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처음부터 교사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물 콧물 다 빼놓은 시간과 감동과 아픔을 뒤섞은 춘하추동 세월이 모두 녹아 있어야 교사가 됩니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모두 거친 베테랑 교사들이 예비 교사를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해 마련한 소중한 지침서이자 필독서입니다. 기꺼이 풀어놓은 숙성된 교실운영 노하우와 수업기술, 교사의 다양한 경험과 학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읽고 교사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가져 보길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10명의 사회/지리 교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생생하고 다양한 이야기로, 진로 및 진학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써 내려간 청소년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 저자 강정숙 외
저자 강정숙은 어린 시절부터 한 결같이 교사가 되는 것을 꿈꿔왔으며, 교사가 된 지금은 누군가의 꿈이 되고 있다. 교육의 첫 시작은 ‘학생에 대한 이해’라 생각하고, 라포 형성과 공감을 위해 노력한다. 교과서 속 지식에 숨을 불어넣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였다.
■ 차례
추천사
머리말
01. 끊임없이 성찰하는 교사, 강정숙
02. 학생과 '진짜 세상'을 만나는 사회 교사, 김영진
03. 수업과 일상을 잇는 동네 교사, 서재민
04.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사회 교사, 오승한
05. 번거롭고 귀찮지만 필요한 길을 가는 교사, 허진만
06. 가치 있는 삶을 가르치는 교사, 박소은
07. 지리해서 행복한 교사, 이명준
08. 지리를 통해 세상을 보여 주는 교사, 이용훈
09. 호기심이 많은 교사, 이지원
10.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는 교사, 조해수
교사도 처음부터 교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눈물 콧물 다 빼놓은 시간과 감동과 아픔을 뒤섞은 춘하추동 세월이 모두 녹아 있어야 교사가 된다. 그런 시간을 모두 거친 베테랑 교사들이 예비 교사를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해 마련한 소중한 지침서이다.
나는 사회/지리 교사입니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교사, 강정숙
나의 교사 이야기
척척박사 선생님을 꿈꾸다
내가 살던 곳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사돈의 팔촌은 뭐 하는 사람인지 다 아는 아주 작은 농촌이다. 매일 새벽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고, 바쁘게 일하시는 부모님께 놀아 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동네에 있던 유일한 동갑내기 단짝 친구는 일찌감치 도시로 이사를 가 버렸고, 주변에 학원이나 아이들이 갈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다. 그때 자연과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큰 이벤트 없이 조용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나에게 초등학교는 놀라운 곳이었다. 친구도 많고, 놀이터도 있고, 재미있는 수업도 한다!
더구나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해 주는 척척박사 같던 선생님은 너무나도 멋지게 다가왔다. 호기심이 넘쳤던 나에게 늘 다정하고 따뜻하고 뭐든 다 대답해 주는 사람.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자연스럽게 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생활은 정말 신났다. 하나하나 배워 가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키가 작았던 나는 늘 앞자리였는데, 앞자리에 앉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작은 키가 처음으로 고마웠다.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면 유독 선생님들께서 눈을 자주 마주쳐주셨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그렇게 나는 척척박사 다정한 교사를 꿈꾸며, 꿈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갔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처음이라.... 마음 읽기에 서툰 강 선생
첫 발령 학교에는 선생님들의 경력이 양극화되어 있었다. 경력이 아주 많으신 분들과 신규 교사들. 오랜 시간 동안 젊은 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신규 교사 3명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자, 관심거리였다. 선생님들의 수업뿐 아니라, 평상시 말과 옷, 액세서리 모든 것이 화제가 되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이 된 것만 같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내가 또 언제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겠냐.’ 하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꿈꿔 왔던 교사가 되었고, 학생들 한 명 한 명 참으로 예뻤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는 격주로 쉬는 토요일이 있었는데, 쉬는 토요일이 아쉬워서 ‘왜 토요일에 쉬어야 하지? 학교를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날이 많았을 정도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도 학생들 생각뿐이고,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학생들 얼굴이 그려졌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조언해 주신 적절한 거리두기 같은 건 모르겠고, 난 완전히 푹 빠져 있었고 정말 행복했다.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어떤 학급을 운영했으면 좋겠는지, 어떤 선생님이 좋고 싫은지 설문조사를 했다. 아이들은 단연코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교사’를 원했다. 나는 기꺼이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학생을 사랑으로 품었다. 학생들을 더 잘 알고, 잘 지도하고 싶어서 어머님들께 전화 상담을 몇 차례씩 진행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구분하지 않고 수시로 반에 들어가 아이들을 살피고 상담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든 시간이 학교와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역시 교사는 나의 천직이었어!’ 그것으로 되었다. 아니 다 된 줄 알았다. 아뿔싸. 나는 이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교사 생활 7개월 만에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늘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한 여학생이 찾아왔다. 쭈뼛쭈뼛하며 몹시 어렵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선생님 안티카페가 생겼어요. 한번 찾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 학생은 도망치듯 교무실을 떠났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처음엔 학생이 알려 준 사이트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 현실을 마주하기가 너무 무서웠다.
많은 학생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줬고, 난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고 더 따뜻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나에 대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정말 좋다. 자기가 클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 이런 표현들이 그저 귀여웠다. 그래서 웃고 넘겼다. 수원이는 나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수원이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덕분이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하셨다. 학생이 의욕 있게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니 기특하고 예뻤다.
한번은 학교에서 교내 영어경시대회가 있었다. 수원이가 다가오더니 “선생님. 제가 경시대회에서 전교 1등을 하면 소원 들어주세요.”라고 하였다. 일단 시험을 잘 보라고 격려하며 마무리 지었다. 수원이는 몇 주간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말로 1등을 했다. 경시대회 전 수원의 부탁을 까맣게 잊고, 그 노력의 과정을 기뻐하고 칭찬했다. 반 친구들 앞에서도 모범사례로 이야기해 주고, 누구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고 훈화까지 덧붙였다.
그날 저녁 수원이는 내게 당시 유행하던 SNS인 ‘싸이월드’의 스킨을 선물로 보냈다. 선생님 덕분에 경시대회에 1등을 할 수 있었다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것을 받아 주는 게 자신의 소원이라고 했다. 그때는 그 선물이 이렇게 큰 파문을 가져올지 전혀 몰랐다. 수원이의 성화에 못 이겨 스킨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도 똑같은 배경을 깔아둔 것이다. 그리고는 주변 친구들에게는 같은 배경을 절대 하지 못하게 했다. 평소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영향력이 있는 학생이었던 수원이는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와 상담을 하고 온 친구들에게 욕을 하는 식이었다. 특히 남학생들이 나와 이야기를 하면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처음에는 수원이의 행동이 과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해맑고 철없는 나였다. 그러고 보니 몇 주 전부터는 내가 다가갔을 때 뒷걸음질 치던 아이들이 보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던 아이와 선생님의 사랑을 고르게 받고 싶었던 아이들 간의 팽팽한 경쟁 속에서 눈치 없이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하는 교사에게 아이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한참을 울다가 동료 교사에게 털어놓고 용기를 내어 안티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00중 000선생님을 고발합니다.’ 카페명은 또 왜 이렇게 마음 아프게 지었을까. 들어가 보니 회원은 4명. 글은 하나였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용은 ‘차별 없는 교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영향력 있는 친구만 잘해 준다. 그 친구하고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4명의 학생은 과연 누구고, 왜 이런 카페를 만들었을까. 어쩌면 용기 내어 가입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속상한 학생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괴로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카페를 만들었던 친구를 알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모두가 하교하고, 늦은 시간 교무실로 한 학생이 찾아왔다. 자기가 카페를 만들었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자신도 관심받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도 나도 참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놓친 것이다. 선배 교사들의 ‘적당히 거리두기’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멀어지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학생들, 특히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학생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더욱 세심하게 챙기면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두기에 신경 쓰고 있다.
수업이 즐거워지는 이야기
사회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처음에는 수업의 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 유명한 일타 강사들을 찾아보면서 수업 시간 한 시간을 휘어잡는 기술이 무엇인지,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방대한 사회 지식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학생들에게 사회 수업을 좋아하는지를 물으면, 안타깝게도 대다수 학생이 싫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면 “외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재미가 없고 힘들다.”라는 공통된 답변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지식을 습득하고, 오랫동안 장기 기억 속에 남겨둘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수업 내용의 도식화이다. 매 수업 시간을 시작할 때는 그날의 학습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하여 설명했다. 주요 개념과 일반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픽토그램이나 간단한 그림을 그려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최근에 마인드맵이나 비주얼 싱킹으로 많이 알려졌다. 암기를 쉽게 하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개념에 음률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 가르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음치였던 나에겐 참 힘든 과정이었지만,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나의 수업’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사건이 생겼다. 우리 교실에서 따돌림 문제가 생긴 것이다. 피부색이 유독 검은 학생이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그 친구를 “동남아”, “필리핀” 같은 차별적인 별명을 붙이고는 무시했다. 따돌림을 주도했던 그 학생들은 문화 단원을 공부하던 사회 시간에 문화상대주의적 태도가 필요하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누구보다 잘 대답하던 아이들이었다. 많은 학생이 수업 시간에,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술술 대답은 했지만, 실제로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거나 서슴지 않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내 수업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회책에 나온 개념들은 공식처럼 달달 외우지만, 정작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관심도 없는 학생들을 보면서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담겨 있는 방대한 사회학적 지식을 다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 내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가 아닐까.
그때부터 내 수업의 목표가 생겨났다. 사실 창의적이거나 생소한 것도 아니다. 사회과 교육과정 해설서에 친절하게 설명된, 사회 교사라면 누구나 다 봤을 목표다. 당연하고 기본인 것을 과거에는 그저 문서로만 남겨 두고 지식 전달에 급급했다면, 이제부터는 숨을 불어넣고 살아나도록 노력한 것이다.
수업과 일상을 잇는 동네 교사, 서재민
나의 교사 이야기
교사, 안정된 직장 이상의 무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어른들이 좋다고들 하는, 직업명에 ‘~사’ 자 들어가는 직업들이 있다. 높은 소득과 정년 보장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것들이었다. 둘 다 얻는 건 욕심이었고 이 둘 중 하나라도 얻고 싶었다. 게다가 때는 IMF 이후에 경제 위기의 여파로 취업난이 계속되던 2000년대 초반이기도 했다. 항상 쪼들리는 가난한 집에서 자란 탓인지, 큰돈이 아니라고 해도 매달 일정한 월급을 받고 싶었다.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라고들 해서 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독특했던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교사라는 직업에 더 관심이 갔다. 선생님은 화를 내거나 학생을 궁지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폭력이라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법한 체벌이 만연했지만, 선생님은 체벌은커녕 어떤 위압적인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내세우며 학생의 말을 막지 않았다. ‘저러면 학생들이 만만하게 볼 텐데....’ 속으로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여름 방학엔 함께 강원도 치악산으로 놀러 가기도 했다. 전해에 학급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한 친구가 밴드 동아리 선배한테서 들었고, 우리도 가자며 졸라댔는데 정말로 가게 될 줄 몰랐다. 제멋대로인 14명의 학생과 전철, 기차, 버스, 산행으로 이어지는 1박 2일의 여행이라니. 우리가 머무는 장소마다 추억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웃고 뛰어다녔다. 그리고 선생님과 편한 대화를 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진지한 대화도 오갔다. 가족을 잃은 이야기, 친구와 갈등과 연애 이야기들을 늦은 밤까지 나눴다. ‘참 신기한 선생님이다.’라는 생각, ‘교사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경제적 안정감을 가진 직업이라는 느낌 외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사람, 관계, 감정의 따뜻함을 이제야 배워 가는 중
사회과학 책을 뒤적거리다가도 내가 처한 현실은 현실대로 헤쳐 나가야 했다. 임용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려면 사범대학을 졸업해야 했고, 생계를 스스로 꾸리면서 교원 임용시험도 빨리 통과해야 했다. 내 시간, 관심, 감정 등을 강하게 통제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성과 감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그래서 이성으로 감성을 억누를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게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식이며,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이미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상태로 학교에 오게 됐다. 따뜻하게 사람을 만날 준비, 학생을 만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무미건조하게 대했다. 선배 선생님들이 신규 선생님들에게 으레 많이들 말해 주는 “애들한테 너무 잘해 주지 마라.”, “그러다 마음을 크게 다칠 수 있다.”, “다치면 너무 아프다.”라는 조언이 애초에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학생들이 괜한 고집을 부리거나 청소를 도망가면, 불러서 “왜 그랬냐.”, “또 그럴 거냐.”, “또 그러면 어떡할 거냐.”, “손가락 약속 꾹꾹! 눈빛으로 다짐!!”. 이런 말을 안 했다. “앞으로 그러지 말자.”라는 딱딱한 말만 짧게 전하고 돌아섰다. 도리어 신규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신규 같지 않다는 건 학교 일을 처리하고 학생을 만나는 모습이 미숙하지 않아 보인다는 칭찬의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통의 신규 교사는 학생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 열정으로 만난다. 따라서 내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건 내 마음이 이미 차갑게 식어 있다는 걸 들킨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내게 아무런 조건 없이 관심과 애정을 줬다. 의심하고, 거리를 두려는 내게 좋은, 솔직한, 밝은 감정들을 계속 표현했다. 그런 마음이 고맙다고 느끼다 보니 내 마음에도 신기한 변화가 이어졌다. 차가운 마음이 천천히 녹은 것이다. 소소한 일에 크게 웃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뭉클하고 찡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차가운 이성으로 감정을 누르는 비인간적인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20**년 1월 종업식 날이었다. 담임 학급에 한 해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마지막 종례 인사를 했다. 사실 1년 내내 학급 내 교우관계 문제로 학생들 대부분이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담임으로서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적극적으로 조율하고, 상처를 말끔히 아물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이 컸다. “담임이 많이 부족했고 미안하다. 그래도 밝게 잘 생활해 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정기 전보 예정이어서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 학교에서 지냈던 5년에 감사하다고 했다. 종업식을 마치고 교실 뒷정리를 하는데, 학생들이 다가왔다. 펑펑 울며 “왜 다른 학교 가냐.”고, “내년에도 우리 선생님 해 주세요.”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내게 과한 애정(?) 표현이었다. 내가 특별히 좋은 선생님이었다기보다는 그간 쌓인 정이 끝난다는 아쉬움이었을 건데, 그런 표현만으로도 고마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학생들이 나와 생활하면서 의미 있는 배움을 얻고 더 성장했는가 하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반대로 나는 학생들과 만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자기주장만 한다고,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다고, 세상이 각박하다고, 학교와 교육을 단념하고 환멸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일들은 교사가 온전히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의 문제로 발생하고, 이런 일들로 인해 때때로 상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지내다 보면 사람이 좋아진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다. 사람과 감정, 관계의 따뜻함을 배우게 된다.
수업이 즐거워지는 이야기
지식 이해에 매몰된 수업에서 빠져나오기
수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시간일까? 내용 지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암기해서 오지선다형 문제를 잘 맞히는 걸 연습하는 게 전부일까? 수능, 임용 고사 등 경쟁형 시험을 준비하는 강의를 주로 받다 보니 그것이 수업 전부인 줄 착각하고, 교사로 첫 몇 년은 지식을 학생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하는 수업만 했다. 학생 주도 수업, 프로젝트 수업, 토의/토론 수업 등 활동형 수업을 교육학 관련 서적에서 보긴 했다. 이런 수업은 색다르고 옳은 방향으로 보였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 줄 몰랐다. 실행한다는 것이 내게는 그야말로 먼 이야기였다.
개념의 이해와 지식의 암기는 꼭 필요한 학습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수업 전부거나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알고 보니 극심한 입시 경쟁이라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교육 문제가 낳은 현상의 하나였다. 입시 경쟁에서 학습자는 대학 입시에 반영되는 공통 과목의 내용을 암기해서 다른 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하고, 이를 객관식 시험의 점수로 증명받아야 한다. 상대평가를 위한 문제의 변별력을 위해선 다루는 지식의 깊이와 양이 늘어야만 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쌓여 사회 수업은 방대한 사회과학 지식을 암기하는데 치우치게 되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조금씩 내 수업에서라도 수업에서 지식과 활동의 균형을 찾아가려 했다. 일단 의도적으로 지식 이해의 비중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토의와 토론을 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등의 활동 수업의 비중을 높여 갔다. 처음엔 무 자르듯 지식 1/3, 기능 1/3, 태도 1/3로 비중을 조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원과 주제의 특성에 따라 비중을 달리한다거나, 지식 설명과 이해, 기능과 태도 활동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수업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
수업 방식만 변화하는 건 한계가 있다. 수업의 목표가 변하지 않는다면, 여러 방식을 써 보다가 원점으로 온다. 나만의 수업 모형을 만들어 간 가장 큰 요인은 수업의 목표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다루는 지식이 정말 우리 삶에 쓸모가 있나?’, ‘지식이 실제 내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속 지식이 권위자의 개념을 풀어 놓은 용어해설집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고, 더 좋은 사회로 변화하려는 진보적 가치와 지향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수업 목표에서 더 나아가 교육의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교육이란 틀 안에 가두고 주어진 정답과 맞추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의 사고를 다져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식 이해와 암기에 매몰되어 있던 사회 수업에서 더 적극적으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관련 주제에 대한 지식 요소는 간단히 다루고, 교과서에 없지만, 더 입체적으로 주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과학 지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식은 학습자 스스로가 탐구 활동을 해내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에서 멈추고, 직접 주제를 탐구하고 대화하고 대안을 찾도록 했다.
수업 연구회에서 선생님들과 학생,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업 목표와 방식에 대한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곧바로 학생들의 배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무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배우느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