구매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배가 부르다!
글을 쓰는 것이 종종 요리에 비유되듯, 독서 또한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원재료가 신선할 때 만들어야 좋은 요리가 있는가 하면, 숙성회처럼 시간을 들여야 깊은 맛을 내는 것도 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 어느 날 갑자기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이 온다. 그때 비로소 그 책은 나의 간택을 받는다.
꾸준히 읽는 사람은 어디로든 나아간다
뻔한 인생을 뒤집는 책의 힘
10년 전, 나는 내 인생의 시나리오가 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내 인생의 천장을 아주 낮게 지어놓고, 그 밑에 웅크린 채 이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 낮은 천장을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두 가지 모습이었다. 아빠는 칼 세이건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며, 지구본을 돌려주던 분이었다. “지혜야, 이 넓은 우주에 수많은 별 중에 지구가 있고, 그중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 부산이라는 아주 작은 곳에 있단다. 아빠는 우리 딸이 이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때 아빠의 눈은 소년처럼 빛났고 내 손등을 감싸쥐었던 큰 손에서는 꿈꾸는 사람의 뜨거운 심장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면 아빠는 한숨처럼 내뱉곤 했다. “지혜야,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단다.”
우주를 꿈꾸라던 아빠와 평범함조차 버겁다던 아빠. 나는 점점 후자의 말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튀지 않고, 도태되지 않고, 그저 ‘평범함’이라는 안전선 안에서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것. 그것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미래라 생각했다. 하지만 낮은 천장을 만들어두고 살아가면서도, 늘 무언가 더 큰 것, 더 높은 것으로 향하는 마음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서성이는 과거의 아빠와 꼭 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최근 제임스 클리어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다시 읽다가 수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우울과 무기력이 파도처럼 내 방을 덮치던 그 시절, 내 다이어리에 적힌 하루 목표는 고작 이런 것들이었다. ‘물 한 잔 마시기’, ‘양치질하기’, ‘샤워하기’. 남들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당시 나에게는 비장한 결심이 필요한 과업이었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겨우 물 한 잔을 마시는 일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 작은 변화는 수년간 지속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완전히 같은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스트레칭과 양치로 몸을 깨우고, 남편의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챙긴다. 곧바로 책상에 앉아 온라인 새벽 독서 모임에 참여해 책을 읽고 필사를 한다. 향기로운 모닝 커피를 마시며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보다 더 아득한 심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성장의 증거는 눈부신 성과나 통장 잔고가 아니다(물론 통장 사정도 많이 나아졌다. 감사합니다, 제임스 클리어!).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채워가는 하루의 ‘밀도’가 더 큰 증거다.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루를 주도하며 꽉 찬 충만함을 느낀다. 나는 나를 이렇게 키운 건 8할이 ‘책’이었다고 확신한다. 책은 내 인생의 낮은 천장을 보란 듯이 깨부수어주었다. 책을 읽으며 달라진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멘토를 얻다
책 속에서 수많은 멘토를 만났다. 예전의 나는 늘 타인을 부러워했다. TV 속 연예인, SNS 속 모르는 사람들?. 시선은 늘 바깥을 향해 있었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멘토는 인스타그램이 아니라 내 책장 속에 산다. 때로는 니체와 마주 앉아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때로는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자기만의 방을 짓는 법을 고민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위대한 지성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현실의 비교나 질투가 시시해졌다. 자존감의 뿌리가 ‘타인의 인정’이라는 얕은 흙에서 ‘내면의 단단함’이라는 깊은 암반으로 옮겨 간 것이다.
멘토들의 지혜가 내 안에 쌓이자, 잊고 살았던 ‘감사’가 찾아왔다. 책은 나로 하여금 나를 이 세계로 오게 해준 엄마와 아빠를 새롭게 해석하게 해주었다. 아빠가 남긴 상처는 여전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 시절의 상실이 있었기에 나는 남들보다 일찍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던 우울한 시절을 지나고 보니,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나와 동생을 키우고 지켜낸 엄마의 책임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책 속의 멘토들이 가르쳐준 것은 지식만이 아니었다. 내 삶의 뿌리인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품을 만들어주었다(물론 아직 부족한 품이기에 앞으로도 책을 계속 읽어야 할 테다).
새로운 언어를 가지다
과거의 나는 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어 자주 화가 났다. 슬픈 건지, 억울한 건지, 허무한 건지?.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해 답답해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수만 가지 감정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 내 언어의 거름망은 촘촘하지 못해서, 책 속의 수많은 지혜와 아름다운 문장이 내 안에 다 고이지 못하고 숭숭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다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라지 않는가. 스쳐 지나간 문장들도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영혼의 체를 조금씩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으리라. 이제 나는 내 슬픔을 정의할 수 있고, 내 기쁨을 묘사할 수 있다. 내 세상을 내 언어로 정의할 수 있다는 그 ‘통제감’이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꿈을 키우다
내 나이가 아빠가 세상을 떠난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라던 아빠의 말이 얼마나 무거운 진실이었는지 체감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말에 갇히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빠가 지구본을 돌리며 보여주었던 그 넓은 세상, ‘코스모스’를 꿈꾸기로 했다.
책은 상상력의 지평을 우주 끝까지 넓혀놓았다. 10년 전 내 꿈이 ‘남들만큼 사는 것’이었다면, 지금 내 꿈은 ‘대체 불가능한 나’로 사는 것이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고, 언젠가 부커상이나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한국 대표 북 큐레이터로 초청받는 상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풍요로 연결되고, 그 부를 나를 위해서만 쓰는 게 아니라 더 큰 사랑이 되어 세상에 흐르게 하는 꿈을 꾼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하다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 속에서 수많은 인생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한 나는 안다. 꿈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책이 내게 심어준 비범한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은 결국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니체는 말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 말은 체념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고통과 시련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연료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라는 가장 적극적인 긍정이다. 지난 10년, 책은 나에게 이 태도를 가르쳐주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나를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오만과는 다르다. 불과 몇 년 전, 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내가 매일의 작은 습관을 쌓아 단단한 일상을 꾸려냈듯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과 내 안의 나를 믿게 된 것이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날에도 나는 실망하지 않으려 애쓴다. 오늘 읽은 한 페이지, 오늘 쓴 한 줄이 나를 지태하고 있음을 아니까. 내 인생을 가로막던 유리 천장은 깨졌다.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것은 없다. 책이 키워준 이 크고 단단한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더 큰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매일 조금씩,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이 끝없는 성장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