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면서
 
지은이 : 김지혜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19년 09월




  •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소중한 시기에 그들은 왜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는 것일까?” 저자는 오랜 세월 교육 현장에서 사춘기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이러한 의문이 생겼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살펴봐도 사춘기 연령대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22개 OECD 국가 중 20위라는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각 가정을 들여다보아도 사춘기 자녀들과 부모의 갈등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꿈 _ 나도 날고 싶어요

    나도 나를 모르겠어요

    ‘나는 누구인가?’ 고민과 함께 시작되는 사춘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진짜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등 아이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끝도 없다.


    스스로 던진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좌절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벌써 자기 진로를 결정하고 성큼 앞서가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다. 이 와중에 부모님은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진격하라고만 하니 미쳐버릴 지경이다. 공부는 지겹고 학교는 답답하며 사회는 무섭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청소년기는 사회적 요구와 생물학적 성숙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로 사회와 문화가 요구하는 가치에 대한 갈등과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 즉 자아정체감을 형성해 간다고 했다. 한 개인이 겪은 위기, 기회,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의 합을 통해 자신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십대들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나의 시험 성적은 어떠한가’가 함께 따라붙는다. ‘나’를 성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해 버리는 어른들이 싫지만 자기 자신조차도 ‘영어 잘하는 애, 수학 잘하는 애, 우리 학교 전교 1등’ 이렇게 시험점수를 배경으로 자신과 주변 친구들을 규정 지으며 자신을 평가한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일류 대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가 돼버렸고 성적만으로 비교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으니 성적과 연관 지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좋은 성적=좋은 대학=인생 성공’의 공식이 주입된 상황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고민을 해야 하는 십대들은 버겁고 혼란스럽다.


    꿈이요? 없는데요?

    명문대학을 목표로 초등시절부터 공부에 찌든 삶을 사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학원으로 내몰리거나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그래서인지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은 누가 겁을 준 것도 아닌데 3월이면 과하게 긴장한다.


    학기 초 어김없이 시작되는 학생들과의 어색한 상담. 교사의 입장에서 “너는 언제 제일 행복하니? 너는 어떤 사람이니? 좋아하는 건 뭐니?”라는 질문을 먼저 하고 싶지만 주어진 상담시간 안에 많은 학생을 면담하고 그 내용을 기록해야 하다 보니 교사의 질문은 직접적인 물음이 되고 학생의 대답은 단답형이 된다. 반 구성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언제 행복한지보다 “중간고사보다 기말고사 성적이 더 떨어졌네. 동아리활동은 어때?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등등 양적인 부분에 치중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상담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너는 꿈이 뭐니? 하고 싶은 게 뭐니? 뭐할 때가 가장 행복해?”라고 묻지만 학생들은 한두 단어로 집약될 수 없는 이 문제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담임선생님과 상담이라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이제 만난 지 얼마 안 된 담임선생님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털어놓기는 어렵다. 질문을 쏟아내는 선생님에게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포장해서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해야 할지 고민도 된다. 진짜 고민, 일 년만 잘 버티자는 생각으로 진짜 모습을 숨긴 채 어떻게 하면 좀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찍히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상담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꿈이나 이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말을 듣고 응원을 해줄지, 현실성이 없으니 꿈 깨라는 말을 할지,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다는 질타를 할지 모르고 자신이 꼭 꿈을 이룬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도피처를 찾는데 그것은 바로 ‘꿈’을 회피하는 것이다. 차라리 꿈이 없다고 말하면 속이 편하다. 꼭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학진학’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한다.


    많은 학생들이 꿈꾸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지금 당장 꿈이 없는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믿거나, 아니면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건지를 고민한다. 우리의 십대들이 받아들이는 꿈은 삶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므로 한 번 결정하면 책임까지 감수해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부 _ 중요한 거 아니까 열심히 하잖아요

    짜증나게 행복은 성적순 맞아요

    자녀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때 경험하지 못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야말로 ‘그 결과’에 따라 지금까지의 자녀교육을 심판받는 양 중학교 입학 전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평가’에는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들보다 못하면 그 노력이 저평가되는 현실 때문이다.


    어른들이 승진에 목숨을 거는 것도 조직 내에서 선택권을. 경제적 혜택을 더 많이 선점하기 위한 것처럼 학교에서는 ‘성적’이라는 기준은 암암리에 거스를 수 없는, 무엇보다 객관적인 잣대처럼 활용되며 선택 또는 선택되어지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십대들이 수없이 되뇌는 말이지만 학생으로서 현실은 성적이 곧 자신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상담을 하다 보면 공부로, 성적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는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더 끌어올리고 주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학생 또한 많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성적이라는 것이 자기 의지대로 오르지 않는다.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외모 콤플렉스 _ 나를 가꾸고 싶어요

    외모에 신경 쓰는 것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는 키가 작아서, 머리숱이 적어서, 뚱뚱해서, 여드름이 많이 나서, 못생겨서... 그 이유는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자들도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으며 감추고 커버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열이면 열 모두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을 보인 적이 없다. 방학이 되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 코를 높이겠다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이제는 평범한 현상처럼 보인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외모가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욕구일 것이다.


    대중문화가 십대 아이들의 삶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면서 매스컴을 통해 접한 유명인들의 외모가 일반인에게도 미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성형외과에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OOO처럼 수술해 달라며 연예인의 이름을 댄다. 강남미인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고 개성보다는 보편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모에 대한 불만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자기를 주눅 들게 하는 부분만 채우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아들러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면서 우리는 비로ㅅ소 인간이 된다고 강조했는데 키가 작아 왜소했던 나폴레옹이 무시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영웅이 된 사례에서 열등감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남들의 반응에 민감한 십대 아이들에게는 그 부족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들이 콤플렉스라고 여기는 요소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꾸려 하는 ‘의지’다. 외적인 부분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더라도 마음의 열등감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멋지게 키워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자신이 빛날 수 있다는 원리를 알려주면 좋겠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자기만이 소유한 매력임을 깨닫게 된다면 자기 삶을 가꾸는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엄마 _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세요

    엄마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사춘기 십대들의 표현은 어른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를 때가 많다. 시키지 않아도 재잘거리며 말을 잘 걸어오던 아이가 어느 순간 대화를 거부하고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자기의 내면을 보이기 싫어하기도 한다. 부모가 눈치 채고 아는 척하면 들켰다고 생각하고 더 비밀스럽게 간직하려 잔뜩 움츠린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겪는 사춘기다. 유별날 것도 없는데 자신의 자녀만 유별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이유를 물으면 마구잡이로 쏘아 붙인다. 마음으로 자녀를 이해하려 하지만 바로 코앞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들 그냥 두고 보기 힘들다. 윽박도 질러보고 돌아서 한숨도 지어보지만 아이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사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지적을 받고 나면 뭔가 마음속에서 이유 없는 반항심이 생기고 억울함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지적에는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러움이 트레이드마크라도 되는 양, 툴툴거리고 감정이 ‘욱’해져 거친 말이 뱉어진다는 것이다.


    십대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또는 충고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말이나 행동이 정의롭게 혹은 누구나 인정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반항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못마땅해 하고 자책한다. 그저 그 순간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미성년’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두고 보호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 큰 인간으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그들이지만 궁지에 몰리거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손짓, 눈짓, 몸짓으로 최선을 다해서 부모에게 SOS를 요청하는 것 또한 그들이다. 우리는 이런 특징을 알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 지도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으로 십대 자녀를 대한다면 어느 부모든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이가 스스로 마음에 친 철옹성은 쉽게 열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철옹성을 쌓기 전에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는 너무 자세하게, 면밀하게 들여다보려고 속속들이 캐내려고 하지 말아야 함을 당부한다. 애를 쓰면 쓸수록 서로 오해만 깊어지고 의도하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서로 함께, 서로 말없이 지켜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성 친구 _ 나를 설레게 하는 그 애가 좋아요

    차라리 모른 척해주세요

    부모에게 “자녀가 이성 친구가 있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의 부모들은 당연히 “NO”라고 답한다. “만약 자녀가 이성 친구가 있다면 부모님에게 말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부모가 “YES”라고 흔쾌히 말했다.


    아이들의 설문조사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이성 친구와의 교제를 부모님에게 말하겠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일부 학생만 ‘떳떳하게 만나고 싶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숨겨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말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불편하다, 모르는 게 약이다, 엄마가 알면 잔소리가 심해진다’고 하며 ‘아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아마 아시면 사사건건 간섭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울타리에 있는 현재를 인정하지만 언젠가는 세상 속으로 돌진하고 싶은 갈망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을 부모님이라도 침범한 수 없는 고유의 세계라고 여기고 그 공간에서만큼은 독립적이고 싶어 한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이들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십대이기 때문에 이성교제를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부모님이 직접적으로 묻거나 교제사실을 들켰을 경우 등 알려야 할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숨기지 말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녀들의 편에서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 _ 저는 괜찮지 않아요

    골치 아픈 친구관계보다 차라리 혼자가 편해요

    은주는 친구들 사이에서 착한 아이로 알려져 있다. 평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친구들에게 흔쾌히 선물로 주는가 하면 용돈을 받으면 주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잘 사주는 친구로 소문났다.


    은주 어머니는 용돈을 헤프게 쓰는 은주가 못마땅하다. 어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 은주는 친구들 사이에서 먹을 거 잘 사주고 자기 물건을 흔쾌히 빌려(?)주는 착한 친구일 뿐이다. 다만 은주가 왜 이런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은주를 지켜보고 대화를 하며 알게 된 것은 은주는 돈을 쓰면서 친구를 사귀는 패턴이 있었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제공해야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푼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은주와 비슷한 패턴을 가진 학생 중에는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한 친구가 없다. 특히 십대들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기에 친구에게 행하는 행동이나 말, 제스처를 종합해 보면 주변에 친구가 없는 상황 또는 인기가 없어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행동 저변에 깔려 있다.


    대성이는 매일 학교도서관을 찾는다. 교실에서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도서관만 가면 내 집처럼 편안하고 주인이 된 것 같다. 거의 매일같이 얼굴도장을 찍은 덕에 사서 선생님과도 친해져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대성이처럼 친구보다 선생님 주변만 맴도는 학생들을 매년 만난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머리 아픈 또래들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더 편안해 한다. 이를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또래와의 소통방법을 고민하고 발전시켜가야 할 발달단계를 소홀히 한다면 앞으로 맺게 될 다양한 관계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힘들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친구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거나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친구와의 관계에서 자기보다 친구의 생각, 의견에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있다. 힘들게 맺은 관계에서 혹시라도 친구가 서운해할까 봐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을 친구에게 맞추려고 한다. 이런 성향의 친구들은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것을 공유하려 하고 상대방에게 사소한 것에 서운함을 느끼며 친구 관계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친구가 많은 학생은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진솔하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다가가기란 참 쉽지 않기에 솔직함은 친구 관계를 맺는 첫 단추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감추려고 노력한다. 첫 단추를 꿰는 법을 모르고 친구를 사귀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려 한다. 이런 친구들 대부분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상대를 위해 항상 뭔가를 더 해주어야 한다고 느낀다. 또는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언제나 도와주어야 하고,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나 희생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친구는 ‘서로’와 ‘쌍방’의 관계라는 인식이 먼저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더 우호적으로 다가가는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예쁘고 멋진 모습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못난 구석도 보여주며 그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이때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밝혀주면 좋다.


    친구 관계에도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자기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기가 힘든 것처럼 상대방도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친구와 마음을 나누다 보면 소중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은연중에 들려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삶이 풍요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기쁨과 슬픔, 고민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많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힘든 시기를 통과하는 청소년 시기에 함께 웃고 울며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기를 바라며 부모도 기꺼이 자녀의 친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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