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출신의 두 전문가는 오랜 시간 베일에 싸여 있던 신화 속 기묘한 존재들을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로 되살려냈다. 낯선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해, 책의 도입부에서 슬라브족의 기원부터 동유럽 신화의 체계, 슬라브 서사시의 흐름까지 차근차근 안내한다. 도입부를 지나면, 전염병의 공포가 투영된 뱀파이어의 실체, 마녀에 맞서 싸우는 착한 늑대인간, 프라하를 건국한 리부셰 여왕의 전설, 닭 다리 위 오두막에 사는 마녀 바바 야가, 수호자와 포식자의 경계에 선 우르슈카 등 동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7가지 이야기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각각의 이야기 뒤에는 신화적 맥락과 역사적 배경을 짚어주는 해설이 이어진다. 정치가와 성직자가 ‘뱀파이어’로 불리게 된 배경, 아이에게 늑대와 관련된 이름을 지어준 이유, 기독교의 도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신의 정체 등 동유럽의 종교·역사·사상을 바탕으로 각 신화가 어떻게 퍼져 나가고 자리 잡았는지를 심도 있게 풀어낸다.
■ 저자
노아 차니
미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소설 『도둑의 고백』은 1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비소설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위작의 예술』, 『삶의 수집가』, 『잃어버린 예술의 박물관』 등을 집필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BBC를 비롯한 TV와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현재 슬로베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발칸반도 분야 연구의 최고 권위자. 1990년 밀로시 츠르냔스키 상을 받은 에세이스트로, 1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1993년 미국 PEN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류블랴나 인문대학원과 미국 뉴저지 럿거스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 연구원,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슬로베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 역자 송민경
러시아 이르쿠츠크국립언어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비욘드 드림즈》, 《슬레이어》 등 다수의 영화 및 다큐멘터리 영상 번역 작업을 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원작이 지닌 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고유한 결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번역을 지향한다. 옮긴 책으로는 『사는 게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철학 수업』, 『크리스털 오라클』, 『반지의 제왕 타로카드 & 한글 가이드북』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들어가며
슬라브족 알아보기
동유럽 신화의 체계
슬라브 서사시
1장 | 뱀파이어
- 뱀파이어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뱀파이어의 유래
- 지우레 그란도
- 페테르 플로고요비츠
- 아르놀드 파올레와 메드베자의 뱀파이어들
- 국경을 초월한 뱀파이어 열풍
- 부크 카라지치
- 사바 사바노비치
- 뱀파이어 전설에 불을 지피다
2장 | 늑대인간
- 늑대인간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늑대인간에 대하여
- 늑대인간의 발상: 그리스와 슬라브
- 의학적 해석
- 재판대에 오른 르네상스 시대의 늑대인간
- 현대의 늑대인간
3장 | 리부셰 여왕
- 리부셰 여왕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리부셰 여왕과 여인들
4장 | 바바 야가
- 바바 야가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위대한 여신의 변형 3가지
- 모코시
- 바바 야가에 대하여
- 페트카
5장 | 페룬
- 페룬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최고신 페룬
- 페룬의 지지자와 반대자
6장 | 물의 괴물
- 물의 괴물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저 깊은 곳의 존재들
- 반니크
- 루살카
- 빌라
- 그 외 물의 괴물들
7장 | 불새
- 불새 이야기
- 한 걸음 더 깊이 읽기
- 동유럽 신화 속의 마법
- 날씨의 전사들
- 마녀
- 동물과 식물
- 식용 식물과 열매
부록: 그림으로 보는 동유럽 신화
맺음말
감사의 말
주석
색인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올림포스 12신이나 오딘, 토르 같은 강력한 주신(主神)들의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반면, 동유럽 신화는 주로 인간과 괴물의 거친 생존기를 통해 세상의 기괴하고 어두운 이면을 밝힌다. 마치 공포 영화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동유럽 신화만의 섬뜩한 분위기는 그 지역 특유의 인문적·지리적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
들어가며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집트 신의 이름을 묻는다면, 오시리스나 이시스 같은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북유럽의 신을 물어도 몇 개쯤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마블 만화와 영화 덕분에 토르, 로키, 오딘 같은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친숙하니까 말이다. 그리스·로마 신들은 고대부터 유럽 문화 전반에 걸쳐 익숙해져 있으니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영광과 신앙과 사상이 인류 문명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은 로마제국이 쇠망하면서 잠시 뒤안길로 사라졌던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덕분에 오늘날 서양 문화 곳곳을 활발히 누비는 제우스(유피테르), 아테나(미네르바), 포세이돈(넵투누스), 아프로디테(베누스), 아레스(마르스)를 포함한 여러 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그리스·로마의 영웅과 모험담도 알고 있다. 이아손과 황금양털,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등을 말이다.
그렇다면 동유럽의 신과 괴물, 영웅은 어떤가? 부크, 벨레스, 페쿤 같은 신을 알고 있는가? 아마 익숙한 이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슬라브족의 전설에서 탄생한 유명한 존재도 분명히 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 바로 그 예다. 이 어둠의 존재들은 사실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전에 동유럽 신앙이라는 작은 무덤에서 빠져나왔다. 기원을 몰랐던 사람들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사는 슬라브 혈통 수백만 명을 포함해, 전 세계에 머무는 슬라브계 사람이 수천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어로 쓰인 슬라브족의 신화나 전설이나 신에 관한 책은 극히 드문 편이다. 이는 신화에 대한 학술적·인류학적 문헌뿐만 아니라, 모험, 마법, 구전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이솝우화, 그림동화, 그리스·로마나 이집트나 북유럽의 고대 신화에 관한 책은 다양하면서도 많다. 슬라브 전통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세계사가 의외로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이 책은 어마어마한 잠재적 독자층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슬라브 국가의 괴물, 전설, 신, 영웅을 소개함으로써 현존하는 정보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슬라브족의 비기독교적 전통이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에 의해 덮어지거나 뒤섞이기 전, 기독교 이전에 최초의 슬라브족이 믿고 있던 것을 탐구하는 데 목표를 둔다.
동유럽 신화의 체계
동유럽 신화 체계(pantheon)는 조직 구조가 모호하고, 여러 신과 신화적 존재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스칸디나비아, 게르만, 켈트, 지중해 민족의 신화 체계와 다르다. 이렇게 된 데는 19세기 학자들의 연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그리스·로마의 신화 체계같이 더 잘 알려진 형태에 맞춰, 동유럽 신 중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닮은꼴 또는 동등한 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표면적으로야 부크와 제우스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 편리하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슬라브족은 뱀파이어(vampire)와 늑대인간을 동일하게 여겼다. 즉, 하나의 괴물에 두 개의 이름이 있던 것이다.
19세기의 많은 학자가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같은 동유럽에서 기원한 근대 국가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보니, 국가의 탄생이라는 고무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연구 자료를 해석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를 들어, 리부셰 여왕이 도시 프라하의 건설에 미친 영향력을 접했을 때, 동유럽 전설에 나오는 그녀의 역할이 프라하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되기 전의 일인지, 혹은 더 일찍, 주요 도시가 되기도 전의 일인지 의문을 품어봄 직하다. 이러한 이유로 동유럽 신화 체계에서의 최고신은 어떤 자료를 참고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나타난다. 남신들 중 최고신의 중추 집단은 정해져 있지만, 그들이 간단하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정의되는 경우는 드물며, 명확한 선이나 악으로 규정되지도 않는다.
페룬(Perun)은 대다수의 슬라브족에게 주신이며, 제우스나 오딘의 위치에 가깝다. 페룬은 폭풍을 다스리고, 천둥을 소환하며, 번개를 던진다. 또, 눈 덮인 산의 정상에 살며 참나무 숲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간혹 폭풍우의 신 다주보그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전투용 도끼나 망치, 활과 번개 화살 같은 신비한 무기를 쓰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결정적 순간이나 전투에 직접 출현한 신으로 자주 언급되며, 러시아에서는 모병에 영향을 주는 인물로 이름이 올랐을 정도다.
스바로그(Svarog)는 다주보그와 대조를 이루는 태양과 불의 신으로, 그리스 신 헤파이토스와 유사하다. 또한 하늘과 대기의 신으로서 육체 없이 존재한다. 빛을 보는 신으로도 번역 가능한 스베토비드(Svetovid)는 머리가 넷 달린 전쟁의 신이자, 빛과 힘의 신이다. 세 개의 머리라는 의미를 가진 트리글라브(Triglav)는 세계의 통합을 상징하는 신이다. 그는 검은 말을 타고 있으며, 산과 나무로 표현된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더 나아가 구 유고슬라비아 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벨레스(Veles)는 동유럽 신화에서 하데스나 사탄과 같은 위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늪, 습지, 동굴 같은 축축한 지역과 어둠을 다스리는 지하 세계의 왕이다. 다소 으스스하게 느껴진다면 잠시만 기다려보라. 벨레스는 음악과 시의 신이기도 하다. 지하 세계의 신을 영혼의 목자라고 부르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는 동물과 가축을 지배하며 재물도 관리한다. 하지만 동유럽 전통 안에 기독교적 신앙이 겹겹이 쌓이면서 악마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렇다면 이 악마는 언제부터 음악, 시, 동물의 신이 되었을까?
늑대라는 뜻을 지닌 부크(Vuk)는 동유럽 신화 속 최고의 동물 신으로, 모든 동유럽 신화들에서 숭배된다. ""신화들""이라는 복수형으로 말해야 하는 이유는 슬라브족이 그들의 시작점으로 추정되는 카르파티아산맥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지역을 이동하고, 악탈하고, 정착하고, 정복하고, 쫓겨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부크는 여전히 고대 슬라브족의 흩어진 후손들 사이사이에 남아 있다. 고대 유럽에서 늑대는 인간을 잡아먹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물이었다. 즉,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동물이었다.
라도(Lado)와 라다(Lada)는 쌍둥이 신으로, 사랑, 아름다움, 다산, 청춘, 행복, 웃음, 성(性)은 물론이고 지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가치를 상징하는 남성적·여성적 요소를 나타낸다. 그들을 받드는 제사는 대개 수확기에 치러졌다. 특히 라다는 고대에 큰 영향을 미쳐, 동유럽 신화뿐 아니라 발트해 신화와 핀란드 신화에도 등장한다. 동유럽 신화에서는 남신에 비해 여신이 덜 알려져 있지만, 그 빈자리를 여성 영웅들이 다채롭고 풍부하게 채운다.
아담과 이브에 근사하게 대응하는 로드와 로자니카도 있다. 세계의 기원에 등장하는 이 최초의 부부는 신이다. 그들은 인생의 운명이나 다산, 가계의 유산을 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자니카는 위대한 어머니 신으로 숭배되며 힘과 의식에서의 존재감이 커졌다. 반면 남편 로드는 점차 중요성이 떨어졌다.
위의 남신들은 모두 대기 현상을 지배하고, 그중 몇몇은 머리가 두 개 이상이다. 여신 모코시는 그들과 반대되는 개념을 구현한다. 그녀는 치유, 보호, 저주, 복수, 교육, 보편적 지혜, 다산과 관련이 있다. 모코시와 가장 가까운 그리스·로마 신은 데메테르일 것이다.
자고로 신들은 거대한 참나무로 예상되는 ""세계의 나무"" 아래 또는 산꼭대기에 모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구름에 싸인 어딘가에서 만났다고 한다. 단 하나의 신에게 바쳐진 의례 공간도 종종 발견되었지만, 슬라브족의 예배 방식은 신전 순례보다는 달력의 경축일과 이어진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성직자에 관한 정보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문헌이든 문화재나 유적이든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슬라브족은 그토록 수가 많고 넓리 퍼져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 민족 중 하나다. 다채로운 신과 신화가 있었지만 현재 우리가 알거나 믿는 것 중 대부분은 더 나중에 꾸며진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19세기 학자들이 허위로 꾸며낸 조상들의 태곳적 이야기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포함한 옛 군주국과 제국이 붕괴되고 신생 독립국으로 대체되면서 민족적 정체성이 국가적 자긍심으로 탈바꿈하던 시기를 일컫는 ""국가의 봄(Spring of Nations)""에 당대의 사상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 국가들에게는 자국민이 조상 대대로 그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가져왔다는 믿음을 뒷받침할 탄탄한 건국 이야기가 필요했다. 이는 라트비아에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에서 불가리아, 폴란드에서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현대 슬라브족에게 자신들의 신화라고 하면 고대를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신화는 보통 여러 세대에 걸쳐 해석되고, 우리는 문학적 배경을 통해 신화를 습득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놀라우리만치 최근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현대판 그리스·로마 신화는 고대 문헌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날 버전과 대체로 유사하다. 하지만 동유럽 신화는 그렇지 않다. 고대 슬라브족 신앙 체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비잔틴제국의 문헌이다. 이는 슬라브족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며 호기심을 느꼈던 외세의 시각으로 쓰였다. 게다가 슬라브족의 고고학적 자취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밤하늘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뱀파이어
뱀파이어의 유래
동유럽 세계의 모든 신화 가운데 흔히 볼 수 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는 틀림없이 뱀파이어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동유럽 신화가 아니다. 뱀파이어에 대한 실제적 믿음을 토대로 한 이야기가 처음 유래한 곳은 몰도바의 카르파티아산맥으로, 이 지역은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와 동유럽 문화의 전통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뱀파이어는 오스만제국과의 국경 교전 지역에서 파생된 신화적 요소들을 지니는 발칸반도의 흥미로운 현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가 브램 스토커의 1897년 소설 『드라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수 세기 동안 많은 세계 문화 속 신화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다소 부정확하다. 사실 뱀파이어는 수 세기 동안 슬라브족의 설화 속에 존재해왔다. 그 방향이 『드라큘라』로 이어졌고, 이 소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뱀파이어 열풍이 오늘날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열풍은 스토커의 작품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민간 신앙(주로 세르비아)이 오스트리아 관리들의 범죄 관련 정밀 조사를 받게 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이 보고서들은 국제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일반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드라큘라』로 절정에 이르게 되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문학적 모험담의 물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뱀파이어(vampire)라는 단어가 1734년 저술되고 1745년 익명으로 출간된 『세 영국 신사의 여행』이라는 에세이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1725년경, 오스트리아 관리들은 매장된 시신을 파내고 뱀파이어를 죽이는 세르비아의 전통에 대해 보고했다. 하지만 뱀파이어 전설의 영향은 중유럽과 동유럽 전역에 미친다. 실제 뱀파이어라는 용어의 기원은 불확실하다. 한 학설에 따르면, 『성 그리고리의 말씀(Word of Saint Grigoriy)』이라는 중세 러시아 문헌에서 명사로 언급된 ""사납게 찌르는 것""을 뜻하는 옛 러시아어 단어 upyr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의 가장 위대한 어원학자 페타르 스코크(Petar Skok)는 뱀파이어를 수용주의적·민속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며 그 기원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마녀를 의미하는 북부 터키어인 ubyr에서 온 차용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문자 그대로 날지 않는 자라는 뜻의 슬라브어 밤피르(vampir)에서 왔다는 것이다. 언어학자이자 고대 발칸반도 지역 연구자인 밀란 부디미르는 뱀파이어가 물뱀을 뜻하는 단어 vidra와 연관 있는 물의 요정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늑대인간
늑대인간에 대하여
얀 포토츠키(Jan Potocki) 백작은 폴란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이자 계몽주의 지식인이었다. 1805년경 처음 출간된 그의 대표작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산문 서사 방식으로 쓰인 작품으로, 폴란드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폴란드에서 매우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인 포토츠키는 세계를 누비는 여행가이자,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다국어 구사자이기도 했다. 그는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고 폴란드 군대에서 공병대 대위로 복무했으며, 몰타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에도 입단했다.
1815년 12월 23일, 세상 경험이 풍부했던 이 남자는 어머니의 은 주전자에서 떼어낸 은으로 총알을 만들고 사제의 축복을 받은 뒤, 그 축복받은 은 탄환으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생을 마감했다. 얀 포토츠키는 자신이 늑대인간이라고 믿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구하며 세상에 큰 호의를 베풀 수 있다고 굳게 확신했다.
현대 서구인의 상상 속에서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전혀 다른 신화적 괴물이지만, 동유럽 신화에서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같은 괴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단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20세기 이전의 많은 이야기,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늑대인간을 뜻하는 부코들라크를 포함한 이야기조차 오늘날 우리가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동유럽 세계에서 늑대는 세르비아인과 다른 남슬라브족이 숭배하는 주요 동물일 뿐만 아니라, 늑대 신 부크는 다양한 기원 신화와 연관된 최고신, 곧 우주적 지배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늑대""라는 단어를 넣어 지은 남녀 이름과 지명도 셀 수 없이 많다. 세르비아의 풍부한 언어학·민족지학 문헌에 따르면 ""밤피르""는 늑대인간의 신성한 이름인 ""부코들라크""를 대신하는 말이다. ""언급해서는 안 되는 자""라는 뜻의 네폼니크(nepomnik)는 단순형인 부크(vuk)와 마찬가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늑대인간을 가리키는 또 다른 대체어다. 동유럽 전설 속 뱀파이어는 늑대나 검은 개 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이스트리아의 전설에 등장하는 동유럽 악마 프소글라브(Psoglav, 개의 머리)는 개의 머리와 말의 다리, 하나뿐인 눈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또한 비기독교적 동유럽 전설이, 9세기 이후 남슬라브족, 10세기 동슬라브족, 9~12세기 서슬라브족이 받아들인 초기 기독교 전통과 뒤섞이게 된 것은 테살로니키 출신의 두 형제, 키릴과 메토디우스(훗날 둘 다 성자의 반열에 오름)의 문화·선교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두 사람은 키릴 문자를 발명하고, 슬라브족에게 읽고 쓰는 능력과 함께 정교회를 전파했다. 슬라브 기독교 전통의 악마가 부코들라크처럼 보인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세르비아·마케도니아·그리스의 일부 프레스코화와 성화(Icons)에서 개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성 크리스토포르(Saint Christophor)는 프소글라브와 맞물린다. 이 인물은 외경에 등장하는 개머리 부족과 싸운 로마 병사들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붙잡힌 포로 가운데 한 명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로마인들에게 고문을 당해 죽었고, 이후 크리스토포르라는 이름의 성자가 되었다. 그는 가톨릭 전통의 성 크리스토포로스와 동일 인물은 아니지만, 이름이 비슷한 만큼 서로의 이야기가 뒤섞인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코들라크의 단순형인 kudlak은 달마티아어로 ""나비""를 뜻하며, 나비 또한 뱀파이어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부코들라크는 구름을 끌어당겨 날씨를 바꿀 수 있고, 그와 유사한 존재인 즈두하치는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악마(때로는 인간 마술사)로 여겨진다. 일부 전설에서 뱀파이어가 안개로 변신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러한 설정은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부코들라크는 대개 보름달과 함께 등장하지만, 어떤 이야기에서는 태양의 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늑대 가죽은 발칸반도 전역에서 슬라브족의 여러 의식과 축일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중에는 11월에 열리는, 늑대와 관련된 축제 주간인 므라틴치(Mratinci)도 포함된다. 흔히 늑대 가죽을 걸친 젊은이들이 결혼을 약속한 처녀의 집 앞에 나타나고는 했다. 페타르 스코크는 부코들라크를 가죽으로 덮인 자(혹은 가죽을 입은 자)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의미론적·언어학적 풀이를 제시한다. 반면, 닉 그룹(Nick Groom)은 뱀파이어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어원적으로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vuk(늑대)와 dlaka(털)의 결합이라는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사빈 베링굴드(Sabine Baring-Gould)는 1865년 『늑대인간에 관한 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한 늑대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늑대와 인간의 혼종이 되는 늑대ㅡ인간(wolf-man)이라는 발상은 슬라브족의 므라틴치 의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늑대 가죽을 걸치는 풍습은 기독교 이전 동유럽 세계의 샤머니즘적 관습이었고, 샤먼은 늑대의 역할을 맡아 노래하고 춤을 추었을 것이다. 술이나 환각성 약초를 더해 의식을 한층 격렬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이미지가 론 채니의 〈울프 맨〉에서 〈런던의 늑대인간〉에 이르기까지, 나아가 그 너머까지 이어지는 할리우드식 늑대인간 개념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동유럽 전설의 뱀파이어 개념과 서구 대중문화가 수용한 뱀파이어 개념 사이의 차이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하지만 동유럽 전설의 늑대인간은 대중문화 속 늑대인간과 상당히 다르다. 두 개념이 가장 가까이 결합된 사례는 아마도 《트와일라잇》에서 나타날 텐데, 이 작품에서 영원히 10대인 뱀파이어들은 영원히 10대인 늑대인간들과의 끝없는 싸움에 사로잡혀 있다.
바바 야가
위대한 여신의 변형 3가지
일부 학자들은 아시아·아프리카와 역사적으로 연관된 고대 유럽 문화에 여신 숭배의 특징이 있었다고 본다. 이 시기에는 남성 조각상이 거의 없었고, 성적 특징이 강하게 부각된 여성 조각상이 상대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는 여신 숭배의 흔적이거나 더 일반적으로는 생식 능력의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추앙받았다는 증거로 해석되어왔다. 어떤 학자들은 선사시대 유럽에 중심이 되는 하나의 신이 있었으며, 그 신은 여성-대개 ""위대한 여신""이라 불리는 어머니 대지(Mother Earth), 즉 가이아(Gaia)의 화신-이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말엽인 기원전 5000년경, 인도·유럽어족이 훗날 유럽으로 알려질 땅으로 이주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신석기시대는 농업혁명과 사회적 분화, 도시 형성, 식량 비축, 기록 문화, 생식의 통제와 이를 둘러싼 부권 사회의 형성, 집단 방어와 전쟁을 야기했다. 그 결과 인도·유럽어족은 전쟁이나 두려운 자연현상을 상징하는 ""남자다운"" 신들을 숭배하게 되었고, 남성을 과시하는 신들이 가득한 가운데 유일한 여신이었던 위대한 여신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많은 고대 문화권에서 위대한 여신은 다면화되었고, 그 여러 측면은 다양한 여신이나 반신적 인물들과 관련되어 있다. 동유럽 신화에서 위대한 여신은 전설적인 세 여신-모코시, 마녀 신 바바 야가, 페트카(기독교식으로는 파라스케비)-의 형태로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는 기원전 5000년 이전(우리에게 남은 정보가 희박한 시대)의 신앙 체계인 고대 유럽 종교에서 위대한 여신이 다양한 형태로-심지어 기독교에서조차도, 그곳에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추앙받는 여성인 동정녀 마리아라는 크게 변형된 형태로-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수천 년간 이어진 침략과 문화적 교류 속에서, 슬라브족은 어느 순간 위대한 여신을 세 가지 분신으로 변모시켰다. 각각의 여신은 저마다 원형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고대 유럽의 위대한 여신은 자연(물, 해, 달)과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나 창조된 것(삶, 죽음, 생식력, 음식, 의복, 건강과 예술) 양쪽 모두를 다스렸기 때문에 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여신은 다면화되는 동시에 분리되었다. 그녀의 특성들은 출산의 신, 예술의 신, 건강의 신 등 다양한 하위의 신적 존재들과 악마적 존재들로 나뉘어 계승되거나 전이되며 계층 구조 속에 정렬되었다. 한 여신이 여럿이 되면서 각각은 더 구체적인 역할을 갖게 되었고,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게 되었다.
위대한 여신과 그녀의 많은 계승자가 지닌 다의적 특성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남녀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신의 모습은 과거 그녀가 여러 신 사이에서 누렸던 고대의 전지전능한 위상을 투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유럽 신화 체계에 대한 초기 자료에서는 모코시를 유일한 여신으로 언급한다. 다른 신들, 곧 인도·유럽 신앙에서 맑은 하늘과 천둥의 신들이 최고위 위치에 있는 동안, 위대한 여신은 자연과 사회적 문제들을 관장한다. 그 영역은 대개 관습, 전통, 직업과 연관된 것들로, 예컨대 양털 깎기, 직조, 빨래 같은 일이다. 최고(남)신들이 우발적이고 위험한 현상들을 다룬다면, 위대한 여신은 일상생활(특히 여성과 연관된 가사 활동)을 맡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활동 영역이 남신들이 책임지는 간헐적인 화산 폭발이나 번개나 지진보다 더 쓸모 있고 긍정적이며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위대한 여신의 지위 변화는 여성의 사회적·문화적 지위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김부타스의 기본 발상을 더 전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