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지은이 : 피코 아이어 (지은이), 최지숙 (옮긴이)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6년 07월



  • 3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도원을 오가며 써 내려간 이 책은 단순한 수도원 체험기가 아니다. 산불과 죽음, 상실과 불안, 질병과 이별이라는 가혹한 터널을 통과하며 저자가 마침내 깨달은 삶의 본질에 관한 기록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법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웠고, 고독이란 혼자 있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은 연민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임을 깨달았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소란한 세상을 뒤로 하고 침묵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나를 처음 ‘침묵’의 길로 이끈 사람은 또 다른 친구 드와이트였다. 그는 내가 화재로 집을 잃고 남의 집 바닥에서 자는 모습을 보았고, 내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해안을 따라 3시간 반을 올라가면 혼자 쓸 방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침대 하나, 널찍한 책상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까지 있는 방을. 공용 주방에서 점심을 가져다 먹을 수 있고, 하루 두 번 누구나 따뜻한 샤워를 즐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아무런 의무도 없고, 하룻밤 권장 기부금은 고작 30달러였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서른네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흘 뒤, 나는 먼지 쌓인 흰색 플리머스 호라이즌에 올라탔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1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으로는 황금빛 언덕과 그 초원 위에 흩어진 검은 소 떼만이 보였다. 왼쪽으로는 미동도 없이 푸른 쟁반 같은 태평양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바위들 사이로는 하얀 등대 하나가 외로이 서 있었다.

    뒤이어 내 차 폭보다 조금 넓은 정도의 좁다란 길이 능선 꼭대기를 향해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굽잇길을 돌 때마다 저 멀리 발밑으로 펼쳐진 바다와 멀어지는 해안선이 숨이 멎을 듯한 절경을 선사했다. 길 끝자락에 있는 서점에 들어서니 젊은 수도사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모텔 문들이 줄지어 선 것처럼 보이는 허름한 건물 안에 마련된 내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둠 속에서 별들이 하늘을 하얗게 물들인 밤, 나는 방을 나와 20초 거리의 서점 옆 작은 언덕길을 올라갔다.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한쪽 그릇에 놓인 촛불 하나 그리고 반대편의 얇고 푸른 유리잔 속에서 일렁이는 또 하나의 불빛 외에는 빛이라곤 거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소박한 공간의 정적 속에 앉았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밖으로 나오자 달빛이 내려앉은 길이 우윳빛으로 흐릿하게 빛났다. 이곳만큼 지구가 둥글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느껴진 곳은 없었다. 마치 컵을 흔들어 쏟아낸 듯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남쪽으로 12마일 떨어진 굽잇길 너머로 자동차 후미등 불빛이 사라져갔다. 

    내면의 소란함을 덜어낸 상태가 이토록 풍요롭게 느껴지다니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이곳으로 차를 몰고 오며 머릿속으로 되풀이하던 자문자답도, 다음 주까지 맞춰야 할 마감 기한도, 일본에 있는 연인에 대한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전부 다. 깨끗이. 이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앎이었다.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다시 햇살 속으로 나서다가 폴라와 마주치고,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직업적으로 공통점이 많았지만, 지금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이었다. 

    “겪으셨다는 화재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정말 끔찍했겠어요.”

    “충격이었죠.” 나는 여전히 그때의 가마솥 같은 열기 안에 갇혀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머니의 고양이가 무릎 위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괴로워하던 게 아직도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평소처럼 거실에 앉아 있다가 불과 1분 만에 5층 높이의 불길에 포위되고 말았다.

    “거기 갇혀 계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나요?”

    “세 시간 동안이나요. 살아남은 게 천운이었죠, 이름 모를 은인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어요.” 불길이 새로 번질 때마다 조금이라도 막아보려 자신이 몰고 온 급수차 호스를 갖다 대던, 텅 빈 산길 위 웃통을 벗은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천식 발작이 왔을 때처럼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동차가 대피 장소로는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비탈을 타고 빠르게 치솟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는 마치 얇은 스카프로 장난을 치듯 발아래 청록빛 바다를 보여주었다가 이내 다시 감춰버렸다.

    “모든 걸 잃었던 그 경험이 당신을 이곳으로 오게 했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일이 많은 것들을 향한 길을 터준 건 분명해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와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앞둔 채 나는 눈부신 햇살 아래 앉아 있었다. 폴라와 나누었던 대화 때문이었을까, 그때의 기억이 요동쳤다. 불길 속에서 사투를 벌인 지 몇 시간 만에 나는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도로를 질주했다. 사방에선 집들이 연기를 내뿜고, 길가에는 박살 난 자동차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플로리다에서 조카를 만나고 있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야 했다. 어머니의 59년 인생이 담긴 사진들, 기념품들, 보석과 강의 노트가 전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그래도 뭔가는 남아 있겠지.”

    “아뇨.” 내가 말했다. “다 사라졌어요. 전부 다요.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게 재가 됐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한 친구의 집으로 가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나는 컴퓨터를 좀 쓸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 내 일은 ‘타임’ 뒷면에 실릴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고, 나는 방금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화재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돌아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에서 접한 시 한 구절로 짧은 글을 끝맺었다. 그 어떤 사건도 단순히 좋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나의 직감은 그때부터 내게 속삭이고 있었던 듯하다.

    집이 다 타서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선명히 보이네
    떠오르는 저 달이


    고요 속에서 길어 올린 힘으로 매일을 산다는 것
    빨간 지붕에 흰 외벽을 두른 성 프란치스코 요양원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침대 위 모니터 속 선이 평평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을 때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서류에 서명하고 시신을 수습하러 온 검은 옷의 사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금색 실크 사리를 입은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평온하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산 위에 지은 새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곧장 침실로 걸어가더니 끼고 있던 팔찌들을 모조리 벗어 던졌다. 금붙이들이 사방에 내동댕이쳐졌다. 이제 누구를 위해 아름다워져야 한단 말인가. 열일곱 이후 줄곧 사랑한 유일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방을 들여다보았지만, 어머니는 격렬하게 손을 내저으며 나를 쫓아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추도식을 준비하고 친구와 친척들에게 소식을 알릴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부고 기사를 쓰고 현관문 앞에 배달되는 애도의 꽃들을 미소 지으며 받아내야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어느 이른 아침, 친구가 어머니 곁을 지켜주기로 한 날, 나는 동트기 전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 차에 올라탔다. 산길을 올라 고개를 넘은 뒤, 산등성이를 굽이치며 올라가는 오솔길 쪽 좁은 도로로 접어들었다.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고요가 나를 감싸안았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자동차 소음 너머로 파도가 한숨 쉬듯 밀려왔다 물러가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길 아래쪽에서는 성찬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두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러고 나서 다시 굽이치는 산길을 세 시간 반 동안 달려 내려왔다. 이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산불의 위험도 사라졌으리라 믿은 여름의 끝자락에 마을 전체의 배관 시설이 고장 났다. 번개가 하늘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침 기도를 마친 직후, 남쪽으로 7마일 떨어진 곳에서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몇 주 뒤. 뇌우로 인해 아홉 건의 화재가 발생했고, 그중 여섯 건만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사방이 매캐한 연기로 자욱했다. 검은 하늘 아래 태양은 오렌지빛으로 타올랐다. 상당수가 군용인 헬리콥터들이 수도원 위쪽 호수에서 물을 길어 올려 2분 간격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재가 눈처럼 쏟아졌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수도사 열아홉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남은 일곱 명의 수도사는 친구 한 명, 작업자 두 명과 함께 남아 삶의 터전을 지키기로 했다. 대피한 이들은 한 시간 반 거리의 카멜에 있는 한 여관으로 향했는데, 공동체의 지인이 그들을 위해 마련해준 숙소였다. 그들은 모델의 공용 공간에서 야간 기도와 저녁 기도를 올리고 성찬례를 행했다. 식기세척기를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훗날 수도원 소식지에는 이런 기록이 실렸다. “수도원에도 이런 기계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우리 모두 생각했다.”

    수도사들은 그곳에 여러 날 머물며 요리와 청소를 하고, 평소처럼 모든 기도 일과를 거행했다. 산불은 7주째 맹렬히 타올랐다. 1,200제곱마일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서 불길이 닿을 수 있는 건물이래야 오직 수도원뿐이었다. 이 지역의 피해액은 8,800만 달러(약 1,339억 원)에 달했다.

    수도사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차량 다섯 대가 출발할 때, 불도저 작업반의 거친 사내들이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베데 수도사가 구워준 ‘엄마표 커피 케이크’ 맛에 푹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수행처에서 이 긴박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한 재가 수행자가 내게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해 왔다. 그는 몇 해 전, ‘수도사(monk)’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내 책을 읽고 나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다 그의 집에서 3,000마일, 내가 살던 일본의 아파트에서 5,500마일 떨어진 이곳 빅서의 수도원 길에서 우리는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그는 내가 머무는 트레일러까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엘레드는 에너지와 기쁨이 넘치는 단단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코네티컷 북서쪽 언덕 19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일본식 모래 정원까지 갖춘 1인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찬송가를 수십 곡씩 써 내려갔는데, 때로는 인도의 베다 경전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편지 속에서나, 직접 만났을 때나 그는 넘치는 열정으로 나를 압도하곤 했다.

    이제 그는 중국풍 연꽃 그림이 그려진 아름다운 카드로 내게 소식을 전해온다. 편지에서 그는 불길이 다가오자 수도사들 몇 명이 끝까지 빅서에 남아 터전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수행처는 무사하지만, 체중은 117파운드(약 53킬로그램)까지 줄었다고 적었다. 또한 에이즈는 치료법이 없으며, 일부 기독교 동료들은 이 병을 두고 ‘신의 응보’라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랫동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그 공간을 돌볼 수 없는 상태라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친구들이 경내를 돌봐주고 있어요.” 그가 나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갖는 좌선 수행도 계속 이어가고 있고요. 그렇긴 해도, 평생을 바쳐온 일터에서 떨어져 있으니 마음이 어수선하네요.”

    그의 시 백여 편이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저의 25년 공력이 담긴 작업이지요. 그래서 이 일을 고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부디 일본 나라의 명물인 감과 그곳의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몇 주 뒤, 이제는 익숙해진 그 주소로부터 또 한 장의 카드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정성스럽게 쓰인 서체가 보이지 않았다. 카드를 보낸 이는 엘레드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이 내게 편지를 쓴 지 불과 2주 만에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산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보낸 ‘희망’에 관한 책을 전해 받은 상태였다.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
    4월의 눈부신 오후, 내가 머무는 트레일러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햇살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얼굴 하나가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수도원 내에서 가장 사교적인 수도사와 서점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며 안면을 터왔는데, 그에게선 당장이라도 넘쳐흐를 것만 같은 활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가 가져온 티백을 주전자에 넣었고, 우리는 우리가 최근 읽고 있는 소설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들에 관해서도(그는 한때 여행을 참 많이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삶의 고충에 관해서도, 햇살 가득한 이 고요 속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베트 전통이 강력한 이유는,” 친구가 말을 꺼냈다. “공동체 전체가 곁에서 그들의 수행을 지지해 주기 때문이지.” 그는 말을 멈추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쿠키를 조금 베어 물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세상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거야.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오직 더 깊은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뿐이라네. 그저 무언가를 행하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지.”

    “그게 수도사들의 특별한 사명이겠군. 고독에서 얻은 결실로 공동체를 더 깊어지게 만드는 것 말이야.” 카말돌리 수도회는 수도사들이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잠을 자지 않는 보기 드문 종파다. 하지만 나는 성당의 의자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곤 했다. 그것은 수도사들이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배치 같았다.

    “수도사들이야말로 진정 반체제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내가 말을 이었다. “세상 끝에서 이렇다 할 자원도 없이 그저 의구심과 두려움을 홀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성 바오로(St. Paul)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 ‘우리는 희망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라고.”

    밤마다 수도원의 그 짙은 어둠을 홀로 통과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방금 영성 지도 신부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이야.” 친구가 설명했다. “내게 가족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내 모든 이상까지도 말이야! 꿈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온전히 공동체에 내맡기라고 하시더군. 나는 완전히 벌거벗겨진 기분이었어!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챙겨온 짐보따리가 세 개나 있었어. 하지만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는 순간,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분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셨지.”

    그는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말을 멈췄다. “내 이상들을 버리라니.”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의 형제들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지 않으려고 그것들을 붙잡고 있었다는 걸 그분은 꿰뚫어 보신 게지. 도망칠 구실로 매달리던 무언가를 말이야.”

    “토머스 머튼이 떠오르는군.”

    그가 미소 지었다. “정말 그래. 동방 전통에서는 ‘아바(abba)’가 모든 수도사를 보살피는 영적 지도자 역할을 하지. 하지만 우리 전통에서 수도원장님은 관리자, 말하자면 운영 책임자에 더 가까워. 그래서 우리에게는 수도원의 규율 자체가 영적 지도자가 돼. 다만 의지할 것이 그 규율뿐이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가 떠난 뒤에도 내 방의 고요는 그가 했던 말들 그리고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과 부딪혀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수도사가 떠올랐다. 달빛 한 점 없는 밤을 비추는 손전등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던 이었다.

    어느 날 수도원 길목에서 그 수도사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있었다. “모든 희망을 내려놓는 일이란 정말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수도자의 삶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말이에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 죽음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믿습니다. 이것은 삶을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과정이지요.”

    그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갈망 자체가 곧 황홀경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가혹함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
    이따금 나는-친구들도 계속 내게 묻는다-침묵하며 보낸 이토록 오랜 시간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생각해 본다. 그 변화의 양상은 일일이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이제 내게 기쁨은 쾌락의 반대말이며, 자유는 한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생겨난다고 느낀다. 길 위에서 헐떡이며 내달리던 그 자아를 이제는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인파로 붐비는 공항에서도 이제는 자석에 이끌리듯 햇빛이 드는 조용한 구석을 찾게 된다. 퇴근하는 히로코를 기다릴 때도-그게 20분이 될지 90분이 될지 알 수 없지만-나는 그저 불을 끄고 바흐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어떤 밤에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한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에 마음이 쓰이고, 내가 히로코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까 봐 두려워지기도 한다. 세상의 혼란과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럴 때면 저 아래 바다 위로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을 떠올리며 다시금 더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 안에서는 절대적이거나 최종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는 어느 수도원에서나 핵심이 되는 화두이지만,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수도자들과 수녀들 곁에 머무는 이유는 그들이 본질적인 수행에 삶을 온전히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상실의 한복판에서도 사랑하는 법, 죽음을 앞두고도 희망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처한 환경-성당 위로 산불이 치솟고 발밑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빅서의 수도자들은 거대한 단층 위에 살고 있다)-은 그 어떤 확신도 허락하지 않는다. 공동체에서 누구보다 독실하고 지혜로운 빛 같던 수도사도 생의 끝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반면, 정치학 교수로 일하며 종교적 수행과는 무관하게 살아왔음을 허물없이 시인하던 내 친구는 자신이 떠날 날이 고작 일주일 남짓 남았음을 알면서도 평온하게 침대에 앉아 뉴스를 보고 나와 히로코와 담소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