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고, 대단한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성격과 신체조건, 사고방식, 경험, 가정환경 등등이 모두 다른 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서 각자의 꿈을 키워 나갑니다. 다양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 여러 경험을 쌓으며 자신을 찾게 되는 ‘하나의 작은 사회’가 바로 학교라는 공간입니다.
14명의 체육 선생님들은 스포츠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려고자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도 되고, 스포츠에 대한 경험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운동해라! 건강해라!”라고 충고하려는 게 아닙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필수 조건이 ‘건강’이고, 건강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이 왜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이를 실천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 저자 김민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졸업,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현) 경기과학고등학교
(전) 철산중학교, 운산고등학교
좋은체육수업나눔연구회 연구위원
EBSi 선택과목 특강 ‘운동과 건강’ 전임 강사
EBSi 선택과목 특강 ‘플로어볼’ 강사
■ 차례
머리말
01 열정적인 체육 교사, 김민철 - 동네 축구클럽을 명품 스포츠클럽으로 만들다!
02 깔쌈한 체육 교사, 김성태 - 태권도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나의 도전이 되다!
03 엉뚱한 체육 교사, 김정섭 - 세상을 무대로 만들고, 농구로 인생을 배우다!
04 꿈을 그리는 체육 교사, 박영권 - 놀이로 시작하여 육상으로 성장하고 삶을 그리다!
05 두려움을 모르는 마당발 체육 교사, 박태규 - 배신하지 않는 노력, 실패를 통해 꿈에 도전하다!
06 지름길을 모르는 체육 교사, 백승필 - 극복, 인내, 도전을 스포츠로 배우다!
07 시크한 체육 교사, 이길한 - 태권도와 야구, 내 손에서 새로운 스포츠로 거듭나다!
08 퍼펙트한 체육 교사, 이동규 - 만난 사람, 경험한 스포츠가 인생의 조력자가 되다!
09 국가대표 체육 교사, 이정석 - 인생의 동반자가 된 야구, 태극 마크를 달다!
10 무한도전 체육 교사, 이청용 - 열정 ‘GRIT’과 도전을 통한 실천이 해답이다!
11 실천인 체육 교사, 정광윤 - 고민보다 실천으로, 설명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다!
12 대한민국을 바꾸는 체육 교사, 조종현 - 준비 실패는 실패의 준비이고, 배움은 주는 것이다!
13 열생열사 체육 교사, 한우진 - 자전거로 인생을 보며, 선택과 집중으로 세상을 살다!
14 마음으로 가르치는 체육 교사, 황인택 - 교육은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며, 결국 나누는 것이다!
성격과 환경이 다른 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스포츠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필수 조건인 건강을 위해, 운동이 왜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따뜻하게 돕는다.
나는 체육 교사입니다
열정적인 체육 교사, 김민철
나는 이래서 체육 교사가 되었다
시골 출신, 가슴 뛰는 사람이 되다
- 시골 전학생의 도시 생존기
내가 태어나 살던 그곳은 경상남도의 농촌이다.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에 대한 이슈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오늘날에도 그곳에는 양파랑 마늘, 벼와 과일들이 지천에 널려 있고 소똥 냄새가 가득하다. 아버지는 일곱 형제들이 모두 고향을 떠날 때 홀로 남아 농사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 매일 누나 손을 잡고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등굣길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서 20분을 걸어 꼭꼭 숨겨진 조그마한 학교에 도착하면 전교생 90명의 작은 학교에서 놀이판이 펼쳐졌다. 비석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부터 온갖 놀이들의 천국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나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고, 다른 학년 형, 동생들과 주로 시합을 했다. 남학생이 10명도 채 안 되었던 우리 학년에서 축구팀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빠지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고, ‘전원 투입, 전원 공격’ 작전으로 적은 인원수로도 다른 학년 형들을 이겼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3세,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자녀 교육을 걱정하던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대구로 전학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우리는 경북대에 다니며 자취를 하던 사촌 누나에게 신세 지기로 했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열등감이었다. 열등감은 전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도시 아이들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것 같았고,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세련되어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시골 출신이라는 열등감이 생겼다.
- 가슴 뛰는 일이 답이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내 중학교 시절을 채워준 어마어마한 활동, 축구와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게 된 중학교는 시커먼 남학생들만 득실득실한 학교였다. 논두렁을 달리며 만들어 온 체력과 시골 출신의 강인한 생존력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매일 학교 마치고 축구를 해 왔던 나는 같은 학교 출신의 친구들과 축구팀을 만들게 되었다. ‘F.C.대동’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이 팀을 시작으로 다른 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이 하나 둘 축구팀을 만들기 시작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축구 리그를 만들게 되었다. 용돈을 모아 축구화를 사고, 친구들과 유니폼을 맞추러 체육사를 돌아다녔다. 축구화를 구두약으로 닦고 반짝반짝하게 빛이 나도록 닦으면서 시합을 준비했다. 흙 운동장에서 1분만 뛰어도 다 사라지는 구두약이었지만 한 경기, 한 경기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합이었던 것 같다. 시합 뛰는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시합이지만 이 축구 리그는 전학생이었던 나에게 친구들을 만들어 준 소중한 무대였다.
그러던 중 우리 집에 큰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일이 휘청거렸고, 큰 빚을 떠안았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내 자취방에는 아버지가 앓아 누워 계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 어깨 위에 얹힌 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전차같이 강인하던 아버지가 끙끙 앓으며 삶의 짐을 견뎌내는 모습을 며칠 동안 보고 있으니, 지금처럼 목적 없이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고, 지필고사가 끝난 후 남은 시간에 낙서를 할 때는 시험지에 프리킥 궤적을 그리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비가 온 날 진흙이 가득한 운동장에 맨발로 뛰어나가 비를 쫄딱 맞으며 친구와 둘이서 축구를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축구였다. 시골의 꼬마 시절부터 전학생으로서의 생존 과정, 즐거운 학창 시절의 중심에는 늘 축구가 있었다.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체육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열정적인 체육 교사
명품 축구 리그의 창시자
- 내가 키워 가는 나의 팀, 나의 선수들
2010년, 나의 첫 제자들이자 나의 팀 선수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축구를 향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그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장배 학교 스포츠클럽 축구 대회에 나가기 위해 두 달 동안 땀을 흘렸다. 첫 경기에서 1:1로 비긴 상황, 시합 종료를 몇 분 남기고 코너킥 기회가 왔다. 우리의 작전은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중혁이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코너 가까운 쪽으로 뛰어들어 오는 것이었다. 수비수들을 앞쪽으로 몰아넣고 킥이 좋은 현수가 공을 길게 차면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중혁이가 마무리하는 전략! 연습을 수없이 했지만 긴장되던 순간이었다.
현수의 킥이 정확하게 들어갔고 모든 친구들이 침묵 속에 제 역할을 했다. 신기할 만큼 적막이 흘렀던 그 순간. 모든 움직임이 딱 작전대로 이루어졌다. 중혁이의 발끝에 공이 닿는 순간, 우리 모두는 골을 직감했고, 그물망이 철썩 하고 움직였을 때 우리 팀 모두는 달려 나가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결승전인 것처럼.......
첫 경기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일까. 다음 시합에서 우리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던 그 대회에서 두 번째 경기 만에 모든 시합이 끝나버렸고, 아이들과 나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지역 내의 고등학교로 옮겼고, 그 학교에서도 아침 축구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8시 20분까지인데, 아침 7시에 축구를 하겠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호응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축구에 목말라 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부원이 40명이 넘었고, 3개 팀으로 리그를 시작했다. 아침을 깨우는 축구 소리에 교정 전체가 들썩였다. 그렇게 3년간 아침 축구 리그를 운영했다.
그동안 교류하던 지역의 5개 학교 체육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축구 리그에 대한 포부를 털어놓았고, 모두가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리그 개시 일주일 전, 그동안 매일 아침 운동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유니폼을 맞춰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새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의 얼굴이 신나 보였다. 감독의 입장이 되어 아이들과 시합에 출전하는 일은 언제나 신난다. 우리 팀 시합 날이면 나는 일찍 운동장에 도착해서 아이들의 준비 운동과 스트레칭을 챙긴다. 준비 운동 후 슈팅 연습 때는 꽤나 즐거워한다. 경기 시작 10분 전, 선발 출전 명단을 작전 판에 담아 보여줄 때는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여든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승리가 목적인 시합이다 보니 각 포지션에서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먼저 배정할 수밖에 없다. 선발로 뽑혀 운동장으로 나서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안도감이, 후보가 되어 벤치를 지켜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하다. 되도록 모두에게 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학교에서 스포츠를 가르치는 이유는 교육적 효과 때문이다. 스포츠를 배우다 보면, 아이들은 눈앞에서 다양한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옳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 순간은 즉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뀐다.
엉뚱한 체육 교사, 김정섭
엉뚱한 체육 교사
고민하고 연구하며 도전하다
- 수업은 무대, 수업의 생명은 연구
나는 수업을 아이들을 위한 공연 무대라고 생각한다. 즉 수업 준비는 공연 준비처럼 철두철미하게 해야 한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교사가 되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업 연구는 평상시 진행하지만, 특별한 날에 더욱 많이 하는 기간이 있다. 스스로 배우던 타 연구한 내용을 배우는 시간 등을 보통 연수라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연수를 받으며 선생님의 역량을 높여야 다양한 수업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같이 성장할 수 있다.
선생님의 연수는 일상생활이 모두 수업 준비이다. 주말에 쉬는 날 읽고 있는 책, 드라마를 보다가 수업과 연계할 요소를 찾는 것, 여행 중 인상 깊게 경험한 것 등 모든 생활에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 글, 사진, 영상 등이 모두 수업의 재료가 된다. 수업 연구는 특별한 날을 정하여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닌 평상시 모든 생활이 연구하는 날이 된다.
체육 교사는 누구보다 활동적이야 하고,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방학 기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스포츠를 배우는 시간도 필요하다. 체육 교사라고 모든 스포츠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전부 배워본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기 중에 배우기 힘든 종목을 선정하여 개인 레슨도 받으면서 전문성을 높이려 노력한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가 싫을 때도 있었는데, 교사가 된 이후에는 배워야 가르칠 수 있기에 항상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 방학이나 연휴 동안의 연수와 충전을 통해 수업 내용과 수업 철학을 고민하여 방향을 모색한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더욱더 다채롭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체육 교사가 되고 싶어? 이건 꼭 해봐!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경험과 고민이 필요하다. 그중 학생들에게 꼭 해야 하는 것을 권유한다면 단연코 여행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빨리 적응하고, 상황과 환경을 창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높아지려면? 이 모든 것은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조건 멀리 떠나기보다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할 것을 권한다.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사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며 예술적 감각을 키워줄 수 있다. 체육 교사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여행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도전하고 실천하며 성공과 실패를 끊임없이 경험하기를 바란다.
체육은 단순히 운동 종목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농구 수업의 최종 목표는 농구공을 활용한 드리블, 패스, 슛 등의 기술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농구의 경기 방법과 기술, 전략 등과 함께, 농구의 역사와 문화도 배우고 스포츠 정신과 페어플레이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 농구 수업의 진정한 목표이다. 그런 만큼 교수, 학습 방법도 매우 다양하여 체육 교사는 여러 가지 수업 노하우를 알고 있어야 한다. ‘노력과 열정’은 필수템이다.
만약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음악 시간을 보다 소중히 여기며 들을 것이다. 미술 시간에 보다 많은 것들을 배워 미술적 감각을 키울 것이다. 취미로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촬영 전문가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대가가 되어 영상 편집을 주된 취미로 삼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게 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앞으로 무엇이 소중하고 필요한지 미리 말해주면 좋겠다 싶다. 그게 바로 먼저 태어난 사람, 즉 ‘선생’이다.
농구는 인생, 인생은 무대
- 나의 무대, 농구장
소극적인 성격으로 남들 앞에서 서 있는 것은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다. 초, 중, 고등학교 모두 합쳐 반장과 부반장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반적인 흔한 학생이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어떠한 교과든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를 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잘해보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농구였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도 멋지게 골을 넣으면 왠지 나 스스로가 멋있어 보일 것 같고, 보다 멋진 모습으로 골을 넣기 위해 자세 연습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에 완전히 빠진 이후로 단 하루도 농구를 거른 적이 없다. 농구장은 마치 나의 무대와 같았다. 실력은 점점 높아지고 멋진 플레이를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농구장의 무대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농구를 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달리기도 빨라야 하고 근력을 키워 힘도 있어야 하며, 누구보다 점프력이 높아야 유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체력 운동을 실시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체육 교사의 목표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내가 좋아하는 농구를 친구들과 하면서 체육 교사가 된 이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농구장이라는 무대를 경험하게 하면 어떨까? 살짝 흥분되는 희망을 가져 보았다.
- 인생은 한 편의 연극 무대
체육 교사의 꿈을 위해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호기심 많은 새내기로서,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연극영화과 수업인 ‘연극의 이해’를 신청했다. 그리고 어느 날,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무대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세상의 무대는 특정 공간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공간이 바로 무대입니다. 지금 수업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관객이고, 칠판 앞에 서 있는 이 공간이 바로 무대이며, 여러분은 강의실 속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무대 공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무대의 주변에 있습니까, 중앙에 있습니까? 세상에는 무대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즉, 무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무대를 경험한 사람은 관객으로 앉아 있는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준비를 잘못하고 실수를 하면 관객은 바로 알아차리게 되고 저는 관객에게 큰 실망감을 주게 됩니다. 또한 무대를 경험한 사람은 1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지 압니다. 같은 동작과 대사, 노래를 단 1분을 보여주기 위해 1만 리터의 땀방울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생각했으면 합니다. 연기자나 연예인만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무대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무대 공연을 위해서는 수천 번 연습하고 실전처럼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공연으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앞으로 여러분이 겪어야 할 일입니다.”
이 수업 이후 세상이 모두 무대로 보였다. 학창 시절 내가 즐겼던 농구장은 당시의 주 무대였고, 지금 나는 체육 교사로서 운동장에 나와 있는 학생들이라는 관객 앞에서 체육 수업이라는 공연을 보여주는 멋진 배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인생은 하나의 무대다.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너희들이다. 취한 듯 춤을 추고 미친 듯 노래를 불러라. 지금은 어떠한 실수도 상관없다. 아직까지는 리허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지금의 리허설이 너희들 인생에 꽃을 피우리라는 것을!”
- 농구가 나에게 준 상처와 선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농구 대회에서 상대의 변칙적인 파울로 인해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은 나는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 성숙해지자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농구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승패를 떠나서 의미 있고 재미있으며 흥미를 높이는 수업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한번은 아이들이 농구 시합 후 정리할 때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야! 이겼어? 몇 등이야?”
하지만 나의 수업 의도와 방법이 바뀐 후, 아이들끼리의 대화도 이렇게 변했다.
“야! 경기 재미있었어? 난 엄청 즐거웠어!”
농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기에 전략과 전술을 배워 경기에 우승하기 위해서 농구를 배우는 마음이 아닌, 농구를 통해 살아가는 삶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음과 같이 ‘농구를 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정리하였다.
1. 작은 골대에서 모두가 하나의 목표 아래 한마음이 되어 공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2. 슛을 통해 목표를 설정하는 다양한 방법을 배운다.
3. 패스를 통해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도록 공감과 배려심을 배운다.
4. 다양한 포지션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감을 배운다.
5. 드리블을 통해 공을 자유롭게 이동시키기 위해 신체 조절 능력의 중요성을 배운다.
6. 3초룰, 5초룰, 8초룰, 24초룰 등의 시간제한을 통해 약속의 중요성을 배운다.
7. 자주 안 쓰는 왼손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8. 5번은 퇴장이지만, 4번의 기회와 용서를 배운다.
9.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저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10. 바이얼레이션과 파울은 학교의 선도, 학교 폭력과 닮았다. 경기 규칙을 통해 삶의 규칙을 배운다.
과거에는 농구 잘하는 법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농구를 통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과거에는 ‘농구를’ 가르쳤다면, 지금은 ‘농구로’ 가르치는 것이다. 단순히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멋진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