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배웁니다』는 부모에서 ‘학(學)부모’가 된 이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대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학부모로서 어떻게 똑똑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학부모의 태도, 교실 안팎의 생활, 아이의 정서, 독서와 놀이 활동 등 여러 분야를 살피어 초등학생 자녀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일상의 타임라인을 새롭게 정립하지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오늘도 걱정과 조급함에 시달리는 학부모라면, 이 책을 믿고 읽어 따라 해보세요. 단단한 배움 근육을 가진 아이로 키우기 위한 학부모 수업이 시작됩니다.
■ 저자 최순나
36년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지냈다. 1학년 담임교사 시절 아이들과 함께 쓴 책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으로 제자들과 함께 tvN 〈유 퀴즈〉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몸과 마음임을 깨닫고 아이들과 책 읽기, 글쓰기, 생태 체험 등의 활동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아이들과 함께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7년 연속 출판 대상 학교로 선정되었다. 2021년에는 독서 교육으로 국무총리상을, 2025년에는 대구교육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대구 연암도서관 관장으로 있으며, 1년에 200여 차례 학부모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지은 책으로는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 『내 아이의 첫 선생님 1, 2』,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어 하는 시와 그림책 수업』,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 『우리 글 쓸래요?』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_학부모가 된 당신에게
1장 오늘도 불안한 학부모에게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너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마음의 함정
좋은 부모는 ‘희생하는 부모’가 아니다
권위적인 부모 vs. 권위 있는 부모
자존감 높은 아이의 부모는 태도가 다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N분의 1만큼 책임지는 생활
선택하고 느끼며 온몸으로 살아보기
교과서, 읽어보셨나요?
‘걱정’하지 말고 ‘궁금해’하세요
나는 너의 좋은 데를 안단다
2장 자존감은 교실에서 자란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돌봄 받는 존재에서 돌보는 존재로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해본 아이 vs. 안 해본 아이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스스로 해내는 아이들의 비밀
난 네 도움이 필요해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꼭 해야 하나요?
다 함께 성공하는 순간의 기쁨
놀림 받는 아이 도와주는 법
아이의 일상 행동에서 의미를 찾는다
3장 공부 정서는 이미 아이 안에 있다
“진짜 공부는 언제 해요?”
모든 아이들은 배우고 싶어 한다
잠자는 교실이 된 이유
빵 맛을 알려주는 법
지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수학이 필요한 이유
친구와 싸운 아이는 혼자 해결하게 둔다
꼭 필요한 선행학습이 있다
뇌에 먼저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
수학 점수를 올린 뜻밖의 해결책
4장 공부 머리는 책 읽기에서 나온다
달콤한 ‘독서 정서’ 만들기
책 읽을 시간을 일부러 마련해줄 것
온 가족이 함께하는 책 놀이 세 가지
『샬롯의 거미줄』에 빠진 아이들
글쓰기가 어렵다면 책 만들기부터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아이들
시집 한 권 읽는 시간
5장 놀이가 배움이 되도록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무한하다
우리 집이 교과서
운동장의 나비는 어디서 왔을까?
함께 공부하는 부모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놀이가 고픈 아이들을 위하여
일상을 가족 여행으로 만드는 세 가지 방법
맨발 놀이 해보셨나요?
춤으로 말하고 듣는 시간
위험해서 더 안전한 자연 놀이터
특별부록_학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Q&A 30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안내서. 부모에서 학(學)부모가 된 이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대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학부모’로서 어떻게 똑똑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오늘도 불안한 학부모에게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이 말은 지금은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진 여성학자 박혜란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출판사 서평에 쓰인 “‘대충대충’ 키운 것 같으면서도 ‘기차게’ 잘 키운 박혜란만의 비결 아닌 비결”은 이것이라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려고 하지 말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아라. 그래야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저자의 자녀들은 그냥 ‘내팽개쳐져’ 자란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을 믿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오히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립심을 키울 수 있었답니다. 아이를 흔들림 없이 믿고 바라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이지요.
『도덕경』 14장에는 ‘애매함을 이겨내는 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형체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이(夷), 소리가 있지만 들리지 않는 희(希), 잡을 수 있지만 손에 들어오지 않는 미(微), 이 셋이 섞여 있는 어떤 하나, 혼이위일(混而爲一)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요즘 시대의 아이들과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형체가 있는데 보이지 않고, 소리는 있는데 들리지 않고, 잡았는데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뭔가 딱 부러지게 명확하지 않을 때 희미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희미하고 애매함을 이겨내는 그 상태가 오히려 도(道)라고 할 수 있답니다.
부모로서의 삶은 도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쉽지 않은 나날입니다. 그 희미함을 참고 지켜보며 불확정성을 견디고 자녀들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할까?’ 이 걱정은 ‘성인이 되어 잘 살 수 있을까?’로 이어집니다. 우리 아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고 조바심 내며 아이를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도덕경』에서는 ‘희미함’을 오히려 아름답게 그립니다. 이어진 문장에서는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상태를 ‘황홀(恍惚)’이라고 했습니다. ‘황홀하다’는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부모의 눈으로 잘 이해되지 않아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자녀는 말 그대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황홀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도덕경』 18장에서는 자(慈)를 이야기합니다. 자애, 자비의 ‘자’ 자는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불확정성을 견디고 끝까지 믿어준다’는 뜻이랍니다.
부모의 역할을 다시 배웁니다. 걱정은 통제를 낳지만, 신뢰는 아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아이를 능력 없는 사람으로 대할 때, 아이는 말 그대로 능력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아이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할 때, 그 아이는 없는 능력이라도 발휘해서 뭔가 해내고자 할 것입니다.
“이 학교에 꼭 가야 해.” “이 직업은 꼭 구해야 해.” “꼭 이렇게 살아야 해.” 이런 식으로 정답을 정해놓고 불확정성을 못 견디는 부모의 태도는 자녀를 힘들게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라는 동안 애매함을 견디고 불명확함을 참아내야 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가능성을 믿고 살아가는 자녀의 하루하루를 응원해주어야 합니다.
뭘 해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믿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자애로운 어머니(그레이트 마더)입니다. 이 글을 쓰고 보니 저 또한 부족했던 엄마로서의 삶을 반성하며 숙연해집니다. 자식을 끝까지 믿어주던, 가난했던 지난 세월의 어머니들이 위대하게 여겨집니다. 믿는 게 아니고 믿어주는 것,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고민하는 자녀에게 속아주고 믿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믿음과 기대는 다릅니다. 삶의 과정에서 배우리라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고, 결과가 좋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기대입니다. 아이들에게 믿음은 자신감이 되고 기대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사춘기의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자녀의 애매함을 견뎌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독서실에 공부하러 간다며 나갔던 아이가 PC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해도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잠시 나왔나 보다.’ 이렇게 마음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믿어주고 다가가는 사람이 부모여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라니까요.
자존감은 교실에서 자란다
돌봄 받는 존재에서 돌보는 존재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은 것은 한결같은 부모의 바람입니다.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부모로서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고민합니다. 구체적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겁니다.
“아빠! 오늘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동물을 그렸어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종이 한 장을 보여줍니다. 종이에는 삐뚤빼뚤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동물 한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게 뭐야?”
“기린이에요.”
아빠는 아이가 가지고 온 학습 결과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한 것을 비난하면 안 되니까, 칭찬을 해줘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들 하니까 꾹 참고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 그리면 되지 뭐.”
과연 그 말에 아이는 괜찮아질까요? 아닙니다.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사실 아이는 오늘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그린 사자랑 코끼리는 멋있어 보이는데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 그리면 되지.’
아빠의 말을 떠올려보지만 아이는 괜찮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사와 친구의 위로는 잠시 위로가 되지만 무언가 부족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요?
아니 어떤 말을 해주어야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는 자존감을 길러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순간 자신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존재 자체, 생명 자체가 귀하고 소중한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 괜찮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평생 살아갈 힘을 얻고 정서가 갖추어지는 유년 시절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힘든 일을 성취했을 때, 나의 존재로, 나의 역할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그 순간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힘들게 무언가를 해냈을 때 가능합니다.
마음속 기쁨은 돌봄을 받으면서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가질 때 더 기쁩니다. 교육 현장에서 스스로 뿌듯하여 어깨가 으쓱해지는 참 기쁨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인형을 업고 놉니다. 그리고 인형을 아기처럼 돌보는 놀이를 즐깁니다. 비록 인형이지만 누군가를 돌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죠.
지금 우리의 가정은 어떠한가요? 아이들이 당당하게 설 자리가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나요? 스스로를 돌보며 다른 대상을 돌볼 기회가 있나요? 오히려 넘치는 돌봄을 받으면서도 투덜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의 기회는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자신이 원래 해야 할 학습만으로는 그런 기회를 갖기가 힘듭니다. 아이가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당당함을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공부하는 건 원래 제 몫의 일이니까요.
가정에서 자신의 몫이 있어야 합니다. 4인 가족이라면 가정에서 4분의 1의 중요한 자리임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자녀의 나이에 맞게 역할을 주고 그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려주세요. 부모를 위해서 봉사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집안일의 일정 부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부족한 자신의 그림 앞에서도 당당해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여유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할 힘을 갖게 합니다.
몇 해 전 우리 반에 아주 똘똘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맞벌이인 저는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막내에게 저녁 밥 짓기를 가끔 부탁했습니다. 전기밥솥에 밥을 짓는 건 그렇게 어렵거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부엌으로 달려가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후다닥 반찬을 챙겨 배고파하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막내는 힘주어 자랑합니다. 자신이 지은 밥이라서 더 맛있다고 합니다. 아빠도 ‘역시 우리 아들이 한 밥맛이 최고’라며 칭찬합니다. 우쭐해지는 아이의 어깨가 보기 좋습니다.
원래 자신이 해야 할 학습으로 부모에게 능력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슈퍼마켓에 가서 콩나물을 사 오거나, 신발을 정리하거나, 화장실의 휴지를 바꾸어 넣는 등 아이의 능력에 맞는 집안일을 하게 해주세요. 그 경험들이 학교 수업에서 역량이 될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고 공부도 잘합니다.
공부 정서는 이미 아이 안에 있다
꼭 필요한 선행학습이 있다
“만약 속진(진도를 빨리 나감)이 학습의 목표라면 올바른 영재교육이 아니고 속진이 학습의 결과라면 영재교육입니다.”
조벽 교수는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라는 책을 통해 선행학습이 학습의 결과라면 바른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현행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학습의 결과가 선행이면 바른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굳이 선행학습을 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평균 속도와 이 아이의 속도는 다르니까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치는 아이들 같은 경우죠.
하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현행 학습도 제대로 안 되는 아이에게 강요되는 선행학습이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꼭 필요한 선행학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건 가정에서 미리 잘 배워 오면 좋겠는데…’ 싶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 화장실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로 잡고 감사히 밥을 먹는 것, 가방 속의 물건을 잘 정리하고 준비하는 것 등 구체적인 생활 습관이 그렇습니다. 또한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자연의 변화와 주변의 동식물을 관찰하는 생활 태도 등을 미리 배워도 좋겠습니다.
이는 초등학교 어느 시절에도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그런 면이 완벽하게 가정에서 선행된다면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그 어떤 과목의 수업에서도 그 아이는 수업의 주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1학년 담임을 맡을 때마다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꼭 해 오기를 바라는 선행학습 네 가지를 말합니다.
“인사 잘하기, 정리하기, ‘고마워’ ‘미안해’ 할 수 있기, 종 치면 자리에 앉기입니다. 이 네 가지가 되는데 국어와 수학이 잘 안 된다. 오케이 좋습니다. 저희가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모든 경험은 학교 공부와 연결되어 교과 학습에서도 역량을 발휘합니다. 초등학교 6년간 종이 위의 학습 말고도 삶 속에서 선행학습할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부모와 자주 대화를 나눈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갔는데, 우연히 다시 만난 학부모님은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와 밥상머리에서 자주 시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대학 입학 논술고사에서 큰 영향을 미쳤더라고요. 덕분에 다들 부러워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랑 엄마가 평소 자주 토론하던 문제들이 시험문제로 나온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났을까요?
가족 여행 중에 강의 상류와 하류를 자세히 관찰한 아이가 과학 시간에 그 내용을 배운다면 받아들이는 속도가 당연히 빠르겠지요. 시골 할머니 댁에서 땅콩을 함께 심고 수확까지 해보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가 ‘식물의 한살이’ 공부에서 쉽게 이해하고 흥미를 갖고 수업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팅된 종이팩을 따로 모아서 재활용한 경험이 있고, 동네 뒷산의 등산길을 함께 청소하는 ‘줍기데이’ 행사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한 아이는 공정무역, 환경생태 교육 시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발표를 마쳤습니다.
『초등수학 개념사전 67』의 조안호 저자는 초등생 아이들과 손잡고 산책하면서 “저 아파트에는 몇 명이 살고 있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제안합니다. 아이와 함께 예상해보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테지요. 일명 ‘수포자(수학포기자)’를 줄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수학 수다’를 떠는 것입니다.
20시간짜리 프로젝트 수업을 과자 한 봉지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과자 봉지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콜레스테롤, 트랜스지방 같은 영양성분표의 용어에서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원산지의 지명과, 원재료명, 칼로리, 보관 방법까지.
사회와 과학, 수학 공부를 거쳐 과자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선호도도 알아보고 과자에 얽힌 추억을 글로 쓰는 공부도 합니다. 과자 이름 짓기 놀이도 하고, 1호 서류 봉투에 과자 봉지를 따라 그리고, 봉투 속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나만의 과자 봉지를 완성해봅니다. 봉지 디자인, 광고 카피까지 작성해보면서 재미있게 공부합니다.
지혜로운 소비자의 역할에 대한 공부로도 연결됩니다. 영양소에 대한 1일 권장량을 배우고, 과대 광고, 과대 포장에 대해 배우고 나면 아이들의 과자 소비가 줄어듭니다. 몸에 해로운 것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신문 헤드라인을 부모님과 같이 읽으며 시사에 관심을 가진 아이, 캠핑을 가서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아이, 서점, 미술관, 박물관 나들이 경험이 많은 아이, 해당 경험과 연결된 독서를 하는 아이… 이 아이들의 체험은 모두 수업 시간에 강력한 선행학습으로 작용합니다.
자녀와 함께 세상을 배우고 싶지 않나요? 꼭 자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모인 나의 교양 있는 삶을 위해서도 아이와의 다양한 체험은 꼭 필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부작용 없고 과도한 사교육비도 필요하지 않은, 강력한 가족 선행 학습을 꼭 해보길 권합니다.
공부 머리는 책 읽기에서 나온다
달콤한 ‘독서 정서’ 만들기
잘 자란 아이들의 특징 중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모와 사이가 좋다는 것과,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책과 깊은 우정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고 싶으면 아이들에게 책과 친구 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책은 공부가 아니고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부모인 내가 책과 친구가 되어 살면 됩니다.
시 수업을 잘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쳐야 할 시 한 편을 교사 스스로가 감동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시와 먼저 친해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수업이 잘 됩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면 좋다더라’ 정도로는 내 아이를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서 가르치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내가 먼저 한 권의 책을 좋아해야 합니다. 재미있게 책을 읽는 부모의 모습에서 자녀의 책 읽기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저는 지역 도서관에서 책과 관련된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 가족 낭독의 밤」 프로그램은 특별합니다. 자녀와 함께 손잡고 도서관으로 와서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돌아갑니다.
자녀와 부모가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한 문장씩 교대로 읽어도 보고, 한 쪽씩 번갈아 읽기도 합니다. 바탕글은 엄마와 아빠가 읽고 대화글은 자녀가 읽기도 합니다. 온 가족이 목소리를 맞추어 소리 내어 읽기도 하지요. 책 속에서 감동적인 한 줄 찾기도 합니다. 찾은 한 줄을 다른 가족과 나누기도 하지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이 순간도 가치 있지만, 옆에서 다른 가족이 함께 책 읽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이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기억이 먼 훗날 치열하게 책을 읽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거든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어보면 아이도 부모도 같은 말을 합니다.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한 이런 경험은 두고두고 떠오를 겁니다. 마치 어릴 때 엄마가 끓여준 소박한 된장찌개의 맛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요.
초등학교 시절은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보다 책에 대한 ‘정서’를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구광역시교육청은 2009년부터 「대구 학생 책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출판된 학생 저자의 책을 전시하고 함께 읽는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저는 해마다 이 행사에 참여하였으며 운영팀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행사장에 팝콘 기계가 등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넓은 행사장에 들어서면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 속에서 멈추어서서 책을 읽을 수 있었죠. 행사인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팝콘 한 봉지를 선물해주는 이벤트였지만, ‘책은 달콤함이야’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더 큰 이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아이가 처음 읽는 성서에 꿀을 묻히는 것처럼요. 3일의 행사 동안 책 사이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행복해하는 초등학생과 교복을 입은 채 책장을 펼치는 청소년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몇 해 전 가을, 1교시 시작 전에 교실에서 고구마를 찐 적이 있습니다. 고구마를 찌니 온 교실에 달고나처럼 달콤한 향이 퍼졌지요. 첫째 시간 우리는 달콤한 고구마 향기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썼답니다. 그다음 시간, 찐 고구마 한 쪽씩을 나눠 먹으며 읽은 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책 읽는 시간’은 고구마가 익는 달콤한 향과 함께 기억되길 바라면서 준비하는 마음이 설렜습니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들은 옛날이야기는 그냥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고 할머니의 사랑이듯, 내 아이가 ‘책’ 하면 부모님이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는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팬케이크 굽는 맛있는 냄새를 떠올리면 좋겠어요.
학교 공부에서 ‘공부 정서’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면 독서교육은 책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인 ‘독서 정서’를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출발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