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중국 신화
 
지은이 : 황더하이 외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6년 03월




  • 중국 최고의 문학비평가 3인이, 수천 년 동안 고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각난 중국의 전설들을 하나로 꿰어 탄생, 도약, 위기, 질서까지 이어지는 거대 서사를 완성했다. 반고의 죽음으로 시작해 여와의 눈물, 염제의 희생, 황제와 치우의 전쟁, 항아의 달나라 도피 그리고 대우의 처절한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드디어 만나는 중국 신화


    하늘이 열리고 인간이 등장하다
    혼돈으로부터 하늘과 땅을 연 반고
    태초에 천지는 혼돈 덩어리였습니다.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끝없는 공허 속에 거대한 검은 알이 하나 놓여 있었지요. 그것은 혼돈 속에 조용히 존재하는, 세상을 개벽할 힘을 가진 원기 ""반고(盤古)""였습니다. 반고는 싹이 트기 전의 씨앗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랐습니다.

    그렇게 1만 8,000년이 지나자 그 원기(元氣)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불현듯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틈은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게, 느린 속도로 벌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세한 진동이 생기더니, 틈이 벌어지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틈새에서 나오던 맑은 소리는 점차 둔탁한 소리로 바뀌었고, 곧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혼돈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가볍고 맑은 부분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부분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땅이 되었습니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하늘과 땅이 나눠지면서 반고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몸을 가볍게 쭉 뻗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피하듯 허공이 갑자기 흔들리며 하늘은 더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더 내려갔습니다.

    깨어난 반고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점점 자라났습니다. 하늘은 날마다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한 길씩 두터워졌으며, 반고도 날마다 한 길씩 키가 자랐습니다. 놀랍게도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땅이 점점 단단해짐에 따라 반고도 하루에 아홉 번씩 변했습니다.

    반고는 때로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고, 때로는 굳은 점토처럼 단단해졌다가, 때로는 풀과 나무처럼 부드러워졌고, 때로는 별처럼 찬란히 빛났고, 때로는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때로는 곤충처럼 바닥을 기어다니기도 했지요. 반고의 신비함과 성스러움, 변화무쌍함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늘과 땅을 능가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1만 8,000년이 흘러 하늘은 아주 높아지고 땅은 몹시 단단해졌습니다. 그 사이에서 반고는 땅을 딛고 하늘을 떠받친 채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하게 성장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9만 리, 반고의 키도 그만큼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반고가 이따금 피곤해져 몸을 살짝 굽히면 바로 천지가 흔들리며 다시 합쳐지기라도 할 듯 땅은 위로 솟고 하늘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면 반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서 하늘과 땅 사이를 지탱했지요. 흔들림이 잦아든 뒤에 하늘은 조금 기울어졌고 땅은 울퉁불퉁해졌습니다. 반고는 하늘의 기운 부분이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올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힘과 용기를 내 커다란 산을 두 개 쌓아 기울어진 하늘을 받쳤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유일한 생명체인 반고가 기쁠 때면 하늘이 밝아졌고, 화날 때면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반고가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면 번개가 번쩍였고, 기뻐서 소리를 지르면 천둥이 쳤습니다. 반고가 땀을 흘리면 온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반고가 한숨을 길게 내쉬면 그 기운이 바람과 구름으로 변했지요.

    그는 때때로 고독함과 쓸쓸함에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강을 이루었습니다. 때로는 용으로 변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용이 된 반고가 드넓은 하늘과 땅 사이를 노닐다가 이따금 까마득하게 높은 창공으로 날아오르면 하늘은 파란빛에서 짙은 쪽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면 하늘빛은 끊임없이 변했지요. 이때가 되면 반고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음과 양의 기운이 쉼 없이 바뀌며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반고도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을 정도로 늙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때는 하늘과 땅이 거의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반고의 키가 조금 줄어도 하늘과 땅은 흔들리기만 할 뿐 서로 붙어버리지 않았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반고의 몸은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의 각 부분이 잇달아 분리되었고, 정기는 땅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되었지요. 팔다리와 몸통은 대지의 동서남북 사방 끝과 오방의 명산으로 변했습니다. 피는 강이, 힘줄은 길이, 근육은 논밭이 되었습니다. 피부의 털은 풀과 나무, 이와 뼈는 금속과 돌, 골수는 진주와 옥으로 변했습니다.

    반고는 숨을 거두며 세상의 형태대로 조금씩 변했습니다. 세상의 사물 하나하나에는 모두 반고의 몸에 있던 정기를 나누어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반고가 애초에 하늘과 땅 사이에 서 그랬던 것처럼 왕성하게 생장하며 각자의 생로병사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기나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땅속으로 파고든 반고의 정기가 하늘과 땅의 정수를 흡수해 점점 자라나면서 형태를 갖추더니, 어느 날 땅 아래에서 무언가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정수리에 이어 머리와 오관(五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눈, 귀, 코, 혀, 피부의 다섯 감각 기관)이 생기더니 거대한 사람의 두상이 지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거대한 머리는 처음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다가 햇빛에 적응되자 땅 위의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을 기세로 눈을 번쩍 뜬 채 사방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머리 아래의 기다란 몸이 지면을 뚫고 나오며 주변 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갑자기 그 머리와 몸이 땅 위로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노닐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한 형상이었습니다.


    땅 위에 첫 인간을 만든 여와
    사람의 머리와 뱀의 몸을 한 이 신은 반고의 정기를 받고 하늘과 땅의 정수를 흡수해 탄생했으며, 훗날 사람들은 그녀를 ""여와(女?)""라고 불렀습니다.

    여와가 땅에서 나왔을 때, 드넓은 세상에는 아주 오래된 원시의 분위기가 맴돌았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지요. 대지에는 거대한 짐승들이 내달렸고 하늘에는 거대한 새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강은 있었지만 아직 물이 흐르지는 않았는데 이따금 큰 물고기가 수면으로 튀어오를 때면 우렁찬 물보라가 고요를 깨뜨리며 하늘과 땅이 밝아졌다가 곧이어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맑은 물이 겹겹이 일렁였지요.

    처음에 여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매우 넓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했지요. 여와는 하루에 일흔 번이나 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순간 사자나 호랑이로 변해 온갖 짐승과 더불어 춤을 추다가, 다음에는 봉황으로 변해 온갖 새들과 어울려 노래했습니다. 그러다가 강으로 들어가지 용과 노닐기도 했지요.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며 큰비가 올 때면 순식간에 나무로 변신해 광야에 우뚝 선 채 태곳적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할 때면 풀벌레가 되어 낮게 날아다녔고, 때때로 여치가 되어 날개를 떨기도 했으며, 개구리가 되어 개굴개굴 울기도 했지요. 심지어 아름다운 소리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여와의 힘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태초의 시공간은 정해진 때 없이 열리고 닫혔는데, 여와가 오면 시공간이 열려 만물이 흔쾌히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여와가 떠나면 시공간이 닫혀 다시 황폐한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습니다. 여와는 세상의 모든 동물로 다 변신해보았지요. 그러자 그녀의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은 점점 사그러들었습니다. 여와는 더 이상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고 그저 긴 뱀의 꼬리를 늘어뜨린 채 하늘 아래에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점차 욕망과 의지가 싹텄고, 곧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그 욕망과 열정을 털어놓을 방법도 없었습니다. 여와는 점차 세상의 황량함을 깨닫고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듯했지요. 그녀는 강기슭에 머물며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고기 떼가 강울 지나가며 물에 비친 여와의 그림자를 일렁이게 했습니다. 물속에서 일렁이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여와는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았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지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여와는 강가로 내려가 황토를 한 움큼 쥐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물에 개어 힘껏 반죽을 시작했지요. 황토는 차츰 형태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계속해서 반죽하자 황토에 오관과 칠규(七竅: 사람 얼굴의 눈, 귀, 코, 입에 있는 일곱 구멍)가 생겨났는데, 그 모습이 여와와 비슷했습니다.

    여와는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황토를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녀가 두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이자 황토에 상반신과 두 팔이 생겨났습니다. 하반신을 빚을 차례가 되자 자신의 뱀 꼬리를 유심히 보던 여와는 숲속에서 돌아다니던 원숭이를 떠올리며 다리를 빚었는데, 다만 원숭이보다 조금 더 굵게 만들었습니다.

    황토로 인간 형상을 완성한 여와는 그것을 잠시 땅에 내려놓고 자세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작은 인간은 살아 있는 듯 생생했지만 여와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골똘히 생각한 끝에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지요. 여와는 작은 인간의 콧구멍에 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지요.

    그녀가 숨을 불어넣자 황토로 만든 작은 진흙 인간이 놀랍게도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얻은 인간은 소리치며 기뻐서 깡충깡충 뛰다가 멀리 떠나버렸지요.

    여와는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 큰 기쁨을 얻었고, 마음속 외로움도 누그러졌습니다. 자신이 만든 첫 인간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여와는 다시 진흙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자 진흙 인간이 살아나더니 또 멀리 달려갔습니다. 살아난 진흙 인간의 기쁜 웃음소리가 시시각각 여와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여와는 점점 인간 빚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여와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각 인간을 빚은 뒤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손으로 빚은 사람은 음기와 양기를 모두 지니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빚은 사람은 놀랍게도 기운이 나눠졌습니다. 왼손으로 빚은 사람은 천지의 양기에 감응해 남자가 되었고, 오른손으로 빚은 사람은 음기에 감응해 여자가 된 것이지요. 남녀 사람들은 여와의 주변을 한참 동안 맴돌며 진흙 빚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와에게 말을 걸었고, 다른 누군가는 서로 한참 소곤거리다가 기뻐하며 멀리 달려갔지요.

    오랫동안 인간을 빚어낸 끝에 여와는 지쳤습니다. 그녀가 빚어낸 사람들은 단 하나도 곁에 남지 않고 모두 먼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여와는 새로 만든 사람들이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모두 결국 떠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와가 빚어낸 첫 인간들도 몹시 외로워 보였습니다. 인간 세상에 활기가 넘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와의 힘은 거의 바닥났기에 사람을 빚어낼 다른 방법이 필요했지요.

    잠시 고민하던 그녀에게 뜻밖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와는 곧장 산으로 가서 등나무 덩굴을 자르고 강가로 내려왔습니다. 그 덩굴을 강물에 넣고 휘젓자 진흙과 물이 온통 뒤섞여 진흙탕이 되었지요. 여와는 진흙이 잔뜩 묻은 등나무 줄기를 공중에서 크게 흔들고는 흩어지는 진흙 덩어리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진흙 덩어리들은 모두 생기 넘치는 사람이 되었지요. 이들은 손으로 빚어 만든 사람보다 조금 작았지만, 여와가 내쉰 숨결을 나누어 가졌기에 지적 능력은 전혀 뒤처지지 않았지요. 여와는 즐거워졌고 등나무 덩굴을 끊임없이 흔들며 진흙 덩어리를 흩뿌렸습니다. 오래지 않아 대지는 사람의 자취로 온통 뒤덮였지요.

    진흙으로 수많은 사람을 빚어낸 여와는 이제 일을 멈추었습니다.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와는 고된 여정 끝에 찾아온 평안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피로감이 밀려왔지요. 여와는 긴 잠에 들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풀과 나무를 엮어 거주지를 마련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었지요.


    여와, 돌을 녹여 하늘을 고치다
    인류는 대지에서 번식하고 번성하여 대대로 이어졌고, 지상에는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경외감을 배웠지요. 그들은 물과 불, 산과 숲, 길과 동굴, 구석진 곳곳을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이들의 경외감은 하늘의 신령인 ‘천신(天神)’과 땅의 신령인 ‘지기(地祇)’가 되었습니다.

    천신과 지기는 처음에는 아무런 형상이 없었고 단지 하늘과 땅 사이를 떠다니는 은은한 기운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무형의 기운이 점차 응집되어 형태가 있는 신이 되었습니다. 여와가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세상 거의 모든 곳에 신이 존재했지요.

    처음에는 도처에 존재하는 여러 신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 평안히 머무르며 그들에게 속한 인간으로부터 숭배를 받았습니다.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인간의 경외감이 뜨겁게 타오르면 신의 몸집이 커졌다가 그 마음이 식으면 신의 몸집이 줄어들었지요. 인간의 숭배에 따라 신들 사이에 차츰 크고 작음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긴 세월이 흐른 끝에 불과 물의 신이 크게 자라났습니다. 먼저 더 크게 성장한 것은 물을 관장하는 신 공공(共工)이었지요. 사람들은 강과 호수에서 헤엄치며 놀았을뿐더러 물고기를 비롯한 해산물도 얻었습니다. 그들의 경외감은 대부분 공공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쳐 아이들이 태어나며 사람들은 익힌 음식에 익숙해졌고, 점차 불의 신인 축융(祝融)을 더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축융의 거대한 몸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축융의 덩치가 공공과 엇비슷해지자 공공은 크게 화가 났지요.

    날이 갈수록 공공의 분노는 커졌습니다.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게 된 공공은 축융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요. 곧이어 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거대한 두 신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아주 오랜 시간 치열하게 자웅을 겨루었으나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요. 전투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축융에게로 기울었습니다. 축융의 몸집은 갈수록 커졌고 그의 힘과 능력은 공공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이제 승부는 시간 문제였지요.

    결국 축융에게 패한 공공의 분노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화가 가득한 상태로 공공은 태초에 반고가 쌓았던 높은 두 산 중 하나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러자 산이 두 동강 나고 무너져 내리며 땅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거대한 산은 더 이상 온전하지 않았기에 훗날 ‘부주산(不周山)’이라 불렸습니다.

    산이 무너지자 하늘과 땅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하늘에 큰 구멍이 뚫려 비가 쏟아졌지요. 땅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용암이 솟구치며 큰불이 들과 숲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잠했던 강과 호수는 범람했지요. 날짐승과 들짐승, 큰 강에 살던 사나운 용은 두려움에 빠져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난리통에 많은 사람들이 달아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평온한 노년을 보내던 여와는 자신이 만든 인간들이 재앙을 겪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러나 재앙을 일으킨 신들은 인간의 경외감이 창조해낸 존재였기에 여와가 함부로 소멸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상황을 종식하고 인간을 구해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지요.

    여와는 다시 강으로 내려가 단단한 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일곱 가지 빛깔의 돌들이었지요. 그녀는 이 돌들을 커다란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아교풀처럼 끈적하고 영롱한 빛의 액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거듭된 일들로 피로감이 쌓였지만, 눈앞의 일을 끝까지 마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요.

    잠시 휴식을 취한 여와는 용광로에서 녹인 액체를 들고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곳에서 큰비가 세차게 내리며 날카로운 칼날처럼 매섭게 여와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여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녹인 돌로 하늘의 구멍을 조금씩 메우기 시작했지요. 비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하늘이 다시 완전해져 장막처럼 땅을 덮었습니다. 여와가 하늘을 보수할 때 다양한 색의 돌을 녹여 사용했기 때문에 이후 하늘에서 드리워진 빛은 일곱 빛깔이 되었습니다. 비가 내린 뒤 뜨는 무지개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지요.

    어떤 이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눈부신 업적을 만들어낸 것을 중국에서는 ‘여와보천(女?補天)’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합니다. 이는 바로 여와가 하늘을 고친 일에서 유래했지요.

    여와가 다시 날아서 땅으로 내려왔을 때 그곳에는 여전히 비통함이 가득했습니다. 지하에서 분출된 용암과 범람한 강물이 그녀의 사람들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이미 매우 지친 여와는 남은 힘을 모두 모아 가장 큰 호수로 들어갔고, 그 호수 바닥에서 거대한 거북을 잡았습니다. 여와는 거북을 호수 밖으로 끌어올려 네 다리를 하늘과 땅 사이에 기둥처럼 세웠습니다.

    하늘을 지탱하는 네 기둥이 생기자 천지가 크게 한 번 흔들리더니 천천히 안정되었지요. 큰불은 점차 찾아들고 사방에서 홍수가 물러나며 대지는 평온하고 정겨운 이전의 모습을 다시 드러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온갖 사나운 짐승들이었습니다. 여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온 힘을 모아 짐승의 우두머리인 사나운 흑룡을 처단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와를 본보기로 삼아 저마다의 방식대로 야수와 맹금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땅에 평화가 찾아왔지요.


    도약 | 불과 도구로 문명을 일구다
    나뭇가지를 마찰해 불을 피운 수인씨
    세상의 남쪽에는 수명국(燧明國)이라는, 해와 달이 전혀 비추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사계절도, 아침과 낮도 없는 곳으로 어두운 밤만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이곳 사람들은 캄캄한 혼돈 속에서 서로 손짓으로 더듬어가며 소통했습니다.

    수명국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남아 길렀습니다. 그러나 암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간이 멈춘 듯 하루하루, 한 해를 그저 똑같이 반복해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처럼 적막하고 단조로운 삶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며 다른 나라를 찾아 멀리 떠났지요.

    수명국에는 수수(燧樹)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이 거목은 뿌리가 온통 뒤엉켜 있었으며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웠지요. 나무 꼭대기는 구름과 안개에 닿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수수의 짙은 그늘에서는 가끔 보석처럼 눈부시고 찬란한 빛이 반짝였습니다. 수명국 사람들은 이 빛에 의지해 생활했지요.

    이때쯤 수명국에 한 용기 있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해와 달 너머에서 노닐던 그는 남쪽으로 내려와 수명국에 도달했지요. 큰 나무 그늘 아래의 빛을 본 그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주의 깊게 나무 주변을 살피고 관찰해 진상을 밝혀내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는 나무를 꼼꼼히 둘러보다 가지 위에 발톱이 길고 등은 검으며 배는 하얀 새 한 마리가 앉은 것을 보았습니다. 부엉이처럼 생긴 그 새가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자 불꽃이 환히 일었지요.

    이를 본 순간 그는 불꽃이 튀는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가 나뭇가지를 꺾어 큰 나무판에 대고 비비자 과연 불꽃이 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이 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더 단단한 나뭇가지를 찾아 끈기 있게 나무판에 문질렀습니다. 계속해서 나무를 마찰시키자 곧 사방으로 불똥이 튐며 눈부신 불이 일었지요. 그는 조심스럽게 불을 지폈습니다. 용감한 젊은이의 마음과 그를 둘러싼 세계가 환해졌지요.

    이 젊은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 피우는 기술을 널리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온기와 광명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빛 덕분에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횃불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 산과 물, 꽃과 풀과 나무, 먼 산등성이를 보며 놀라고 감탄했지요. 그들은 나비를 쫓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흉내 내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기쁨을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