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터
 
지은이 : 이지은
출판사 : 열림원
출판일 : 2026년 06월



  • 착함의 기준이 계량화된 사회를 통해, 진짜 인성이란 무엇인지,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토막 난 딸기 사체’, ‘뱀파이어의 로맨스’, ‘태풍에 날아간 손모가지’ 같은 챕터 제목이 보여 주듯, 기묘하고 발랄한 유머가 흐른다.



    하터


    스캐닝
    “뭐야, 0.2그램밖에 안 된다고? 천하의 이여섬이, 영재 이여섬이, 의대 갈 그 이여섬이 2그램도 아니고 20그램도 아니고 소수점이라니!”

    체내 삽입형 칩은 원래 아이의 건강 상태나 학대 유무, 시기에 맞는 교육과 인구 조사 등을 위해 태어나자마자 모두의 목덜미에 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시 제도에까지 이 칩을 활용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유명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의 과거사 문제가 연달아 터지는 시기가 있었다. 알고 보니 학교 폭력 기록을 유학이나 자퇴 등의 방법으로 세탁한 뒤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명문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선행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에 대한 #너의과거도어둠이다 일명 ‘너과어’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줄줄이 흑역사가 터졌고, 그 시기에 어른들 뺨치게 잔인한 연쇄 살인 범죄의 가해자들까지 청소년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거름망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겼다.

    세상 모든 청소년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느니 도덕적이고 바른 인성을 가진 청소년에게 많은 혜택을 제대로 퍼부어 주자는 취지에서 생긴 ‘하터법’은 대한민국 입시 제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내신과 생기부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3학년생이 챙겨야 할 중요한 기준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인성, 도덕성 등의 품성과 더불어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을 체내 칩을 통해 증명해야 했다. 정부 산하 독점적 연구 기관이 그 시스템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트’를 모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인위적인 조작을 금하고 부정 입시의 여파를 단속하기 위해 하트를 어떻게 모을 수 있는지는 극비에 부쳤다. 그러나 극적 변별력을 갖췄다는 소문에 그와 관련된 온갖 사교육과 브로커가 판을 칠 것은 내다보지 못했다.

    하트를 모아야 하는 고3은 ‘하터’로 불린다. 하트는 0그램부터 100그램까지 있다. 평소의 언행, 흥분도, 민감도, 말투, 호르몬 등 어떤 것이 정확하게 하트에 반영되는지는 정부 소속 프로그래머밖에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절박하고, 모르기 때문에 과도해졌지만 어쨌든 이 방식은 새 교육 과정이 시작된 이후 3년째 폐지되지 않고 있다.

    여섬은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맸다. 눈치 없이 달랑거리며 웃고 있는 다람쥐 키 링을 보자 빈정이 상했다. 키 링은 본인이 모은 하트의 그램 수와 동일한 양으로만 주문 가능하다 보니 체급 차이가 컸다. 급수가 낮은 아이들은 일부러 키 링의 털을 부풀리거나, 옷을 겹겹이 입혀 커 보이게 하거나, 창피해서 아예 주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터 키 링을 달지 않은 고3 청소년을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먼저 굳었다.

    여섬은 80그램짜리 가짜 키 링을 손으로 꾹 눌렀다. 하지만 비싼 값을 하는지 다람쥐의 눈만 튀어나올 뿐 어디 하나 솔기가 터질 기미도 없었다. 지긋지긋했다. 공부만 잘하면 되지 인성을 왜 봐. 착하고 말고를 누가 평가한다는 거야. 누굴 위한 입시인데? 여섬은 입술을 꽉 물고, 키 링을 냅다 던졌다. 풍성한 갈색 꼬리를 가진 다람쥐가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강물로 떨어졌다.

    “아오, 속 시원하다.”

    여섬이 가방을 고쳐 메고 돌아서려던 순간, 어디선가 “안 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첨벙하고 누군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났다. 여섬은 난간에 기대어 몸을 숙이고 소리가 난 다리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노루처럼 뛰어오던 남자가 강물을 헤엄치는 중이었다. 뭐야, 저 사람? 여섬은 남자가 손을 뻗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방금 여섬이 던진 다람쥐 키 링이 동동 떠가고 있었다. 남자는 키 링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버린 거예요! 줍지 마세요 제발, 하고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내가 구해 줄게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또다시 첨벙 소리가 났다. 여섬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최단기 톱 하터 달성이 예측되는 전민수 목소리였다. 전민수는 학교 홍보 행사가 있거나 선행상, 표창장, 모범 시민상 등을 받을 때마다 영상을 올리는 애인 데다 여섬과 같은 학교에 다니니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기자라 사건만 생기면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인터뷰하기 바쁘지만, 그 덕에 희고 곱고 깨끗하게 생긴 얼굴과 순한 눈빛이 알려져 팬덤이 생겼다.

    전민수가 러닝남을 향해 망설임 없이 헤엄쳤다. 역시 천사 전민수. 위험에 빠진 시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남자. 소방관이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평온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꿈인 아이. 당연히 100그램 하터겠지. 완전하고 완벽한 하터. 입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준비된 고3.

    “이거 놔! 나 수영할 줄 알아.”

    러닝남이 전민수의 팔을 뿌리쳤다. 얼마나 꽉 잡았는지 손아귀에 든 여섬의 키 링이 짜부라졌다. 그걸 내려다보던 여섬의 눈과 러닝남의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 왜 저렇게 절박한 눈빛이지. 여섬은 눈길을 피했다. 그 틈을 타 러닝남의 목덜미에 팔을 두른 전민수가 힘껏 그를 끌고 물가로 헤엄쳤다. 여섬은 전민수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았다. 저 긴급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정말 멘털 하나 끝내준다. 여섬은 속으로 감탄하며 돌아섰다.


    토막 난 딸기 사체
    그때, 벚나무에 가려진 시뻘건 단층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소름’이라는 간판을 단 책방이었다. 여섬은 인스타그램에서 이 간판을 본 기억이 났다. 언제나 전민수의 선행 영상 다음에는 ‘우리 동네 학부모들이 극혐하는 장소 1위’ 같은 알고리즘이 떴고, 소름은 빠지지 않고 리스트에 올라왔다. 소문에 의하면 하터법 제정의 바탕이 된 청소년 살인마들과 관련이 있는 곳이며 서점 주인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냉기를 뿜는다고 했다. 소름에 들른 청소년들이 실종되는 일이 잦은데 경찰이 조사를 안 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어? 이건 내 키 링이잖아.”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해골 풍경 끝에 낯익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하트를 품에 안은 다람쥐였다. 조작된 일련번호까지 여섬의 것이 맞았다. 여섬은 키 링을 잡아 힘을 주어 당겼다. 그러자 끈이 툭 끊기면서 해골이 떨어져 나와 이마를 탁 때렸다.

    여섬은 눈앞으로 달려드는 해골에 한 번 놀라고, 동시에 벌컥 열린 문 너머로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는 검은 옷에 또 놀랐다. 큰 키 때문에 여섬의 눈높이에서는 검은 옷의 가슴팍 정도만 보였다.

    “이 키 링 주인 찾아 주려고 달아 둔 건데, 그 쪽 거예요?”

    여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옷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여섬이 그제야 시선을 올리니, 검은 옷이 바로 물에 뛰어든 러닝남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책방 주인이 러닝남이라니. 소름의 운영자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별명이 붙은 열아홉 살 청소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매서운 눈매 탓에 마주치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온갖 무시무시한 과거사를 배경으로 가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너, 김 화 맞지?”

    “이걸 뭐 하러 건졌어? 그냥 떠내려가게 두지.”

    “사람들은 너무 소중한 걸 잃을 때는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척하거든.”


    하터 캠프
    버스 안, 스무 명의 학생 중 명문 고등학교 학생은 단둘뿐이었다. 맨 뒷좌석에서 다리를 떨며 찡그린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전민수를 발견한 여섬은 두 눈에 물음표를 띄웠다. 전민수는 여섬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특유의 순한 표정으로 여섬에게 인사를 했다.

    “네가 여길 왜?”

    전민수와 여섬이 동시에 물었다.

    “어? 나는 봉사 활동 하러 가는 거야.”

    전민수가 대답했다.

    여섬은 잔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진로 선생이 여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하터 캠프’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 아빠와 상의했을 것이다. 하터 캠프는 하트가 많이 부족한 학생들을 모아서 사랑과 헌신에 대한 집중 교육을 하고 봉사 활동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터 캠프에 가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입시 막판이 되면 이런 캠프에 학생들이 넘쳐 난다.

    여섬과 전민수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 노인을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돕는 봉사를 맡았다. 여섬은 전민수가 시원한 실내에서 봉사하는 팀에 들어가려고 줄을 바꿔 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복지사는 전민수를 열외시킨 뒤 여섬과 같은 산책 봉사 팀에 넣었다.

    여섬은 꽃무늬 조끼를 입은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왔다. 노을이 내리기 전 오후 햇살이 환하게 내려앉았다. 캠프장 밖 숲길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있었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자꾸 그 길을 가리켰다. 여섬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전민수를 돌아보다가 휠체어를 밀며 먼저 숲길로 들어섰다.

    그때 어디선가 쥐어짜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섬은 생각에 빠져 있느라 숲속 깊숙이 들어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할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무릎 담요를 끌어 올려 몸을 덮어 주자 할머니 고개가 한쪽으로 푹 떨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여섬은 숨을 죽였다. 휠체어 브레이크를 건 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히 가 보았다. 옅은 어둠 속에서 다른 노인을 태운 휠체어와 모자를 눌러쓴 왜소한 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익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노인의 등을 밀고 있는 남자는 전민수였다.

    여섬은 벤치 뒤에 쪼그려 앉아 전민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분석할 여지를 찾으려 노력했다. 알고 있던 전민수와 지금의 전민수 사이에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다. 착한 전민수를 끌어내리든지, 이상한 전민수에 대한 오해를 풀든지 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사이 빠르게 어둠이 내렸다.

    하지만 전민수는 여전히 한 손으로 노인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노인은 휠체어 팔걸이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중이었다. 노인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넘어지기 직전이었다. 전민수가 한쪽 다리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그 발이 노인의 오금을 향했다.

    “......마.”

    노인이 있는 힘을 쥐어짜 내 말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섬은 천사와 악마 중 상대해야 하는 존재가 누군지 이제 명확히 알아챘다. 알고 있던 세계에 금이 쩍쩍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섬은 작은 돌 하나를 집어 전민수 뒤편으로 던졌다. 비겁한 놈이었어. 여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인이 넘어지면 전민수가 할 일들을 떠올렸다. 언어 장애가 있어 말이 어눌한 노인이 고집을 부려 일어서다 발을 헛디뎠다고 하겠지. 전민수는 그런 노인을 구하고 응급 처치를 한 뒤 모두의 시선을 즐기며 돌아가려는 거 아닐까. 여섬이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고 칭찬을 아끼며 냉철하게 대문자 티로 살아온 유일한 보람이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놀란 전민수가 돌아보더니 인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금세 차분해졌다. 전민수의 발이 다시 노인을 향했다. 노인은 온몸을 떨었다.

    보통 인간이 아니구나. 여섬은 다시 돌을 집어 더 가까운 곳에 던졌다.

    전민수가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찜찜했는지 노인을 휠체어에 앉혔다. 그러고는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전속력으로 휠체어를 밀며 뛰어갔다.


    태풍에 날아간 손모가지
    김 화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책방 문이 열렸다. 이 밤에 누가 왔지. 여섬이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를 던지는 소리, 욕하는 소리에 쿠당탕 소리가 이어졌다. 2;

    여섬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전민수가 먼저 눈에 띄었다.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작은 촬영용 카메라의 부품이 분리된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액정이 깨진 휴대폰은 더 먼 곳으로 날아간 채였다.

    김 화는 이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었다.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이 난장판은 다 뭐야?”

    “전민수가 달려들었어. 카메라를 들고, 난 온몸으로 막았을 뿐이고.”

    “물론 내 편집을 거치면 너만 나쁜 놈이 될 거고.”

    전민수가 키득 웃었다.

    여섬은 전민수가 어떤 판을 짰는지 알 것 같았다. 전민수의 특기는 이런 거였다. 자신이 선해 보일 수 있는 모든 방법에 전민수는 중독되어 있었다. 사랑과 인정, 관심만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이번에는 김 화를 타깃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쟤네 집에서 살인 사건 났을 때 말야, 범인한테 문 열어 준 게 누군지 알아?”

    전민수가 누운 채 킬킬 웃으며 말했다. 여섬은 그런 화법에 구역질이 났다. 칼자루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믿는 정서적 갑질. 극적 효과를 노리는 말투. 먹이를 찾은 듯 번들거리는 눈빛.

    “바로 김 화야. 문만 안 열어 줬어도 부모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김 화 네가 걔네와 한패가 아니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그중 하나는 네 친구였잖아.”

    전민수가 큭큭 웃었다.

    “그래서 넌 그걸 약점 삼아서 또 논란을 만들려고 왔어?”
    여섬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김 화의 가족이 겪은 사건에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김 화도 그 소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많은 것을 잃었다. 여섬은 더 알고 싶지 않았다. 소문은 불신의 틈을 노린다. 그 틈을 조금씩 벌려 마침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 헛된 말의 힘이다.

    “조회 수 백만은 보장되지. 나한테는 약한 놈과 나쁜 놈이 끝없이 필요해. 그래야 내가 착해지거든.”

    “친구가 추리 소설 다음 권을 빌려 달라고 오면 문을 열어 주는 게 보통 사람의 생각이야.”

    김 화가 전민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다 뒈졌잖아. 너도 짜고 친 거지? 너 보험금으로 이 건물 사서 책방 차린 거라며?”

    전민수의 도발에도 김 화는 차분했다. 여섬은 김 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번엔 여섬이 김 화의 손을 잡고 강둑을 따라 달려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 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김 화가 휴대폰 카메라를 켜더니 전민수가 피할 틈도 없이 목덜미를 훑었다.

    “이여섬한테 사과해라, 전민수.”

    ”뭐, 뭐? 내가 왜.“

    설정값을 넘으면 초록불이 들어온다. 그러나 전민수의 칩을 스캔한 기계는 삐빅- 경고음을 내며 빨간불만 보여 주었다. 전민수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사과해!“

    ”미안하다고! 이여섬, 너 이용해서 미안. 악마의 편집 미안. 내가 다 바로잡을게.“

    전민수가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여섬은 김 화와 눈이 마주치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전민수가 몸을 웅크리다 자기도 모르게 목에 댄 스캐너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결국 10하터도 안 되는 거였다. 사람들이 알면 경악할 등급이었다. 오히려 최근 이 구역 나쁜 놈으로 고정된 이여섬은 속이 후련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차가운 이미지였으니까. 여섬은 자기 모습대로 살면서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따뜻해지고 싶었다. 더 이상 가짜 키 링을 달 필요도 없어서 해골만 하나 달랑 달고 다녔다. 하지만 전민수는 다른 케이스였다. 전민수는 헌신과 희생, 봉사의 아이콘이었다. 날개 없는 천사였다. 추락할 깊이가 달랐다.

    전민수는 하얀 종잇조각 같은 몸을 말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 몸이 아주 작고 하찮은 조약돌 하나처럼 보여서, 여섬은 발로 뻥 차 버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