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Power
권력의 시대
 
지은이 : Mark R. Levin
출판사 : Threshold Editions
출판일 : 202507







권력의 시대, 자유의 기술

한동안 정치는 정책의 경쟁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치는 권력의 작동 방식 자체를 둘러싼 싸움으로 바뀌었다. 권력은 늘 존재했지만, 지금은 권력이 다시 전면에 나와 삶의 문장까지 바꾸고 있다.

권력은 누가 쥐느냐보다, 어떻게 자라느냐가 더 오래 남는다
권력은 ‘큰 힘’이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권력은 제도, 관행, 언어, 예외 규정, 절차의 생략 같은 작은 요소들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생활의 구조물이다. 그래서 권력을 경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은 영웅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커질수록 더 늦게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를 설계하는 일이다. 권력은 빠르게 작동할수록 유능해 보이지만, 사회는 그 속도 때문에 망가지기도 한다. 속도는 효율이지만, 동시에 검증과 책임의 시간을 빼앗는 기술이기도 하다.

부정적 권력, 통제의 비용을 낮추는 방식
부정적 권력은 공개 폭력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더 자주 나타나는 형태는 ‘통제의 비용을 낮추는 권력’이다. 매번 강제로 누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조심하고, 스스로 침묵하고, 스스로 순응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형성된다. 여기서 핵심은 공포의 과잉이 아니라 선택지의 축소다. 선택지가 줄면 사람은 맞서기보다 적응한다. 적응이 늘면 권력은 더 필요 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더 깊게 들어온다.

이 과정은 선언이 아니라 누적이다. “오늘부터 자유를 줄이겠다”는 말은 대개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번만’이 반복되고, 반복된 ‘이번만’이 관행이 되고, 관행이 규칙이 되면서 반대는 비용이 된다. 거칠게 말해, 부정적 권력은 사회를 억압하기보다 사회를 ‘피곤하게’ 만든다. 피곤해진 사회는 통제를 요구하고, 통제가 늘면 다시 피곤해진다. 그렇게 악순환이 완성된다.

긍정적 권력, 약한 권력이 아니라 제한된 권력
권력을 경계한다고 해서 권력이 필요 없다는 결론으로 가지는 않는다. 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권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다만 그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못하게 묶여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긍정적 권력은 약한 권력이 아니라, 제한된 권력이다. 권력이 나빠질 가능성을 전제로 설계되고, 충돌과 견제 속에서만 움직이며, 절차의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권력이다.

여기에서 자유는 감정이 아니라 운영이 된다. 자유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자유가 작동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은 다르다. 구조가 갖춰져야 자유가 일상이 된다. 견제와 균형, 권한의 분산, 예측 가능한 법, 절차의 준수 같은 낡아 보이는 장치들이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안전장치로 돌아온다. 권력이 빨라질수록, 사회를 지키는 장치는 느릴 필요가 있다. 느림은 비효율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언어가 권력을 만든다, 권력이 언어를 바꾼다
권력은 법과 경찰봉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극단, 애국과 배신의 경계선을 누가 그리느냐가 먼저 작동한다. 그 경계선이 굳어지면, 정책은 설계의 언어가 아니라 전쟁의 언어로 변한다. 토론이 설득이 아니라 낙인이 되고, 반대가 다른 주장이라기보다 ‘위험’이 된다. 이때 권력은 설득 비용을 절감한다. ‘이해시키는’ 대신 ‘분류하는’ 방식이 더 싸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과 강한 감정이 확산의 표준이 된 환경에서는 이 현상이 더 가속된다. 복잡한 구조 설명은 느리고, 분노는 빠르다. 분노가 빠를수록 권력은 통제를 ‘대응’으로 포장하기 쉬워진다. “일단 막자”가 반복되는 순간, 예외는 늘고, 예외가 늘수록 규칙의 중심은 비어간다. 권력은 이 공백을 먹고 커진다.

권리의 목록보다, 권리가 살아남는 조건
권리는 종이 위에 존재할 때보다, 일상에서 작동할 때 의미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적혀 있어도 발언의 대가가 생계 파괴로 이어지면 침묵이 늘어난다. 법 앞의 평등이 적혀 있어도 소송의 비용이 감당 불가능하면 권리는 사치가 된다. 권리의 실질은 선언이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권리가 폐지되지 않아도 무력해진다. 유지된다는 말 속에서 사라지는 방식이다.

그래서 권력의 위험은 ‘빼앗는 순간’보다 ‘침식되는 과정’에서 커진다. 권리를 제한하는 예외가 조금씩 늘고, 예외가 일상화되며, 결국 권리의 중심부는 텅 빈다. 표면상 자유는 남아 있는데, 실제로는 위험을 감당할 사람만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된다. 자유가 계급이 되는 순간이다.

행정 권력의 팽창,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우회하는 길
권력이 커지는 통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효율, 전문성, 위기 대응, 속도 같은 말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은 종종 민주주의의 절차를 우회하는 유혹이 된다. 규칙은 복잡해지고, 권한은 집중되고, 책임은 분산된다. 결정은 빨라지는데, 누가 책임지는지는 더 흐려진다. 이 구조에서는 시민이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권력이 시민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이때 사회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이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게 설계돼 있는가”다. 권력의 선의를 믿는 게 아니라, 권력의 악의를 상정하는 설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선의를 기대하는 사회는 불행해지는 속도가 빠르다. 악의를 상정한 사회는 불편하지만 오래 버틴다.

지금 권력을 말하는 이유, 구조를 되찾는 이유
권력이 전면에 나오는 시대에는 정치가 도덕 전쟁으로 기울기 쉽다. 누가 더 옳은가가 누가 더 위험한가로 바뀌고, 설계는 훈육으로 바뀐다. 그러면 사회는 문제를 고치기보다 사람을 벌주려는 방향으로 기운다. 그 순간부터 권력은 해결이 아니라 처벌의 도구가 되고, 처벌이 빨라질수록 사회는 더 갈라진다. 갈라질수록 공동의 해결 능력은 약해지고, 약해질수록 더 강한 통제를 요구하게 된다. 불안이 권력을 키우고, 권력이 불안을 키우는 순환이다.

권력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큰 권력이 아니라 더 정교한 제한이다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필요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핵심은 “권력을 없애자”가 아니라 “권력이 자라나는 방향을 제한하자”다. 제한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물이다. 견제와 균형은 느리고 답답하지만, 권력이 빨라질수록 그 느림이 안전장치가 된다. 빠른 힘을 늦추는 장치가 없으면 사회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칠어질 뿐이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권력은 누구의 손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로 평가돼야 한다. 권력을 경계한다는 말이 진짜가 되려면, 상대를 막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나를 막기 위한 규칙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권력의 논쟁은 진영의 구호를 넘어, 구조의 대화로 돌아온다.