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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화의 역사문화수업 1
 
지은이 : 이이화 (원작), 박남정 (글), 백명식 (그림)
출판사 : 열림원어린이
출판일 : 2025년 03월




  • 한국의 전통 장 담그기 문화가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발효 음식은 건강에 이롭고, 세계적으로도 슈퍼푸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이화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발효 음식의 역사와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배워 보세요.


    이이화의 역사문화수업 1


    발효 음식이 곧 건강식품이지요

    예전에 살았던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끔찍하게도 아껴 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어린이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셨고 어린이들에게 옛적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옛적 이야기를 할 때 말투와 몸짓에 너무나 강한 정열을 담아 어린이들이 때로는 까르르 웃고 때로는 슬퍼서 울었다고 합니다.


    어린이는 마음이 순수하고 자주 감동하며 또 동정심도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또 장난꾸러기가 되어 말썽을 부리거나 동무들을 놀리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무슨 물건이든지 보면, 이모저모로 따져보려 듭니다.


    이 책을 지은 할아버지도 방정환 선생님을 본받아 어린이를 아끼고 귀여워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요. 또 어릴 때 여러 어린이들처럼 개구쟁이 짓도 많이 했으며 옛날이야기도 듣기 좋아했습니다. 지금 할아버지가 되었어도 그때 어른에게서 들은 얘기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발효 음식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기에는 된장, 간장, 청국장을 비롯해 젓갈, 식초에 이르기까지 발효 음식의 제조 방법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곁들여 설명도 덧붙여 놓았지요. 아주 흥미가 있을 거예요.


    요즘 우리 어린이들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너무 자주 먹진 마세요. 몸에 좋지 않답니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담가 주거나 정성스레 만들어 주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건강에 좋습니다.


    오늘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발효 음식을 두고 '웰빙' 식품이라고 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지식을 쌓아 보세요.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요 나라의 보배이니 열심히 읽고 마음과 몸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세요.


    임진강 가의 헤이리에서 이 책을 지은 할아버지가 씁니다.



    은근과 끈기로 지켜 낸 밥상

    자연을 닮은 발효 식품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에 빨갛게 잘 익은 김치 한 보시기, 조물조물 간장에 무친 나물 접시에 고추장에 푹 찍어 먹는 풋고추....... 우리 밥상을 지켜 온 음식 가운데는 발효 음식이 참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매운맛 외에 삭은 맛(발효의 맛)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말까지 있답니다. 발효란, 효모나 세균 따위의 미생물이 작용을 해서 사람에게 쓸모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말해요.

    우리 민족은 삼국 시대 이전부터 여러 가지 발효 식품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우리 땅에 잘 자라는 콩을 이용해 만든 장은 다른 나라에까지 퍼져 나갈 정도로 유명했지요. 채소를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조선 후기부터 만들어진, 절인 채소에 젓갈,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을 섞어 먹는 김치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답니다.


    외국에서 들여온 고추를 이용해 세계에서 하나뿐인 고추장을 만든 것은 또 어떻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조상들은 음식 발명의 천재였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발효 음식을 잘 만들고 즐겨 먹었던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땅 모양이나 날씨,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발효 음식을 만들고 먹기에 좋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민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농사를 짓고 산 농경 민족이었어요. 우리나라 땅을 보면 높지 않은 산이 많고 들판이 기름져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고 가꾸기에 적당했어요. 특히 여름이면 날씨가 덥고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벼농사를 짓기에도 좋았답니다. 게다가 삼면이 바다라 해산물도 구하기 쉬웠지요. 때문에 다양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이 바뀌니 먹을거리들을 항상 구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봄이나 여름에 흔한 채소를 가을이나 겨울에는 구할 수가 없었고, 더운 여름에는 해산물이 쉽게 상해 보관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오래 보관하면서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의 발효 식품들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게 된 거예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여러 가지 미생물들의 힘을 빌려서 말이에요.



    우리 음식의 감초 간장

    콩장은 우리 조상들의 발명품

    중국 역사책 《삼국지》에 적힌 우리나라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멀리서 소금을 날라다 썼다고도 하고, 장 담그기나 술 빚기처럼 발효 음식을 잘 만든다는 내용도 적혀 있어요. 이 무렵 중국 사람들도 장을 담가 먹긴 했지만 그건 고기나 생선을 삭힌 '어육장'이었어요. 그런데 고구려 사람들은 콩만 가지고 간장을 담갔으니, 그 솜씨가 놀랍고 신기하게 여겨져 책에까지 썼던 거지요.


    고구려에서 콩으로 간장을 담가 먹게 된 것은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만주 땅과 한반도 북쪽 땅이 콩이 맨 처음 자라난 곳이기 때문이에요. 콩이 잘 자라고 또 많이 생산되니까 콩을 많이 먹은 것이지요.


    어느 날 콩을 삶아 두었는데 끈적거리는 진이 생기고 냄새도 났어요. 그런데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어요. 오래 보관해 두고 먹고 싶어 소금을 뿌려 두었더니 액체가 생긴 거예요. 이 액체가 간장의 시초가 된 셈이지요. 건더기는 된장이나 청국장의 시초가 되었고요.


    장 만드는 기술은 그 후로 계속 발전해, 백제와 신라로 퍼져 중요한 기초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요.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왕비가 시집오면서 폐백 음식으로 쌀, 술, 꿀, 기름, 젓갈, 육포 같은 음식과 함께 '장'과 '시'를 가지고 왔다고 돼 있어요. 여기서 '장'은 지금의 간장(혹은 간장과 된장이 섞인 것)을 말하는 것이고, '시'는 메주(혹은 청국장 형태의 콩 발효 식품)를 말하는 것으로 짐작한답니다.


    삼국 시대에는 이렇게 간장과 된장이 섞인 것에서 액만 떠서 간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액을 따로 분리하는 기술은 시대가 지날수록 발전했어요. 고려 시대에는 항아리에 용수를 박아 간장액을 더 많이 분리해 낼 수 있게 됐고 이것을 '장즙'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했답니다.


    조선 시대에는 아예 간장과 된장을 따로 만드는 방법까지 등장했지요. 장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 되었고, 집집마다 장 담그는 일을 가장 큰일로 여겼습니다.


    장 만드는 방법이나 종류도 다양해졌고 많은 양의 간장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개발됐어요. 그해 담근 햇간장과 오래된 묵은 간장을 구분해 음식에 달리 사용하기도 했지요.


    장을 중요하게 여겼고 관심이 높았던 만큼 조선시대에 나온 많은 음식 관련 책이나 개인 일기에는 간장을 담그고 보관하는 방법과 장맛이 잘못됐을 때 고치는 방법, 장을 이용한 요리법을 적어놓은 것이 많답니다.



    고향의 맛 된장

    된장의 어머니, 메주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오래 머물게 되면 가장 생각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된장일 거예요.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는 된장을 보면 밥생각이 절로 나죠. 또 구수한 된장 냄새를 맡으면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이 난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흔히 된장의 맛과 냄새를 두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맛이요 냄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된장 냄새가 유명하기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메주를 발해의 특산물이라 하고 된장에서 나는 냄새를 '고려취’(고구려 냄새)라고 불렀대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된장 냄새는 바로 고구려의 냄새인 셈이니 된장은 정말 오래된 우리 민족의 음식이지요. 된장의 역사를 알려면 메주의 역사를 알아야 해요. 메주란 콩을 삶아 덩어리지게 만든 다음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 것이에요. 이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킨 후 액을 따로 받은 것이 간장이고, 남은 메주 덩어리를 다시 손질하여 숙성시킨 것이 된장입니다. 간장의 '간'은 '짜다'는 뜻이고, 된장의 '된'은 '물기가 없이 되직하다'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간장과 된장은 한 장독에서 태어난 형제인 셈이네요. 메주는 간장과 된장의 어머니가 되는 건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메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으로, 중국 역사책인 《당서》가 있어요. 여기에 보면 “발해 사람들은 시(鼓)로 울타리를 쳐 성같이 쌓아 놓고 있다"고 적혀 있어요. 발해는 멸망한 고구려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지요. 여기서 '시'는 메주를 뜻하는데, 성처럼 쌓아 놨다고 하니 아마 이때도 메주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네모난 벽돌 모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답니다. 이 ‘시’는 고대 중국의 음식 문화를 기록한 책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고 만드는 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어 있어요. 이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의 장 만드는 기술이 중국으로도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어요.


    '메주'는 우리나라 말로, 고려 시대에는 한자로 '말장(醬)'이라 쓰기도 했대요. 우리나라 장 만드는 기술은 일본에도 전해졌는데, 일본 사람들은 말장을 '고려장'이라고도 하고, 메주의 이름을 본떠 ‘미소’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일본 된장 '미소’의 원조는 메주, 즉 우리나라 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매콤하고 달큰한 고추장

    고추장의 조상은 매운 된장

    토마토, 브로콜리, 감자, 고구마 등 우리가 즐겨 먹는 식품들 가운데는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고추도 그런 식품 가운데 하나지요. 고추장은 바로 이 고추를 가지고 만든 장입니다. 간장, 된장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먹어 오던 장인 반면, 고추장을 먹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에요. 고추장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년) 후이기 때문이에요.


    고추는 일본을 통해 들여왔지만 고추장은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음식이에요. 일찍부터 간장, 된장을 만들어 먹었던 우리 조상들이 고추를 이용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장을 만든 것이지요.


    물론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민족은 매운맛을 내는 식물로 매운 된장을 만들어 먹었대요. 허균이 쓴, 요리를 소개한 책인 《도문대작》(1611년)에는 '초시'라고 하여, 산초 또는 후추나무 열매나 껍질을 써서 매운 된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하지만 이 매운 된장은 고추가 널리 재배되면서부터 모습을 감췄어요. 우리나라에서 잘 나지 않아 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는 후추는 값이 비싸고 구하기가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고추는 우리나라에서 키웠으니 구하기가 한결 쉬웠어요. 고추라는 이름도 후추와 비슷하면서 매운 맛이 난다고 하여 '매운 후추'라는 뜻으로 붙여졌답니다.


    고추가 재배되긴 했지만 처음에는 거두어들이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만큼 비싼 음식 재료였지요. 당연히 고추장도 귀해 부자나 벼슬아치들이나 맛을 볼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리고 처음에 만들어진 고추장은 지금 고추장과는 만드는 법도 많이 달랐어요.


    고추장 만드는 법은 《증보산림경제》 (1766년)라는 책에 처음으로 소개되었어요. 여기에 보면 메줏가루에 찹쌀가루를 섞고 고춧가루는 아주 조금밖에 넣지 않았답니다. 고추장이라기보다는 된장에 고춧가루를 조금 섞은 정도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점차 고추 수확량이 늘어나면서부터 고춧가루를 더 많이 섞게 되었고, 고추장을 만들어 먹는 집도 크게 늘어났답니다. 집집마다 더 맛있는 고추장을 담그기 위한 비법이 따로 있을 정도로 고추장의 종류나 만드는 법도 다양해졌지요.



    우리나라 대표 음식 김치

    김치 없이는 못 살아

    밥은 심심하고 별다른 맛이 없으니 짭짤한 반찬과 함께 먹어야 맛도 있고 소화도 잘되죠. 영양도 고루 섭취할 수 있고요. 그중에서도 김치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국이나 찌개 등 다양한 반찬으로 요리할 수도 있어 겨울이면 채소를 구하기 힘들었던 옛날에는 김치가 밥만큼이나 중요했답니다. 그래서 농사가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 우리 조상들은 어느 집이나 할 것 없이 김장을 담갔어요.


    농가월령가 '10월령'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김장이 중요한 겨울 채비였고 그 양도 엄청나게 많았던 탓에 김장철이 되면 친척끼리, 이웃끼리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서로 도와 김장을 했어요.


    김장하는 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이 떠들썩하고 부산했어요. 김장을 하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었지만 남자들도 배추나 무 같은 김장 재료를 나르고 김칫독을 갈무리하는 일을 도왔지요.


    이렇게 겨우내 먹을 김치를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함께 담그니 일이 훨씬 수월하고 빨리 끝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김치도 맛볼 수 있으니 일하는 재미도 더 났고요. 이웃이나 가족 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겠지요.


    우리 조상들은 김치를 담그는 것만큼이나 김치를 보관하는 데도 정성을 기울였어요. 김치는 온도가 높으면 너무 빨리 익어서 금방 시어져 버려요. 반대로 너무 추운 곳에 두면 익질 않지요. 게다가 김치가 얼기라도 하면 김치의 아삭거리는 맛이 없어지고 흐늘흐늘해져 맛이 떨어진답니다.


    김치를 맛있게 보관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김치움을 짓고 김칫독을 땅에 묻었어요. 김치움을 만드는 것은 남자들의 일이었지요.


    김장철이 다가오면 남자들은 집 마당 양지쪽에 놓인 장독대 옆에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어요. 짚이나 가마니 같은 것으로 독을 감싸고 틈이 생기지 않도록 톱밥 같은 것을 꼭꼭 채워 넣지요. 이렇게 하면 날씨가 추워도 김칫독이 어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한겨울, 온도가 한결같은 땅속에 김칫독을 묻어 김치를 적당한 온도에서 익혀 최고의 김치 맛을 만들 줄 알았으니 우리 조상들의 생활은 과학 그 자체이지요. 이런 조상들의 지혜를 흉내 내어 만든 것이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김치냉장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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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