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교도소에 수감된 전 남편을 면회하러 가는 아내의 시점에서 시작해,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 가족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남편의 이혼 선언과 살인 사건,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전개를 따라가면서도 사건 자체보다 가족 안에 쌓여온 갈등과 비밀,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관계의 균열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이야기는 상징적인 존재인 ‘코끼리’를 통해 삶의 무거운 책임과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묻는다. 남편이 진실을 외면한 채 도피를 선택했다면, 아내는 상처와 진실을 끝내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가는 길을 택하고, 이루지 못한 꿈과 사라지지 않는 아픔마저 품은 채 다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완전히 회복된 삶은 없을지라도, 자신의 상처와 균열을 받아들이고 끝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회복의 증거임을 이 책을 통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화바이룽
저자 화바이룽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이다. 국립타이완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영화 및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대만의 3대 문학상인 연합문학 소설 신인상, 연합보 문학상, 린룽싼 문학상 등을 모두 수상한 바 있다. 영화 ‘림북소무’의 원작 시나리오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소설에서는 치밀한 심리 묘사와 영상미가 돋보이는 문체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작은 이익을 탐내는 안나’, ‘납치된 그림자’, ‘거북섬의 소년’ 등이 있다.
■ 역자 김소희
역자 김소희는 ‘차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14년 차 번역가이다. 시나리오 번역으로 입문해 다수의 한중 합작 드라마와 영화 대본을 번역하고 중국어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썼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으로 출판 번역과 시나리오 번역을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어 번역가로 산다는 것’, ‘마음의 문장들’, ‘네이티브는 쉬운 중국어로 말한다’, ‘중국어 명대사 필사집’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상견니 영화 각본’, 전면 개정판 소설 ‘상견니’,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유심인’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화산
2분의 1
다코야키
미궁
진술
해변
다람쥐
포기
대만의 권위 있는 3대 문학상인 〈연합문학 소설 신인상〉, 〈연합보 문학상〉, 〈린룽싼 문학상〉을 석권하며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화바이룽의 장편 미스터리.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평범한 일상의 이면에 도사린 낯선 균열을 정교하게 포착해냈다.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산
아이들의 여름 방학 숙제를 위해 온 가족이 함께 황쭈이 화산 분화구에 왔다. 남편 밍런은 차에 남아 있고, 나 혼자 샤오위와 막내를 데리고 가서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자연 관찰 활동을 하기로 했다. 분지 북쪽에 있는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 북부에 사는 주민들에게 연중 내내 유황 냄새를 풍기던 휴화산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활화산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나의 생명과 재산 가까이에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집 나오기 전에 약속했잖아, 나는 운전기사만 하기로. 차에서 일해야 해.”
밍런은 프로그래머였다. 친구와 함께 웹디자인 회사를 차린 뒤부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는 게 그의 일상이라는 걸 나 역시 모를 리 없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애써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고,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은 존재.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잖니....’
내 안에서 누군가가 몇 번이고 나를 간절하게 흔들어 깨웠다. 정말 이대로 계속 외면해도 되는 걸까.
“혹시 다른 여자 생긴 거야?”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왔던 생각들이 끝내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온 순간, 인내의 용수철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에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소파로 직진해 자리를 잡았다. 한시라도 빨리 진실을 들춰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밍런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양 어슬렁거리며 곧장 서재로 향했다.
“어디 가?”
짜증 섞인 나의 물음에 밍런은 그제야 설명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생각났는지 말없이 돌아와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다른 여자 생긴 거지?”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밍런이 내세운 건, 이른바 심리적 현실이라는 문제였다. 요컨대 결혼한 이래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코끼리가 존재했고, 우리는 코끼리의 배 밑이자 네 발 사이에서 코끼리를 집 삼아 살며 아이 둘을 낳았다고 했다. 이제 큰아들이 일곱 살, 작은딸이 여섯 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빠인 척, 남편인 척 살아갈 수 없다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나....
혼자만의 삶? 이미 여태껏 그래오지 않았나? 나와 샤오위, 막내 모두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는데.... 밍런의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여전히 내 안의 악마는 비꼬기 능력 발휘에 한창이었다. 간간이 튀어나와 밍런에게 욕을 퍼부으려고도 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악마를 내리눌렀다. 앉은 자세마저 바꾸지 않은 채로.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나를... 더는 외면할 수가 없게 됐다는 거야.”
“그 외면이라는 게 뭔데?”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죽었다고? 그게 어떻다는 건데?”
사태가 심각해졌지만, 모르는 척하고 계속 캐묻기로 했다. 그런 내가 짜증 났는지 밍런은 초조한 듯 다리를 떨었다.
“그러니까 감정이 사라졌다고.”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밍런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내게 남은 건 웅웅 하고 고막이 먹먹해지는 느낌뿐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들도 전부 방음막 너머에서 들려오듯 희미하기만 했다.
직감이 내게 말했다. 분명 다른 여자가 있는 거라고, 밍런이 외출한 틈을 타 서재를 뒤졌다. 밍런의 옷장을 열고 옷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옷장에 옷이 별로 없었다. 넣어둘 곳 없는 내 옷들을 가져다 잠시 맡겨놓고 싶을 정도였다. 밍런 옷장이 원래 이랬던가? 어쩐지 매번 빨래할 때마다 밍런이 벗어놓은 빨랫감은 고작 두세 벌뿐이어서 이상했다. 혹시 그 여자 집으로 옷을 일부 옮겨둔 건 아닐까? 의심의 안테나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한 번 의심이 시작되니 그때부터는 끔찍한 도미노 효과처럼 알아서 척척 뻗어나갔다.
이틀을 고민한 끝에, 내키지 않았던 일을 하고 말았다. 흥신소에서 일하다 은퇴한 팡 언니를 찾아간 것이다.
“난 이제 늙어서 직접 뛸 순 없고, 대신 사람을 하나 소개해 줄게. 할인해달라고 말해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혹시 위험한 부분은 없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험이라면 사생활 침해죄 정도겠지. 하지만 흥신소도 범죄를 저지르는 건 싫어하거든. 걱정하지 마, 합법적인 선에서만 움직이라고 당부할게.”
2분의 1
개학 후,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하자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나 혼자였다. 그럴수록 나는 집안일밖에 할 줄 모르는, 기여하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기생충이라는 생각만 자꾸 하게 되었다. 이혼은 아직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결혼 생활도, 직장도 잃은 중년 부인이었다. 가장 먼저 들이닥친 현실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밍런이 부양비를 주겠다고는 했지만, 만에 하나 밍런이나 그 정체 모를 여자가 어느 날 괜히 수틀려서 트집을 잡거나 돈을 주지 않으면 나는 그대 로 끝장이다.
새벽 두 시경이 되어서야 밍런은 집에 돌아왔다. 한참 자고 있던 내게 전화해서는 열쇠를 깜빡했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을 연 순간, 밍런의 이마와 뺨, 팔 곳곳에 상처가 보였다. 옷도 갈아입은 듯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자다 깨서 불쾌했던 기분마저 싹 달아날 정도였다.
“당신....”
밍런은 말없이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에서 굴렀어.”
밍런이 말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변명이었다. 거짓말 리스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유랄까.
이혼 합의가 성사되고 다음 날 오후, 몇 통의 전화 끝에 팡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전화기 너머로 떠들썩한 노래방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팡 언니는 지금 타이중에 있다고 했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데다가 아들 가게 문제를 처리하느라 타이중에 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외도 증거 수집을 그만두겠다는 나의 말에 기뻐했다. 이따가 친구에게 연락해서 진행 상황을 확인한 뒤 정산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밤 열한 시 무렵, 팡 언니가 같이 산책하러 가자며 전화로 불러냈다. 이번에는 개가 없었다.
“선물이야.”
언니가 묵직한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안에는 크라프트지 봉투와 파란색으로 포장된 선물이 있었다.
“고마워요, 언니. 그런데 이 봉투는....”
“내 친구가 네 사건을 외부에서 고용한 사람한테 맡겼는데, 그 사람이 회신으로 보내온 거야. 네 남편이랑 어떤 여자가 만나는 걸 찍었다나 봐....”
나는 봉투를 꺼내 뜯어보았다. 마침내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다... 사진은 총 네 장이었다. 전부 어느 골목의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안커와 밍런의 모습이었다.
“정말 그 애가 맞았네!”
“아는 사람이야?”
“남편 동업자예요.”
“그런데 커피 마시는 거 말고 딱히 다른 건 없어 보였어.”
“이게 다예요?”
“응, 시시하지? 돈은 됐고 사진은 그냥 줄게. 미안! 내 친구가 아마추어를 고용했나 봐.”
우리는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팡 언니 집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어. 친구 말이 그 외부 고용인이 사라졌대.”
“사라져요?”
“일하다 말고 도망갔나 봐.”
“제 사건이 너무 시시했나 보네요.”
미궁
사기 전화를 받을 확률이 경찰의 전화를 받을 확률보다 훨씬 높을 거라는 게 내 직감이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가는 길 내내 머릿속이 텅 비고 의식은 마비된 채, 이 모든 게 그저 악몽이기를 바랐다.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한 여자는 두 번째로 건 전화에서 먼저 ‘끊지 말라’는 말로 용건을 시작했다. 이어서 나의 남편 정루이원이 체포되었으며, 나는 사건 관계자이기 때문에 경찰서로 나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빠르게 전했다.
정루이원? 몇 초간, 나는 경찰이 뭔가 잘못 짚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모르는데. 그러다 안커가 알려주었던 최근 소식이 떠올랐다. 정루이원은 바로 정밍런이었다.
사건 관계인이라고?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으로 낯선 미궁 속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그곳은 무시무시하고 복잡한 법률 용어와 조문들이 높다랗게 벽을 쌓아 올린 곳이다. 자칫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미궁 속에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
경찰서 조사실에 앉는 순간,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이건 누군가의 농담이나 짓궂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쩌면 또 다른 악몽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남편분께서 살인을 인정하셨습니다.”
중아이원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환상이었을까. 내가 앉은 의자 다리 네 개가 흐물흐물해지면서 내 체중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순간 넘어지지 않도록 다급히 테이블을 손으로 눌렀다.
“제 남편... 전남편은 어디 있나요?”
“검찰에서 추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끝났다. 이게 진짜라니. 농담이 아니었다니.
“그 사람... 변호사는 있나요?”
“변호사는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저기... 누굴 죽인 건가요?”
“피해자 성함은 뤄지입니다....”
“뤄지요?”
뤄지? 이상한 이름이네. 게다가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뤄지의 시신이 묻혀 있던 산비탈은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토양이 액상화된 상태였다. 그때, 그곳을 지나던 대학생 두 명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매장되어 있던 시신이 지표면으로 드러났다. 법의관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볼 때, 한 달 전쯤에 묻혔을 거라고 판단했다. 사망자의 차량에서는 유효 기간이 지난 운전면허증이 발견되었는데, 경찰은 이를 단서로 그의 주소와 가족들을 찾아냈다. 사망자의 동생 뤄안은 자신의 형은 직업이 불안정해 실업 상태일 때가 잦았으며, 빚이 많았다고 진술했다. 최근에 연락했을 때는 흥신소에서 외주로 일을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흥신소? 설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이라고? 상처투성이였던 밍런이 계단에서 굴렀다고 말했던 그때일까? 그날 이혼 조건을 두고 한발 물러섰던 밍런이 참 의아했었다.
설마 팡 언니 친구가 고용했다던 그 아마추어일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밍런에게 간접적인 해를 끼친 사람이 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나면서 오싹해지고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술
두 번째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온 것도 밍런 때문이었다. 지난번은 이혼 때문이었지만.
“오전에 검찰 조사가 있었습니다....”
저우위양이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잠시 말을 멈추었다.
“루이원 씨는 처음에 작업실에서 뤄지를 목 졸라 죽인 뒤, 시신을 솽시 산속으로 가져가 묻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법의관의 해부 결과, 뤄지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는 게 밝혀졌어요. 양손 엄지손가락에 화상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감식 결과 고압 전기에 감전된 걸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루이원 씨가 진술을 번복했어요. 뤄지가 사진으로 자신을 협박했고, 거래를 약속한 자리에서 뤄지가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홧김에 전기 충격 총으로 반격했더니, 뤄지가 그 총을 빼앗으려다 감전되면서 의식을 잃었다고요. 루이원 씨는 뤄지가 사망한 줄 모르고 차에서 캠핑용 밧줄을 가져다 목을 조른 뒤에 시신을 대나무 숲으로 가져가 묻었다고 했습니다.”
롤러코스터가 질주하듯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시부모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눈빛에 생기가 없었다. 나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비슷할 터였다. 심장이 중력 가속도에 의해 방광까지 끌어내려진 채, 방광이 계속해서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과실치사가 아니라 고의였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게... 무슨 사진이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심쩍은 마음을 용기 내 물어보았다. 만약 그게 밍런과 안커의 사진이라면, 증거로서는 설득력이 약해 보였다.
“경찰이 루이원 씨 차량에서 USB를 하나 압수했는데, 그 안에 성매매 여성을 불러 찍은 동영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뤄지가 그걸 이용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협박했다는 걸 루이원 씨도 이미 시인했고요.”
“경찰이 추가로 발견한 게 있는데....”
변호사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이제 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또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작업실 건물의 CCTV 하드디스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경비원 한 명도 행방불명 상태인데, 뤄지에게 공범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루이원 씨가 한 건지 경찰도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해요. 루이원 씨가 자신은 이 일과 무관하다고 부인했지만, 이미 진술을 번복한 기록이 있는 데다 공모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검찰에서 구속 신청을 했고 판사가 이를 인용한 상태입니다.”
나를 비롯해 밍런의 부모님, 안커까지 모두가 변호사 입에서 밍런에게 유리한 국면이 들려오길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더욱 악화된 상황뿐이었다. 변호사도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