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부모가 된다
 
지은이 : 정승익 (지은이)
출판사 : NEVER GIVE UP(네버기브업)
출판일 : 2024년 08월




  • EBS 강사가 교직을 떠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을 솔직하게 담은 이야기입니다. 17년간 교사, 강사, 아빠 역할을 모두 잘 하려 했지만, 어느 날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자신이 모든 역할을 잘 할 수 없음을 깨달은 후 퇴직하고 아빠로서의 삶에 집중하게 됩니다. 부모가 알아야 할 교육적인 내용과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된다


    그렇게 부모가 된다 - 부모 이야기

    2022년 11월 20일, 아빠가 교사를 그만둔 날

    11월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항상 어린 두 녀석과 잠자리에 함께 누웠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슬쩍 빠져 나와서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것이 저의 루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아빠와 함께 누운 아이들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요. 얼마나 잠들고 싶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때 그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9시에 잠자리에 든 아이들은 10시, 11시가 되어도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예상 수면 시간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참다못한 제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저는 살면서 누구에게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잠을 안 자니까! 아빠가 일을 못 하잖아!"


    글로 표현해서 잘 안 느껴지시겠지만,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친 겁니다. 아이들은 놀라서 울지도 않았습니다. 이 급발진이 너무 갑작스러웠겠죠. 저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겨우 잠든 새벽, 책상에 앉았습니다.


    '나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마흔의 나는 나쁜 아빠구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여행도 가고, 자녀 교육서도 참 많이 읽었는데 저는 나쁜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살면서 내 본 가장 큰 소리로 화를 냈으니까요. 제 삶에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괜찮지 않았습니다. 매일 할 수 있다고 혼잣말했는데 사실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느꼈습니다. 전부 다 끌고 갈 수 없었고,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마흔이 되어서 저의 마지막 팔팔한 젊음을 무엇에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마지막 청춘을 좋은 아빠가 되는데 쓰기로 결심합니다. 제 마음에게 새벽 내내 물어봤는데 그것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일은 학교 일이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도 학교 일은 내내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학교를 떠나, 아이들 곁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소리치는 그런 일은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제가 힘들다고 많이 징징(?)거렸기 때문에 아내는 언제든지 힘들면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드디어 왔다고 아내는 느꼈나 봅니다. 아내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렇게 월요일에 학교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퇴직원을 제출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 봄에 저의 17년 교직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지독한 우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회사를 관두신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구체적으로 여쭙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퇴직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저 아버지께서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집으로 오셨다고만 들었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보다는 훨씬 세련된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이 가정 분위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자주 부딪히셨고, 가정에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어린 마음에 차라리 아버지께서 회사에 다니시면 할머니와도 덜 만나고, 돈도 더 벌 것이라는 생각에 아버지가 집에 오래 머무시는 것을 좋 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누나와 저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도, 시간이 있으셔서 학교에 자주 오시는 것도 그때는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기억할 정도로 아버지가 학교에 자주 오셨었는데, 당시에는 아버지가 좀 부끄럽기도 하여, 충분한 반가움을 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집 밖에서 돈을 부지런히 벌어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퇴직을 하고 보니, 딱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던 그 나이에 저도 퇴직을 결심했더군요. 지독한 우연 또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이 참 재밌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겠다고 평생 다짐하며, 아버지보다 더 돈을 많이 벌겠다고 악착같이 일을 했는데,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시기에 왔고, 그때의 아버지와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한 분이셨습니다. 다만 모난 천재, 부모와 시대를 잘못 만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할머니와 자꾸 싸워서 엄마를 힘들게 해서인지 아버지의 부족한 면이 더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소위 불같은 성격을 갖고 계셨고, 화를 꽤 자주 내셨습니다. 의외로 저도 이런 면에서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안 그런 척 웃고 다니지만, 속에서는 불이 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화를 참 멋없게 내셨습니다. 멋있게 화를 낸다는 것은 차분하지만, 묵직하게, 딱 자기의 주장을 하는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흥분이 앞서고, 목소리가 떨립니다. 그래서 할 말도 제대로 잘 못 하십니다. 참 멋이 없죠. 지금 제가 똑같이 그렇게 합니다. 아내가 그 러더라고요. 제가 화를 낼 때 목소리가 아버지랑 똑같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맞습니다. 아버지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제 안에 있는 겁니다.


    퇴직하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도 퇴직을 결정할 정도로 큰 고민을 하셨겠죠. 퇴직 이유를 굳이 묻지 않은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출장이 많은 회사에 다니셔서 어릴 적, 집에 거의 안 계셨습니다. 아버지도 저처럼 돈을 버시느라 아들딸 크는 모습을 보지 못하셔서 아주 괴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이 퇴직 결정에 큰 몫을 했겠죠.


    참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제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으시고 내내 돈을 버셨으면 했는데, 그때의 아버지처럼 저도 집으로 왔습니다. 지독한 우연 또는 이미 예정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역시 보통 사이가 아님을 느낍니다.



    그렇게 부모가 된다 - 진로 이야기

    자녀 진로의 시작은 자기 인식부터

    자녀의 진로에 대해, 특히 초중등 자녀를 둔 가정에서 어려워하십니다. 진로를 위해서 지금 당장 특정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진로에 대한 검사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진로 검사에서 나온 대로 진로를 결정하실 분이 있으실까요? 참고만 할 뿐입니다. 초등 자녀의 선호 진로가 교사, 의사, 유튜버라고 해서 자녀가 성인이 되어 그 직업을 선택할 거라고 믿지는 않는 것처럼요.


    진로의 시작은 자기 인식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파악할 기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시간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자칫 생략되기 쉬운 세상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인식하기 전에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접하는 세상입니다.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취하는 것이 수월합니다. 그렇게 자기 인식이 생략된 채로 초등에서 세상이 선호하는 직업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진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아닙니다. 진로를 위해서는 최대한 나에 대해서 내가 잘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상상을 해 봅니다. 한 남자가 평생 자신의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생을 보냈다면, 이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모를 겁니다. 떡볶이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그 음식에 대한 기호를 알 수 없습니다. 공포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영화 취향을 알 수 없을 겁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 없이는 자신의 사교성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할 때 새로운 나를 알게 됩니다. 평소에는 관심 가지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을 때,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여행을 갈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됩니다.


    독서는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역사, 철학, 물리, 화학, 경제, 경영, 천문학 책을 넘겨 보며, 나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저 계속 읽기만 해도 내가 어떤 분야에 반응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현실적인 문제도 진로 선택에 당연히 반영됩니다. 저도 공무원이 되는 데에 가정 형편이 큰 지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에게는 공무원이 아닌 몇 가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그 선택지 중 공무원을 선택한 거죠. 이처럼 일반 김밥인지, 참치김밥인지, 짜장인지 짬뽕인지 정도의 선택지는 늘 나에게 있습니다. 이 선택마저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초등에서부터 독서, 경험, 대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첫 번째 교육 이야기 - 선행 이야기

    맹목적 선행은 아이에게 최악입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기별로 어디까지 선행을 해야 할까요? 무조건 더 많이 앞서가면 좋은 걸까요? 중학교에서부터 공부와 멀어지는 비율이 최소 30% 수준입니다. 많게는 70%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중학교에서 최하 등급을 받는 지역도 있습니다. 빨리 가려고만 해서는 '아차' 하면 중학교에서 공부 관련해 아이가 손댈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시기별 진도에 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에 가까운 원칙을 명심해야 합니다. 바로, 현행이 완벽한 상태에서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단순하고 묵직한 사실을 잊기 때문에 공부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진도도 다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가 선행을 하면 이해를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공부를 하니 공부가 답답하고 어려워집니다. 아이의 공부 흥미를 떨어뜨리는 가장 손쉬운 길이 아이 수준보다 훨씬 높은 난도의 학습을 하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현행을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크고 작은 시험에서 모두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등에서는 정식 시험은 치르지 않지만 그래도 쪽지시험, 진단평가, 단원평가 등 다양한 시험을 담임 선생님께서 실시하십니다. 초등에서 사교육 참여율이 85%에 육박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이 현행 진도를 다루는 시험에서 80% 정도는 100점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모르시면 아이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전국적인 수준의 극소수의 학군지를 제외한, 전국 대다수 지역의 초등학교에서는 진단평가에서 100점을 받는 아이들이 소수입니다. 성적이 매우 매우 낮은 아이들도 다수입니다. 그들은 공부에 질려 버렸고,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입니다. 공부를 꽤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점 만점에 20점도 안 되는 점수를 받곤 합니다.


    아이들은 초등에서 매 시험 100점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인정과 칭찬은 아이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이 성공 경험이 아이에게 노력의 힘을 깨닫게 하고, 자존감을 높입니다.


    중등에서는 일단 내신에서 전과목 A등급에 도전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고등 선행을 하는 아이가 중학교 시험에서 A등급을 못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학교 시험 문제는 다소 꼬여 있기는 합니다. 정형화된 스타일이 없는 편이라서 대비가 수월하지 않은 문제들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90점은 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까다로운 시험에서조차 본인 역량으로 A를 받을 수 있어야 고등 이후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다시 한번 기억해 봅니다.


    "현행이 완벽해야 선행을 할 자격이 있다.“



    두 번째 교육 이야기 - 공부의 본질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2가지

    현재 초등학교의 사교육 참여율은 85%에 육박합니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막대한 사교육비가 교육 현장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효과가 중학교까지 지속되지 않습니다. 학교별,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절대평가 방식인 중학교의 A등급 비율은 약 30% 수준입니다. E등급도 이와 비슷하게 30%~50%까지를 차지합니다. 이 수치가 초등에서의 교육열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초등에서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는데 A등급을 최소 절반 정도가 받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A등급만큼이나 60점 미만에 해당하는 E등급의 비율이 높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부모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막연한 선행, 진도는 교육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한다면 우리 아이는 A등급을 받을 확률만큼이나 E등급을 받을 확률도 높습니다. A등급을 받으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겁니다. E등급을 받는 아이가 E등급을 받고 싶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크게 2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 번째, 강력한 목적의식이 필요합니다. 목적이 있다는 것은 고통을 참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치킨, 피자를 거뜬히 참을 수 있을 겁니다. 매일 혹독하게 근육을 만들 겁니다. 근육을 만드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근육에 상처를 내는 고통의 과정입니다. 이들은 목적이 있기에 기꺼이 그 고통을 참습니다. 마라톤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매일 혹독한 달리기 훈련을 참을 겁니다. 이게 참 신기합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에게 달리기를 시키면 일종의 처벌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학창 시절에 뭘 잘못하면 운동장을 뛰곤 했습니다. 그것은 벌이었습니다. 팔굽혀펴기도 처벌의 일종으로 쓰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있는 이들에게 이것은 운동이 됩니다. 자기가 알아서 팔굽혀펴기를 근육이 찢어지도록 하고, 달리기를 합니다. 목적의식은 고통을 내 것으로 만듭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100% 모두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고통을 참을 의지가 없는 이들은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공부에 수반되는 고통이 뭘까요? 스마트폰을 참는 겁니다. SNS를 자제하는 겁니다. 친구와의 유대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외로움과 싸워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픕니다. 손목도 저립니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시간만큼 여가를 즐기지 못합니다. 그런 여가의 기회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그 고통을 참아내야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적당히 놀면서, 즐기면 절대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혹시 목적의식이 없다면 탁월한 공부 습관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전공을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일단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꼭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대회를 나갈 수 있도록 몸 상태를 만드는 식입니다.


    주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면 당연히 성적이 올라갈 겁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집중하는 공부 습관, 루틴을 갖고 있다면 목적의식이 약해도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경우에도 목적은 있는 셈이죠. 주변보다 공부를 더 잘해 두는 겁니다. 입시가 상대평가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거죠. 목적의식이 있거나, 좋은 공부 습관이 있거나. 둘 중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상대평가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초중등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이 이 2가지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진도를 나가는 것은 전국의 80% 이상의 가정이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결코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되어 갑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지킬 수 있는 것

    아이의 성적에 부모의 온 관심이 쏠려 있는 시대입니다. 아이의 성적을 지키기 위해서 교육 정보를 익히고, 이것을 적용하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 책을 통해서 내내 강조했지만 저는 부모가 아이의 성적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결과라는 것은 수많은 변인이 서로 관계하며 작용한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서울대를 갔다고 했을 때, 이것이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한 사람의 인생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변인을 통제하면서 연구해 야 결과값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정 교재로 공부해 성적이 오른 사례를 본 뒤, 우리 가정에서도 따라서 그 교재를 이용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요인들이 성적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학원에서, 같은 강사에게 수업을 받아도, 아이들의 성적이 다 제각각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나름의 가설을 가지고 아이의 성적을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해 보지만, 궁극적으로 아이의 성적을 원하는 대로 지킬 수 있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지킬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아이의 꿈은 부모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어려서 아이가 저의 딸처럼 종이접기를 좋아할 때, 그걸 계속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은 부모입니다. 아이가 공룡을 좋아하고, 자동차, 지하철, 기차를 좋아할 때 그걸 함께 쫓아가 주는 것은 부모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목적지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설레는 것을 쫓아갔을 때 그 끝에 아이가 원하는 삶이 있을 겁니다. 특히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공부와 관련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을 허용해 주는 것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의 아들은 기차를 좋아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좋아하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들 본인도 잘 모를 겁니다. 저는 이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공부와 관련이 없을수록,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할수록 그것은 정말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성적은 부모가 지킬 수 없습니다. 자녀의 꿈은 부모가 지켜줄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꼭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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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